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르스 윌리스’라니. 밀폐된 공간을 활용해 게임을 펼친다는 점에서 SBS ‘런닝맨’이 진즉에 벤치마킹했어야 하는 텍스트는 바로 영화 였다. 3주 전, ‘런닝맨’의 미션 수행을 위해 숨은 유재석을 비추면서 시작되어 지난주까지 이어져오는 이 ‘유르스 윌리스’라는 캐릭터는 최근 2주 동안의 ‘런닝맨’이 성취한 것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가 액션 영화의 걸작이 될 수 있었던 건, 사건이 벌어진 빌딩이라는 공간 자체에 집중했기 때문이었다. 일당백의 람보가 아닌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은 상대방을 제압하기 위해 빠르고 전략적인 움직임으로 빌딩의 공간을 최대한 활용했다. 그리고 초기 ‘런닝맨’에서 단 하나 없는 것이 바로 그런 움직임이었다.
장소만 바꾼 ‘X맨’을 벗어나다
첫 회부터 제기된 문제지만, ‘런닝맨’은 매 회 서울의 랜드마크 하나를 골라 그 안에서 게임을 펼치면서도 한 번도 공간의 특수성을 부각시킨 적이 없었다. 닭싸움이나 인간 컬링, 포토존 게임 등, 지엽적인 게임들로 코너 대부분을 채우는 구성 안에서 거대 쇼핑몰과 축구장, 과천과학관은 그 자체의 개성을 지닌 공간이기보다는 불완전한 세트에 가까웠다. 말하자면 ‘런닝맨’은 장소만 바꾼 ‘X맨’이었다. 비록 걷지 말고 뛰라는 캐치프레이즈와 함께 추격 버라이어티에 대한 의욕을 보였지만 같은 미션을 수행하느라 우르르 몰려다니는 양 팀의 모습은 전혀 역동적이지도 스릴 있지도 않았다. 그 빈틈을 메우기 위해 앞서 말한 게임들이 별다른 맥락 없이 등장하고, 유재석은 발보다는 입을 빠르게 움직이며 다시 게임 진행을 할 수밖에 없었다. 혹자는 ‘런닝맨’의 부진에 대해 유재석 위기론을 꺼내기도 했지만, 사실 ‘런닝맨’이 자신만의 변별점을 지닌 게임 버라이어티가 되기 위해서는 오히려 유재석의 역할이 줄어들거나 지워져야 했다.
세븐과 손담비가 출연했던 지난 서울타워 미션부터의 ‘런닝맨’이 흥미로운 건 그래서다. 유르스 윌리스가 처음으로 등장했던 과천과학관에서의 미션이 공간을 다양하게 활용하는 팀플레이로 이어지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다면, 양 팀이 서로의 미션에 대한 힌트를 숨긴 채 벌이는 쫓고 쫓기는 서울타워에서의 추격적은 간만에 긴박감 넘치는 ‘런닝’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지난주 세종문화회관에서 벌어진 방울을 이용한 본격적 술래잡기는 이러한 방양 선회가 우연이 아님을 보여준다. 아예 쫓는 팀과 쫓기는 팀으로 나눠 쫓기는 팀은 미션 수행과 동시에 상대팀을 피해 숨거나 도망치고, 쫓는 팀은 발에 방울을 달고 상대편의 공포심을 자극하는 방식은 서스펜스의 장르적 쾌감을 선사했다. 특히 쫓는 팀의 방울소리는 상대팀에게, 그리고 시청자에게도 청각적인 공포를 줬는데, 정용화가 방울소리를 피해 화장실로 도망치다가 VJ가 소리를 내는 바람에 경악하는 모습과 도망치던 유재석을 쫓아 김종국이 엘리베이터로 뛰어드는 모습은 호러 게임 의 한 장면을 연상시킬 정도다. 무엇보다 좋은 건, 이런 추격전을 통해 비로소 랜드마크의 공간 구석구석을 활용하는 플레이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런닝맨’의 가능성, 터닝 포인트가 될 수 있을까
상대팀에게 들키지 않는 동시에 해치 인형을 찾는 미션을 안전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뿔뿔이 흩어져 리스크를 분산시켜야 했고, 그런 그들을 쫓는 쪽 역시 최대한 흩어져 공간 곳곳을 살펴야 했다. 그동안 별 의미 없이 들고 다니던 무전기도 비로소 상대팀에 맞춰 전략적으로 움직이기 위한 도구가 될 수 있었다. 다시 말해 ‘런닝맨’의 포맷 안에 이미 내포되어 있었지만 제작진이 미처 활용하지 못했던 가능성이 비로소 드러난 것이다. 이제부터의 ‘런닝맨’은 그래서 중요하다. 지난주 방송의 완성도가 한여름의 납량특집처럼 하나의 이벤트 정도로 끝나느냐, 아니면 터닝 포인트가 되느냐에 따라 시청률 경쟁을 위한 ‘런닝’의 속도 역시 달라질 테니까.
글. 위근우 e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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