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은 부검의들의 이야기다. 하지만 은 고다경(김아중)이 열심히 본 미국 드라마 와 전혀 다르다. 오히려 거론해야할 건 영화 나 SBS , KBS 다. 대권 주자 강중혁 의원의 딸 강서연이 아이돌 가수 서윤형을 죽이고도 권력의 비호아래 아무 처벌도 받지 않는 상황은 영화 를 연상시키고, 서윤형의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에 압력을 넣는 정치권력의 모습은 과 의 정치가들을 연상시킨다.
10년 전 작품을 기획하며 부검의들을 만났던 장항준 감독은 그들이 “같은 의과대학을 졸업해도 개업의나 종합병원 의사들의 5분의 1 수준의 박봉”을 받고, 그럼에도 “몸으로 진실을 이야기하는 죽은 자들의 목소리”에 대한 사명감으로 부검을 한다는 걸 알았다. 부검을 통해 ‘진실’을 밝히려는 윤지훈(박신양)과 부검을 권력의 수단으로 삼으려는 이명한(전광렬)은 바로 그 돈과 사명감 사이에서 올 수 있는 갈등의 산물이자, 한 전문분야를 통해 들여다 본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윤지훈과 이명한이 부검하는 건 죽은 자의 몸이지만, 장항준 감독은 그 몸이 남긴 우리사회에 대한 ‘싸인’을 제시한다. 첫 회에서 건설 현장 노동자의 사망 원인에 대해 이명한과 윤지훈의 주장이 엇갈리는 장면은 그래서 상징적이다. 부검 결과를 통해 이명한은 건설회사가 노동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덜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윤지훈은 진실을 밝히며 그것을 가로막는다. 진실을 밝히는 것이 법의학의 의무라 믿는 윤지훈, 권력을 쟁취해야 법의학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이명한. 권력 앞에 진실은 허무할 만큼 쉽게 무너지고, 권력에 협조하면 성공을 약속 받는다.
권력에 의해 진실이 은폐되는 순간
그러나 윤지훈과 이명한의 대립은 단지 권력과 맞서거나 추종하는 선과 악의 대립이 아니다. 이 펼친 한국 사회의 해부도는 은근히 복잡하다. 서윤형의 사망 사건에서 이명한에게 국과수 원장 자리를 대가로 증거 조작을 의뢰하는 건 강중혁을 대리하는 장 변호사(장현성)다. 담당검사 우진(엄지원)은 상사로부터 “그 칼을 잘못 휘둘렀다간 자네 팔이 잘려나갈 것”이라는 경고를 받는다. 서윤형의 코디네이터는 거액을 받고 죄를 뒤집어쓰고, 검시관 정문수(윤주상) 역시 강중혁 측에 매수당해 결정적인 증거가 될 CCTV 테이프를 은폐한다. 그리고, 이명한은 언론을 상대로 윤지훈의 부검 결과에 조작이 있을 가능성을 흘린다. 입법, 사법, 언론의 권력이 한 점으로 모이자 진실이 은폐된다.사회의 모든 분야에 구석구석 힘을 미칠 수 있는 이 엄청난 힘은 ‘대권 도전’이 가능한 권력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이 권력은 끊임없이 더 큰 권력을 원한다. 강중혁은 한미일 3자회담을 앞두고 이명한에게 미 헌병대원이 진범인 총기살해 사건을 은폐해 주길 원한다. “이 사회에서 죽어 마땅한 3류 건달”의 죽음에 대한 진실은 ‘국익’ 앞에 무의미하다. 국익에 대한 맹신은 다시 “더 강한 나라를 가질 수 있다면 이명한도 더 강한 국과수를 가질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그리고, 이 논리의 희생자들은 윤지훈과 형사 최이한(정겨운)처럼 권력과 동떨어진 곳에서 진실을 추적하다 온갖 위협을 받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의 사건이 끝나지 않는 이유
더 많은 국익, 더 강한 국가, 더 강한 (나의) 권력. 은 한 사람의 죽은 몸으로 시작해 해방 이후 한국의 권력자들이 어떤 논리로 자신들의 치부를 정당화시켰고, 그것이 오직 ‘진실’만을 쫓아야할 국과수에마저 어떻게 영향을 끼치는지 보여준다. 국과수 원장이 된 이명한은 행정안전부로부터 5백억 원의 지원을 얻어내기 위해 차관 시찰 당시 화려한 ‘부검쇼’를 선보인다. 사인을 밝히는 데 중요한 혈액 샘플 분석은 드라마틱한 효과를 떨어뜨린다는 이유로 미뤄진다. 진실은 사라지고, 권력을 얻기 위한 쇼만 남는다. 윤지훈은 열악한 환경의 남부분원으로 좌천된 뒤, 트럭 연쇄살인사건을 해결한다. 하지만 그는 이명한의 권력에 밀려 국과수로 돌아오지 못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윤지훈과 그의 동료들은 이명한보다 더 권력이 센 정부의 차관 눈에 들고서야 본원에 복귀할 수 있다.
그래서 의 사건은 끝나지 않는다. 윤지훈이 아무리 정확한 부검 결과를 내놓는다 해도 서윤형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세상이 되지 않는 한 진실을 밝혀달라는 죽은 자들의 아우성은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은 부검의의 세계를 통해 부패한 권력의 문제를 제기하는 동시에, 다양한 사건들을 차례로 해결하면서 최고 권력자의 추악한 진실에 다가서는 미드식 에피소드 구성을 보여준다. 권력을 갖길 원하지 않는, 진실을 밝히는 것만이 유일한 바람인 이들은 권력에 의해 조종당하고 짓밟힌다. 그 가운데서도 그들은 ‘미드’ 같은 사건들을 한국적 상황에서 풀어나가며 진실에 조금씩 다가선다. 지금 이 대한민국의 현실에 가장 가까운 드라마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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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지은 five@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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