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준 군, 그래도 믿을 건 탁구밖에 없어요

마준 군, 그래도 믿을 건 탁구밖에 없어요

“그리고, 또 한 녀석의 마음도 움직이려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
누명을 덮어쓰는 바람에 경합에 쓸 재료가 턱 없이 부족해진 탁구를 위해 미순(이영아)이와 재복(박용진)이가 십시일반이라며 이것저것 보태자 마준 군도 못이기는 척 부재료 몇 가지를 내놓더군요. 그걸 보고 미순이는 남의 마음을 얻는 재주를 가진 탁구(윤시윤)가 드디어 마준(주원) 군의 마음까지 움직였다고 짐작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그건 미순이가 마준 군과 탁구 사이에 얽힌 내막을 몰라서 하는 얘기죠. 둘 사이의 골이 얼마나 깊은데 그리 쉽게 마음이 열리겠습니까. 마준 군이 허울이 좋아 세상 물정 모르는 부잣집 도련님이지 실은 누구보다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다는 걸, 남들이 알 리가 있나요.

할머니도 아버지도 정말 너무 했어요
마준 군, 그래도 믿을 건 탁구밖에 없어요

마준 군을 처음 봤을 적이 기억나는군요. 할머니(정혜선)께 심하게 꾸지람을 듣고 있었는데 저 역시 우리 아이들을 매섭게 단속하며 키웠지만 이 할머니의 훈육은 정도를 넘어섰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무릇 할머니 할아버지의 손자 사랑은 부모의 자식 사랑과는 품새가 다른 법이거든요. 부모는 자식에게 뭔가 바라는 게 있지만 조부모의 사랑은 공부를 좀 못해도, 말썽을 부려도 그저 보듬어주는, 조건 없는 사랑이거든요. 그런데 어째서인지 마준 군의 할머니는 한 번도 손자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적이 없습니다. 물론 어머니(전인화)가 워낙 오냐 오냐 받자하는지라 할머니가 대신 악역을 자처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결국 마준 군에게 반항심만 가득 심어줬으니 옳은 교육이라고 볼 수 없죠. 아마 SBS 에 의뢰를 했다면 아버지(전광렬)의 무관심과 어머니의 과도한 집착, 그리고 할머니의 지나친 엄격함이 삼박자를 이뤄 아이를 그르쳤다는 판정을 받았을 거예요.

그런데 그 호랑이 같은 할머니가 굴러들어온 돌인 탁구에게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온화하시니 어린 마준 군 입장에서는 이해가 될 리 있나요. 게다가 냉정한 아버지조차 탁구에게는 웃음을 보이니 그보다 기막힐 노릇이 어디 있겠어요. 눈치는 예나 지금이나 없는 탁구가 자랑을 실컷 늘어놓던 게 기억나네요. 마준 군은 감히 범접도 못해본 아버지 작업실에서 빵 만드는 걸 구경하고 함께 빵을 먹었다고 자랑을 했었죠. 그럴 리가 없다며, 거짓말 말라며 다그치자 탁구는 “니 참말로 거기 한 번도 못 들어가 봤나. 그라면 담 번에 내하고 같이 거기 드가 볼래?”하고 염장을 지르기까지 했잖아요. 그 순간 느꼈을 마준 군의 배신감, 백번 천 번 이해가 가고 남습니다. 게다가 탁구가 냄새만으로 빵 반죽의 숙성도를 아는 천재인 걸 알게 되자 아버지가 지었던 흡족한 미소라니. 마준 군으로서는 아마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 마준 군을 헤어 나오기 힘든 좌절감에 빠지게 한 건 자신이 아버지 구일중의 자식이 아니라 한승재(정성모) 실장의 자식이란 사실이겠지요. 어린 나이에 차마 감당키 어려운 일이었을 겁니다. 아무리 탁구가 미워도 끝까지 대견하게 남아주세요
마준 군, 그래도 믿을 건 탁구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는 마준 군이 지금처럼 자라줬다는 사실만으로도 한참 대견하던 걸요. 한 없이 엇나갈 수도 있었을 텐데 혼자 팔봉 선생의 인증서를 받을 계획을 세운 것도, 그리고 경합까지 2년씩이나 참고 버텨준 것도 모두 칭찬해마지 않을 일이에요. 그리고 구일중 씨가 생부가 아님을 알면서도 눈에 들려고 애쓰는 게 어찌나 딱한지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 구일중 씨가 찾아와 “경합에 최선을 다하라”며 어깨를 도닥여주자 잠시잠깐의 손길에 감개무량해 마지않는 마준 군을 보니 코끝이 다 시큰해지더군요. 그런 마준 군에게 탁구는 “넌 나에게 아주 특별한 아들이다”라는 말을 아버지에게서 들었다는 옛말을 해 또 한 번 염장을 지르지 뭡니까. 물론 다 모르고 하는 얘기라지만 탁구는 마준 군의 마음을 잘도 아프게 합니다. 이처럼 마음이 가는 여자는 처음이다 싶었던 유경(유진)이가 탁구만을 무한 신뢰한다는 점도 마준 군에게는 또 다른 상처라는 거, 잘 알고 있어요.

그러나 미워해야 마땅할 탁구이긴 해도 마준 군이 믿고 의지해야 할 사람 또한 탁구라는 사실을 이젠 받아들였으면 좋겠습니다. 어릴 적 엄청난 사건을 목도하고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을 때 괴로워하는 마준 군을 탁구가 다가와 도닥여주었던 거 기억나죠? “형이란 게 뭐꼬. 아우가 힘들 때 도와주고 보살펴주는 게 형 아이가”라고 하자 마준 군의 마음은 순간 흔들렸었죠. 그리고 얼마 전엔 코피를 쏟는 자신을 돌보는 탁구의 자상한 손길에 또 다시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아마 마준 군은 탁구에게 자꾸 의지하고 싶어지는 자신이 싫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마준 군이 망설임을 어서 떨쳐내고 탁구를 믿고 따르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머니 서인숙 여사와 생부 한승재 실장이 이끄는 길은 악의 구렁텅이겠지만 탁구와 함께 걷는 길은 그른 길이 아닌 옳은 길일 테니까요. 탁구가 마준 군의 정체를 알게 되었는데 어떻게 하느냐고요? 탁구는 비록 마준 군이 자신을 속여 왔음을 알게 되었다 해도,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해도 미워할 리 없어요. 탁구는 누굴 미워하지 못하는 애라는 거, 마준 군도 이미 알고 있잖아요.

마준 군, 그래도 믿을 건 탁구밖에 없어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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