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민 아직도 농구하고 있었어? 이번에 은퇴한다는 얘기 듣고 알았네?
뭐, 이상민 팬이나 농구 팬이 아니라면 너랑 비슷한 반응이겠지. 중고등학교 때 한참 응원하다가 잊어버린 이름이니까. 하지만 그동안 그를 꾸준히 지켜보던 사람들에게는 정말 충격적인 소식일 거야.

좋아하던 오빠가 그만둬서?
그도 그렇지만 이상민과 그가 현재 뛰고 있는 삼성 썬더스와의 계약 기간이 아직 1년 남은 상황이거든. 사실 나이나 이런 걸로 볼 때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진 않을 수 있지만 팬들 입장에선 안심하다가 뒤통수를 맞은 심정이겠지.

그래서 그렇게 팬들이 울고 화를 내고 그런 거야? 잘은 모르지만 은퇴 기자회견에서 팬들이 그렇게 슬퍼했다며.
우선 본인은 공공연하게 “우승하면 은퇴하겠다”고 말을 했었고, 그만큼 1년 남은 시즌 동안 우승을 위해 다시 한 번 불태울 기세였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은퇴를 결정했는지에 대해선 조금 의구심이 들어. 그의 부인이 은퇴 선언 당일에 팬카페에 올린 ‘힘없는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네요’라는 글도 그렇고. 그럼 진짜 등 떠밀려 그만둔 거야?
공식 기자회견에서는 작년부터 은퇴를 고려했었고, 구단에서 남은 1년 계약 기간의 잔여 연봉을 보장하고 해외 지도자 연수까지 보내주기로 해서 은퇴를 결정했다고 밝혔어. 삼성 코치직을 준다는 얘기도 있지만 아직 이건 완전히 결정된 사안은 아닌 거 같고.


그렇게 이상민을 은퇴시키면 삼성에 도움이 되는 거야?
그런 게 없진 않지. 우선 이상민은 연봉 2억 원의 고액 연봉자거든. 남은 계약 기간 1년 동안의 연봉은 보장해준다고 했지만 어쨌든 앞으로 그의 은퇴 덕에 2억 원을 가용할 수 있지. 이게 단순한 문제가 아닌 게, 프로농구에서는 연봉총액상한제라고 해서 팀 선수들의 연봉 총액이 19억 원을 넘기면 안 되거든. 그렇기 때문에 이상민이 빠지면 그 정도 액수만큼 다른 억대 유망주에게 투자하는 게 가능해지지.

유망주한테 밀릴 정도로 이상민 성적이 별로였어?
음… 많이 민감한 얘긴데, 단순히 수치상의 성적으로만 따지면 대단하다고 보기 어렵겠지. 지난 09-10 시즌 동안 게임 평균 15분 32초를 뛰고 3.6점을 기록했으니까. 그의 전성기를 생각하면, 또 연봉을 생각하면 많이 부족하지. 성적도 부진했고 은퇴도 서로 합의한 건데 좀 쿨해도 되지 않아?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 내가 방금 수치상의 성적으로만 따진다고 했잖아. 하지만 스포츠라는 건 그렇게 수치화 할 수 없는 전력이라는 게 상당히 중요하거든. 특히 이상민 같은 노장 선수의 파이팅은 팀 전체에 긴장감을 줄 수 있지. 이상민이라는 선수가 유독 승부 근성 강하기로 유명하기도 하고. 또 후배들에게 모범이 되고 살갑게 대해주는 고참 덕에 팀워크가 향상되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요소지.

그럼에도 이상민이 은퇴를 하는 게 팀 전력에 도움이 되니까 그런 선택을 했을 거 아니야.
분명 그 팀에도 전력을 분석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고, 나 같은 얼치기보다는 훨씬 많이 알겠지.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 냉정한 판단력이야. 내가 지난번에 얘기한 것처럼 어떤 팀의 팬은 그 팀의 특정 선수 팬인 경우가 있어. 그 때도 이상민을 예로 들었지, 아마? 삼성 전에 KCC에서 전성기를 누리던 이상민은 결국 KCC의 팀 전력 강화라는 명목 때문에 삼성으로 건너가게 돼. 어떤 면에서는 KCC의 방출이라고도 할 수 있었지. 이상민의 팬으로서 KCC를 응원하던 팬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을 거야. 물론 그 역시 KCC의 전력 강화를 위한 일이었지만 수많은 KCC 팬들을 적으로 돌리게 된 일이기도 해. 예를 이렇게 들어서 좀 이상하지만 만약 너라면 전력 강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2PM의 재범을 내보내고 태양 혹은 탑을 새 멤버로 들이면 받아들일 수 있겠어?

당연히 그건 안 되지.
바로 그거야. 팬들은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길 바라지만 동시에 자신이 사랑하던 바로 ‘그 팀’이길 바라기도 해. ‘그 팀’을 이루는 건 바로 선수고. 그렇기 때문에 소위 프랜차이즈 스타, 즉 팀의 영욕을 함께 한 간판스타의 존재가 중요한 거야. 말하자면 팬심이라는 건 뜨거운 애정이지, 냉정한 판단력이 아니야. 아마 나 역시 그 선택으로 기아가 우승할 수 있다고 해도 이종범 방출에는 절대 동의할 수 없을 거야. 그런데 이상민 팬들은 아까 말한 것처럼 이미 KCC 시절 비슷한 일을 한 번 겪었고, 그의 이적과 함께 새로 응원하게 된 삼성에서조차 뒷맛이 찝찝한 은퇴를 보게 된 거지.
기왕이면 돌아서는 뒷모습을 아름답게 비춰주면 좋을 텐데, 그치?
팬들로서는 그게 너무 아쉬운 거지. 어떤 팬도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가 영원히 은퇴하지 않고 현역으로 뛸 거라 믿지는 않아. 하지만 적어도 아름답게 손 흔들며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지. 이건 팬들을 위해서 뿐 아니라 스포츠 전체의 수준을 위해서도 중요한 문제야. 젊은 시절 열심히 팀을 위해 공헌하면, 나중에 나이 들고 부진해졌을 때에도 존중 받을 수 있다는 선례가 있다면 당연히 선수들은 더 열심히 뛰지 않을까? 선수 스스로 소속팀에 애정을 갖고 뛰면 팬들 역시 더 응원하게 될 거고, 그런 분위기가 농구 전체에 일종의 ‘붐 업’을 일으킬 수도 있겠지.

하지만 이상민의 은퇴가 그렇게 보기 안쓰러운 모습인 건 아니지 않아? 그래도 구단이 이런저런 배려를 많이 해줬다며.
팬들로서는 부족하다고 느끼겠지만 삼성도 어느 정도 노장에 대한 예우를 해줬다고 봐. 하지만 그를 어떻게 기념하느냐에 대해서는 또 다른 문제가 있어. 너 영구 결번이라고 알아?

그 뭐냐, 선수 등번호를 앞으로 다른 사람 못 쓰게 하는 거 아니야.
맞아. 현재 삼성은 이상민의 등번호 11번을 영구 결번할 계획이 있다고 밝혔어. 하지만 이상민이 전성기를 보내며 프랜차이즈 스타로 군림했던 건 누차 말하듯 KCC와 KCC의 전신인 현대 걸리버스거든. 그렇기 때문에 많은 이상민 팬, 그리고 농구 팬들은 삼성보다는 KCC가 11번 영구 결번을 해주길 바라는 거고. 실제로 NBA에선 팀을 이끌던 스타가 다른 팀 소속이 되어 은퇴해도 흔쾌히 영구 결번을 해주는 경우가 많았어. 돈과 실력이 우선하는 스포츠 비즈니스에도 인간에 대한 존중은 남아있다는 증거였지.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선 그런 아름다운 결정을 볼 수가 없네. KCC에서도 그런 의지를 보이지 않고, 삼성 역시 우리 선수의 영구 결번식을 과거 팀에서 하는 건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고. 장담컨대 두 팀이 합의해서 KCC가 11번을 영구 결번하기로 결정하면 정말 많은 농구 팬들이 두 팀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줄 거야. 구단 관계자들이 이런 얘길 좀 많이 접하고 귀담아 들었으면 좋겠다.
너, 인터넷 콘텐츠와 내 체력의 공통점이 뭔지 알아?

뭔데?
잘 퍼진다는 거야.

글. 위근우 eight@
편집. 이지혜 sev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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