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세상에서 엄마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엄마 하나뿐이지? 나 장가가도 엄마 아들 맞아. 내가 누구한테 사랑을 나눠준다 해도 강현수가 태어나서 오랫동안 사랑하고 사랑할 사람은 엄마 뿐이야.” 금쪽같은 아들 현수(정경호)가 무릎을 베고 속삭거리니 금자(송옥숙) 씨 마음이 대번에 봄눈 녹듯 녹아내리더군요. 노여움에 사무쳐 이 사람 저 사람 가슴에 대못을 쳐대던 양반이 그래도 자식의 말 한마디에는 수그러지십디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론 딱했습니다. 동상이몽이 따로 없어서요.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게 좋을 듯해 드리는 말씀인데요. 아드님의 말은 ‘내가 엄마라고 부를 사람은 엄마 뿐이다’, 더도 덜도 않고 딱 거기까지 만이라는 거 모르시겠어요? 엄마를 정인(이민정)이보다 더 사랑하고 아낀다는 얘기가 결코 아니라고요. 게다가 앞으로 아이를 낳으면 순서는 점점 밀려날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억울하다 해도 그게 내리사랑이라는 거고, 그게 바로 세상 이치인 걸요.

아들은 여자 좋아하기 시작하면 그저 남으로 여기세요

자식들, 특히 아들아이는 초등학교 때건 중학교 때건 처음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그 순간부터 그저 남으로 여기는 게 심간 편하겠더라고요. 엄마가 정성껏 차려준 따끈한 밥상보다는 여자 친구와 함께 덜덜 떨며 먹는 길거리 음식이 더 맛있는 법이고, 엄마가 사다준 백화점 옷보다는 여자 친구가 골라준 인터넷 쇼핑몰 옷이 더 마음에 들기 마련인 걸 어쩌겠어요. 큰 맘 먹고 사준 값나가는 옷은 내팽개쳐둔 채 출처를 모르겠는 허드레를 더 좋아라 걸치고 다니는 꼴을 보며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하고 분노하는 순간 드디어 불행이 시작되는 거겠죠. 반만년 역사 속에 이어져온 뿌리 깊은 고부갈등도 알고 보면 다 어머니들의 착각과 집착 때문이지 싶어요.

물론 정인이가 누구라도 선선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며느릿감이라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에요. 어쩜 그렇게 다 가지가지 갖췄을까요? 결혼식 당일에 파토가 나서 찢어진 드레스하며 마스카라 번진 얼굴로 우리 집에 들어섰던 여자를 내 며느리로 맞아들이라니, 이게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랍니까? 게다가 그 부모들은 뻔뻔하기 짝이 없는 철면피들이잖아요. 심지어 정인이 어머니 주희(허윤정)가 금자 씨 남편 상훈(천호진) 씨의 첫사랑이었다니 악연도 이 정도면 너무 과하지 않습니까? 그런 꺼림칙한 자리에 누가 고이고이 키운 잘난 아들을 내주고 싶겠어요. 저는 금자 씨 마음, 백 번 천 번 이해가 가고 남습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금자 씨가 속을 끓이며 그저 눈물만 짓고 있었다면 아마 다들 금자 씨를 애처로이 여겼지 싶어요. 그런데 섣불리 정인이에게나 정인이네 식구들에게나 모진 소리 줄기차게 해대시는 바람에 욕만 바가지로 듣게 되신 거잖아요. 정인이가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그 반면 금자 씨는 오던 마음도 떠나게 만드시던 걸요. 그런걸 보면 과연 정인이가 여우는 여웁니다. 그렇다고 손자 녀석들에게 올인하시면 안됩니다

어쨌든 정인이를 아끼시는 시아버님(최불암)의 병세가 안타까워 결국 결혼을 허락하게 되셨다지만 기왕 일이 이렇게 된 거 마음을 비우셔야죠 뭐. 솔직히 정인이 부모인들 딸을 그 댁 며느리로 보내고 싶겠습니까? 또 정인이라고 금자 씨에게 맺힌 마음이 없겠어요? 저 같으면 금자 씨가 이때껏 퍼부은 폭언 중 한 대목만 가지고도 평생 한스럽게 여기지 싶거든요. 그 숱한 구박들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줄 아는 정인이의 긍정적인 마인드, 그 한 가지가 백가지 흠을 다 덮고 남는다고 봐요. 세월이 흐르다보면 금자 씨가 시아버님의 병환을 두고 애통절통해하는 것처럼 두 사람도 혈연보다 더 깊고 끈끈한 사이가 되리라 믿습니다. 한때 철없는 시절을 보내긴 했지만 정인이가 순수하고 속 깊은 아이라는 거 지금은 누구보다 잘 아시잖아요.

그렇다고 아들에 대한 사랑을 손자에게 돌릴 생각일랑은 절대 마세요. 지난번 정인이가 할아버지께 이런 말씀을 드리더군요. 아이 대여섯쯤 낳아 어머니 혼을 빼놓을까 생각 중이라 나요. 정인이 말마따나 자식보다 더 예쁜 게 손자라고는 합니다만 손자 녀석들에게 넋 놓다 보면 한 십년 지나 또 다시 낙심을 하실 게 분명하니 그냥 죽이 되든지 밥이 되든지 지들끼리 알아서 살라 하세요. 그리고 이제부터라도 익숙하지는 않으시겠지만 금자 씨 자신을 위해 시간을 써보세요. 부모와 남편과 자식을 위해서가 아닌, 온전히 나를 위해 시간을 보내는 연습을 시작하세요.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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