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KBS1 밤 11시 40분
과학이란 무엇인가. ‘원자력, 그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는 주제로 방영된 어제의 가 유의미했다면 이 근본적인 질문을 떠올리게 해줘서일 것이다. 프로그램 스스로 질문했다는 뜻은 아니다. 고리 원전 1호기를 만들어내기까지 한국 원자력 발전 1세대 과학자들의 노력을 재연 드라마와 증언으로 풀어낸 어제 방송은 질문을 던지기보다는 오로지 국가 성장의 서사로서만 그 과정을 그려냈다. 영어로 된 교재 한 권으로 원자력 공부를 해야 하는 열악한 환경에서 이창건 박사를 비롯한 이들 1세대들은 관련 법규까지 직접 공부해 제안하고 미국 유학을 통해 원자로 관리 자격증을 따냈다. 쿠데타로 인한 정권 교체, 원전 부지 선정에 대한 국내 언론의 의구심 등을 극복하고 원전 1호기를 세운 업적이 바로 ‘도전과 응전의 역사’인 셈이다.

하지만 과학의 역사란 과학자들이 불모지에 세운 업적의 성장 서사가 아니다. 과학사란 자연을 설명하고 해석하기 위한 이론의 역사이며, 그 역사를 이끈 것은 과거의 업적에 대한 찬사가 아닌 과거의 이론에 대한 검증과 논의, 대체의 과정이다. 요컨대, 업적의 순차적 누적이 아닌 논박을 통한 싸움이며, 자연을 설명하는데 한계에 봉착한 이론이 다른 이론으로 대체되는 것이 과학에 있어서 ‘도전과 응전의 역사’이다. 원자력 발전 1세대에 대한 존경은 마땅한 것이지만, 일본 원전 사고로 급증한 원자력에 대한 불안함과 비판적 이론을 외면한 채, 원자력을 통한 전기 생산을 불변의 업적으로 소개하는 것을 과학적 사고라 말할 수 있을까. 현대 과학이 중세의 신학처럼 되지 않은 것은 자기검증의 태도 때문이었다. 하여 과학 만세, 과학자 만세를 외치는 곳에, 과학은 없다. 어제의 방송처럼.

글. 위근우 기자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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