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오랜만이라 그런지 이젠 확실히 날이 많이 따뜻하네.
그러게. 꽃샘추위까지 다 지나가고 이제 더워질 일만 남았네. 요즘은 낮에 반팔 티셔츠 입고 다니는 사람들도 많더라. 여름도 머지않았나봐.

그래, 이제 곧 반팔과 노출의 계절인데… (힐끔 보며) 운동 좀 하지?
야, 지금 내가 긴팔 티셔츠를 입어서 티가 안 나는 거지, 소매 걷으면 장난 아니다? 좍좍 갈라지고, 응? 울퉁불퉁하고, 참 좋은데, 뭐라 할 말이 없네. 오늘은 자외선이 강하니까 참는다.

쓸데없는 소리 말고 이번 기회에 너도 조정 한 번 배워보는 건 어때? 이번에 보니까 그게 제대로 전신 운동인 거 같던데.
어우, 장난 아니지, 그건. 그렇게 운동 많이 한 손호영, 이준, 타고난 장사 진운이도 진짜 조정이 아닌 로잉 머신만으로 완전 녹다운됐는데. 에서 이준이 찍을 때 로잉 머신을 했다고 말했는데, 비를 완전 괴물로 만들었던 그 트레이너들이 시켰던 운동이면 말 다하지 않았겠어? 직접 해보지 않아서 운동의 강도까지는 모르지만, 기본적으로 허벅지 앞쪽의 대퇴사두근이랑 허리의 척추기립근, 등의 광배근과 팔의 이두근을 골고루 사용하는 구조더라고. 허벅지와 허리로 밀고, 등과 팔로 당기니까. 좀 단순화하면 턱걸이와 앉았다 일어서기, 허리로 물건 들어올리기를 한 동작으로 소화하는 거지. 보통 근력이 중요한 무산소 운동은 운동 시간이 짧고, 근지구력이 중요한 유산소 운동은 시간이 긴 편인데, 조정은 6분여의 시간동안 쉬지 않고 무산소에 가까운 운동을 하니 녹초가 될 수밖에 없지. 그래서 종종 마라톤과 비교되는 거야.

6분? 2000m 가는데 6분 정도 걸리는 거야?
응. 남자 선수 기준으로 그 정도 걸린다고 하더라고. 1분에 35~38회 정도의 속도로 노를 저어서 200회 정도 저으면 되는 수준이야. 그럼 에서 본 그 동작을 2초에 1번 이상 해야 한다는 뜻이겠지? 심지어 그 리듬을 다른 팀원들과 동일하게 맞추려면 엄청나게 반복 숙달해야 할 거고. 그렇기 때문에 엘리트 선수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페이스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아. 그 상황에서 선수들이 어떻게 페이스 조절을 하는지 알게 되면 아마 조정을 보는 게 좀 더 재밌어질 거야.

안 그래도 그게 궁금했어. 하는 사람들이야 나름 만족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보는 사람도 재밌어야 스포츠로서 인기를 얻을 수 있는 거잖아.
그치? 그렇기 때문에 지금 너한테 필요한 건 뭐다? 바로 나의 설명인 거지. 흔히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또 스포츠라는 게 보이는 만큼 재밌는 거거든. 우선 네가 조정을 재미없는 스포츠로 생각하는 이유를 말해볼게. 그렇게 힘들게 노를 젓는 건 멋있지만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동작만 열심히 해서 이기는 게 단순하게 보이는 거겠지?

비슷해. 어쨌든 잘은 몰라도 야구나 축구는 서로 다른 편이 싸우는 거니까 재밌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조정은 그냥 힘 좋고 잘 젓는 팀이 이기는 거잖아.
사실 나처럼 육상 경기 보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냥 힘 좋고 잘 젓는 걸 보는 것만으로도 흥미롭지만, 사실 조정은 꼭 그렇게만 볼 수 없어. 무엇보다 이 경기 자체가 영국의 뱃사공들이 서로 누가 빨리 건너나 내기 혹은 경쟁을 하며 시작된 거니까. 에서도 멤버들끼리 500m 대결을 하잖아. 단순한 기록 대결로만 보기는 어렵지. 누가 이길지 지켜보는 재미야 있겠지만 어쨌든 그냥 무조건 열심히 젓는 팀이 이기는 건 변하지 않잖아.
지금 설명하잖니. 아까 페이스 조절 얘기를 했지? 선수에게도 조정 완주는 엄청나게 힘든 일이기 때문에 힘을 잘 배분해야 하는데, 이 때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돼. 그냥 물리적인 요소만으로 봤을 땐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속도를 유지하는 게 가장 좋아. 그냥 무턱대고 처음부터 최고 에너지를 쏟으면 데프콘이 그랬던 것처럼 몸에 피로물질이 급속도로 쌓여 퍼지게 되거든. 그러면 완주 자체가 어렵지.

그럼 안 그러면 되잖아.
그치. 그런데 내가 ‘그냥 물리적인 요소만’이라고 했잖아. 다른 요소도 있다는 거지. 조정에서 콕스를 제외한 멤버들은 배가 나아가는 방향을 보지 못하고 뒤만 봐야 하잖아. 그렇기 때문에 만약 상대팀들이 앞서 가면 대체 얼마나 앞섰는지, 상대팀 페이스는 어떤지 콕스를 제외하면 알 수 없는 거야. 그러니까 불안하지. 그러면 그냥 꾸준히 자기 페이스만 유지해도 이길 수 있는 팀을 잡으려고 괜히 오버 페이스를 하다가 제풀에 지칠 수도 있고, 좀 무리해서라도 따라잡아야 할 때 그에 맞춰서 스퍼트를 못할 수도 있지. 그렇기 때문에 웬만하면 초반에 선두에 서서 콕스를 제외한 멤버들도 상대팀을 보고 경기를 하는 게 심리적으로 좋은 거야. 그리고 또 하나. 다른 팀의 뒤에 있게 되면 그쪽에서 노를 저으며 일으킨 물결 때문에 저항이 생기거든. 그래서 초반 선두가 좀 중요하지.


그럼 그렇게 하면 되잖아.
넌 대체 뭘 배운 거냐. 그렇다고 무턱대고 처음부터 피치를 잔뜩 올리면 데프콘처럼 훅 가는 거라니까. 그렇기 때문에 구간을 4개 정도로 나눴을 때 처음 구간에서 스퍼트를 어느 정도 해서 선두 싸움을 하고, 그 다음에 두 번째, 세 번째 구간에는 평균 속도와 페이스를 유지해서 약간은 유산소 운동량을 늘린 다음에 이제 마지막 구간에서 완전 무산소 운동으로 막판 스퍼트를 하는 거야. 그렇기 때문에 2000m 완주 때까지 과연 누가 이길지 쉽게 알 수 없는 거지. 마지막 구간에 남겨 놓은 힘이 누가 더 많은지 아직 알 수 없으니까. 초반에 잘 나가던 팀이 막판에 퍼질 수도 있는 거고. 그리고 정말 멘탈이 강한 선수들이라면 내가 앞서 말한 것처럼 꾸준하게 마이 페이스로만 가서 이길 수도 있겠지. 생각보다 머리 싸움이 필요하단 거구나?
그렇지. 그렇기 때문에 콕스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 거고. 계속 말하지만 노를 젓는 선수는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심리적인 불안이 생기는데, 그걸 해소할 수 있는 건 결국 콕스에 대한 신뢰거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어떻게 돼. 산으로 가지? 실제로 에서 그랬던 것처럼 8명의 노가 밸런스를 잃으면 배가 산까진 아니더라도 엉뚱한 곳으로 가게 되는데 믿음직한 콕스가 있으면 그 한 사람의 시선에 8명이 신뢰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는 게 가능하지. 만약에 노를 젓는 사람이 콕스를 보며 ‘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만 올린 놈’ 정도로 생각하면 페이스 조절이고 방향 조절이고 끝나는 거야. 이런 걸 알고 보면 꼭 이 아니더라도 조정을 재밌게 볼 수 있지 않겠어? 왜, 또 궁금한 거 있어? 조정에 대한 거라면 뭐든 더 대답해줄게.

그럼… 김 코치님 연락처?
오늘부터 열심히 남자의 팔을 만들겠습니다.

글. 위근우 기자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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