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랙스는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의 록그룹이다. 아이돌의 산실에서 등장한 이 밴드는 데뷔 당시 록 팬들로부터 정체성의 의심을 받았고, 오랫동안의 일본 활동으로 한국 대중에게 다가서지 못하기도 했다. 하지만 트랙스의 두 멤버, 보컬 제이와 기타리스트 정모는 여전히 음악을 하고 있다. 새 앨범을 내기까지 걸린 3년 6개월. 그들이 직접 만든 음악에 담긴 그들의 록과 인생에 대해 들어봤다.
3년 6개월 만에 앨범이 나왔는데, 오랜 기간 음반을 만들면서 개인적인 생활이나 생각도 많이 변했을 것 같다.
정모 : 20대 중반이 되면서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 같다. 아무래도 내 미래도 생각하게 되고, 예전의 내가 지금에 비하면 어렸다는 생각도 든다. 조금씩 성장하는 것 같다.
제이 : 난 나 자신을 놓게 된 것 같다. 예전에는 굉장히 압박감을 많이 느꼈다. 노래를 부르는 것부터 주변에서 하는 말까지 하나하나 다. 그런데 목이 아파서 수술을 받을 때 의사가 노래를 못 부를 수도 있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오히려 마음 편하게 먹자고 생각하게 됐다. 전에는 누구 앞에서 뭔가 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는데 이제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MBC에브리원 도 그래서 출연했었다. 이런 대사를 말하고, 우는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스스로 테스트하고 싶었다. “사장님은 밴드를 하시던 분이라 밴드에 대한 꿈이 있으신 듯”

트랙스는 ‘오빠밴드’(왼쪽)와 등 음악 외적인 활동으로 인지도를 더 높였다.
제이처럼 정모도 MBC ‘오빠밴드’의 출연이 생활에 영향을 미쳤나.
정모 : 음반 작업을 하는 동안 만족할만한 곡을 못 만들어서 스트레스가 많았는데 ‘오빠밴드’가 도움이 됐다. 특히 영석이 형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내가 음악한지 20년이 넘었는데 이제야 음악에 대해 좀 알겠다. 넌 아직 내가 한 거 반도 안 되니까 지금 떠오르는 걸 편하게 만들어라”라고 하셨다. 그 뒤로 음악 하는 데 여유가 생긴 것 같다. 그리고 ‘오빠밴드’ 보면서 자기도 기타를 잡게 됐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계셔서 기분 좋았다.

‘오빠밴드’ 출연처럼 대중에게 이름을 알릴 방법에 대해 고민하나. 트랙스는 록밴드면서도 2인조고, SM 소속이라 애매한 포지션에 있는 것 같다.
제이 : 고민 많이 했다. 요즘 워낙 가수들도 많아서 어떻게 우리 이름을 알릴 수 있을지 걱정이 많았다. 가요 프로그램에서는 MR로 노래를 불러야 해서 밴드의 연주를 살릴 수 없다는 것도 그렇고. 좋은 음악을 하는 사람은 많은데 그들이 모두 잘 되는 게 아닌 게 현실이니까, 우리를 알릴 수 있다면 예능이나 연기도 괜찮다.
정모 : 우리가 SM이라는 회사를 선택한 것 자체가 대중적인 부분을 생각한 거 아니겠나. 폴 길버트도 일본 버라이어티 쇼에 나가면 즐겁게 노니까. 그런 게 들어오지 않을 뿐이다. (웃음) 그런데 정말 SM에서 트랙스를 3년 6개월 동안 기다려서 앨범을 내줬다는 게 놀랍긴 하다.
정모 : 우리도 신기하다. (웃음) 회사에 되게 고맙다. 멤버들도 줄어가고 앨범을 엎고 다시 하겠다고 해도 다 지원하면서 기다려줬으니까. 이수만 선생님이 우리는 데뷔 때부터 “무조건 너희가 다 해야 한다”면서 알아서 연습하고 곡 만들라고 하셨다. 보통 SM은 보수적이고 딱딱하다고 생각하는 데 우리는 늘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셨다.
제이 : 너희는 나가서 좀 놀아라, 그래야 좋은 곡이 나오지 않겠냐고 하시더라. (웃음) 아무래도 밴드를 하시던 분이라 밴드에 대한 꿈이 있으신 것 같다.

SM의 아이돌과 함께 생활하기는 어땠나.
정모 : 처음에는 악기를 다루거나 건반 하나를 치면 음을 맞추거나 하는 걸 보면서 신기해 하더라. 그런데 장르의 차이를 빼면 결국 다 또래들이라 학교 반 친구하고 똑같았다.

제이는 특히 김희철과 친하지 않나.
제이 : 희철이 하고는 같이 살았다. 내가 살던 숙소에 희철이가 들어온 건데, 걔는 되게 특이한 애다. (웃음) SM에서 오디션을 보면 대부분 팝이나 R&B를 부르는데 희철이는 스트라이퍼 노래를 불렀으니까. 워낙 락을 좋아하기도 해서 우리하고 친해졌다. 다른 친구들은 우리가 대게 홍대 합주실에서 생활해서 자주 만날 틈은 없었고. “이번 앨범은 최대한 힘을 빼고 담백하게”

제이 “우리를 알릴 수 있다면 예능이나 연기도 괜찮다” 그런데 어떻게 록을 하면서 아이돌 전문인 SM에 들어갈 생각을 하게 됐나.
제이 : 나는 처음부터 록을 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힙합을 더 좋아했는데, 미국에서 살 때 한인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전화로 참가하는 컨테스트에 심심풀이로 해봤다가 1등을 했다. 그게 계기가 돼서 공연도 하다가 SM 관계자에게 명함을 받았다. 그 때 다른 힙합 기획사에서도 명함을 받았는데 그 때 알고 지내던 DJ가 지원을 받으려면 SM으로 가라고 하더라. 그렇게 SM에 들어가서 우연히 합주실을 구경하러 갔다가 쿵쾅 거리는 사운드가 들렸고, 그 위에 랩을 해보라고 하길래 해봤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렇게 트랙스가 시작됐다.
정모 : 나는 중고등학교 때 계속 밴드를 했는데 어느 공연에서 SM에 있는 분이 명함을 주셔서 오디션을 봤다가 처음에는 떨어졌다. 그런데 아이돌 회사인데 나에게 명함을 준 걸 보면 뭔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지 않을까 싶어서 (웃음) 다시 오디션을 봤고, 그 때 붙었다.

인기 아이돌이 많은 회사에서 록 밴드로 활동하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나.
제이 : 처음에는 그랬다. 활동하면 우리가 다른 애들보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걸 아니까. 그런데 일본 활동을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일본에서는 정말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다. 우리가 직접 클럽에서 CD도 팔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고. 그래서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상황이 바뀌더라.
정모 : 관객들도 처음에는 한 명도 안 들어오다 10명, 100명, 500명 하는 식으로 늘었다. 그리고 우리도 일본어를 하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공연에서 멘트를 외워서 다음 곡은 뭐다라는 말 밖에 못했고, 누가 옆에서 우리 욕을 해도 몰랐는데 이제는 우리가 욕할 수 있을 정도가 됐으니까. (웃음) 그 때 마음을 비우고 하다 보면 언젠가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마음가짐이 음악에도 영향을 미쳤나. 이전의 메틀 사운드하고 다르게 ‘가슴이 차가운 남자’는 모던 록 성향의 사운드에 발라드적인 요소가 강해졌다.
정모 : 처음부터 이러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3년 넘게 준비하면서 랩 메틀도 해봤고, 아예 발라드도 했다. 그러다 작년 10월쯤 그냥 이런 곡을 만들고 싶어졌다.
제이 : 나는 원래 이런 음악이 좋았다. 예전에는 베이스치던 멤버가 센 목소리를 가져서 날 받쳐주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도 없으니까. 즐겨듣는 음악하고 하고 싶은 음악이 일치했다.

강한 메틀 사운드를 내다 이렇게 심플한 사운드를 하기는 어떤가.
정모 : 우리가 이젠 둘뿐이라는 점을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사운드를 심플하게 갔다. 기본적인 밴드 구성에 피아노나 현악기 정도만 포함시켰고, 드럼 소리를 좀 더 울리게 해서 공간을 채우는 식으로 구성했다.
제이 : 최대한 힘을 빼고 담백하게 가자고 했다. 일단 내가 목 수술을 하고나서 예전보다 목소리가 깨끗해져서 처음부터 노래 연습을 다시 해야 했다. 그래서 앨범을 녹음할 때 후렴구를 빼면 최대한 담담하게 불러야 했다.

정모는 메틀 기타를 거의 배제하고 연주하기 어렵지 않았나.
정모 : 우리가 했던 하드한 사운드를 벗어나 보자고 생각해서 철저하게 기타 사운드를 뺐다. ‘One night’처럼 메틀 사운드를 내는 곡도 뒤에 들릴 듯 말 듯 깔아놓는 정도만 했다. 처음에는 좀 힘들었다. 중학교 때부터 메틀 카피밴드로 음악을 시작했었으니까. 그런데 앨범 작업을 계속하면서 말랑말랑하게 박자를 쪼개는 음악들을 더 많이 만들게 되더라. (웃음)“아직 20대 중반이라 할 것도 많고 배워야할 것도 많다”

정모 “‘오빠밴드’를 하면서 여유가 생겼다” 심플한 사운드를 내면서 공간을 채우기 어려웠을 것 같다. ‘가슴이 차가운 남자’에서 오케스트라를 썼지만 꼭 신디사이저 같은 사운드로 잡으면서 곡 전체에 막을 치는 듯한 느낌을 준 게 인상적이었다.
정모 : 그렇다. 그런 걸 속칭 몽롱사운드라고 하는데 (웃음) 처음에는 신디사이저로 하려다그렇게 하면 콜드 플레이 같은 앨범의 카피 같은 느낌이 들 것 같아서 오케스트라를 썼다. 앨범 녹음에서 가장 제작비가 많이 드는 부분이라 많이 녹음할 수 없어서 고생했다. (웃음) 이번 앨범 엔지니어가 오케스트라가 아니라 건반으로 생각하고 접근하면 편할 거라면서 신디사이저와 오케스트라의 중간점을 잘 찾아주셨다.

하지만 디테일을 파고들수록 대중에게 음악을 알리는 게 더 고민스러울 것 같다. 2인조 밴드라는 게 흔한 형태도 아니고.
정모 : 오히려 마음은 편하다. 의견을 하나로 모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드럼이나 베이스가 없어도 사운드를 채울 방법은 많고. 일본의 B`z도 2인조지만 기타와 보컬의 색깔이 튀어나오니까. 우리도 그런 식으로 가면 좋겠다. 우리 색깔이 아직 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둘 사이의 어떤 느낌은 있다. 내가 쓰는 곡은 제이 형의 목소리가 아니면 안 되는 것도 있고. 일단 제이 형의 목소리를 떠올리고 곡을 쓴다.

그만큼 길게 보고 음악을 할 텐데, 본인들이 생각하는 방향은 뭔가.
정모 : 일단은 되는대로 다 해보고 싶다. 앨범마다 장르가 달라질 수도 있고. 아직 20대 중반이라 할 것도 많고 배워야할 것도 많다. 10년이나 20년 뒤 내 모습을 생각하면 할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런 걸 생각하면 기쁘고 행복하다.
제이 : 나는 보컬이고, 내가 곡을 쓰는 게 아니라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음악들을 다양하게 해보고 싶다. 내 목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선 안에서 해보고 싶은 게 많다.

마지막 질문은 ‘라디오스타’처럼 해보겠다. (웃음) 트랙스에게 락이란.
정모 : 그냥이다. ‘오빠밴드’할 때 이 질문을 받았을 때는 내 전부라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쭉 했으니까.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정말 왜 락을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그냥 언젠가부터 하게 됐다.
제이 : 첫사랑. 내가 처음에 합주실에 들어가서 연주하는 소리를 듣자마자 반했으니까. 이번에도 그랬다. 수술하고 나서 한참 쉬면서 다 잊고 살았는데, 음반 만들면서 소리를 듣자마자 다시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첫사랑이다. 19살 때 합주실에 들어갔던 그 순간 때문에 여기까지 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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