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엔터테인먼트는 즐겁다. 극장에서는 그 해를 대표할만한 블록버스터가 줄지어 개봉하고, 프로야구의 열기는 본격적으로 점화되며, 3일에 걸친 대형 록페스티벌은 마음 놓고 미쳐도 되는 공인된 축제다. 물론 야구장은커녕 당신이 응원하는 팀이 패배를 이어가는 걸 혼자 TV로 지켜봐야 하거나, 몇 주째 밀린 MBC 을 다운받아 열심히 복습하는 상황일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다. 시원하게 식힌 맥주와 함께라면 여전히 여름의 엔터테인먼트는 즐겁다.
일상을 의식으로 만드는 주문, 맥주
소위 ‘치맥’이라는 고유명사가 되어버린 치킨, 맥주 조합을 비롯해, 여름에 무언가를 즐기는 상황마다 맥주는 필수 옵션처럼 따라붙는다. 4년에 한 번씩 나라를 뒤흔드는 월드컵마다 엄청나게 소비되는 맥주 물량을 보라. 지난 여름, Mnet 결승전을 단체관람하기 위해 모인 자리에 당신과 친구들이 준비한 음료는 무엇이었나. 만약 기아 타이거즈의 금, 토, 일 3연전을 TV를 보며 응원하고자 한다면, 3시간여를 함께 할 주전부리를 어떤 음료와 함께 삼키겠는가. 물론 개인차는 있겠지만 수많은 경우, 사람들은 맥주와 함께 할 것이다. 물로는 채울 수 없는 목의 갈증을 순식간에 채워주는 맥주 특유의 목 넘김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한 이유다. 입과 코로 퍼지는 풍부한 홉의 풍미와 혀에 느껴지는 바디감도 중요하지만 역시 이 때문만도 아니다. 이것은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거나, 늦은 밤 맥주 광고를 보고 편의점에 뛰어가 한 캔을 급하게 비우는 경우에도 얼마든지 느낄 수 있는 기본적인 것이다. 맥주는 그 맛도 맛이지만, 그것을 먹는 행위가 엔터테인먼트를 즐기는 현재의 상황을 일종의 의식처럼 만들어준다.
넓은 야외무대에서의 공연 관람이건, 골방에서의 케이블 채널 최신 영화 시청이건, 엔터테인먼트 텍스트를 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즐기는 행위다. 하지만 롯데 자이언츠 팬들의 응원 문화처럼 즐기는 행위에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 때로는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엔터테인먼트적인 행위가 된다. 맥주를 마시는 것도 그렇다. 앞서 말한 단체관람의 경우처럼, 복수의 인원과 함께 프로그램을 즐기며 대화하고 품평하고 열광하는 것은 현실에서 잠시 분리된 작은 규모의 유사 축제에 가깝다. 이것은 다분히 커뮤니티로서의 활동이고, 그 내부의 결속력을 강화하고 분위기를 북돋워주는데 맥주만한 음료는 없다. 얼마 전 끝난 챔피언스리그의 공식 후원사 하이네켄의 광고에서 유니폼을 입은 남자들은 마치 직접 경기를 뛰는 것처럼 경건한 표정으로 맥주병을 든 채 TV를 본다. 여름의 엔터테인먼트는 맥주가 있어 더 즐겁다
이것은 소주와 포장마차, 와인과 촛불처럼 무드적인 것이기도 하지만, 저도수 주류인 맥주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다. 만드는 기술을 비롯해 마시는 방식까지 맥주에 대한 문화 상당 부분을 만들어낸 독일에서 한 때 맥주를 사회민주주의의 주스라고 표현한 건 흥미로운 일이다. 길드의 힘이 줄어들고 개개인의 자의식이 강해진 산업노동자들이 자신들끼리의 새로운 음주 문화를 위해 선호하기 시작한 술은 도수가 약하고 시원하게 즐길 수 있는 라거(하면발효 맥주)였다. 현재 우리가 보편적으로 즐기는 카스, 맥스, 골든 라거, 하이트 등과 같은 국내 브랜드는 풍미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라거 계열이다. 라거는 앞서 언급한 주스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주류임에도 좀 더 음료에 가까운 의미를 갖는다. 물론 많이 마시면 취한다. 하지만 이것은 결과이지 목적이 아니다. 중요한 건, 이것을 마시고 떠들며 커뮤니티 안에서 즐기는 과정이다. 심지어 혼자 TV를 보는 주말 밤에조차 계획했던 프로그램 시작에 맞춰 맥주와 치킨을 준비하는 건 자신만의 가장 작은 소규모 파티를 여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여름의 엔터테인먼트는 그래서 즐겁다. 날씨가 덥고 습해서 짜증나도, 뉴스를 통해 들려오는 소식마저 짜증나 속에 열불이 나도, 뚜껑을 딴 순간 하얀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잔에 따르면 촤아악 기포와 거품이 올라오는 맥주와 함께라면 그마저도 좋은 안주거리다. 야구나 UFC, 아니면 아이돌그룹의 무대,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찾아 채널을 돌린다. 친구와 함께라면 더 좋다. 그리고 차가운 맥주를 단숨에 목으로 넘긴다. 그런다고 무더위가 한풀 꺾이는 것도, 세상이 변하는 것도 아니지만 잠시나마 한시름 놓고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다. 취기와도 같은 착각일수 있지만, 사실 엔터테인먼트란 그러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글. 위근우 기자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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