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영화 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이하 )의 조폭 두목 최형배(하정우)는 ‘각’이 살아있다. 수트가 잘 어울리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필 때도 날이 서 있다. 최형배가 라이벌 김판호(조진웅)를 폭행할 때 그는 순식간에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고, 주변 도구를 이용해 제압하며, 맥주병이 있는 곳까지 끌고 가서 결정타를 먹인 뒤 ‘담배빵’으로 응징을 마친다. 모든 행동에는 계산이 서 있고, 동작은 군더더기 없이 정확하다.

최형배의 먼 친척, 세관원이었던 남자 최익현(최민식)에겐 ‘각’이라곤 없다. 펑퍼짐한 몸은 수트 바깥으로 삐져나오고, 술도 담배도 느릿하게 만끽한다. 여사장(김혜은)과 싸울 때마저 동네 애들처럼 팔을 휘젓는다. 최형배는 할 일만 정확하게 하는 프로고, 최익현은 쓸 데 없이 끼어든 아마추어다. 첫 대면에서 최익현은 술을 마시자 같은 ‘충렬공파’인 최형배의 촌수를 따진다. 그는 상대방과 어떻게든 관계를 맺고, 공사를 모호하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반면 최형배는 그에게 “일하러 와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익현은 얼마 뒤 약간의 안면이 있던 최형배의 아버지를 이용, 촌수를 따져 최형배의 ‘대부’가 된다.

시스템 대신 인맥이 지배하는 나라의 룰최익현은 아무 것도 갖지 못했다. 우연히 얻은 필로폰 10kg을 처분하는 것도, 나이트 클럽 운영에 필요한 자금을 대는 것도 모두 최형배다. 최익현은 야쿠자에게 받은 총에 쓸 총알도 못 구한다. 돈, 조직, 인맥, 업계에 대한 지식까지 모두 최형배의 것이다. 그러나 최형배가 빠칭코 사업을 하려면 “안기부에서 지정” 받아야 한다. 조폭의 ‘일’을 조폭세계 바깥에서 풀어야 하면서 “쓸 데 없는” 아마추어가 가치를 갖는다. 최익현은 족보를 뒤져 10촌 관계의 검사를 찾고, 변호사와 같은 교회를 다니며 그들에게 사적으로 접근해 공적인 일을 해결한다. 최형배가 김판호를 칠 때 “명분이 없다”며 주저하자 최익현은 “너와 내가 가족이라는 것보다 더 큰 명분이 있냐”고 말한다. 최형배는 업계의 룰을 따지지만, 최익현은 사적 관계를 일에 개입시킨다.

에서 조폭은 소탕된다. 그러나 최형배에게 “내가 이겼다”고 말하는 사람은 검사 조범석(곽도원)이 아니다. 승리자는 최익현이다. 총알 없는 총처럼 알맹이 없던 인간이 사적 관계를 통해 진짜 ‘폭력 대부’가 됐다. 최익현은 조폭의 룰은 몰랐지만, 시대의 룰은 알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체포에) 불응하면 발포” 가능했던 ‘범죄와의 전쟁’은 정치권력의 초법적인 힘을 보여줬다. 6.29 선언으로 절차적 민주화는 이뤄졌지만, 쿠데타로 대통령이 된 전 대통령의 ‘친구’였던 대통령은 여전히 절대적인 권력자다. 군인이 폭력으로 권력을 잡았고, 그 결과 가족과 친구에 대한 호의가 법과 제도에 우선한다. 최익현이 “군인이 됐어야”한다고 말한 건 우연이 아니다.

은 군복을 입은 박정희-전두환-노태우의 사진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들로부터 시작된 비전문적이고, 사적이며, 시스템 대신 인간이 지배하는 나라의 룰이 만들어졌다. 최익현은 그 시대에 탄생한 잉여, 또는 괴물이다. 그는 타인의 돈과 조직을 끌어다 썼고, 인간관계만으로 권력에 다가섰다. 모두가 최익현처럼 성공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IMF 시절이 오는데 결정타를 날린 한보그룹의 비리도, 2000년대에 일어난 신정아의 학력위조도 모두 최익현과 같은 방식으로 벌어졌다. 실체를 볼 수 없는 인간관계가 실체 없는 인간의 실체를 만들어준다. 조폭부터 예술까지 모든 분야에 정치, 또는 관치가 힘을 미치고, 전문성 대신 인맥이 성공의 열쇠가 된다. 최익현을 잡아넣으려던 조범석 검사가 그와 비슷한 체형과 패션 스타일을 보여주는 건 흥미로운 우연이다. 조범석 검사는 조폭 소탕 후 ‘검찰청장’으로 가는 길 대신 “장관님이 곁에 두”는 자리로 가며 정치에 나선다. 최익현도 조폭의 돈과 조직으로 성공했지만, 결국 정치권력에 다가선다. 조폭이든 검사든, 결국 정치권력과 손을 잡으며 성공한다. 검사와 조폭마저 인맥을 통해 손을 잡는 세상. 누구와 몇 촌의 관계이거나 어떤 교회를 같이 다닌다는 건, 그 사적인 욕망을 가리기 위한 최소한의 명분이다. 업계의 룰이 명분이던 최형배는 완전히 사라지고, 촌수가 곧 명분인 최익현의 나라가 됐다.

폭력과 권력이 한 덩어리가 된 역사가 시작됐다

은 시대와 인간의 관계라는 명제를 보기 드물 만큼 정확하게 영화로 실현해 보인다. 가난하던 시절, 최익현의 아내는 일가 친척을 모두 챙기는 그에게 화를 낸다. 하지만 최익현이 부를 쌓기 시작하면서 비에 젖은 그의 얼굴을 닦아주고, 병원에서 병수발을 들며, 같은 교회를 다니며 최익현의 일을 돕는다. 그 사이 퀭하던 눈은 고운 얼굴로 바뀌고, 옷은 ‘마나님’ 복장으로 바뀐다. 은 거창하게 이야기를 벌리는 대신, 한 시대 속의 인간을 놀라울 만큼 현실적으로 묘사하면서 시대 전체를 통찰한다. 2시간여의 러닝 타임동안 종으로는 세관원이 나라 권력의 핵심에 접근하고, 횡으로는 조폭이 정치와 한 덩어리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조폭 영화로도, 시대극으로도 걸작이다. ‘살아있’는 캐릭터의 욕망을 보여주면서도 그 인간을 만들어낸 사회에 대한 분석적인 태도를 잃지 않고, 이야기가 다루는 범위는 넓고도 깊다.

그리고 은 에필로그처럼 붙은 2012년의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를 과거의 정리가 아닌 현재의 결산의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늙은 최익현의 얼굴에는 살이 덕지덕지 붙었고, 검버섯이 피어있다. 반면 그의 아들은 피부에 티 하나 없는, 고운 외모의 ‘훈남’이다. 그리고 그는 검사가 되었다.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한 최익현의 권력은 실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익현은 어린 시절부터 “English is power”라 가르치던 아들을 검사로 만들어 실체가 있는 권력을 만들었다. 인간관계는 부를 만들고, 부는 권력을 만들며, 권력은 실존하는 공직을 만든다. 그 사이 오욕이 붙은 비리와 부정축재자의 얼굴은 깨끗한 검사의 얼굴로 바뀐다. 군인 출신 독재자의 얼굴이 한국에서 손에 꼽히는 출판사를 운영하는 아들의 얼굴로 바뀐 것처럼.

아버지는 ‘연줄’과 타인의 자본으로 움직였지만, 아들은 실체 있는 권력과 자본을 갖는다. 돈도, 권력도, 검사도 모두 한 가족 안에 있다. 과거의 최익현처럼 조폭의, 또는 검사의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며 신분이 상승할 가능성조차 사라졌다. 최익현의 손자 돌잔치에 빙 둘러앉은 가족들처럼, 그 세계는 가족, 특히 남자의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신에서 카메라는 붉은 미니스커트를 입은 젊은 여자가 걸어가는 것을 따라가다 최익현의 얼굴을 클로즈업 한다. 과거에도 여자들은 최익현에게 (성희롱을 당하며) 음식이나 차를 나른 뒤 카메라 밖으로 사라졌다. 아니면 힘 있는 자의 아내나 내연녀가 돼야 했다. 이제 권력은 남자, 그 중에서도 ‘나쁜 놈’, 그 중에서도 검사를 아들로 둔 놈이 갖는다. 그리하여 은 ‘나쁜 놈들 전성시대’라는 부제의 의미를 현재로 확장한다. 최익현의 아들이 검사가 되는 시절이 오면서, ‘나쁜 놈’의 삶의 방식은 국가 시스템의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놈에게는 폭력과 권력이 한 덩어리가 된 역사가 따라붙는다. 공과 사가 엉키고,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무의미해진 세상은 정말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 범죄와의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글.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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