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MBC 의 현장에서 주조연 배우들의 공동 인터뷰가 있었을 때, 다른 배우들은 영달 역의 이광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다른 사람들을 호빗으로 만들어 버리는 친구”라고. 하지만 멀쩡한 사람들을 판타지 문학 속 존재로 만들어버린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어딘가 비현실적인 존재가 아닐까.

사실 이광수는 아주 많은 필모그래피를 쌓거나, 적어도 그 안에서 아주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던 배우는 아니다. MBC 의 자취생 광수는 극의 중심인 순재(이순재)네 바깥에서 존재하는 인물이었고, MBC 의 영달은 콤비인 황주식(이희도)과 코믹하게 극의 재미를 살리되 플롯의 진행에 별다른 역할을 하진 못했다. 그럼에도 그가 가진 특유의 비현실적인 느낌과 함께 언제나 그는 비중 이상의 존재감으로 기억된다. 그의 연예계 데뷔작이라 할 모 통신업체 CF에서 수많은 공대생 중 그의 무표정한 얼굴만이 도드라졌던 걸 떠올려보자. 그는 그렇게 몇 편의 작품만으로도 자신의 이미지와 이름을 확실하게 하나로 묶어 대중에게 인식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쉽게 주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게는 축복이자 핸디캡이기도 했다. 그건 그가 배우이기 때문이다.

“워낙 밝은 역을 하고 그것이 원래 모습과도 비슷한 점이 많아” 특별히 힘든 게 없다는 본인의 말처럼 이광수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캐릭터는 전혀 다른 분야인 SBS ‘런닝맨’에서도 특별한 위화감이나 어색함 없이 소비될 수 있다. 그는 드라마 속에서나 리얼 버라이어티에서나 키 크고 소심한 광수고 그래서 친근하다. 하지만 그런 이미지 때문에 에서 인나(유인나)와 보여준 애틋한 로맨스 연기가 지워진다는 건 분명 억울한 일이다. “음악을 통해 좀 더 다양한 감정을 자기 안에 담아내려 한다”는 고백처럼, 그는 분명 자기가 잘하는 지점이 뚜렷함에도 그에 안주하는 배우는 아니다. 그가 자신의 감정을 고양시키기 위해 듣는 다음의 음악들을 통해 그가 담아내고 싶었던 감정의 깊이들을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1. 김동률의
이광수가 추천한 첫 노래는 김동률의 ‘2년 만에’다. “원래는 이 노래를 잘 몰랐어요. 그런데 과거 제가 처음으로 좋아했던 사람이 이 곡을 굉장히 좋아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 사람 앞에서 불러주려고 열심히 외웠던 적이 있어요. 워낙 열심히 연습을 해놔서 지금도 노래방에 가면 가끔 이 노래를 불러요. 예전처럼 많이 애잔하진 않지만 그래도 옛날 추억이 떠오르긴 하죠.” 키가 낮다는 이유로 수많은 남자들이 여자 앞에서 자신 있게 부르지만 절대 원곡의 느낌을 내지 못해 자주 망신을 당하는 곡이 바로 김동률의 노래다. 그만큼 김동률의 곡은 듣기에는 편안해도 그 안에 미묘하게 숨은 재지(jazzy)한 어프로치를 살리기 쉽지 않은 곡이다. 그리고 그 미묘함을 통해 김동률만의 무드가 만들어지는데 그의 솔로 2집 앨범의 ‘2년 만에’ 역시 그런 김동률만의 무드가 배어 나오는 곡이다.
2. 바이브의
이광수는 스스로 밝히듯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예능 안에서 자기 팀을 뽑을 때도 “유재석 형! 개리 형!”이라 꼬박꼬박 호칭을 분명히 하고, 소심하긴 해도 도저히 화는 내지 못하는 그 선한 성격의 바탕에는 분명 종교의 힘 역시 있을 듯하다. 바이브의 ‘My Star (Feat. All Christian)’에 대한 그의 설명을 들으면 이광수라는 사람의 성격을 좀 더 분명히 알게 된 느낌이다. “평소 교회를 다니지만 일 때문에 주일에 교회를 가지 못하거나 내가 뭔가 잘못했다고 생각할 때, 그리고 무언가에 화가 나서 화를 가라앉히고 침착해져야 할 때 이 노래를 많이 들어요. 나 자신이 정화되는 느낌이랄까. 곡을 들으면서 스스로를 반성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자기 전에도 많이 듣게 되는 것 같아요.” 신에 대한 감사를 담은 곡으로 Feat. All Christian이란 문구가 예사롭지 않다.

3. Glen Hansard & Marketa Irglova의
영화 의 개봉 이후 기타 좀 치는 사람 치고 ‘Falling Slowly’ 한 번 시도해보지 않은 이는 없을 것이다. 영화 속 로맨스와 스웰시즌의 음악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 는 수많은 관객의 마음을 따뜻한 색으로 물들였고, 영화의 OST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광수가 추천한 세 번째 곡은 의 ‘When Your Minds Made Up’이다. “솔직히 저는 영화 내용도 좋지만 그보다는 거기서 나오는 노래들이 너무 좋아서 영화를 보고 또 봤어요. 그런데 그렇다고 음반을 통해 노래로만 듣는 것보다는 영화 속 상황과 함께 감상하는 게 더 좋더라고요.” ‘Falling Slowly’보다는 좀 더 밝은 분위기의 곡으로 스웰시즌의 스타일 그대로 차분한 한사드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와 이글로바의 건반 연주가 서정적인 멜로디를 만들어낸다.

4. 김광석의
적어도 취향의 차원에서 포크 시대의 은유적인 가사가 21세기 가요의 직설적인 감정 표현보다 더 우월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기의 몇몇 곡들이 후대의 어떤 곡도 넘지 못할 문학적 성취를 이룬 것만큼은 부정하기 어려울 텐데, 특히 ‘그녀가 처음으로 울던 날’ 등을 비롯한 김광석의 곡에서 대중가요 가사의 문학성은 정점에 이른다. 광수가 “여태까지 들어본 노래 중에서 가장 슬픈 노래”라고 말하는 김광석의 ‘너무 슬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역시 마찬가지다. 류근 시인이 작사한 이 노래는 ‘내 지친 시간들이 창에 어리면 그대 미워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라는 구절을 비롯해 절절한 이별의 마음을, 하지만 직설적이지 않게 표현한다.

5. Jay-Z의
이번 테마처럼 이광수의 추천 곡들은 모두 그의 감정들을 움직이는 곡들이다. 그러니 기분을 업시켜주는 신나는 트랙 하나 정도는 필요한 법이다. 그의 추천 곡 중 그 역할을 담당하는 곡은 힙합의 제왕 제이 지의 ‘Empire State Of Mind (Feat. Alicia Keys)’다. “원래 차분한 음악을 좋아하는데 그냥 좀 스스로 업시키고 싶을 때 이 노래를 많이 듣는 편이에요. 영화 를 보면서 알게 된 곡인데 곡의 느낌도 그렇고 활동적인 느낌의 의 장면들이 생각나서 스스로 굉장히 활기차지는 기분이에요. 집에서 움직이기 싫고 게을러질 것 같을 때 이 곡을 들으면 나가서 뭔가 사야 할 것 같고, 뭔가 해야 할 것만 같아요. 나를 활동적으로 만들어주는 곡이죠.”
“욕심은… 많아요. 그냥 이제 진지한 거 해보겠다, 그런 건 아니고요, 여태 밝은 역할을 많이 해봤으니 조금은 다른 느낌의 역할을 보여 드리고 싶어요. 지금껏 보여 드린 것과는 다른 연기를 보여주고 싶은, 그런 욕심은 많은 편이에요.” 이 끝날 때 즈음, 지금 이미지를 유지하라는 충고와 변신이 필요하다는 충고 사이에서 고민이 많다고 말했던 그지만, 이젠 변화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는다. 이준익 감독의 신작 출연은 그래서 단순히 영화 진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아직 어떤 역할인지는 비밀이지만 분명 새로운 모습과 배우로서의 광수를 보여줄 거라는 그의 말은 과연 어떤 결과물로서 증명될 수 있을까. 아직 알 수 없지만 이 성실한 청년의 말은 여전히 미덥다.

글. 위근우 eight@
사진. 채기원 t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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