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시각은 이성을 지배한다. 아무리 단단히 숙지하고 있는 사실이라 하더라도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뛰어넘기란 어려운 법이다. 그래서 윤시윤은 만날 때마다 흠칫 놀라게 하는 사람이다. 이십대의 정 중간을 살고 있는 청년이라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꾸벅 고개를 숙이는 그의 몸짓, 인사를 나누며 이내 웃어버리는 눈빛은 아무래도 고등학생 정준혁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바투 의자를 당겨 앉아도 수염자국이 보이지 않는 얼굴이라니! 게다가 인터뷰 중인 줄 모르고 불쑥 대기실로 들어와 “아까 내가 빌려 준 볼펜 다시 돌려줘”라며 야무지게 제 물건을 챙겨 나가는 해리의 카리스마에 압도당해 순순히 볼펜을 함께 찾아주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이 청년을 이라는 작품 밖으로 분리해 내는 일은 어려울 것만 같다.
그러나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윤시윤은 제 나이를 찾는다. 머쓱하게 인사만 덜렁 하고 마는 신인들과 달리 살뜰하게 안부를 챙기는 화술은 하루아침에 얻어지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좀 있다가 다시 슛 들어가야 해서 에너지를 좀 아끼려구요”라며 작은 목소리로 사분사분 이야기 하다가도 진심을 전해야 하는 중요한 대목에 이르자 저도 모르게 단어에 악센트가 주어지는 대화의 요령에도 어린 나이에는 쉽게 터득할 수 없는 자연스러움이 배어나온다. 마치 ‘인터뷰 잘 하는 법’을 배운 사람처럼 대부분의 대답에서 요점을 먼저 제시하는 두괄식의 말투 역시 어른스럽기 그지없다. 세경과의 멜로 라인에 대한 조금 짓궂은 질문에도 “실제 연애 감정을 느낄 때가 있다”며 아슬아슬할 정도로 솔직하게 대답을 하고, 그러면서도 “세경씨가 워낙 매력이 있다”며 다른 사람을 향한 칭찬으로 마무리를 한다. 숨기지 않고, 자만하지 않는 것은 거의 모든 대답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태도다.
그렇다고 해서 윤시윤과의 인터뷰가 지루하다거나 재미없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광고 촬영 경험에 대해서 “부모님이 정말 좋아하셨어요.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라고 말해 놓고서 능청스럽게 “그 입이 아직도 안내려 오고 계신다니까요”라고 한마디를 덧붙이는 그의 유머는 대화 자체를 즐겁게 만드는 힘을 가졌다. ‘용꼬리 용용’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자 쑥스러울 법도 한데 “아, 좀 더 큰 화제가 되길 바랐는데 너무 빨리 잊혀져버렸어요. 2002년 월드컵 이후로 최대 화제가 될 줄 알았거든요. 제가 길을 가고 있으면 사람들이 막 용꼬리 용용!하고 외치 주길 원했는데. 제가 더 열심히 할걸 그랬나봐요”라고 천연덕스럽게 너스레를 떤다. 그러면서도 역시나 이야기의 마무리는 다른 사람에 대한 감탄이다. “그 뒤에 나오는 ‘허벌나게’는 감독님이 아이디어를 내신 거예요. 카메라 세팅을 하고 있을 때 제가 애기들이랑 전라도 사투리로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그걸 마침 보시고 살려 주신 거죠.” 한바탕 수다를 떠는 것처럼 긴장과 방어 없는 인터뷰를 하고 자리를 뜨면서 윤시윤은 손을 모았다. “잘 써 주세요”라는 그의 부탁이 얄밉지 않은 것은 있는 그대로를 전해도 그는 이미 좋은 사람이라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소년의 얼굴을 한 배우는 많을지라도 “항상 배우는 자세로 살았으면 좋겠어요”라는 이유로 늘 소년으로 살고 싶다고 말 할 줄 아는 배우는 흔치 않다. 그리고 그런 말을 낯간지럽지 않게 진심을 담아서 전할 수 있는 목소리 또한 쉽게 만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 없었던 전혀 새로운 얼굴로 눈에 익는 것 보다는 마치 이 세상 어딘가에 있을 것 같은 사람을 만들어 내는 연기로 마음에 기억될 배우로 성장할 윤시윤에게 기대를 보낸다. 이런 어른은 쉽게 믿음을 배반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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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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