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막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몇 가지 단서들은 한 사람을 가리킨다. 그가 잡히고 결국 범행 사실을 고백한다. 보통의 스릴러 장르라면 작품이 완결될 이 지점에서 살인 사건 용의자와 그의 협박 때문에 용의자의 증거를 은폐해야 하는 부검의의 대결이 시작되는 영화 (제작 시네마서비스, 더드림픽쳐스, 감독 김형준)의 언론시사회가 22일 오후 2시 왕십리 CGV에서 열렸다. 영화 속에서 스스로의 범행을 자백하는 환경운동가 이성호(류승범)는 이번 사건의 부검을 맡았던 부검의 강민호(설경구)에게 딸의 목숨을 미끼로 자신을 석방시켜 줄 것을 요구한다. 여기서 이성호의 범행 사실은 확실하게 전제된다.
때문에 이 스릴러가 던지는 질문은 살인의 주체가 누구인가가 아니라 왜 이런 일을 저지르는지에 대한 것으로 귀결된다. 바로 그 ‘왜’라는 질문을 파고들면서 이성호와 강민호 사이의 과거 악연이 드러나고, 영화의 화두라고 할 수 있는 용서의 문제가 제기된다. 과연 그들은 서로에게 어떤 용서를 구할 잘못을 저질렀고, 결국 서로를 용서할 수 있을 것인가. 제법 무거운 주제의식 때문에 뒷맛이 개운하지는 않은, 하지만 오랜 여운을 남기는 영화 는 내년 1월 7일, 한국영화 최초로 2010년에 개봉한다. 다음은 시사회 직후 진행된 김형준 감독과 주연배우 설경구, 류승범, 한혜진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무엇보다 설경구와 류승범의 연기대결로 관심을 모은 영화다. 둘이 대결하는 입장에서 서로에 대해 평가한다면.
설경구 : 역 자체가 물과 기름 같이 서로 섞일 수 없는 관계였다. 그러니 서로 자기 생각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았다. 너무 단절된 역할을 했다. 그래서 촬영 끝나고서 서로 소통이 잘 되는 역할을 해보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류승범 : 오늘 영화를 처음 봤다. 이런 자리에서 얘기하기에 손발이 오그라들지만 영화 보고서 설경구 선배에게 감사하다는 얘기를 하게 됐다. 대결이라고 하지만 서로 핑퐁을 하는 연기가 아니기 때문에 현장에서 고민, 아니 걱정이 많았다.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 걱정했는데 영화가 얘기해주는 거 같다. 강민호 캐릭터를 맡은 설경구 선배의 힘이 모든 걸 감싸지 않았나 생각한다. “촬영하면서 류승범과 설경구는 밥도 같이 안 먹더라”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해 제3자로서 관찰했을 때 어땠나.
한혜진 : 촬영 후반부로 갈수록 두 선배 사이의 말이 없어졌다. 식사도 같이 안 하게 되더라. 내 생각에는 서로의 친분이 역할 몰입이 방해가 될까봐 서로 배려하는 것 같았다.
두 남자 배우만큼이나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는데 영화에서 이 정도 역할은 처음인 입장에서 스스로의 연기에 대해 평가한다면?
한혜진 : 50점을 주고 싶다. 원래 스스로에게 인색한 편인데 오늘 뒤편에서 영화를 보다 보니 내 허점이 참 많이 보였다.
김형준 감독 : 연출하는 입장에서 봤을 때 민서영이라는 인물은 연기하기 어려운 역할이다. 두 남자의 장력 사이에서 극의 중요 실마리들을 찾고 이끄는 동시에 은사인 강민호의 행동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에 감정의 중간선을 지켜야 하는 인물이다. 그걸 잘 소화해줬다. 영화를 안 했다고 하는데 정말 몇 편씩 찍어본 사람처럼 순간 순간 몰입을 잘했다.
스토리를 보면 강민호와 이성호의 과거 악연에 엮인 다른 사람들도 있는데 유독 강민호에게만 가혹한 벌을 주는 것 같다.
김형준 감독 : 시점의 문제라고 본다. 과거에 벌어진 사건에 연관된 사람들에 대한 이성호의 복수는 십 몇 년 동안 꾸준히 이뤄졌다. 그 복수의 결말을 매듭지으려 하는 시점에서 그 마지막 대상이 강민호인 것이다. 만약 몇 부작짜리 작품이라면 그 과정을 하나하나 다 보여줄 수 있었겠지만.“는 스릴러의 무늬를 띈 드라마”
스릴러의 외피를 띄고 있지만 사건이 해결되는 후련함보다는 답답함이 남는다.
설경구 : 우리끼린 스릴러의 무늬를 띈 드라마라고 말한다. 만약 스릴러로서 봤다면 거리를 두고 굉장히 객관적으로 본 걸 거다. 기본적으로 우리 영화는 인물에 동화되어서 같이 따라가는 영화인 것 같다. 강민호의 동선을 따라가든, 이성호의 동선을 따라가든, 아니면 민서영에 동화되어 가든 재밌게 볼 수 있을 거 같다.
굉장히 무거운 영화인데 평소 코믹한 역할을 잘하는 배우로서 이 작품에 출연하며 목적한 바가 있나.
류승범 : 개인적으로는 어떤 작품이든 하나의 과정이기 때문에 여기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는 고민을 따로 하진 않는다. 오해를 피해 말하자면 목표 지점 없이 대강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나도 개인적으로 웃음을 좋아하고, 웃음을 주는 영화를 좋아하고, 내 연기를 보며 사람들이 웃는 걸 좋아한다. 하지만 그런 작품도 있는 반면 이런 작품도 있는 거니까. 내가 특별히 어떤 마음가짐이 있었다기보다 이런 영화를 하니 무거운 살인범의 모습이 나왔겠지.
시나리오 단계에서는 라는 제목이었던 걸로 안다. 어떻게 제목이 변경된 건가.
김형준 감독 : 초고 쓸 때 라는 타이틀로 시작한 건 사건의 실마리라는 의미도 있지만 단절의 단(斷했)의 의미도 담고 싶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고치는 과정에서 결국 마지막에 표현하고 싶은 것은 용서에 대한 이야기라서 제목을 지금과 같이 수정했다.
그렇다면 그렇게 드러내고 싶었던 용서의 의미란 무엇이라 생각하나.
김형준 감독 : 상대의 입장을 돌아보지 않으면 행할 수 없는 일인 거 같다. 시나리오를 쓸 때나 영화를 찍을 때도 강민호와 이성호의 입장을 동등하게 놓고 관객들이 그들의 입자에 공감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마지막 장면에서 강민호와 이성호의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을 하나하나 동등하게 놓았는데 그 둘의 마음을 관객들이 모두 다 봐야 용서라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고 여겼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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