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호는 늘 여름과 함께 돌아왔다. 한 많은 처녀귀신이나 창백한 저승사자와 함께 의 한 축을 담당하며 겁을 주던 구미호는 2010년, 간을 파먹거나 재주넘기를 하던 것과는 다른 모습으로 등장했다. 늘 인간을 사랑해 여자로 살기를 원하던 구미호에게는 이제 남편도 있고, 딸도 생겼지만 반인반수의 딸과 함께 인간답게 살기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이전의 구미호 이야기와는 달리 구미호의 모정와 돌연변이의 혼란까지 담아낸 KBS 을 강명석 기자와 김선영 TV평론가가 소수자와 젠더, 계급의 문제로 재해석했다. /편집자주

모두가 알고 있는 구미호 전설의 결론은 끝내 인간되기에 실패한 구미호가 다시 짐승의 세계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 결론에서부터 다시금 이야기를 시작하는 KBS (이하 )은 일견 구미호 전설의 후일담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사실 구미호 전설의 프롤로그에 더 가깝다. 어미 구미호 구산댁(한은정)과 인간 사내(정은표) 사이에서 태어나 구미호의 운명을 그대로 따르는 연이(김유정)의 존재 때문이다. 그녀가 전설에서 홀연히 등장하는 구미호와 달리 자신의 근본적 정체성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연이의 물음은 아주 직접적이다. “어머니, 저는 괴물입니까? 사람들은 왜 저를 죽이려 하나요?” 사람의 피를 이어받았지만 구미호의 역사는 반복되고 공포는 대물림된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이유는 표피적 납량 효과가 아니라 그 근원적인 공포를 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들은 괴물이 되었나
전래 괴담 속 구미호는 보통 가부장제에 포섭되지 못하고 추방된 타자로서의 여성을 은유한다. 남성 중심 질서가 통제할 수 없는 섹슈얼리티와 뛰어난 재능을 지닌 여성들이 마녀로 인식되던 서양의 사례처럼 여성의 ‘남다른’ 출중함은 종종 괴물로 규정되곤 했다. 에서 구산댁과 연이 모녀 역시 주변 남성들을 모두 사로잡는 남다른 미모와 재능을 지닌 존재들이다. 하지만 그녀들은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라는 가부장 윤두수(장현성)의 욕망에 쉽게 지배당하지 않는다. 구산댁은 연이를 보호하기 위해 윤두수의 첩이 되지만 몸은 허락하지 않으며, 한 때 그를 믿었던 연이는 자신을 “아비”라 칭하며 꾀어내는 그를 직접 돌로 치고 도망친다. 윤두수가 점잖은 가면을 쓰고 그녀들을 안온한 가부장제의 품으로 유혹한다면, 자꾸만 도망치는 모녀를 요괴라 부르며 끈질기게 추적하고 공격하는 퇴마사는 순종하지 않는 그녀들을 응징하는 가부장제의 또 다른 폭력적 얼굴이다. 구산댁 모녀를 억압하는 양부인(김정난)과 초옥(서신애) 모녀 역시 엄격한 가부장적 질서가 낳은 여성 괴물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구미호 모녀와 타자로서의 사회적 맥락을 공유한다. 기품 있는 양처와 귀여운 딸로 가부장제의 순종적 일원이었던 그녀들이 구산댁과 연이가 나타난 뒤 윤두수의 애정을 두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히스테리컬하게 변해가는 모습은 정말 괴물처럼 묘사된다. 양부인이 만신(천호진)의 비방전을 연이 베개에 몰래 넣는 신이나 연이를 우물에 빠뜨리는 초옥의 잔혹한 표정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사실 구미호 모녀 등장 이전부터 내재되었던 집안 갈등의 불씨가 커진 것에 불과하다. 양부인은 아들을 둘이나 둔 후처 계향(임서연)의 유세를 신경 쓰고 있었고, 때문에 외동딸 초옥에 더 집착하여 그녀를 안하무인으로 만든다. 즉 은 구미호 이야기를 가정비극의 틀로 끌어오며 전설 이면에 놓인 억압적 가부장제의 문제점을 가시화하는 드라마다.

2010년 구미호 이야기의 새로운 화두
이 드라마에서 젠더 문제 못지않게 두드러지는 것은 계급 문제다. 조현감(윤희석)이 정규(이민호)와 연이의 만남에 대해 “남녀가 유별하고 신분이 다르다” 했던 말은 이 드라마 문제의식의 핵심이다. 성차의 위계에 더해 극 중 모든 관계는 계급적 위계질서에 의해 지배된다. 윤두수의 집은 그 질서의 압축판이다. “집안의 기강을 다스리는” 가부장 윤두수 아래 본처와 초옥이 있고, 그 아래 후처인 계향과 서자들이 있으며, “알아도 모르는 척, 들어도 못들은 척 해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다”는 천우(서준영)와 같은 종들과 “근본 모르는 천한” 구미호 모녀가 있다. 그 철저한 계급 사회에서 구미호 모녀는 묘비도 없이 반복해서 수장 당한다. 예정된 연이의 죽음이 더 공포스럽고 비극적인 것은 그녀가 초옥과 한날한시에 태어나 몸종으로 살해될 운명이었던 수많은 소녀들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미호는 해마다 돌아온다. 어떤 구미호는 매번 같은 옷을 입고 있지만, 또 어떤 구미호는 새 얼굴로 귀환한다. 2008년 곽정환 감독의 가 남성 중심의 역사 뒤편에서 괴물로 호명당해 사라진 여성들의 운명에 집중했다면, 는 그 주제에 MBC 과 KBS 이후 2010년 드라마 최대의 화두가 된 계급 문제를 더했다. 그 잔혹한 위계질서의 맨 아래 위치한 철저한 타자인 가련한 구미호 모녀의 운명에 감정이입하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글 김선영KBS (이하 )은 우리가 알고 있던 구미호 이야기를 뒤집는다. 남편에게 배신당한 구산댁(한은정)은 인간 세상을 떠나려 하고, 윤두수(장현성)와 양부인(김정난)같은 인간들이 구산댁을 붙잡는다. 그들의 딸 초옥(서신애)을 살리려면 같은 날 같은 시에 태어난 구산댁의 딸 연이(김유정)의 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구산댁이 연이에게 구미호 이야기를 하며 시작하는 건 흥미롭다. 는 구미호의 시각에서 쓴 구미호 이야기다. 그리고 진정 “세상에 못 믿을 것”은 구미호가 아니라 구미호의 간마저 빼앗으려는 인간이다. 영화 의 돌연변이들이 그러하듯, 구미호는 인간에게 차별받는 소수자다.

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매커니즘
연이는 신분이 낮아 윤두수의 자식들에게 괴롭힘 당하고, 조현감(윤희석)은 의심만으로 두 모녀를 도둑으로 몬다. 구미호건 아니건, 신분 낮고, 가난하고, 여자인 그들은 언제나 소수자다. 구산댁의 남편은 구산댁에게 옥구슬을 내놓을 것을 요구했고, 양부인은 연이의 간이 필요하다는 걸 알자 태도가 달라지며, 조현감은 적대 관계인 윤두수를 누르려고 연이를 이용한다. 또한 구산댁과 연이가 윤두수의 집에 들어왔을 때, 그 가족들은 합심해서 두 사람을 괴롭힌다. 그들은 소수자를 박해하고, 이용하며, 그들이 사회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거부한다. 구미호의 자리에 극빈자나 제3세계 출신 외국인 노동자를 넣어도 이야기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는 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매커니즘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 공고한 매커니즘은 그들이 ‘인간’이기에 균열을 일으킨다. 조현감의 아들 정규(이민호)는 신분의 차이를 넘어 연이를 좋아하고, 윤두수는 구산댁과 연이에게 정들면서 자신의 행동에 대해 번민한다. 정규의 말대로 “모두 다르지만 누군가를 원하는 마음은 같”다. 자신이 인간인지 괴물인지 고민하는 연이는 의 상징처럼 보인다. 자신의 공격성을 드러낼 때 구미호로 변하는 연이처럼, 인간은 마음에 따라 인간도, 괴물도 될 수 있다. 내 자식 살자고 남의 자식을 죽일 것인가. 는 단순할 수도 있는 윤리적 질문을 사회적 관점에서 답하며 지금 이 사회의 문제와 해답을 동시에 제시하려 한다. 그 점에서 는 구미호가 진정 현대로 돌아왔음을 알리는 첫 작품이다. 구미호가 가진 여성적 매력이 ‘요물’의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이 그들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원인이 된다는 설정은 전복적이기까지 하다. 구미호가 우리를 공격한 게 아니라, 우리가 구미호를 차별했다
그러나 여성적인 매력이 필요한 건 구산댁과 연이뿐만이 아니다. 양부인은 윤두수가 구산댁에게 마음 쓰는 것이 괴롭고, 첩 계향(임서연)은 자신과 자식들의 입지가 좁아질까 걱정이다. 초옥도 연이 때문에 아버지와 정규에게 사랑받지 못할까봐 두렵다. 세 여자는 구미호 모녀의 가해자이자 모든 것을 남자에 의존해야 하는 가부장제의 희생자다. 그들의 욕망과 그들의 사회적 위치는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 하지만 는 이들의 욕망을 파고들지 않는다. 대부분의 캐릭터는 드라마 시작부터 정해진 욕망을 갖고, 그것을 반복해서 드러낼 뿐이다. 가 초반 이후 두 모녀의 위기와 극복을 계속 반복하는 건 두 모녀 외의 인물들의 내면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산댁과 연이만이 다른 캐릭터들과 사건을 만들어낼 수 있는 깊은 갈등과 내면을 가졌다. 조현감이 윤두수를 그토록 싫어하는 이유는 여전히 뚜렷하지 않고, 무작정 구미호를 죽이려는 퇴마사나 모든 사건을 조종하는 만신(천호진)은 이야기 전개를 위한 기능적인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한다. 현실의 은유가 강하게 담긴 에서 그들의 전형적인 캐릭터는 다른 캐릭터에 비해 붕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인간과 구미호 사이에서 낳은 아이처럼, 는 현실을 담은 스토리텔링과 구미호 이야기의 전형성 사이에 있다. 좋은 문제제기에 어울리는 플롯의 깊이가 부족한 셈이다. 차라리 8부작 정도로 만들었다면 더 밀도 높은 작품이 나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는 올해 가장 신선한 드라마 중 하나다. 구미호가 우리를 공격한 게 아니라, 우리가 구미호를 차별했다. 이거야말로 이 줘야할 진정한 교훈 아닌가.
글 강명석

글. 김선영(TV평론가)
글. 강명석 two@
편집. 이지혜 seven@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