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게… 하이든!” MBC 의 그 순간을 잊을 수 있을까. 치매로 자신의 인생마저 잊어가는 노인과 재능은 있지만 가난 때문에 억눌려 있던 소녀가 음악을 통해 우정을 쌓아 나가던 그 시간들을 지나, 요양원으로 떠나던 노인이 소녀의 이름을 몇 번이나 되뇌었던 것처럼 하이든은 우리의 기억 속에도 또렷하게 남아 있다.

“천재 뮤지션 역이 너무 탐이 났어요”

“뭐 저렇게 생긴 애가 저런 말투를, 저런 표정을? 울 때도 예쁜 느낌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찡그린 얼굴에, 좀 신기해 하셨던 것 같아요.” 어느 날 갑자기 외계에서 툭 떨어진 것처럼 낯선 얼굴로, 온 세상과 싸우는 것처럼 불만투성이 표정을 하고서도 플루트를 손에서 놓지 않던 그 소녀, 하이든은 요즘 기타를 메고 산다. SBS 에서 전설희(김정은)가 이끄는 ‘컴백 마돈나 밴드’의 막내이자 천재 기타리스트 오아름 역을 맡았다. 하지만 비슷비슷하게 예쁘거나 가냘픈 또래 연기자들과 달리 가무잡잡한 얼굴에 커다란 두 눈, 한쪽 뺨에 야무지게 찍혀 있는 점까지 어느 한 구석 무난하지도 평범하지도 않은 쥬니에게는 ‘아이돌 기획사 연습생이었던 고등학교 시절, 같은 연습생과 사고 쳐서 쫓겨난 뒤 아이까지 낳아 기르는 리틀맘’ 이라는 복잡한 숙제가 하나 더해졌다. “반항기 있는 성격()이나 사고 쳐서 아이가 있는 캐릭터()를 다시 하는 건 솔직히 좀 부담스러웠지만 천재 해커 역은 해 봤어도() 천재 뮤지션 역은 너무 탐이 나서” 이 작품을 꼭 하고 싶었다는 독특한 고백에서도 쥬니와 음악의 질긴 인연을 바로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의 하이든처럼 어린 시절 플루트를 시작한 쥬니는 주니어 오케스트라 소속의 촉망받는 연주자였다. 그러나 진학도 미래도 거의 결정되어 있던 고등학교 시절 노래를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밴드에 들어갔고 음대에 가지 않았다. “둘 다 매력 있었지만 플루트는 오래 해 봤으니까, 그리고 조금 젊게 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젊어 고생하고 나이 들어 편하게 지내자’ 면서 애늙은이 같은 말을 했거든요. (웃음)” 록밴드에서 활동하던 당시 출연한 뮤지컬 에서 이재규 감독의 눈에 띄었고 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체계적으로 연기를 배운 적은 없지만 어차피 캐릭터에 대한 분석이나 연습은 똑같이 하는 거니까 주어진 상황에 아쉬워하거나 후회하지는 않아요.” 연변 처녀를 연기한 때는 조선족 출신의 식당 종업원들이 자신의 말투를 드러내지 않기 위해 일부러 말을 적게 하거나 작은 목소리로 이야기한다는 사실을 관찰해 참고했고, 에서는 밴드 경험이 없는 ‘언니들’에게 콘서트 실황 비디오나 뮤직 비디오를 보여주며 제스처를 가르쳤다.

씩씩함 뒤에 감춰져 있던 깊이

“음악을 할 때는 그 곡의 주인공으로 3분 30초 정도만 살 수 있잖아요. 짧은 시간동안 폭발력을 가지고 어필해야 해요. 그런데 연기는 1회 나가고 죽지 않는 이상 두 달 이상을 그 사람으로 살아야 하니까 지속적으로 엄청난 집중력을 갖고 가야 해요. 오케스트라나 밴드처럼 여러 사람이 자기 파트에 책임감을 갖고 조화시켜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것 같구요.” 다재다능하고 에너지 넘치는, 그리고 전형적인 미인과 거리가 있는 자신의 외모에 대해서도 “여러분들도 적응되시면 괜찮으실 거예요. 지금 처음이라 놀라셔서 그래요” 라며 시원하게 웃어넘기는 쥬니는 꿈이 많지만 누구보다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이십대이기도 하다. “나이가 들면,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어릴 땐 욕심도 많고 할 수 있는 일도 많으니까 괜찮지만 계속 그렇게 사는 건 싫어요. 그냥 그 때 내가 결정한 삶에 만족하고 소박하게 사는 게 좋은 거 같아요. 그게 다에요.” 너무나 단순해서 오히려 신기한 대답에는 이유가 있다. “그게 제일 어렵잖아요. 그만큼 어려워서 그렇게 정한 거예요.” 옆집 손녀 같은, 싹싹한 동네 아가씨 같은 쥬니의 장난스런 눈빛 뒤에 감춰져 있던 깊이다.

글. 최지은 five@
사진. 이진혁 eleven@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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