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은 결혼식 청첩장을 유난히 많이 받습니다. 한동안 혼기를 넘긴 처녀, 총각들이 차고 넘쳐 집집마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이젠 더 이상 미룰 길이 없어진 혼사들이 하나씩 둘씩 진행되는 모양이에요. 두어 달 새 거의 매 주말 결혼식 나들이를 하고 있는 셈인데요. 특히나 지난 달 10일(2010.10.10)은 같은 숫자가 세 번 겹치는 길일이어서 그런지 세 쌍의 신랑신부를 만나느라 동분서주해야 했어요. 그런데 결혼식에도 트렌드가 있는지 요즘 새로운 풍속 중 하나가 신랑이 직접 부르는 축가더군요. 폭소를 자아내게 하는 신랑도 있었고, 왈칵 눈물을 쏟게 만드는 신랑도 있었지만 모두에게서 동시에 느껴졌던 건 별 의미 없는 형식적인 축가보다는 서툴더라도 진심을 노래하고픈 진지함이었어요. 그리고 그들 중 많은 수가 이적 씨의 ‘다행이다’를 부른다는 사실, 혹시 알고 계셨나요?

새삼 이적 씨의 노래들에 감탄하는 요즘입니다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 그대와 마주보며 숨을 쉴 수 있어서. 그대를 안고서 힘이 들면 눈물 흘릴 수가 있어서 다행이다. 그대라는 아름다운 세상이 여기 있어줘서” 이 노랫말은 당사자인 신부에게야 당연히 감동이겠지만 신부의 부모에게도 크나큰 위안을 주지 싶더군요. 내 품을 떠나 독립하게 된 아이가 이렇듯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동반자를 만났다는 사실만큼 안도되는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살아 보니 돈도 명예도 다 포기하기 어려운 결혼 조건이겠지만 그래도 더 중요한 건 서로에 대한 ‘존중’이어서 말이죠. 물론 신랑 어머니 입장에서야 “그대와 나눠먹을 밥을 지을 수 있어서. 그대의 저린 손을 잡아 줄 수 있어서 다행이다”하고 있는 아들을 보면 감동은커녕 ‘죽어라 키워 놨더니!’하며 속 터져할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요. 그래서 저는 두 손을 모아 쥐고 경청을 하다가도 시어머니 되실 분의 기색을 슬쩍슬쩍 살피게 되던 걸요.

어디 ‘다행이다’ 뿐인가요. Mnet 의 허각을 우승으로 이끈 건 단연코 이적 씨의 곡 ‘하늘을 달리다’였습니다. 다른 우승 후보들에 비해 문자 투표에서 별 힘을 못 쓰던 허각이 ‘하늘을 달리다’로 순식간에 판도를 뒤집었으니까요. 그야말로 더 이상 발 디딜 곳 없는 처지인 허각이 “내 몸 부서진대도 좋아. 허약한 내 영혼에 힘을, 날개를 달 수 있다면”이라고 외치자 시청자들은 그에게 날개를 달아주기 위해 앞 다투어 전화기를 들었던 거죠. 좋은 노래가 지닌 막강한 힘이 새삼 느껴지는 순간이었어요. 어쨌든 이처럼 뜻 깊은 곡들을 쓰신 이적 씨께 감탄어린 존경을 보내고 있던 차, MBC ‘라디오 스타’와 MBC 에 모처럼 모습을 보이셔서 반가웠습니다. 더구나 ‘다행이다’를 직접 불러주셔서 감동 두 배였지 뭐에요. 한 주 더 볼 수 있어서 다행이에요

이적 씨 본인은 순전히 개인적인 용도로 만든 곡이 수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사랑받게 된 사실이 당황스러우면서도 고맙다고 했지만 저는 이적 씨께 오히려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싶어요. 함께 출연한 싸이 씨도 이 곡을 21세기 최고의 곡이라며 강력 추천했지만 요즘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오는 괴상망측한 가사의 노래들과 상반되는 좋은 예로 당당히 내놓을 수 있는 곡이니까요. 익히 알고 계실 테지만 요즘 황당한 가사들이 난무를 하는 실정이잖아요. 왁스의 “오빠, 이젠 나를 가져봐”를 처음 듣고 기막혀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젠 그 정도는 심각한 수준도 아니더군요. 어리디 어린 소녀에게 노출이 심한 옷을 입혀 “난 내 맘대로 해, 내 멋대로 해”라느니 “끌리는 내 몸이 꽂혀 너 때문에 미쳐”라고 부르게 하는 세상인 걸요. 한때 이적 씨의 여러 곡이 검열에 걸려 빛을 보지 못하기도 했지만 대체 검열의 기준이라는 게 어디에 있는지 생각해보게 만듭니다. 이리 아리송하게 돌아가는 세상이니 여의치 않으시더라도 여유 자적한 모습을 자주 보여 방송을 순화시키는 데에 일조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송창식 씨의 ‘담배 가게 아가씨’ 모창이며 유려한 입담을 새 앨범 나올 때나 한 번씩 볼 수 있다는 건 너무나 아쉬운 일이어서요. 그나마 ‘라디오 스타’와 로 더 뵐 수 있다니, 다행이네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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