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이렇게 찢어졌어요.”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고수는 이번 영화 를 찍으며 생긴 상처 자국을 보여줬다. 오른쪽 눈썹을 따라 관자놀이 근처에 이르는 상흔은 메이크업을 한 상태에서도 상당히 또렷했다. 남자 얼굴에 생채기 한두 개 생기는 게 호들갑 떨 일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배우, 그것도 ‘고비드’라는 별명이 어색하지 않은 조각 같은 얼굴의 미남 배우에게 남은 상처는 의미가 다르다. 그건 고전주의 회화에 남겨진 작은 생채기처럼, 눈에 잘 띄진 않더라도 보는 이를 울컥하게 만들 만하다. 그럼에도 그는 특유의 느릿느릿한 말투로 “뼈가 드러날 정도”로 심한 상처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만에 현장에 복귀했던 과정을 일종의 경과보고처럼 태평스럽게 서술할 뿐이다. 사람의 마음을 조종하는 초인(강동원)에 맞서느라 수십 명과 몸싸움을 벌여야 하는 고생을 그 몇 마디 말로 짐작할 수는 없다. 대신 이마의 상처 자국은 어떤 말보다 명료하다. 말하자면 그 흔적은 미적으로는 흠결이지만 배우로서는 열심히 뛴 과정의 증거 같은 것이다. 이 양면성은 그래서 흥미롭다. 상처에도 불구하고 고수는 여전히 미남 배우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미남’이 아닌 ‘배우’다.

지름길을 찾아가지 않는 배우

앞서 고전주의 회화로 비유했지만, 고수는 정말 클래식한 의미에서의 미남이다. 콧날과 턱을 비롯해 모든 선은 뚜렷하고 눈동자는 크며, 그 모든 요소들이 수학적 황금비율을 이룬다. 모든 아름다운 것에 대해 그러하듯, 사람들은 미남 역시 그 순수한 미를 고스란히 간직하길 원한다. 그리고 고수처럼 타고난 아름다움으로 배우의 길에 오른 미남 배우 역시 이런 대중의 욕망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고수는 그 욕망을 수락하고 박제처럼 남는 대신 몸을 사리지 않고 자신을 던지는 방식으로 배우의 정체성을 만들어갔다. 그를 대중에게 각인시킨 박카스 CF에서 그의 외모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정말 죽도록 뛰었기에 가능했던 날것의 헐떡거림이었다. 만약 연기가 ‘척’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연기가 아니다. 하지만 연예계에 막 입문한 초보가 가장 진짜 같은 결과물을 내기 위해서는 그 방법보다 확실한 길은 없다. 그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SBS 와 자신의 이미지를 배반하려 노력했던 영화 사이의 간극은 그래서 흥미롭다. 분명 이해와 배려의 화신인 의 재수와 등에 문신을 하고 “제보한 새끼 확 처넣어버린다고 그래!”라고 외치는 강력계 형사 성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하지만 재수가 고수라는 배우의 우직함을 형상화한 캐릭터라면 성주는 그 우직함을 통해 재수의 이미지를 넘어선 캐릭터다. 고수는 분명 재수나 SBS 의 영호처럼 선하고 예의 바른 인물을 연기할 때 가장 자연스럽다. 하지만 배우라는 직업은 그 외의 것도 해야 한다. 그리고 고수는 그 때마다 다시 몸을 던진다. 에서 보여준 그의 터프가이 연기는 그저 그랬다. 대신 그는 여러 명의 깡패와 싸우는 다찌 신에서 뛰고 구르고 발차기를 하며 그 부족함을 메웠다. SBS 에서도 그는 도망치고 격투를 벌이고 찬물에 뛰어들며, 기구한 운명에 휩싸인 정현을 표현해냈다. 요컨대, 고수는 계산적인 배우가 아니다. 조금 나쁘게 말하면 영리한 배우가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배역만을 절묘하게 고르거나, 덜 고생하고 더 티 나는 테크닉을 보여주는 타입이 아니다. 다시 말해 지름길을 찾아 가질 않는다. 그저 도전하고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앞서 ‘미남’보다 ‘배우’가 중요하다고 했지만, ‘미남’ 안에서도 ‘미’보다 중요한 건 ‘남’이다. 마초와는 거리가 멀지만 겁 없이 우선 부딪히고 보는 그에게서 느껴지는 건 정제되지 않은 남성성이다. 이것을 그 자체로 장점으로 보긴 어렵다. 하지만 고수는 그 과정을 통해 조금씩 연기적인 발전을 보여준다. 이것이 중요하다. 에서 기자의 멱살을 잡을 때의 설익은 분노와 비교할 때, 에서 유란(김서형)의 멱살을 잡으며 토로하는 억울함과 분노는 훨씬 깊게 느껴진다. 그는 자신의 연기에 대해 “한 번에 삭삭 변신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가까워지는 것”이라 정의한다. 그것은 지난한 과정이지만, “낮보다는 밤에 활동하고 이틀에 한 번씩 자는” 심리적 고행과 감량과 운동으로 만든 섬세한 잔근육을 통해 영화 속 요한의 음울한 아름다움은 완성될 수 있었다. 그리고 SBS 에 이르러서는 이렇게 전작들에서 경험한 지고지순함과 터프함, 그리고 차가움을 연기적으로 조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연기를 단련하고, 연기로 스스로를 단련한다

하지만 가장 최근작인 에서의 고수가 흥미로운 건, 연기적으로 진일보한 모습을 보여줘서는 아니다. 폐차장에서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자신을 따르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동생으로 따뜻하게 대하는 규남은 고수가 연기했던 재수와 영호, SBS 의 영훈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인물이다. 대신 그는 자신이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인물의 영역 안에서, 영리하기만한 배우는 할 수 없는 연기를 보여준다. 여전히 또 뛰고 구르고 몸과 몸을 부딪치고 그러다 실제 규남처럼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으면서 그는 관념이나 테크닉으로는 구현할 수 없는 진짜 근성을 스크린에서 구현해낸다. 누가 봐도 핸디캡이 명백한 초인과의 싸움에서 오히려 종종 초인이 질려하게 되는 건, 그래서 남자 대 남자의 대결구도가 선명해질 수 있는 건 그래서다.

물론 이것을 두고 그의 연기가 일정 경지에, 이름 그대로 고수의 수준에 이르렀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오직 정공법으로 자신의 연기 세계를 조금씩 넓혀가는 그의 태도에 미더움이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그가 1년에 걸쳐 스스로를 단련하기 위해 배웠던 극진가라데의 창시자 최영의는 이렇게 말했다. ‘승리에 우연이란 없다. 천일의 연습을 단이라 하고, 만일의 연습을 련이라 한다. 이 단련이 있고서야만 승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순간순간에는 꼼수와 쉬운 길이 있을 수도 있지만, 고수가 되는 길에 지름길은 없다. 그리고 복싱과 가라데 같은 무도를 통해 몸과 마음을 단련하던 배우는 이제 “연기를 통해 나를 절제할 수 있어서 고맙다”며 연기자로서의 삶에 좀 더 집중한다. 즉 연기를 단련하고, 연기로 스스로를 단련한다. 다시 말하지만 그는 연기의 고수가 아니고, 앞으로 그럴 수 있을지도 확실치는 않다. 대신 고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을 걷고 있다. 그게, 중요하다.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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