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졌다. 전국 각지에는 대설주의보가 내렸다. 하필 그 날은 12월 24, 5일이었고, 트위터 타임라인은 “솔로였던 예수님 생일에 커플들이 왜 난리냐”는 차가운 분노로 뒤덮였다. 물론 커플들은 밖에서 데이트 하느라 바빠 트위터에 붙어 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밸런타인데이나 명절처럼 하루만 피하면 되는 날들과 달리 12월은 솔로들이 정체성을 뼈 시리게 자각하고, ‘연애 권하는 사회’를 향한 길고도 외로운 싸움을 펼쳐야 하는 기간이다.
그런 면에서 다수의 솔로들에게 ‘공휴일’에 불과했던 지난 크리스마스에 솔로들을 위해 방송된 두 편의 ‘솔로 특집’은 연‘애’계 카스트 제도의 하층민인 솔로들에게 놀랍고도 고무적인 사건이었다. KBS (이하 )은 ‘솔로 갱생 프로젝트-왜 이 지경까지 되었을까?’를, MBC 은 125 : 1의 경쟁률을 뚫고 당첨된 솔로 2백 명을 모아 ‘싱글 파티’를 열었다. 두 프로그램은 루시드폴, 이적, 정재형, 브로콜리 너마저, 부가 킹즈 등 TV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뮤지션들의 공연과 솔로를 위한 이벤트를 열었다는 점에서 비슷한 구성으로 이뤄진 것처럼 보였다.
가장 솔로 친화적이었던 , 방송의 중심을 놓친
그러나 두 프로그램의 방향은 전혀 달랐다. 에 초대받은 이들 중에는 ‘토토로 인형’을 남자친구 대신으로 삼은 여성, 어머니를 모시고 온 모태솔로 삼남매의 사연 등 솔로로 사는 사람들의 한탄이 집약됐다. 유희열은 산타클로스 복장으로 등장해 “솔로인 게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날 은 역대 가장 솔로친화적인 방송이었다. ‘솔로남’이라 자신을 소개한 장기하는 “‘우리’라고 표현할게요. 같은 처지니까”라며 관객들과 공감대를 형성했고, 제작진은 관객들에게 “참회의 시간을 가지면서 눈물을 닦을” 손수건까지 나누어주었다. 친구도 없이 혼자 온 방청객들에게는 ‘본질적 솔로들의 왕’이라는 칭호를 내리고 음료를 대접하며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을 BGM으로 틀어줬고, 거대한 날개를 단 솔로들의 대천사 정재형은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를 부르던 중 “어디 그런 사람 있겠니!”라며 초를 쳤다. 유희열은 “2011년에는 여러분들 모두모두 생기시길 바랍니다”라는 엔딩 멘트를 했지만 의 본질은 “이 자리에서 짝짓기 이벤트를 기대했다면 큰 오산”이라는 자막대로 같은 결핍을 지닌 이들이 모여 서로 놀려대며 즐기고 궁극적으로는 결핍을 결핍으로 느끼지 않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반면 의 ‘싱글파티’는 어떤 솔로에게, 무엇을 전달하려 했는지 불분명했다. 멤버들이 여러 달 동안 연습한 공연은 흥미로웠고, 리쌍, 부가킹즈, 브로콜리 너마저 등의 공연도 좋은 볼거리였다. 하지만 그 자리의 주인공인 솔로들은 노홍철과 참가자들 간의 소개팅, ‘사랑의 작대기’ 등 기존 버라이어티 쇼의 커플 만들기 프로그램과 비슷한 방식으로 다뤄졌다. 이 지금 솔로들의 정서와 라이프스타일을 짚어냈다면, 은 솔로가 커플이 되는 것만을 강조하는데 그쳤고, 방송의 중심 역시 싱글인지 공연인지 모호해지면서 대상에 대해 신선하게 접근하는 특유의 장점을 잃었다.
정체성을 가진 집단으로서의 유희
두 프로그램의 차이는 지금 엔터테인먼트의 적극적 소비자로서의 ‘솔로’가 단순히 ‘애인이 없는’ 사람의 통칭이 아니라 ‘솔로 정체성’을 지닌 이들의 집단이기 때문이다. 결혼 연령대가 높아지면서 남성과 여성 모두 연애할 수 있는 기간은 길어진 데 비해 결혼을 둘러싼 현실적 상황은 점점 복잡해지고, 개인의 취향은 뚜렷해진다. 그만큼 요즘 연애는 역설적으로 더욱 까다로운 관문을 거쳐야 가능하다. 그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연애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이들은 ‘못 하는’ 것을 빙자해 ‘안 하는’ 길을 선택한다. 내가 원하는 누군가와 연애를 할 마음은 있지만 아무 때나, 아무나와 하고 싶지는 않으니 지금은 연애를 생략하고 살아도 견딜 만 하다는 건조한 로맨티스트들이 ‘자발적 솔로’의 다수를 차지한다. 이들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 탐색기의 솔로들이 아니라 20대 후반에서 30대 초중반이라는 과도기의 솔로들이고, 지난 10여 년 동안 라디오를 통해 ‘잠재적 솔로’들과 소통해 온 유희열이 그들에게 가장 잘 맞는 쇼를 펼칠 수 있었던 것은 어떤 면에서는 당연한 결과다.
루시드 폴, 이적, 장윤주 등이 출연했던 솔로 특집 방송에 대해 시청자 게시판에 “유희열과 친분 있는 사람만 나오는 인맥 방송”이라는 비판적 의견을 제시한 이들이 대부분 남성이라는 점은 흥미롭다. DC 인사이드를 중심으로 생산된 “우리는 무적의 솔로부대다” 패러디가 솔로 남성들을 대표하는 문화였다면 “여러분들, 안 생겨요. 내 주위에 하나 둘씩 생기니 언젠가 나도 애인이 생기겠지 막연히 생각하죠? 생각할 필요 없어요. 안 생겨요”라는 유희열의 낭독으로 유명해진 ‘안 생겨요’ 시리즈는 솔로 여성들의 문화에 가깝다. 의 크리스마스 방송은 모든 면에서 커플 중심이었던 방송 시장이 소외된 이웃이었던 솔로, 특히 여성들을 드디어 주목한 예다.
도 도 ‘내년에는 애인이 생기라’는 덕담으로 마무리했지만 꼭 모든 사람이 ‘생겨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안 생기는’ 사람들이 없었다면 이토록 웃기는 쇼를 어떻게 볼 수 있었겠는가. “큐피드의 화살을 전부 다 소진시켜 버린 분들과 크리스마스 같이 좋은 날 3, 40개씩 쟁여놓고 다니는 사람들, 누가 더 부자입니까” 라는 장기하의 말대로, 솔로에겐 내일이 있다. 내일 안 생기더라도 내년 크리스마스에는 ‘우리’들을 위한 새로운 즐거움이 주어질 것이다. 그러니 이제 다가오는 2011년에 대처하는 솔로들의 자세는 이 한 마디로 충분해 보인다. “날 동정하지 마thㅔ요!”
글. 최지은 five@
편집. 장경진 th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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