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이기주의와 가족애, 사랑과 반목에 우정까지 시끌벅적하게 피어나던 성북동 순재네에도 작별의 시간이 오고 있다. 세경은 이민을 간다는 사실을 준혁에게 알리고, 늘 신애를 찾던 해리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지훈은 정음과 이별한 한편 떠나려는 세경을 붙잡는다. 아직 그들을 더 보고 싶은 시청자들의 마음과는 별개로 차근차근 결말을 향해 걸어가는 MBC (이하 ) 속 인물들에게 강명석 기자와 김선영 TV평론가가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편집자주
양쪽 팔을 의자 팔걸이에 올린다. 다리를 벌린다. 고개를 뒤로 젖힌다. 눈을 감는다. 세경(시세경)의 기억 속에 지훈(최다니엘)은 그런 모습으로 남지 않을까. 늘 지훈의 뒤치다꺼리를 했던 세경은 격무에 시달려 의자에 몸을 기댄 그를 누구보다 많이 보았다. 세경보다 많이 배웠고, 많이 가졌지만 더 많이 피곤한 남자. 지훈은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누나의 기대 때문에 의사가 됐고, 서울대생이지만 숨 쉴 틈 없는 병원의 격무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는 여자친구 정음(황정음) 앞에서는 아무리 피곤해도 여자친구를 감싸는 좋은 남자였다. 다만 “집에서 일하는 애”인 세경에게만 지훈은 주고 싶은 것을 마음껏 줬고, ‘떡실신’ 된 자신의 모습도 보여줄 수 있었다. 세경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벨벳언더그라운드의 LP를 들었던 그 순간처럼, 지훈에게 세경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주는 사람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지훈은 세경에게 “가지마라”라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비참하지 않은 현실, 가볍지 않은 판타지
그러나 지훈이 할 수 있는 건 자신과 세경에게 가끔 여유로운 시간을 주는 것뿐이다. 그는 아무 것도 못하는 자신에게 “나한테 화가 났다”며 자책한다. MBC (이하 )은 그렇게 지훈처럼 현실을 유예하되 붙잡지 못한다. 이 시트콤에서는 가사도우미의 동생이 주인집 가족에게 따뜻한 생일 축하를 받고, 서울대가 아닌 서운대생이 취업걱정을 하지만, 친구들과 그럭저럭 즐겁게 산다. 현실은 냉정해도 지붕 안에는 따뜻한 정과 가진 자의 관용이 있다. 김병욱 감독은 에서 22분 남짓한 시간동안 현실에서 시작해 온기를 지닌 웃음으로 마무리하는 그만의 스토리텔링을 완성시켰다. 현실이되 비참하지 않고, 판타지이되 현실의 무게를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지훈처럼 김병욱 감독은 자신이 그들의 현실에 해줄 수 있는 것이 22분의 시간뿐이라는 것을 안다. 지훈과 준혁이 세경에게 많은 것을 주어도 그가 노동 때문에 미래를 준비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고, 집안이 몰락한 정음에게 친구들이 해줄 수 있는 건 애완견의 사료 값을 내주는 것뿐이다. MBC 까지 김병욱 감독은 중산층 이상의 가족들이 가진 속물성을 실컷 조롱했다. 그에게 가족은 작은 이익에도 눈에 불을 켜지만, 결국 다시 화합하는 재밌는 공동체였다. 하지만 그는 중산층 지붕 바깥의 현실에 눈을 돌리면서 더 이상 현실을 조롱하지 않는다. 중산층의 현실을 가볍게 냉소하면서 오히려 현실과 거리를 뒀던 그는 이제 반대로 비현실적일 수 있는 따뜻함으로 해결할 길 없는 현실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 현실은 한 개인의 관용으로 어찌할 수 없다. 이 여린 보수주의자는 다만 네 청춘이 현실에 충돌하는 시간을 마지막까지 늦춘다. 세경이 현실을 막아줄 지붕 안에서 겨울을 나려면 그의 짝사랑이 실현돼서는 안 된다. 각자의 마음은 똑같은 방식으로 되풀이 되고, 예전보다 줄어든 방영기간은 이전처럼 캐릭터의 현실을 다양하게 보여줄 에피소드를 풍요롭게 다루기 어렵다. 이 회고적인 에피소드가 많았던 건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는 기억 속에 남은 할머니를 떠올리며 눈물 흘리고, 남장을 한 지훈의 옛 여자친구는 아픈 사랑의 추억을 되살린다. 현실은 차갑지만, 지나가버린 사랑은 아름답다. 그리고 지훈과 세경이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함께 들은 것이 또 하나의 추억이 될 때 쯤, 은 결국 현실에 스스로를 들이박는다.
그래도 우리가 할 일은 현실로 달려가는 것
세경과 정음은 각자의 인생을 찾아야하는 시점에서 누구도 관용을 베풀지 않는 아픈 현실로 나아간다. 지훈이 두 사람의 세상을 껴안기엔, 세상은 너무나 무겁고 진지하다. 지금 지훈이 할 수 있는 건 의자에 몸을 파묻고 깊이 잠드는 것뿐이다. 김병욱 감독은 자신의 지붕을 뚫고 바깥의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가장 완숙한 테크닉으로 소화했다. 그러나 그는 그 현실이 얼마나 슬픈 것인지 아는 순간 차마 아프게 한 발 더 내딛지 못했다. 결국 어떤 드라마도 현실의 슬픔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믿을 것은 다시 사랑뿐이다. 준혁은 지훈과 똑같이 세경에게 “가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지훈처럼 물러서는 대신 세경을 달려가 끌어안는다. 그 끝이 희극이든 비극이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달려가는 것이다. 언젠가는 인간의 마음이 현실을 넘을 수 있다고 믿으며. 그렇게 우리의 겨울은 끝나고 있다.
글 강명석
“추억이 사는 기쁨의 절반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애.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오늘도 추억이잖아.” (이하 ) 92회에서 옛 추억의 장소를 찾은 지훈(최다니엘)이 말한다. 추억은 이후부터 김병욱 월드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되었다. 은 이야기 자체가 미래에서 돌이켜 본 회상 구조로 이루어진 작품이었다. 이러한 회고의 정서는 에 와서 더욱 강화되어 인물들은 더 자주 회상에 잠기고 더 빈번하게 과거의 향수에 젖으며 중요한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반드시 사진이나 낙서의 흔적을 남긴다. 여기에서 추억은 단순한 과거의 환기가 아니라 극 전체를 통해 다층적인 의미의 다양한 모티브로 변주된다.순재네 가족을 변화시키는 추억의 힘
에서는 각각의 인물들이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다시 찾는 모티브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것은 종종 기억일 때도 있고, 신애(서신애)나 해리(진지희)처럼 사람일 때도 있으며, 히릿 같은 동물일 때도 있고, 목도리나 신발처럼 물건일 때도 있다. 이러한 모티브는 85회 지훈의 첫사랑 에피소드에 등장한 프루스트의 소설 가 은유하듯이 소실과 복원이라는 추억의 메커니즘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인물들이 잃어버리는 것은 모두 소중한 것들이고, 그것들이 귀환할 때는 대개 새로운 가치와 교훈으로 되돌아온다. 예컨대 준혁(윤시윤)이 따돌렸던 해리를 되찾았을 때 함께 돌아온 것은 남매애였고, 정음(황정음)이 히릿을 발견했을 때 함께 얻은 것은 첫사랑의 아픔에 대한 극복과 지훈과의 인연이었다. 결국 이 상실과 회복의 모티브는 망각으로 가려져있던 생의 한 순간과 그 속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하는 추억의 힘과 닮아 있다.
또 다른 의미로 추억은 오래된 것들의 소멸을 종용하는 이 시대를 버텨내는 순수한 아날로그 정서로 변주된다. 그것은 과잉의 도시 서울에서 실용과 개발의 논리에 의해 차츰 사라져가는 가치다. 폐점을 앞둔 오래된 카페 혹은 곧 재개발이 진행될 자옥(김자옥)의 마당 넓은 한옥집처럼. 에서 순재(이순재)네 가족과 세경(신세경), 신애 자매의 극단적 대비가 나타내는 것은 계급 문제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디지털 실용주의와 전통적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의 대립이다. 모든 일을 전자 제품으로 해결하는 순재네 집에서 세경은 손으로 속옷 빨래를 하고, 직접 콩을 갈아 국수를 만들며, 버리는 제품으로 수공 장난감을 만든다. 촌스럽고 “꾸질꾸질”하지만 결국 순재네 가족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들 자매다. 지훈이 저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세경에게 하는 것도, 준혁이 ‘오래된 책이나 가구의 냄새가 좋다’는 그녀의 말을 듣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제 곧 서울을 떠나게 될 세경은 그들에게 오래도록 간직될 순수한 추억 그 자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성장은 생의 반추를 통해 이어진다
끝으로 추억은 의 주제인 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 작품의 성격으로 자주 언급되는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은 근본적으로 추억의 성격을 함축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 미칠 듯한 마음도 언젠간 가라앉겠죠. 아저씨 말처럼 언젠간 이 순간도 웃으며 떠올릴 추억이 될 거라 믿어요”라는 세경의 대사처럼 가장 힘들고 아픈 순간을 편하게 회상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삶에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성장은 단지 시간의 축적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지난 과거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시간의 퇴색을 버텨낼 수 있으며, 끊임없이 생을 반추하는, 곧 추억을 통해 일생 동안 지속된다. 이 남긴 추억의 의미 역시 우리에게 그러할 것이다.
글 김선영
글. 강명석 two@10asia.co.kr
글. 김선영(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양쪽 팔을 의자 팔걸이에 올린다. 다리를 벌린다. 고개를 뒤로 젖힌다. 눈을 감는다. 세경(시세경)의 기억 속에 지훈(최다니엘)은 그런 모습으로 남지 않을까. 늘 지훈의 뒤치다꺼리를 했던 세경은 격무에 시달려 의자에 몸을 기댄 그를 누구보다 많이 보았다. 세경보다 많이 배웠고, 많이 가졌지만 더 많이 피곤한 남자. 지훈은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누나의 기대 때문에 의사가 됐고, 서울대생이지만 숨 쉴 틈 없는 병원의 격무에 시달린다. 그리고 그는 여자친구 정음(황정음) 앞에서는 아무리 피곤해도 여자친구를 감싸는 좋은 남자였다. 다만 “집에서 일하는 애”인 세경에게만 지훈은 주고 싶은 것을 마음껏 줬고, ‘떡실신’ 된 자신의 모습도 보여줄 수 있었다. 세경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벨벳언더그라운드의 LP를 들었던 그 순간처럼, 지훈에게 세경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을 주는 사람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지훈은 세경에게 “가지마라”라고 한 것일지도 모른다.
비참하지 않은 현실, 가볍지 않은 판타지
그러나 지훈이 할 수 있는 건 자신과 세경에게 가끔 여유로운 시간을 주는 것뿐이다. 그는 아무 것도 못하는 자신에게 “나한테 화가 났다”며 자책한다. MBC (이하 )은 그렇게 지훈처럼 현실을 유예하되 붙잡지 못한다. 이 시트콤에서는 가사도우미의 동생이 주인집 가족에게 따뜻한 생일 축하를 받고, 서울대가 아닌 서운대생이 취업걱정을 하지만, 친구들과 그럭저럭 즐겁게 산다. 현실은 냉정해도 지붕 안에는 따뜻한 정과 가진 자의 관용이 있다. 김병욱 감독은 에서 22분 남짓한 시간동안 현실에서 시작해 온기를 지닌 웃음으로 마무리하는 그만의 스토리텔링을 완성시켰다. 현실이되 비참하지 않고, 판타지이되 현실의 무게를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지훈처럼 김병욱 감독은 자신이 그들의 현실에 해줄 수 있는 것이 22분의 시간뿐이라는 것을 안다. 지훈과 준혁이 세경에게 많은 것을 주어도 그가 노동 때문에 미래를 준비하기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고, 집안이 몰락한 정음에게 친구들이 해줄 수 있는 건 애완견의 사료 값을 내주는 것뿐이다. MBC 까지 김병욱 감독은 중산층 이상의 가족들이 가진 속물성을 실컷 조롱했다. 그에게 가족은 작은 이익에도 눈에 불을 켜지만, 결국 다시 화합하는 재밌는 공동체였다. 하지만 그는 중산층 지붕 바깥의 현실에 눈을 돌리면서 더 이상 현실을 조롱하지 않는다. 중산층의 현실을 가볍게 냉소하면서 오히려 현실과 거리를 뒀던 그는 이제 반대로 비현실적일 수 있는 따뜻함으로 해결할 길 없는 현실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 현실은 한 개인의 관용으로 어찌할 수 없다. 이 여린 보수주의자는 다만 네 청춘이 현실에 충돌하는 시간을 마지막까지 늦춘다. 세경이 현실을 막아줄 지붕 안에서 겨울을 나려면 그의 짝사랑이 실현돼서는 안 된다. 각자의 마음은 똑같은 방식으로 되풀이 되고, 예전보다 줄어든 방영기간은 이전처럼 캐릭터의 현실을 다양하게 보여줄 에피소드를 풍요롭게 다루기 어렵다. 이 회고적인 에피소드가 많았던 건 그래서였을지도 모른다. 치매에 걸린 할아버지는 기억 속에 남은 할머니를 떠올리며 눈물 흘리고, 남장을 한 지훈의 옛 여자친구는 아픈 사랑의 추억을 되살린다. 현실은 차갑지만, 지나가버린 사랑은 아름답다. 그리고 지훈과 세경이 벨벳 언더그라운드를 함께 들은 것이 또 하나의 추억이 될 때 쯤, 은 결국 현실에 스스로를 들이박는다.
그래도 우리가 할 일은 현실로 달려가는 것
세경과 정음은 각자의 인생을 찾아야하는 시점에서 누구도 관용을 베풀지 않는 아픈 현실로 나아간다. 지훈이 두 사람의 세상을 껴안기엔, 세상은 너무나 무겁고 진지하다. 지금 지훈이 할 수 있는 건 의자에 몸을 파묻고 깊이 잠드는 것뿐이다. 김병욱 감독은 자신의 지붕을 뚫고 바깥의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가장 완숙한 테크닉으로 소화했다. 그러나 그는 그 현실이 얼마나 슬픈 것인지 아는 순간 차마 아프게 한 발 더 내딛지 못했다. 결국 어떤 드라마도 현실의 슬픔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믿을 것은 다시 사랑뿐이다. 준혁은 지훈과 똑같이 세경에게 “가지 말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지훈처럼 물러서는 대신 세경을 달려가 끌어안는다. 그 끝이 희극이든 비극이든,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결국 달려가는 것이다. 언젠가는 인간의 마음이 현실을 넘을 수 있다고 믿으며. 그렇게 우리의 겨울은 끝나고 있다.
글 강명석
“추억이 사는 기쁨의 절반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애. 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오늘도 추억이잖아.” (이하 ) 92회에서 옛 추억의 장소를 찾은 지훈(최다니엘)이 말한다. 추억은 이후부터 김병욱 월드의 가장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가 되었다. 은 이야기 자체가 미래에서 돌이켜 본 회상 구조로 이루어진 작품이었다. 이러한 회고의 정서는 에 와서 더욱 강화되어 인물들은 더 자주 회상에 잠기고 더 빈번하게 과거의 향수에 젖으며 중요한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 반드시 사진이나 낙서의 흔적을 남긴다. 여기에서 추억은 단순한 과거의 환기가 아니라 극 전체를 통해 다층적인 의미의 다양한 모티브로 변주된다.순재네 가족을 변화시키는 추억의 힘
에서는 각각의 인물들이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다시 찾는 모티브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그것은 종종 기억일 때도 있고, 신애(서신애)나 해리(진지희)처럼 사람일 때도 있으며, 히릿 같은 동물일 때도 있고, 목도리나 신발처럼 물건일 때도 있다. 이러한 모티브는 85회 지훈의 첫사랑 에피소드에 등장한 프루스트의 소설 가 은유하듯이 소실과 복원이라는 추억의 메커니즘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인물들이 잃어버리는 것은 모두 소중한 것들이고, 그것들이 귀환할 때는 대개 새로운 가치와 교훈으로 되돌아온다. 예컨대 준혁(윤시윤)이 따돌렸던 해리를 되찾았을 때 함께 돌아온 것은 남매애였고, 정음(황정음)이 히릿을 발견했을 때 함께 얻은 것은 첫사랑의 아픔에 대한 극복과 지훈과의 인연이었다. 결국 이 상실과 회복의 모티브는 망각으로 가려져있던 생의 한 순간과 그 속의 의미를 재발견하게 하는 추억의 힘과 닮아 있다.
또 다른 의미로 추억은 오래된 것들의 소멸을 종용하는 이 시대를 버텨내는 순수한 아날로그 정서로 변주된다. 그것은 과잉의 도시 서울에서 실용과 개발의 논리에 의해 차츰 사라져가는 가치다. 폐점을 앞둔 오래된 카페 혹은 곧 재개발이 진행될 자옥(김자옥)의 마당 넓은 한옥집처럼. 에서 순재(이순재)네 가족과 세경(신세경), 신애 자매의 극단적 대비가 나타내는 것은 계급 문제뿐만 아니라 이와 같은 디지털 실용주의와 전통적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의 대립이다. 모든 일을 전자 제품으로 해결하는 순재네 집에서 세경은 손으로 속옷 빨래를 하고, 직접 콩을 갈아 국수를 만들며, 버리는 제품으로 수공 장난감을 만든다. 촌스럽고 “꾸질꾸질”하지만 결국 순재네 가족을 변화시키는 것은 그들 자매다. 지훈이 저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세경에게 하는 것도, 준혁이 ‘오래된 책이나 가구의 냄새가 좋다’는 그녀의 말을 듣는 것도 우연이 아니다. 이제 곧 서울을 떠나게 될 세경은 그들에게 오래도록 간직될 순수한 추억 그 자체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성장은 생의 반추를 통해 이어진다
끝으로 추억은 의 주제인 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이 작품의 성격으로 자주 언급되는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는 말은 근본적으로 추억의 성격을 함축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 이 미칠 듯한 마음도 언젠간 가라앉겠죠. 아저씨 말처럼 언젠간 이 순간도 웃으며 떠올릴 추억이 될 거라 믿어요”라는 세경의 대사처럼 가장 힘들고 아픈 순간을 편하게 회상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삶에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성장은 단지 시간의 축적을 통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지난 과거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시간의 퇴색을 버텨낼 수 있으며, 끊임없이 생을 반추하는, 곧 추억을 통해 일생 동안 지속된다. 이 남긴 추억의 의미 역시 우리에게 그러할 것이다.
글 김선영
글. 강명석 two@10asia.co.kr
글. 김선영(TV평론가)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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