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희를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다면 그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답은 아마도 ‘질문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는 매일 아침 MBC 라디오 (이하 )에서 사람을 향해,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러나 손석희는 질문하되 질문 받는 사람은 아니다. 자신을 향한 대중과 각계의 뜨거운 관심에도 그는 좀처럼 인터뷰에 응하거나 개인적인 생각을 밝히지 않는다. 그런 그가 지난 19일 10주년 특집방송 ‘ 10년을 말하다’에 참석한 청취자들과 나눈 대화는 이 냉철한 진행자의 속내를 모처럼 슬쩍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의 방향성에 대한 진지한 문제제기부터 ‘보이는 라디오’를 향한 팬심 섞인 물음, 몽골 출신 유학생의 “이경규 씨 닮았다는 말 들은 적 없느냐”는 솔직한 의문 등 다양한 질문에 막힘없이 답하던 그는 밤이 깊어가는 시각, 대화를 마치며 청취자들과의 만남 때마다 늘 그래왔듯 말했다. “자, 사진 찍고 가셔야 직성이 풀리시는 분들께서는 남아주시면 제가 성심성의껏 촬영에 임하겠습니다.”

사소한 질문이지만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이 과 전화 인터뷰 할 때 손석희 씨를 향해 “손 박사, 손 박사” 하는 게 너무 듣기 싫습니다. (웃음) 그렇게 부르지 말아달라고 할 수는 없는지.
손석희 : 가끔 그렇게 부르시면 “저를 미필적 고의로 인한 학력 위조자로 만들지 마시죠”라고 할 때도 있지만, 진지한 얘기하실 때 끊고 “저 박사 아닌데요” 하기도 좀 그렇잖아요. (웃음) 나중에 통화할 때 그러지 마시라고 했더니 홍의원이 “아, 방송은 박사잖아!” 하시더라구요. 이거, 제 자랑을 한 것 같네요. (웃음)

“을 매일 듣는 가족들은 건강한 분들”

혹시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보이는 라디오’로 진행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손석희 : 생각해본 적 없습니다. 라디오는 라디오로만 남아 있는 게 좋을 것 같고 나름 신비주의로 저를 안 내놓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웃음) 오늘은 특집방송이라 좀 멀끔하게 하고 왔지만 보통 땐 머리도 못 감고 모자 뒤집어쓰고 올 때도 많고, 다시 비디오에 묶이고 싶은 맘은 없습니다. 몇 년 전보다 의 시선이 약해지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손석희 : 청취자로서 당연히 그렇게 느끼셨으니까 하신 말씀일 텐데, 이건 굉장히 복합적인 것 같습니다. 우선 ‘논쟁이 살아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느낌을 가질 때가 있고, 무엇보다 이 10년 동안 해 오면서 많은 분들이 들어주시고 프로그램의 비중이 초창기와 달라지며 생긴 ‘이름 값’이라는 게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때로는 매우 첨예한 사안에 있어 보다 많은 진중함을 요구받을 때가 있어요. 누가 나서서 요구하거나 흔히 생각하는 압박 같은 게 있어서가 아니라 프로그램이 가진 무게와 역할 때문에 보다 진중해질 수밖에 없거든요. 가령 예를 들어 옛날 같으면 한쪽 얘기만 듣고 끝낼 것을 요즘에는 가능한 양쪽 다 들음으로써 다른 시각을 제공해 주려고 합니다. 그리고 저로서는, 저만의 느낌인지도 모르지만 가능하면 보다 논리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려는 경향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논리에 뛰어난 사람이라는 것은 아닌데 방송 27년, 을 10년 하며 저널리스트로 훈련받아온 측면에서 한 쪽에 치우치지 않게 해 보려고 해요. 요즘 맨날 ‘공정방송, 공정방송’ 하는 것처럼. 그래서 제 입장에서 얘기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감성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게 과거보다 좀 줄지 않았나 싶고, 그걸 좋게 보면 발전일 수 있다고도 생각합니다. 여전히 부족한 면도 있겠지만 그런 논리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 사이에 굉장히 많은 긴장상태가 유지되고 있는데 그게 어찌 보면 올바른 자리매김이 아닌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 부분에 있어선 전혀 포기하지 않을 것이고, 오히려 필요에 따라 더 날카로워질 수도 있다는 게 저의 입장입니다.

그동안 과 MBC는 함께 성장해 왔다고 생각하는데 요즘 전반적으로 MBC에 대한 실망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방송의 참신함을 비롯해 MBC에 기대했던 많은 가치들이 서서히 사라지는 느낌에 대해 이 다뤄봐 주실 수는 없을까요?
손석희 : 사실 어떤 방향에서든 자사 프로그램이나 자사 문제를 다루는 것은 굉장히 많은 신중함을 필요로 합니다. 자칫 자사 이기주의에 빠질 가능성도 없지 않고, 경우가 다르긴 하지만 예를 들어 이 큰 이슈를 만들어냈을 때도 MBC나 입장에서 인터뷰를 한다는 건 아주 조심스럽습니다. 과거 황우석 박사 건 때도 황 박사 측이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작진만 인터뷰를 할 때도 비판적인 질문들을 중심으로 던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점은 앞으로도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습니다만 그런 어려움이 있다는 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10월 초에 MBC 40주년 기념 방송이 있었는데 역대 앵커들이 대부분 참석했지만 손석희 씨는 다른 일정 때문에 빠지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사실인가요?
손석희 : 다른 일정이 있었던 게 맞습니다. 다른 함의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웃음) 10년 동안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청취자들의 사회적 의식이나 정치적 성숙도의 변화를 어느 정도로 느끼는지 궁금합니다.
손석희 : 느끼기에 따라 다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을 들으시는, 게시판을 통해 글을 남기시거나 전화를 주시는 분들만큼 건강하신 분들이 있을까 생각합니다. 이건 립 서비스가 아니라 솔직한 얘기입니다. 때로는 굉장히 야단을 치는 분도 계시고 가끔 도를 넘는 분도 계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는데 그건 어디까지나 개인적 생각이지 객관적으로 보면 제가 다 받아서 소화해야 할 부분이라 서운함은 느끼지는 않습니다. 사실 라디오 프로그램이 청취자들을 가족화 시키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용어를 쓰자면, 을 매일 들으시는 가족 분들은 어느 집단보다 건강한 분들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보도용 발언이었나요? (웃음)

“이경규를 보면 나랑 너무 닮아서 놀란다”
직접 쓰신 책에 사인을 받고 싶어서 찾아보니 절판됐던데, 혹시 또 다른 책을 집필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손석희 : 지금까지 책을 두 권 냈습니다. 하나는 공저였고 다른 하나인 는 절판됐는데 출판사에서 더 찍겠다는 걸 말렸어요. 책 장사하는 것 같아서. 지금 다른 책을 준비 중인데 그건 학교에서 쓸 교재라 대중적인 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혹시…이경규 씨랑 닮았다는 소리 들은 적 없으세요?
손석희 : 가끔 인터넷 보고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웃음) 옛날에 스케이트장에서 이경규 씨랑 만난 적이 있어요. 각자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가 마주쳤는데 거울 보고 얘기하는 것 같은 기분이더군요. 그러나 저는 신해철 씨를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신해철 씨가 저를 성시경 씨하고 헷갈렸거든요. (웃음) 늘 새벽에 방송을 하시다 보면 지인들과 저녁에 술 한 잔 하시기 쉽지 않으실 텐데.
손석희 : 원래 교류가 활발한 사람이 아니라 맨날 만나면 제작진들이나 만나지 그 외에는 대부분 점심에서 끝내고 저녁 자리를 잘 만들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황야의 외로운 늑대처럼 지내지요. (웃음) 주변에서 저더러 나이 먹으면 외로울 거라고 하는데 그것도 팔자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여러분들께서 어떻게 보실지 모르지만 저는 사실 좀 내성적이고, 수줍어하고 낯선 사람과 못하…왜 자꾸 웃으십니까? (웃음) 성격이 그러니까 특별히 그게 아쉽진 않고 현재까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가끔 ‘미니 인터뷰’가 시간에 쫓겨 빠지거나 다음 날로 미뤄질 때가 있는데, 그 밖에도 오프닝 멘트는 길게 잡고 가시는 데 비해 엔딩 멘트는 짧아지거나 그냥 잘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듣는 사람들은 손석희 씨의 호흡을 더 느끼고 싶으니까 혹시 광고를 빼기가 어려우시면 ‘57분 교통정보’를 좀 빼셔도…(웃음) 이미 8시 가까운 시간에 차가 막히는 건 알아도 소용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되도록 끝인사는 꼭 좀 해주세요.
손석희 : 아니 그러면 교통정보 리포터가 서운해 하십니다. (웃음) 사실 끝인사를 제대로 못하고 끝내는 게 결례긴 한데, 제가 아직도 미숙해서 그런지 하다 보면 시간이 가 버립니다. 저 자신도 무식하다고 생각하는 게, 40초 남았을 때 질문이 떠오르면 그걸 던져 버려요. 그럼 그 분이 답할 수 있는 시간은 2,30초 밖에 없고 “20초 남았습니다” 하면 그분도 마음이 급해지실 텐데… (웃음) 그걸 10년 동안 고치지 못하고 있는데 뼈아픈 말씀으로 듣겠습니다. 자신은 없지만 가능하면 끝인사는 하도록 하겠습니다.

가끔 “그건 약속된 질문이 아니다”라고 하는 인터뷰이가 있던데 정말 그런가요?
손석희 : 약속 안 된 질문을 던지는 경우는 무척 많습니다. 많은 인터뷰이들이 에 출연하지 않으려는 이유도 대부분 그거구요.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것은 아닙니다. 작가들이 열심히 자료를 찾고 핵심 질문을 골라 주시면 그걸 기본으로 삼는데, 다만 인터뷰 중 파생되는 질문이나 제가 궁금해지는 것들을 새로 질문하는데 인터뷰이들에게는 그게 굉장히 불편하게 여겨질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어떤 경우는 처음부터 잘못 길을 들어 아주 다른 방향으로 가 버리기도 하는데 그런 경우는 무척 드물어요. 한 10가지 질문이 있다면 명확한 수치로 따질 수는 없지만 반반 정도? 기본적으로, 스태프들이 만든 질문을 완전히 무시하고 가는 진행자는 훌륭한 진행자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작진이 그에 대해 저보다 더 오래 공부했을 수도 있으니까요. 작가들을 믿고 합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나름대로 계속 준비했던 것”
목소리가 참 좋으신데 지금 이 자리는 뒤풀이니까 18번 노래 한 곡만 불러 주세요.
손석희 : 저는 노래방에 가지 않으면 노래가 안 나옵니다. 가사를 혼자 다 외울 수 있는 노래가 없어서…(웃음) 지난번에도 팬 카페 분들이 강권하셔서 부르다가 중간에 그만뒀어요.

교수라는 직업 특성상 안식년을 가지실 수가 있는데 혹시 그 때가 오면 을 그만두고 여행가실 계획이 있으신지, 아니면 반납을 하시고…
손석희 : 제가 미쳤어요? 반납을 하게. (웃음) 사실 내후년이 학교 안식년이에요. 굉장히 귀하게 얻은 안식년이라 고민 중이긴 하지요. 근데 뭐, 팔자가 이래서 어디 멀리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어떡할까요?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십대에는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가가 중요하겠지만 삼십대부터는 내가 이 직업에서 어떻게 포지셔닝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는데, 손석희 씨는 그 점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일해 오셨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어두운 곳’(주 : 손석희 교수는 1992년 방송관련법 개악에 항의한 MBC 노조 파업 당시 쟁의대책위원으로 활동하다 20일 가량 구속 수감된 바 있다)에 다녀오시면서 영향 받으신 것도 있는지.
손석희 : 그것과는 상관이 없는 것 같구요. 하지만 어쩌면 다녀왔다는 것 자체가 원래 제 생각과 연관이 있을 수도 있겠습니다. 저는 아나운서로 입사해서 20여년 일하다 그만뒀는데 회사의 명에 따라 보도국 다른 파트에 다녀온 적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제 고향이자 자라온 터는 아나운서국이었습니다. 아나운서로서는 물론 주말 도 했는데, 이 일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어느 한 쪽으로 몰아주지 않아요. 많이 알려지면 뭘 시킬지 모르고 곧 또 다른 프로그램을 맡기고 하니까 방향 잡기가 좀 어려운데 저는 나름대로 방향을 지키려고 애를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방송에서 이미지라는 걸 무시할 수 없으니 제 나름대로 이미지를 구축해 거기 맞지 않는 프로그램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조직과 갈등한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택한 방향성은 입사 초기부터 생각해왔던 거고 이나, 지금은 그만뒀지만 이 저에게 올 수 있었던 건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런데 보다 정확히 말씀 드리면 그런 기회나 행운의 절반은 예상치 못하게 올 수 있지만 절반 이상은 본인이 만들어내고 준비하지 않으면 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 제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계속 준비했던 것이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건방지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만…

글. 최지은 five@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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