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라는 이 자리를 가리켜 “독이 든 성배”라고 말했다. 고영욱은 자신의 트위터에 ‘내가 들어가고 싶다. 부족하지만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내용의 글을 남겼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티오, 바로 MBC ‘라디오 스타’(이하 ‘라스’)의 네 번째 MC 자리다. 지난 9월 초, 신정환이 해외 도박 의혹에 휘말리며 프로그램에서 하차하자 신정환의 기존 녹화 분을 통편집해 사태를 수습했던 제작진은 9월 29일 “저희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철근을 씹겠습니다” (김구라)라는 멘트와 함께 첫 객원 MC 김태원을 투입하는 기민한 대처를 보였다. 그 후 약 두 달 동안 토니 안, 김희철, 문희준까지 객원 MC 네 명의 ‘라스’ 출연은 마치 인기 아이돌 그룹이 차례로 멤버별 티저 영상을 공개하는 것처럼 뜨거운 화제를 모았고 시청자들은 저마다 ‘누가 새 MC로 가장 적합한가’에 대한 의견을 내놓았다. 그러나 최근 제작진은 “객원 MC 체제를 오래 유지할 생각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고, 제 5의 다크호스가 혜성처럼 등장하지 않는 한 이 네 사람 가운데 한 명이 신정환의 빈자리를 채울 멤버로 낙점될 전망이다.
아쉬운 김태원, 가능성 보인 토니 안, 적응기간도 필요 없을 김희철
자칭 타칭 ‘라스가 발굴한 최고의 예능인’ 김태원은 시청자들이 객원 MC에 대해 미처 인식하고 평가할 겨를도 없이 기습적으로 등장해 다양한 해프닝을 벌였다. KBS ‘남자의 자격’과 같은 리얼 버라이어티에 익숙한 그는 스튜디오 녹화를 낯설어하며 대본을 보는 것을 잊거나 글씨가 작아 잘 안 보인다며 호소했고 녹화 중 화장실에 다녀오다 카메라 앞을 그대로 지나가는 돌발 상황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김구라는 물론 다른 MC들의 기에 눌리지 않고 떠오르는 멘트를 툭툭 뱉어내는 무념무상의 토크, ‘엄친딸’이 ‘엄청 친한 사람’인 줄 알았다는 독창적 해석 등으로 웃음을 자아냈지만 ‘라스’의 최대 매력인 ‘진행하는 것 같지 않으나 진행되고 있는’ 토크의 맥을 종종 끊는 바람에 아쉬움을 샀다.
김국진과 마찬가지로 ‘무릎 팍 도사’ 출연 직후 ‘라스’ 녹화에 참여했을 때, 토니 안은 전역 20일 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마침 후배 아이돌인 2PM과 miss A를 게스트로 맞은 그는 아이돌끼리의 세대 차를 비롯해 남자 아이돌의 상체 노출 퍼포먼스에 대한 군인들의 싸늘한 반응 등을 털어놓으며 무난하게 ‘라스’에 안착했다. 비록 조급한 마음에 “‘헤이 대디’ 말고 퍼프 대디는 어때요?” 같은 무리수 개그를 던지기는 했지만 miss A의 중국인 멤버 지아에게 중국어 실력을 어필하기 위해 뜬금없이 새해 인사를 하는 순발력으로 “몇 개 걷어내면 괜찮을 것 같아요”(김구라)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다. ‘라스’ 특유의 독설과는 거리가 있지만 스스로 망가지며 게스트를 띄워주고, 구박과 놀림에도 굴하지 않는 해맑은 태도는 흔치 않은 호감형 캐릭터로 어필할 수 있었다. 김희철은 “저 자리가 내 자리야”라는 멘트와 함께 등장했다. ‘라스’ 특유의 분위기에 당황하고 어색해 하던 앞의 두 객원 MC와 달리 자신이 어떤 멘트를 던졌을 때 머리 위로 무슨 CG가 그려질지 까지도 예측하는 이 ‘라스’ 골수팬은 고정을 향한 강한 의욕을 드러내며 끊임없이 멘트를 던지는 바람에 “너무 열심히 하지 마라”(김구라)는 핀잔마저 들었다. 하지만 “막 던지면 몇 개는 건지겠죠”라는 공격적 태도는 정글 같은 ‘라스’에 적합한 생존전략으로 작용했고 김진표, 이승환 성대모사가 대박을 터뜨리며 분위기를 주도했다. 특히 MC 간의 관계와 호흡이 중요한 ‘라스’에서 김희철은 “김구라 씨를 잘 활용할 줄 아는 아이돌”(윤종신)이라는 말처럼 스킨십과 ‘밀당’을 무기로 김구라를 당황시킬 수 있는 독특한 캐릭터다. 고정 출연 여부에 대해 “채점 후 통보해주겠다”는 김구라를 향해 “저도 한 번 생각을 해볼게요”라고 받아치는 배짱도 남다르지만 무엇보다 만약 김희철이 고정이 된다면 이승환과 ‘라스’에서 만나는 날을 고대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문희준이 왔다
그리고 문희준이 왔다. “김구라 씨가 문희준 씨에게 어깨동무를 하며 복도를 걸어가던데 7년 전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윤종신)이라는 말대로 과거 김구라의 욕설에 상처 받았지만 결국 화해한 문희준에 대해 김구라는 ‘정신적 아들’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역시 김구라는 김구라, ‘라스’는 ‘라스’였다. 게스트 ‘티아라’를 ‘티라’로 읽어버린 뒤 쏟아지는 비난에 “여기는 하나 실수하면 죽는군요”라며 가슴을 쓸어내린 문희준은 어린 걸그룹 멤버들을 놀려먹느라 바쁜 MC들의 멘트 사이를 치고 들어가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모처럼 준비해 온 ‘SM에서 말 잘하는 멤버로 뽑는 기준’ 브리핑마저 싸늘한 반응을 얻자 당황한 기색을 역력히 드러냈다. ‘보살’이라는 별명답게 남을 공격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그에게 ‘라스’는 다소 험한 동네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직 첫 주가 지났을 뿐이니 실망하기엔 이르다. 누가 언제 무엇을 터뜨릴지 모르는 곳, 그게 ‘라스’다.
물론 이 중 누구도 신정환이 될 수는 없다. “유치하고, 무식하고, 계산하지 않는, 예능계에서 유일하게 아이 같은 어른의 캐릭터”는 따라한다고 해서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4명의 객원 MC들은 ‘라스’에서 각자의 개성을 보여주었고 시청자와 제작진, 다른 3명의 MC들 역시 그들을 지켜보았다. 과연 대한민국에서 가장 대체할 수 없는 토크쇼의 결코 대신할 수 없는 캐릭터의 빈자리는 누가 차지하게 될까. 60초 후에, 공개되면 좋겠다.
글. 최지은 f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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