단원의 특징
① 조용한 시골마을에서 개, 고양이, 닭과 함께 살아가는 두 할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유기(遺棄)라는 무거운 사회문제를 명랑하게 풀어낸 창작뮤지컬.
② 2011년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에서 초연되었으며, 를 잇는 소박하면서도 진한 이야기로 그 해 창작뮤지컬상을 수상하며 호평을 받았다.
③ 현재 두 번째 서울공연이 6월 24일까지 충무아트홀 소극장 블루에서 진행 중이다.
성지순례 왔습니다: 고모령
박복녀, 지화자 두 할머니가 함께 살고 있는 대구의 한 고개.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을 당하던 이들이 이별하던 장소로 유명했던 고모령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현인의 노래 ‘비 내리는 고모령’으로도 유명하다. 는 쓰레기가 많고 개발이 되지 않았지만 상대적으로 화려한 도시가 가까이 있을 장소를 물색하다 대구의 한 그린벨트 지역을 공간적 배경으로 삼았다. 비쩍 마른 몸만큼이나 꼬장꼬장한 박복녀의 허름한 집에 어느 날 꽃치마에 명품 가방을 든 지화자가 들이닥친다. 편지 한 통과 인감도장을 내밀며 이 집이 내 아들 집이라 우기는 화자와 원 거주자 복녀는 눈만 마주치면 싸우지만, 고모령 고개에서 화자의 고단한 인생을 들은 후 둘은 부쩍 가까워진다. 이별과 만남의 장소, 눈물과 웃음이 함께하는 고모령 고개는 그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닌다.도시락을 만들어 봅시다: 김밥
한솥밥을 먹는다는 의미의 식구(食口)에는 애초부터 ‘혈연’이라는 조건이 없다. 그래서 는 이 새로운 공동체의 형성을 ‘유기’로부터 시작한다. 화자는 요양원에서 쫓겨났고, 꼬(닭)는 ‘음식’으로서 시장에 팔리던 존재였다. 몽(개)은 주인을 잃고 헤매다가, ‘도련님’ 소리 들으며 살았던 냥(고양이)은 주인으로부터 버림 받은 채 “자동차 엔진에 기대어 자”다가 복녀를 만났다. 상처는 톱니바퀴 물리듯 서로의 빈 구석을 채워준다. 현대판 고려장이라 불리는 노인문제와 유기동물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극이 희망으로 마무리되는 이유다. 는 두 할머니와 몽냥꼬가 함께 김밥을 싸고 봄소풍을 가는 장면으로 끝난다. 서로에게 기대어 함께 말리는 김밥처럼 팔걸이도 없이 다닥다닥 붙은 소극장에서 함께 웃고 우는 관객들 역시 그 공간적 유대감으로 식구가 된다.
오늘의 후크: 얄리얄리 얄라셩
묵직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가 무작정 어둡지 않은 데에는 음악의 힘이 컸다. 어릴 적부터 들어왔던 괴담이나 동요 등 귀에 익숙한 소리가 새로운 방식으로 편곡되어 소개되기 때문이다. 재래식 화장실을 두려워하는 회자에게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라 부르는 노래는 공포를 극대화하고, 어린 딸을 그리워하는 복녀에게 동요 ‘비행기’는 그 자체로 눈물이 된다. 뮤지컬배우 이석준은 이런 의 음악에 대해 “노래 한 곡만으로도 추억을 끌어낸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또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몽냥꼬는 ‘가시리’와 ‘청산별곡’을 ‘베사메무초’를 연상시키는 멜로디 위에 얹어 ‘가시리 가시리 잇고, 날 두고 가시리 잇고’라 노래한다. 한국의 고전문학을 차용해 만든 노래는 서양의 장르와 동양의 정서가 만나 신선한 자극이 되었고, ‘얄리얄리 얄라셩’의 독특한 후렴구로 중독성 있는 후크송이 탄생했다.
숙녀의 품격: 여성 투톱 뮤지컬
최근 개막했거나, 개막을 앞두고 있는 작품 중에는 여성 투톱 뮤지컬이 많다. 기존에 관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대부분의 뮤지컬들은 서사의 중심에 남성이 있었다. 여성이 극을 이끌더라도 처럼 모성애가 강조되거나, 정치의 최전방에 있더라도 나 처럼 미모를 무기 삼는 이로 그려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를 비롯해 , 은 다르다. 를 비튼 는 엘파바와 글린다를 서쪽과 남쪽을 대표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이로 그렸고, 1931년 경성을 시공간적 배경으로 하는 은 변화하는 시대에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두 여자의 사랑을 얘기한다. 바야흐로 신사의 품격 대신 숙녀의 품격 시대가 왔다. 진흙 속 진주를 찾아서: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DIMF)
2006년에 처음 시작된 뮤지컬 페스티벌 DIMF는 아시아, 유럽 등 다양한 국가의 뮤지컬을 소개하는 것은 물론, 창작뮤지컬 인큐베이팅에도 열심이다. 그 결과 한해 DIMF에서 선정하는 창작지원제도를 통해 , , 등이 태어났다. 오는 15일부터 7월 9일까지 열리는 여섯 번째 페스티벌 역시 시대를 반영하는 이야기부터 연희단 거리패가 만드는 신작 뮤지컬, 판타지 요소를 가진 작품 등이 기다리고 있다. 에는 거창한 캐스팅도, 번쩍이는 무대도, 독특한 설정도, 그 흔한 러브라인도 없다. 쉽게 성공하기 어려운 조건 속에서 70대 노인들의 이야기는 사장될 수도 있었지만, 구들장처럼 깊고 긴 여운이 그들을 꺼냈다. 진흙 속에 묻힌 수많은 진주들이 더욱 빛날 수 있기를.
사진제공. 스토리P
글.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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