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지난 주 KBS ‘1박 2일’은 15분의 분량을 잘라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기피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다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을 적만 해도 ‘우리는 MC 몽을 믿는다. 고의는 아니었을 거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제작진도 막상 불구속 입건이 결정되고 보니 국민의 정서를 마냥 외면할 수만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그러나 편집된 화면에도 불구하고 ‘지리산 둘레길’ 마지막 편을 기다려온 저로서는 자연과 사람이 만나는 여유로운 사색의 길, 둘레길의 정취에 온전히 빠져들 수 없음이 못내 아쉬웠어요. 언뜻언뜻 보이는 MC 몽 씨의 모습으로 인해 몰입을 방해받은 건 비단 저 뿐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특히나 초반 몇 분 동안은 단독 영상을 보여주는지라 당황스럽기까지 하더군요. 제작진이 대폭 줄여 내보냈다더니만 ‘이건 완전 눈 가리고 아옹이네!’ 싶었습니다.
연예인의 인기는 국민의 정서에 기반을 두고 있지 않나요?
물론 MC 몽 씨가 맡은 4코스 금계-동강 구간의 경우, 본인이 나온 부분을 죄다 걷어낸다면 그건 코스 소개 자체를 포기한다는 얘기 밖에 더 되겠어요? 따라서 제작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둘레 길 코스 소개가 아닌 구름이며 나비 등을 찍는 미션 수행 장면들을 비춰줄 때는 물론, 부침개나 라면을 먹는 순간에는 더 더욱 고운 시선을 보내기 어렵더군요. 평소 연예인들이 공인으로 불리는 걸 얼토당토않다고 여겨왔는데 이래서 공인, 공인하는 거구나 했습니다. 애정을 가지고 ‘1박 2일’을 시청해온 수많은 이들에게 폐를 끼친 꼴이 되고 말았으니 말이에요.
저는 사회적으로 병역비리 논란이 일적마다 함구해온 편이에요. 4대 독자인 아들아이가 올 초 병장으로 제대를 했으니 떳떳한 처지이긴 하지만 제 양심을 들여다볼라치면 그다지 개운치는 않기 때문입니다. 누가 만약 “네 자식을 쥐도 새도 모르게 면제 시켜주겠다, 죽는 날까지 세상천지에 아는 사람이 없을 거다” 하고 꼬드겼다면 제가 과연 일언지하에 거절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 한동안 망설였지 싶어요. 딱 잘라 거절하기는커녕 유혹에 홀랑 넘어갔을지도 모르는 일이죠. 아들아이가 첫 외박을 나왔던 날이 기억납니다. 하룻밤을 함께 보낸 뒤 어깨가 축 처져 부대로 복귀하는 아이를 배웅하는 심정은 말할 수 없이 복잡했습니다. 한 달 이상 다시는 저 담 밖으로 나올 수 없는 아이가 한심스럽기만 하더라고요. 국방의 의무다, 애국이다, 하며 포장하기엔 2년은 너무나 길고 긴 시간이니까요. 군대 다녀와야 사람 된다는 말도 그다지 신빙성이 없는 얘기고요. 굳이 군대에 다녀오지 않아도 사회생활 2년이면 사람은 달라지기 마련 아니겠어요? 그래서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아등바등 애를 쓰는 이들의 심정을 백번 천 번 이해한다, 이겁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MC 몽 씨의 경우, 공익 근무 정도는 할 마음을 먹는 편이 옳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연예인의 인기란 국민의 정서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에요.결국은 솔직함만이 해결책인 것 같네요
자격시험이나 공무원 시험을 빌미로 연기 신청을 할 시간에 치아 치료에 좀 더 힘을 썼다면, 차라리 인터뷰나 토크쇼를 통해 치아 상황에 대해 미리 솔직히 털어놓기라도 했다면 대중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훨씬 덜했을 겁니다. 임플란트 시술도 안 한 채 지금껏 버텨왔다 하니 다들 따가운 시선을 보낼 수밖에요. 마침 ‘1박 2일’ 멤버들이 걸은 둘레길은 마을과 마을, 사람과 사람이 하나로 연결되는 그림을 보여주더군요. 아실 테지만 승기 씨가 아침에 힘차게 2코스를 출발했던 자리, 그 자리는 밤이 되어 우여곡절 끝에 종민 씨가 다다른 1코스 종착지였죠. 그처럼 내가 앉았던 자리에 다른 누군가가 와서 앉는 게 바로 인생입니다. 네티즌 여러분도 언제 그 자리에 앉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니 너무 MC 몽 씨를 나무라지 마시고 MC 몽 씨도 무조건 억울하다고만 하지 말고 모두가 납득할만한 속내를 털어 놓는 편이 좋겠어요. 솔직함에 약하다는 것도 우리 국민의 정서 중 하나라는 점, 잊지 마세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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