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주인공은 ‘동네 바보’다. 울릉도에서 나고 자란 일흔네 살의 이상호 씨, 모두들 그를 ‘상호 할아버지’라고 부른다. 상호 할아버지는 정신 연령이 예닐곱 살에 불과한 지적 장애인이다. 하지만 울릉도 사람들은 그를 장애인이 아니라 그저 반가운 이웃으로 여긴다. 가족이 없는 상호 할아버지에게 국밥을 먹여주고 손톱과 수염을 깎아주고 명절에 새 옷을 입혀 주는 것도 그들이다. 부둣가에서 짐을 날라주거나 오징어 말리는 일을 도와 하루 몇천 원씩을 손에 쥐는 할아버지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날마다 동네 쓰레기를 줍고 밥 먹을 때마다 정성 들여 기도를 한다. 매년 봄 열리는 군민 체육대회에서 받은 메달을 보물처럼 걸고 다니며 자랑하는 상호 할아버지는 수협 앞을 지날 때마다 “만 원만 넣으면”이라 읊조리며 저축 의욕을 보이기도 하고 “하이칼라 머리 해 갖고 장가 갈 꿈”도 가지고 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매일 도동항 부둣가에 나와 바다를 바라보는 상호 할아버지에게 과연 행복이란 무엇일까?
의 감동, 의 재미
MBC 보도국의 25년차 기자인 황석호 감독은 지난 해 2월 한 일간지의 단신 기사에서 상호 할아버지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지난 12월 방송된 MBC 특집 다큐 가 영화에 앞서 세상에 나왔다. 황 감독은 “어린 시절 어느 동네, 어느 교실에나 하나씩 있었던 ‘바보’들은 세상이 변하면서 어떻게 되었을까. 자신을 보호해 주던 ‘정’이 사라진 동네에 혼자 남은 그들 중 많은 수가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거나 어이없는 사고로 사망하곤 한다. 상호 할아버지가 일흔 네 살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본인의 생존 의지 뿐 아니라 울릉도 사람들의 정, 지역적 특성 덕분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실제로 영화 속 울릉도는 항공촬영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풍광과 피사체들을 섬세하게 들여다본 영상이 아니더라도 따뜻한 공간이다. 옛날 시골 운동회처럼 흥겨운 군민 체육대회가 열리고, 갈매기를 위해 오징어 내장을 던져 주는 부둣가 아주머니들은 상호 할아버지의 끼니도 함께 챙긴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울릉도 사람들이 상호 할아버지에게 비장애인 세계의 룰에 적응하도록 강요하는 대신 그가 자신만의 삶의 방식과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배려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은 상호 할아버지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한국에서 거의 사라지고 없는 가족적 공동체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영화 내내 더불어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진짜 행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떠올리게 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체육대회에서 백 미터 달리기 시범을 보인 뒤 “둘이 해도 일등, 셋이 해도 일등, 혼자 해도 일등”이라며 의기양양한 소감을 들려주고 콜라 한 캔을 사든 채 성묘를 가서는 “조심해서 잘 살아서 하늘나라 가야 되겠습니다”며 진지하게 다짐하는 상호 할아버지의 모습은 긴 인터뷰나 설명 없이도 천상병 시인의 시 ‘귀천’의 한 구절인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와 흡사한 감동을 준다. MBC 의 ‘어린 덕만’ 남지현의 천진하면서도 깔끔한 내레이션과 여백을 살린 대본도 좋다. 흔치 않게 서정적이고 완성도 높은 휴먼 다큐멘터리, 이 놓치기 아까운 영화는 이미 2월 25일 개봉했다.
글. 최지은 five@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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