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 )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스스로 밝힌 것처럼 그의 작품 중에서 “흔치 않게, 밝고 따뜻한 영화”다. , , 등 햇살을 가득 머금은 아름다운 화면 안에 날카로운 외로움과 체념을 벼려두었던 그는 작은 선의와 소박한 소원으로 덥혀지는 세상으로 눈길을 돌렸다. 새로 개통되는 신칸센 열차 두 대가 교차할 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소문은 기적을 믿고자 하는 아이들에 의해 동화가 된다. 부모의 이혼으로 떨어져 사는 형제와 제 각기 고민을 가진 친구들, 이들의 “반짝 반짝 빛나는 매력”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를 이전과는 다른 지점으로 이끈다. 그에게 어떤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것일까?

“제가 그렇게 변한 것 같진 않아요. (웃음) 만약 보신 분들이 그런 인상을 받았다면 주인공인 두 아이가 가진 힘 때문일 거예요. 주연을 맡은 마에다 형제를 만나고 나서부터 이야기를 생각했습니다. 두 아이가 가진 긍정적인 에너지에 제가 끌려간 거죠.” “기적을 믿지 않는 어린이답지 않은 아이”였던 감독답게 그는 이란 이름의 영화를 내놓고도 “한 명의 어른으로서 ‘무조건 이루어지길 바라면 기적이 일어난다’고 말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말한다. “살면서 뭔가 커다란 난관에 부딪혔을 때 슈퍼맨이나 히어로가 나타나서 해결해주는 것이 이야기로서는 재미있을지 모르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잖아요. 아이들이 보는 영화를 만들 때 그런 식의 작업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어른에게는 그렇지 않다,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풍요롭고, 인생은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라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아이들에게 이야기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에서도 헤어진 형제가 다시 함께 살게 된다거나 죽었던 친구의 개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영화를 감싸는 것은 냉소나 체념의 한기가 아니라 희망의 온기다. 다시 씩씩하게 매일을 일궈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이, 그런 작은 영혼을 묵묵히 지켜보는 가족들의 시선이, “그럼에도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고 토닥이는 감독의 목소리가 일으키는 발열 작용은 연일 기록을 갱신하고 있는 한파에 꼭 필요한 방한용품이 될 것이다. 가장 약하다고 생각되는 어린 아이들로부터 가장 강한 생의 긍정을 이끌어낸 감독이 고른 영화들은 구제불능의 인간들이 빚어내는 희극과 비극. 이 한심해 보이는 어른들에게서 그가 발견한 것, 그리고 이끌어낸 긍정의 일면은 무엇일까?



1. (めおとぜんざい)
1955년 | 토요다 시로
“오래 전에 보고 최근에 다시 봤는데,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구제불능의 한심한 남자와 그 남자에게 끌려가는 여자의 이야기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어둡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고 밝다. 두 사람은 너무 하다고 느낄 정도로 절망하지 않는다. (웃음) 돈에도, 여자에도 야무지지 못한 남자와 부인이 있는 줄 알면서도 그에게 딱 붙어버린 여자의 이야기다.” 주로 약한 남자와 강한 여자 사이의 관계를 유머러스하게 포착한 토요다 시로 감독의 특기가 발휘된 영화. 이라는 제목은 팥고물을 무친 떡처럼 붙어있는 부부의 모양새를 뜻한다.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처럼 주로 일본을 대표하는 대작가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것처럼 역시 오다 사쿠노스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두고 있다.



2. (Lightning)
1952년 | 나루세 미키오
“나루세 미키오 감독의 역시 한심한 남자와 여자의 이야기다. 이상하게도 구제불능의 인간들이 등장하는 영화를 계속 말하고 있는데 그런 이야기에 어쩔 수 없이 끌리는 것 같다.” 일본 영화의 1세대 감독들이 그랬던 것처럼 나루세 미키오 또한 10대 시절부터 영화사에 들어가 도제과정을 밟았다. 그의 감독 인생 시작과 함께 일본 영화의 전성기가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나루세 미키오는 일본 영화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거장. 역시 도시에 사는 서민 여성을 주인공으로 다양한 인간군상이 모인 가족과 팍팍한 삶에도 피어나는 희망에 대해 이야기 한다.



3. (Seisaku`s Wife)
1965년 | 마스무라 야스조
“섬뜩한 사랑 이야기인데 배우 와카오 아야코가 굉장히 예쁘게 나온다. (웃음) 전시 중의 마을에서 꽤 평판이 좋은 남자와 마을에서 무시당하는 첩이 사랑에 빠지는 내용인데, 이야기가 참 좋다. 와카오 아야코가 이렇게 나온다면 좋아하지 않을 수 없지, 라는 느낌이다. (웃음)” 전쟁은 인간에게 인간이길 포기하라고 강요한다. 전장에 나가서 살인을 일상으로 벌여야 하는 군인들 뿐 아니라 사랑하는 이를 보내야 하는 남겨진 이들에게도 그 법칙은 유효하다. 남편을 전쟁에서 구하기 위한 여인의 필사적인 노력은 사랑이란 말 외에 다른 구실을 댈 수 없을 만큼 끔찍하고 절박하다.



4.
1962년 | 가와시마 유조
“에도 와카오 아야코가 나온다. 아무래도 와카오 아야코를 무척 좋아하나보다. (웃음) 어떤 단지를 무대로 한 상당히 시니컬한 이야기다. 그러면서도 새롭고 모던한 단지 생활을 그리고 있지만 여기에 펼쳐지는 사람들의 진짜 속마음이 섬세하게 그려진 시니컬한 코미디 영화다. 인물 묘사에 참고가 많이 되었다.” , 로 칸 영화제 대상을 두 번이나 수상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이 자신의 스승이라고 칭하길 주저하지 않았던 카와시마 유조 감독. 은 말도 못 하게 어이없는 가족과 그들에게 빌붙어 먹으려 하는 쓰레기 같은 인간들을 블랙 코미디로 그려냈다. 감독 특유의 유머가 추악한 인간의 본성을 웃어넘기게 한다.



5. (Love Hotel)
1985년 | 소마이 신지
“소마이 신지는 80년대 이후 일본 감독 중에서 상당히 좋아하는 분 중 한 명이다 소마이 감독도 아이들을 찍는 것에 꽤 천착했던 사람이다. 나로서는 흉내 낼 수 없지만. 내가 그리는 아이들과는 상당히 타입이 다른 아이들을 그린 영화를 많이 찍었다. 이 영화는 그가 초기에 만들었던 로망 포르노다. 여러 가지 의미로 좋아하지만 연애 영화로서 굉장히 좋아한다. ‘사랑’이라는 것을 다른 형태로 보여주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은 사랑의 이야기다.”

청춘과 아이들로 마냥 밝지만은 않은 영화를 만들어온 소마이 신지 감독의 작품 세계 안에서도 의외의 영화로 꼽히는 . 로망 포르노 장르를 개척한 니카츠 영화사에서 일을 시작한 감독이 명성을 얻은 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든 로망 포르노.



의 마에다 형제와 친구들은 달린다. 꼭 필요해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숨을 헐떡거리며 전력질주 한다. 거리와 시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효용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니다. 굳이 뛰지 않아도 되는데 한 명이 뛰기 시작하면 따라 뛰거나 “와아아아”하는 함성소리에 일제히 달리기도 한다. 아이와 어른을 가르는 기준은 바로 이것이 아닐까? 어른들이 잘 뛰지 않는 것은 시원치 않은 관절 탓이 아니라 “그냥 뛰는 아이들”의 시절이 끝이 났기 때문일지 모른다. 결국 기적을 믿지 않으면서 시작된 퇴화는 무릎을 굳게 만들고 이윽고 아이는 어른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마에다 형제가 더 이상 뛰지 않게 되는 순간, 그들은 어떤 모습일까? 어른스럽지만 매사가 불만이고 의문인 형과 철없는 아이 같지만 깜짝 놀랄 만큼의 현실감각을 지닌 동생의 십여 년 후를 감독이 직접 주는 힌트로 그려보자.

“형은 그렇게 계속 투덜투덜 거리면서 친구들하고 같이 중학교에 갈 테고, 음… 그애는 과연 무슨 서클 활동을 할까? (웃음) 동생은 분명히 여자한테 인기가 많을 거고, 그렇게 인기가 많은데 자기는 그걸 몰라서 굉장히 얄미운 캐릭터가 될 거 같아요. (웃음) 하지만 또 아빠의 영향을 받아서 음악활동을 하지 않을까요? 그래서 더욱 더 인기가 많아질 테고. 하지만 두 사람은 가끔 만나겠죠? 그래서 동생이 소개해준 여자랑 형이 아마 사귈 거예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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