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호 교수님, 이제 궤변은 그만 늘어놓으시지요


지난번 호텔 방에서 애인으로 발전 중인 윤서영(이태임)과 아내(김지영)와 어머니(고두심)가 맞닥뜨리는 일만큼은 용케 피해가더니만 이번에 장인어른(장용)께는 제대로 꼬리가 잡혔더군요. 그거 참 고소하다 싶다가도 홀로 애지중지 딸을 키워온 어르신의 가슴이 얼마나 무너질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지라 마음이 영 언짢았습니다. 제가 저분 입장이라면 어땠을까 상상을 한번 해볼까 하다 말았어요. 생각만으로도 억장이 무너져서 말이죠. 한편으론 늘 아내 정임(김지영) 씨에게 억지 궤변을 펼쳐온 김태호(이종혁) 교수께서 폭발 직전의 장인 앞에선 무슨 변명을 할는지, 그게 궁금하던 걸요.

어쩜 그리도 당당하실 수가 있나요
김태호 교수님, 이제 궤변은 그만 늘어놓으시지요

이쯤에서 정리하는 게 좋겠다 싶어 찾아왔다는 윤서영, 우리 다음 생에 만나면 열렬히 연애하자며 돌아서는 그녀를 마치 포옹이라도 하려는 듯 잡아 세우는 걸 목격하셨으니 유구무언이지 뭡니까. 이번에도 태호 씨 특유의 잔머리와 말솜씨로 위기를 극복할지 귀추가 주목되는 바입니다. 번번이 아내를 뒷목 잡고 쓰러지게 만드는 말발이 과연 장인에게도 먹힐까요? 혹시 속물근성이 발휘돼 택시 운전기사인 장인어른 따윈 안중에도 없다는 듯 배짱을 튕길지도 모르는 노릇이네요. 설마 명색이 사회학과 교수거늘 그 정도로 안하무인이진 않겠지 싶다가도 하도 정임 씨 속을 한 바탕씩 뒤집어 놓곤 하는 태호 씨인지라 은근히 걱정이 되네요. 특히 아내와 어머니가 호텔 방으로 찾아오는 바람에 계획했던 밀회가 수포로 돌아갔던 날의 뻔뻔함은 정말이지 도를 넘어서더군요. 태호 씨의 뺀질뺀질한 말솜씨에 두 손 두 발 다 든 지는 이미 오래지만 잠자리로 직접 이어지지는 않았어도 밀회의 의도가 명백히 들어났거늘 어쩜 그리 당당하실 수가 있습니까. 타이밍이 어긋나 바람을 못 핀 거지 안 핀 게 아니잖아요?“말했잖아. 나는 너랑 헤어질 마음 추호도 없어. 뻔뻔스러워도 할 수 없어. 솔직하게 말할게. 서영이에게 마음 끌렸던 거 사실이야. 구질구질한 집안 벗어나서 이런 데서 편안하게 지내니 좋더라. 홀가분하고 자유롭고 쾌적하고 근사하더라.” 구질구질한 집안이란 결국 아내를 빗대어 말한 거죠? 생활고에 찌든 아내만 마주 대하다가 상큼하고 세련된 여자 아나운서의 관심을 받게 되었는데 어느 누군들 안 흔들리겠느냐는 얘길 하고 싶은 거잖아요. 그 말을 듣는 아내의 심정이 어떨지 생각 한번 해보란 소린 안 하겠습니다. 아내를 배려할 사람이라면 애당초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아내의 물음에 ‘무섭고 불쌍해. 그리고 흔들린 건 사실이야’라는 답을 하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요즘 태호 씨처럼 ‘솔직’을 방패로 앞세운 사람들 정말 많아졌는데요. 그 ‘솔직’이라는 게 교만이라는 생각, 안 해보셨나요? 물론 흔들릴 수는 있어요. 이미 지루할 대로 지루해진 김치 냄새 밴 아내보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흠 한 점 없이 잘 차려 입은 아나운서에게 눈길이 더 가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다고요. 하지만 솔직함이 상대방에게 큰 상처가 될 경우엔 입을 다무는 편이 현명한 거 아닙니까?

정임 씨가 다른 선택을 해도 과연 교수님은 가만히 있으실까요?
김태호 교수님, 이제 궤변은 그만 늘어놓으시지요

게다가 다른 여자에게 흔들렸음을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사랑한다고까지 하니 순수한 정임 씨로서는 눈앞이 깜깜해질 일이지 뭐겠어요. 정임 씨의 친구 애란(정수영) 씨의 ‘지후 선배’에 대한 열렬한 사랑을 들먹이며 아내를 사랑하는 것도, 연예인이나 여자 후배를 사랑하는 것도 다 같은 사랑이라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셨는데 사실 죄다 틀린 말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은 딱 한 사람만 사랑하게 되어 있는 게 아니야. 그게 인간이야. 어떻게 결혼했다고 연애 감정을 차단해야 돼? 그런 무식한 통제가 어디 있어? 이래서 일부일처제가 문제인 거야. 역사를 살펴보면 얼마나 다양한 결혼제도들이 있는 줄 알아?”라고 사회학에 나올 법한 얘기들을 늘어놓는데 말솜씨가 그럴듯해 그런지 ‘그건 맞는 말이긴 해’하고 저도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라고요. 그러나 그건 결혼하기 전에 했어야 할 말이고, 결혼 전에 했어야 하는 합의인 거예요. 한 남자 만나서 사랑하고 그래서 결혼하면 그걸로 연애는 끝이라는 아내를 지금 와 설득해서 어쩌자는 건가요. 더구나 무엇보다 윤서영이라는 여자 때문에 미칠 듯 괴롭다는 아내인 걸요. “내가 정말 참을 수 없는 거는 내가 봐두 걔가 정말 예쁘다는 거야. 내가 봐두 걔가 멋지고 똑똑하다는 거야. 내가 봐도 내가 무섭고 지겹다는 거야”라며 펑펑 울던 아내를 까맣게 잊은 건 아니실 테죠?

너도 살다보면 다른 남자에게 끌릴 수 있으니 발전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 이 시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결혼을 실현해보자, 라고 호언장담했으니 이후 아내 정임 씨에게 같은 상황이 벌어졌을 때 어찌 반응할지 한번 지켜보려고 합니다. 지금은 그저 잘생긴 떡집 2층 총각에 불과하지만 최현욱(류태준)이란 청년에게서 풍기는 아우라가 어째 예사롭지가 않아서 말이죠.

김태호 교수님, 이제 궤변은 그만 늘어놓으시지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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