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크와 함께 ‘오빠가 좋은 걸’ 혹은 ‘삼촌짱’을 외치는 귀여운 소녀 아이유를 기대했다면, 다음의 대화가 조금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성시경과 ‘그대네요’를 부르면서 SBS 를 떠올리고, 악플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을 정도로 덤덤한 성격을 타고난 아이유는 스스로 일찌감치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마시멜로’와 ‘좋은 날’이 가져다 준 인기를 거쳐 이번 앨범 의 모든 곡이 음원차트 상위권에 오를 때에도 아이유는 마냥 그 순간을 즐기기보다 “인기에 익숙해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먼저 하는 이 열아홉살의 가수는 성숙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 조금은 무서울 정도로 담대하다. 아이유가 직접 말하는 아이유의 이야기를 들었다.
지난 주 KBS 컴백무대를 봤어요. 전현무 씨와 함께 ‘삼촌’을 부르던데, 곡을 쓴 이적 씨는 왜 무대에 서지 않았죠? (웃음)
아이유: 이적 오빠가 워낙 바쁘신데다 직접 출연하시는 걸 조금 창피해하시더라고요. 삼촌 이미지를 가진 분이 누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예전에 KBS 에서 전현무 씨를 몇 번 뵌 적이 있어요. 제가 여쭤봤더니 흔쾌히 허락해주셨어요. 이적 씨와 함께 가사를 썼는데, 곡 콘셉트는 어떻게 잡았어요?
아이유: 원래 이적 오빠와 작업하려고 했던 건 좀 어두운 곡이었어요. 그러면 삼촌을 갖고 재밌는 테마송을 만들어보자고 했죠. 어떻게 보면 팬서비스 같은 곡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삼촌’ 보다 먼저 어두운 곡을 만들었다”
어두운 곡이요?
아이유: ‘불안해’라는 곡이 있었어요. 멜로디는 되게 좋았는데 전체적으로 너무 어두워서 다음에 나이 들면 하자고 (웃음)
앨범에서도 ‘라스트 판타지’ 이후로 좀 더 어두워지는 느낌이 있어요. ‘4AM’나 자작곡 ‘길 잃은 강아지’ 같은.
아이유:곡 배치를 일부러 더 그런 식으로 한 것도 있는데, 앞쪽은 밝고 명랑한 느낌이 많으면 뒤쪽은 딱 지금의 제 모습을 표현한 배치에요. 이제는 좀 어둡고 진지한 노래들을 쓸 수도 있고, 다음 앨범에서 새로운 걸 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선지 앨범 재킷 사진이 무덤덤하거나 굳은 표정이 많은 게 기억에 남아요. 의도한 건가요?
아이유: 제 사진을 찍어주시는 분들은 다 제 무표정을 좋아하세요.
왜 그런지 물어본 적 있어요? (웃음)
아이유: 귀엽지 않아서래요. (웃음) 제가 방송에서는 많이 웃고 귀여운 표정을 많이 짓는데, 사실 제 얼굴을 뜯어보면 귀여운 구석이 별로 없거든요. 귀여워봤자 코 정도? 눈도 귀엽게 동글동글한 눈이 아니에요. 데뷔하기 전까지 제가 귀엽게 생겼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 의외의 모습, 조금 어두운 느낌이 확 드러난 게 ‘길 잃은 강아지’같아요. 버림받은 존재에 대한 노래인데, ‘좋은날’ 때도 이 인기가 언제 사라질지 두렵다고 말했어요. 현재의 나에 대한 생각이 많나봐요.
아이유: 상처받지 않기 위해 준비를 많이 하고 스스로를 보호하는 것 같아요. 이런 것에 익숙해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제가 똑똑해서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자기 보호가 강하기 때문이에요.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도 별로 안 좋아해요. 그리고 아직까지도 인기가 완벽하게 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TV 속에 나오는 아이유의 모습은 저만의 노력으로 되는 건 아니에요. 헤어 선생님 지분 조금, 메이크업 선생님 지분 조금 (웃음) 이렇게 나눠주고 나면 저에게 돌아오는 지분은 정말 조금밖에 안돼요. 딱 그만큼만 즐기고 있어요. 그 점에서 이번 앨범이 더 의미가 있을 거 같아요. 유명 뮤지션들과 작업한 앨범이기도 하고, 곡을 받아오는 과정부터 직접 한 걸로 알고 있는데.
아이유: 무엇보다 선배님들이 저를 같이 작업하는 사람으로 동등하게 대해주셔서 감동받았어요. 가사 한 줄을 쓰실 때도 이런 표현은 어떠냐고 물어보시고. 앨범은 평생 남는 건데, 그동안 제 노래를 들으면서 항상 아쉬워했거든요. 예전에는 그 때 이렇게 얘기할 걸, 하는 부분들이 많았다면 이번에는 다 얘기했어요. 그만큼 책임져야 될 부분도 커졌죠. 사람들이 이번 앨범 이상하다고 했을 때 제가 책임을 져야 되는 부분도 있으니까. 하지만 후회는 없어요. 그래서 제 보컬 디렉팅도 아주 자세히 하려는 분은 거의 없으셨어요. 대부분 “네가 한 번 해석을 해보고 알아서 불러봐라”이런 식이었거든요. 그래서 1번부터 14번 트랙까지 보컬 톤을 조금씩 다르게 해보자는 생각을 스스로 했던 것 같아요.
그동안 많이 드러나지 않은 저음 보컬의 사용이 인상적이었어요. ‘라망’에서 저음부터 고음까지 다양하게 나오기도 하고, ‘4AM’은 드디어 이렇게 진한 느낌을 내는구나 싶었고.
아이유: 사실 저는 이런 걸 좋아한답니다. 하하. ‘4AM’은 제가 이제야 조심스럽게 꺼내놓은 곡이에요. 곡 자체가 대중적이지 않기 때문에 ‘좋은 날’같은 곡에서 들려드린 저의 대중적인 목소리로 부르면 이질감이 느껴질 것 같았어요. 어떤 목소리로 불러야 사람들이 이 노래를 위화감 없이 들어줄까 고민을 진짜 많이 했어요. 처음에 ‘너랑 나’의 톤으로 불렀다가 한 번 엎고 제 마음대로 불렀던 게 지금의 ‘4AM’이 된 거죠. 고음 파트가 없어서 목도 안 풀고 녹음했어요. 그냥 말할 때 목소리처럼 허스키한 톤으로 불렀는데, 조금 거북하지 않을까 걱정도 했지만 다행히도 도와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셨어요.
그렇게 곡마다 무슨 노래를 부를지 정하려면 자신의 목소리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할텐데요.
아이유: 제 목소리가 좀 많다고 생각해요. 가끔은 저만의 소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은 이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정규앨범인데 14번 트랙까지 똑같은 목소리가 나오면 좀 지겹잖아요. 딱히 뭘 계산했다기보다는 곡을 처음 들었을 때의 느낌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특히 성시경 씨와 함께 부른 ‘그대네요’가 그런 감각을 잘 발휘한 곡 같았어요. 노래 자체가 어느 정도 나이있는 사람들의 돌아온 사랑인데, 그 감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표현한 거죠?
아이유: 정말 같은 노래죠. (웃음) 일종의 연기라고 생각했어요. 가을볕 아래 나이가 좀 있고 말수가 없는 여자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불렀어요. 실제로 ‘햇살이 어루만지는 그대 얼굴’이라는 가사가 나오거든요. 작곡가 분이 요구하신 것과 제가 머릿속으로 그렸던 이미지가 잘 맞았던 곡이라서 별 무리 없이 불렀어요.
“알랭 드 보통의 글은 줄쳐가면서 읽어요”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이건 어떻게 불러야겠다는 그림이 직관적으로 그려지는 편인가요?
아이유: 전 여섯 살 때부터 노래 부르는 연습보다 노래 해석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이 노래를 내 방식대로 부르면 어떨까. 다른 버전, 다른 편곡도 생각해보고. 이런 연습을 많이 해서 그런지 그림이 좀 그려지는 편이죠. 그런 점에서 또래들과 좀 취향이나 감성이 다른 것 같아요. 드라마 나 평소 읽는다는 알랭 드 보통의 소설이나 모두 좀 더 나이든 사람들의 취향인데.
아이유: 알랭 드 보통의 책들은 어른들도 어려워하는 책이니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죠. 처음엔 제가 책을 읽고 있는 건지 그냥 보고 있는 건지 잘 몰랐어요. 다섯 번, 여섯 번씩 읽다보니까 아 이게 그런 뜻이었구나 하고 알게 돼요. 거기서 오는 충격이 있어요. 워낙 좋은 글귀들이 많으니까 줄 쳐가면서 읽어요.
그런 부분이 가사를 쓸 때도 도움이 되나요? 10대가 경험할 수 있는 폭이 넓지 않다보니 아무래도 간접경험이 많이 필요할 텐데요.
아이유: 네, 많이 도움이 되죠. 초등학생들도 슬픈 영화나 사랑 이야기를 보면 울잖아요. 걔네들이 뭘 알아서 우는 게 아니라 단순히 그 상황에 동화되고 그 연기자에게 몰입하기 때문에 우는 거예요. 아직 10대인데 어떻게 그걸 알고 부르냐는 질문을 많이 하시는데, 직접 겪어보지 않더라도 너무나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알고 있는 것들을 가지고 연기를 하는 거죠.
그런데 ‘너랑 나’같은 곡은 그런 감성보다 좀 더 귀여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잖아요. 목소리도 허스키한 저음보다 날카롭게 쏘는 고음을 내야 하고. 더 귀여운 느낌을 줘야 하고.
아이유: ‘너랑 나’를 작곡하신 이민수 작곡가님은 1부터 10까지 완벽한 그림을 머릿속에 갖고 곡을 쓰세요. 제가 혼자 고민을 하지 않아도 노래를 들으면 그냥 다 느껴져요. 제 목소리를 다 꿰고 계시거든요. 사실 ‘너랑 나’보다 ‘라망’ 스타일의 보컬이 저한테는 더 편한데, 대중들이 좋아하는 목소리는 ‘너랑 나’라는 걸 이번에 다시 한 번 느꼈어요.
“다시 예전의 이지은으로 돌아간다 해도 괜찮아요”
그렇게 사람들에게는 더 다양한 모습으로 비춰지게 되는데, 인기도 얻지만 의도치 않은 논란도 생겨나요. 전혀 얘기도 안해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다 다르게 받아들이고 얘기하는 건 어때요?
아이유: 그대로 계속 두기로 했어요. 저에 대해 좋게 말하는 사람도, 나쁘게 말하는 사람도 그냥 다 이해가 돼요. 그게 다 제 모습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더라고요. 원래 성격이 좀 덤덤한 편이라 사람들의 얘기에 크게 상처받지 않는 편이에요.
일종의 거리두기인가요?
아이유: 네. 저한테 와서 대놓고 욕을 하셔도 상처받지 않아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한테서 ‘너 실망했어’라는 얘길 들었을 때 상처받지, 제가 별로 관심 없는 사람한테는 진짜 신경을 안 쓰거든요. 악플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거예요. 저를 싫어하는 사람까지 절 좋아하게 만들만큼 전 대인배가 아니거든요. 절 싫어하는 사람은 저도 안 좋아하면 그만이니까.
그 나이에 갖기 힘든 마인드인데, 그렇게 자신을 지키는 방법을 배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어요?
아이유: 그런 성격을 타고난 것 같아요. 흐흐. 주변 사람들을 하나 하나 신경 쓰고 오해가 있으면 달려가서 풀고 적을 만들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전 그런 편이 아니거든요. 그러다보니까 안티도 생겼는데, 그냥 그걸 그 자리에 두고 익숙해져 버리면 저도 상처받지 않고 그 사람도 상처받지 않는 것 같아요.
예전 MBC 에서 어려웠던 시절을 얘기할 때도 지나칠 정도로 담담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유: 사람들이 진짜 독하게 보였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정말 SBS 에 나가서 울면서 해야 될 얘기를 그렇게 덤덤하게 하냐고. 사실 그 때 당시에도 크게 힘들거나 흔들리지 않았어요. 이유 모를 자신감 같은 게 있었어요. 이건 잠깐이고 난 앞으로 가수가 돼서 노래하면서 살 거라는 예감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 별로 휘둘리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미 다 극복한 일이고 거기에 대한 트라우마도 없어진 상태니까 그렇게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만약 제가 극복하지 못했으면 방송에서 아예 얘기도 안 꺼냈겠죠.
어린 나이에 데뷔하면서 스스로 결정해야 되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그런 것들이 힘들진 않았어요?
아이유: 네, 별로. 오히려 되게 좋았어요. 제가 열다섯 살 때 데뷔를 했는데, 그 때는 막 어른이고 싶어 하고 모든 걸 결정하고 싶어 하는 나이잖아요. 원하는 대로 결정을 할 수 있었으니까 좋았죠. 누가 시켜서 한 게 아니라 나 스스로 내린 결정이니까 혹시 후회하더라도 남들한테 티를 안 냈어요. 고집이 좀 세기도 하고요. 애기 때부터 그런 게 좀 강했어요. 하하. 부모님께서 제가 혼자서 뭔가를 할 수 있도록 키워주셨거든요.
하지만 인기가 많아질수록 결정의 범위나 파장이 커질 수밖에 없고, 그만큼 어깨도 무거워지잖아요.
아이유: 스스로 무섭거나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돼요. 저는 한편으로는 되게 독하고 강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별 것도 아닌 일에 상처받고 울 때가 있거든요. 강해보이고 인정 없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어차피 저랑 똑같은 사람일 거라는 생각을 하면 별로 무섭지 않아요.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이 강해졌어요. 나는 독하고 강하다, 절대 기죽지 않아! 흐흐.
자기 최면을 계속 거는군요?
아이유: 데뷔하기 전부터 자기에 대한 믿음이 강해야만 연예인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내가 멋있고 잘났다고 생각을 해야 자신 있게 카메라 앞에서 노래도 할 수 있다고. 그런데 저는 데뷔 때부터 항상 그게 부족했어요. 아직도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무대에 올라갈 때가 많아요. 아직까지 무대에서 즐기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경력이 늘수록 자신감이 많이 생길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데뷔했을 때보다 자신감이 많이 생겼으니까요.
20대부터는 본인의 모습을 더 많이 드러내게 될 텐데, 앞으로의 내 모습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해요?
아이유: 구체적인 계획이라는 건… 완전 없어요. (웃음) 이번 앨범 1등 해야겠다는 욕심도 없고, 우리나라에서 톱 가수가 되어야겠다는 욕심도 없어요. 그냥 다른 사람들한테 무시당하지 않고 멋있게, 재밌게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강해요. 뚜렷한 목표가 없으니까 두렵지도 않고 크게 기대도 안 돼요. 어느 날 무슨 일이 생겨서 다시 예전의 이지은으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괜찮아요. 누가 그렇게 얘기하더라고요. 너는 꼭 집주인이 와서 방 빼라고 할 때를 기다리는 것처럼 미리 짐을 싸놓고 있는 아이 같다고.
20대에도 계속해서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면 어떤 가수가 되어있을 것 같아요?
아이유: 저는 제가 제대로 뒤통수를 때릴 가수라고 생각해요! (웃음)
인터뷰, 글. 이가온 thirteen@
인터뷰. 강명석 기자 two@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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