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연기란 것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 배우 김갑수를 인터뷰한 뒤에 든 이 조금은 뜬금없는 궁금증을 설명하기 위해 좀 더 뜬금없는 궁금증을 첨언하겠다. 과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은 자신이 추구하는 완벽한 축구를 언젠가 그라운드 위에서 실현할 수 있을까.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축구처럼, 연기 역시 수많은 변수를 자신의 표정과 말투와 행동을 통해 의도대로 통제하는 작업이다. 때문에 우연의 효과가 발생하는 건 필연에 가깝다. 하지만 선수의 조합과 전술적 포메이션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완벽한 축구에의 답을 그라운드에서 실현시키고자 하는 벵거 감독처럼, 김갑수 역시 “연기가 부족한 사람도 훈련을 통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연기에 대한 해답을 추구하는 배우다.

직장인처럼 활동하는 예술가의 믿음

딕션이나 마임 같은 연기 훈련 효과에 대한 김갑수의 믿음을 증명하기 위해 굳이 수많은 팬들이 붙인 ‘갑수좌’라는 별명을 인용하는 건 새삼스러운 일일 것이다. 주연이 아니었음에도 극 전체를 장악했던 구대성 역의 KBS 를 최근에 찍었음에도 특정 작품을 기점으로 연기자로서 그가 가진 존재감을 설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를 중심에 놓는다 해도 이를 전후해 KBS 와 , SBS 등의 작품이 간극 없이 빽빽하게 배열되어 있고, 두세 개 작품에 겹치기 출연하는 것은 예사였다. 약간의 틈새를 인정한다면 이 필모그래피는 KBS 와 , MBC 까지 뒤로 끊임없이 이어진다. 놀라운 것은 마치 생계형 연기인을 보는 듯한 이런 작품 활동 안에서 그가 어느 작품 하나 놓치지 않고 탁월한 연기적 성취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완성도가 떨어지는 작품 안에서도. 좋은 작품 안에서 좋은 연기를 남기는 것이 배우에게 흔치 않은 행운이라면, 졸작 안에서 빛나는 연기로 기억되는 건 기적에 가깝다. SBS 는 과연 작가가 스스로 말하는 바를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될 정도로 수많은 자기모순을 드러내는 작품이었지만 김갑수가 연기한 아귀만큼은 철저하게 일관된 욕망의 서사를 만들어냈다. 직장인처럼 활동하는 예술가. 얼핏 모순처럼 느껴지는 두 가지 개념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건, 그가 천재성과 우연에 기댄 관념적 연기관 대신, 다양한 배역에 대한 경우의 수를 훈련으로 습득할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 경험주의적 연기관을 가졌기 때문이다.

“몸 전체 대신 바스트 샷 위주로 연기해야 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연극과 타 장르의 연기에 별 차이는 없다”고 생각하는 그가 메이저 데뷔작이라 할 수 있는 영화 의 염상구 역을 통해 단번에 청룡영화제 신인상을 탄 건 그래서 그리 놀랍지 않다. 1977년에 극단의 연구생으로 들어가 영희연극상을 비롯한 수많은 상을 수상하며 주목받는 연극인으로 80년대를 보냈던 그는, 에서 여주인공 소화(오정해)에게 “소화? 소화… 밥 묵고 소화시킨다는 그 소화는 아닐 것인디, 뭔 뜻이요?”라고 건들건들 농을 거는 연기로 악역에 가까운 염상구에게 어딘가 인간적인 면모를 덧입혔다. 그 걸진 전라도 사투리에 인물의 성격과 감정을 담아내는 그의 연기 테크닉이 십여 년 후, 전혀 다른 성격의 인물인 SBS 의 유기영 목사를 연기하면서 드러난 것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세상의 관습 때문에 사랑을 포기하려는 딸 은호(손예진)에게 라디오로 “최선을 다해 노력하지 않으면 행복해질 수 없다. 하느님에게는 내가 용서를 빌어주마. 행복해져라, 은호야” 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그는 어떤 시각적 효과 없이 오직 목소리만으로 딸에 대한 깊은 애정을 담아내는 연기를 보여, 아니 들려준다. 이런 변신이 가능할 수 있는 건, 그가 “마음이 목소리와 딱 맞아 마음먹은 대로 말할 수 있는 훈련”을 했기 때문이다. 완벽한 연기를 위한 현재 진행형

그가 “연기를 잘못 배웠거나 자기 틀에 갇혀 더는 실력이 늘지 않는 연기자들을 위해” 연기교실을 운영하는 건 그래서 필연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말하자면 그는 어떤 역할을 맡더라도, 심지어 대본 한 구석이 조금 비어있을 때도 “그걸 메우고 공감가게” 연기해낼 수 있는 최적의 디폴트값을 설정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것은 감성적이기보다는 학구적이다. 본좌라는 별명을 나눠 쓰는 또 다른 배우인 ‘명민좌’ 김명민이 맡은 배역을 위해 자신을 극단으로 몰아가는 구도자에 가깝다면, 김갑수는 그 배역에 필요한 수많은 요소와 변수를 파악하고 계산해 답을 내는 학자에 가깝다. 앞서 언급한 벵거 감독의 별명이 ‘프로페서’인 것처럼.

하지만 어떤 배역에서나 좋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는 최대공약수가 있다는 것이 최상의 연기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다. 김갑수라는 배우가 정말 학구적이라면, 연기에 대한 정답을 내놓아서라기보다는 답이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물음표를 놓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우연이겠지만, 구대성이 오랜 경험을 통해 찾은 최고의 술맛을 은조가 과학적으로 통제하는데 성공하는 의 스토리는, 끊임없는 발전을 통해 최상의 연기를 찾는 김갑수의 모습에 대한 좋은 비유가 될 수 있겠다. 나이를 먹을수록 연기를 더 잘하는 게 맞고, 그래서 “아직도 연기를 더 잘하고 싶다”고 말하는 그에게 있어 최고의 연기를 위한 값은 그의 경력과 함께 끊임없이 갱신된다. 때론 중년에게도 설레는 사랑이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KBS 의 김민철 국장의 모습으로, 때론 짧은 출연 분량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짐의 역사니라”는 한 마디로 극에 뚜렷한 방점을 찍은 속 인조의 모습으로. 물론 그 어떤 탁월한 연기에 대해서도 완벽이라는 개념을 붙이는 건 불가능할지 모른다. 중요한 건, 그 절대값을 향해 계속 새로운 근사치를 내는 현재진행형의 과정을 김갑수라는 배우가 수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연기는 아마 그 과정을 통해 계속해서 갱신될 것이고, 이 배우의 바람은 평생 연기를 하는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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