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하마드 알리는 “챔피언은 체육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내면 깊숙이에 있는 소망, 꿈, 이상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권투를 “집념과 집념의 대결”이라 했다. 작은 링 안에서 단지 두 사람의 두 주먹만으로 흘러가는 가장 정직한 스포츠 권투는 그래서 그동안 억압된 자아를 깨고 전진하는 이들의 이야기에 줄곧 쓰여 왔다. 연극 역시 마찬가지다. “희망을 찾고, 안 좋은 건 다 잊고 싶어서요.” 사랑하는 이를 잡지 못한 서른일곱의 이기동(김수로)은 그래서 체육관을 찾았고, 그 허름한 체육관엔 이기동과 같은 심정으로 하루하루 눈치 보며 살아가는 단원들이 있었다. 그리고 권투와 인생 모두를 놓아버린 이기동의 어린 시절 우상 ‘미친 탱크’ 이기동(김정호)도 있었다. 100개 하기도 버거워 수시로 숨을 고르던 줄넘기를 넘어, 스텝을 배우고, 기술을 배우고 스파링을 하는 사이 누군가는 그동안 참았던 말을 토해내고, 고백을 하고, 인정을 받으며 눈물을 흘린다.

라이브의 힘은 세다


이처럼 스포츠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비슷한 형식의 스토리라인과 메시지를 갖게 마련이다. 청년 이기동이나 눈칫밥 신세의 단원들이 겪는 변화는 얼핏 을, 관장 이기동과 그의 딸 연희(강지원)의 이야기는 류의 영화들을 연상시킨다. 결국 중요한 것은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스토리라인을 ‘어떻게’ 보여주느냐의 관점으로 옮겨간다. 그래서 연극은 권투라는 스포츠를 통해 등장인물들이 변화하기 시작하는 순간과 결과에 이르기 직전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다. 거친 숨소리나 흐르는 땀도 오히려 영화에서 더욱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다. 하지만 땀으로 흠뻑 젖은 배우의 등과 글러브와 글러브가 맞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눈앞에서 직접 펼쳐지는 순간, 결국 연극의 손을 들어주게 되고야 만다.

2009년 초연과 2010년 앵콜공연을 거치며 호평을 받아온 은 3번째 재공연과 함께 100석 규모의 소극장을 벗어나 중극장으로 옮겨왔다. 조명과 사운드에 신경을 써 “발산에 중점”을 두었으며, 영화 주제곡에 맞춰 8명의 배우가 무대에서 뿜어내는 섀도우복싱 장면은 하나의 잘 짜여진 춤과 같은 인상을 주며 단연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이미 3년간의 트레이닝을 받아 온 초연멤버들이 탄탄한 지층이 되어주고, 그동안 주로 코믹한 연기로 인상을 남겼던 김수로가 어수룩하고 소심한 남자를 재현하며 새로운 면을 선보인다. 하지만 넓어진 극장 사이즈와는 달리 밀도는 그 크기를 아우르지 못해 아쉬움을 남긴다. 공연은 2월 26일까지 동국대 이해랑예술극장에서 계속된다.

사진제공. 아시아브릿지

글.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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