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예쁘다. 집에 정수기를 설치하러 온 설치기사가 한 눈에 반해 비실비실한 몸에도 불구하고 참치 캔을 대신 따주려 하고, 대형 마트의 사은품 담당자는 그녀와의 하루 데이트를 위해 한 달 치 사은품을 모두 내줄 정도로 MBC 속 인나는 큰 눈과 앙 다문 입술이 조화를 이룬 예쁜 얼굴을 가졌다. 하지만 그녀가 정말 예쁘게 느껴질 때는 “폼 나고 돈도 많이 벌고 인기도 얻으니까” 가수가 되겠다는 철없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신의 꿈에 대해, 또 그 꿈을 공유하는 남자친구에 대해 이것저것 재지 않고 흔들림 없는 믿음의 눈빛을 보여줄 때다. 시트콤 바깥에서 역시 인나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신인 여배우 유인나가 예뻐 보이는 것도 그래서다.
가수가 꿈이었던 스물여덟 신인
“기다리는 것에 익숙하거든요.” 1982년생, 스물여덟, 신인으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 연기자가 되겠다며 혼자 이런저런 오디션에 도전하고 현재 소속사에서 1년 넘게 연습생 생활을 하던 시간 속에서 초조함을 느꼈으리라 짐작할 만하지만 그녀의 대답은 달랐다. 그렇다고 희망을 잠시 미뤄둔 채 기다림 자체에 익숙해진 관조의 목소리를 낸 것은 더더욱 아니다. “어차피 드라마 속에는 주인공의 동생, 친구, 이모, 엄마까지 다양한 연령층이 있잖아요. 연습생으로 지금보다 나이를 더 먹으면 주인공 엄마로 데뷔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비음이 살짝 섞인 명랑한 하이톤에 유독 큰 눈에는 눈물 아닌 장난기가 그렁그렁하다. 3살 어린 황정음과 친구로 나오는 모습이 어색하지 않은 건 동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속에 등장하는 기계음은 거의 자기가 녹음한다는 비밀과 함께 “귀하의 통장 잔액은 이백팔십삼 원입니다”라는 목소리를 직접 들려주며 키득거릴 때, 그녀는 나이와 상관없이 시트콤의 그녀처럼 마냥 유쾌하고 귀엽다.
하지만 그 명랑함이 아무리 빛난다고 해도 이제 막 시작하는 배우를 지금 맡고 있는 캐릭터 안에 가둬놓고 이해하는 건 게으른 일일지 모른다. 어릴 때 민해경과 김완선을 보며 한 번의 흔들림 없이 가수의 꿈을 키우다가 “인생 최대의 슬럼프인” 20대 초반에 가수에 대한 흥미를 잃고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에 대해, 그 시기에 아무런 반대 없이 무조건적으로 지지해주던 부모님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감수성이 심할 정도로 풍부한 편이에요. 웃기도 정말 잘 웃고, 오늘 누가 툭 건드리면 울겠구나 싶은 날도 있어요.” 구체적인 예를 들기 위해 빅뱅 콘서트에 가서 괜히 짠해서 펑펑 울었던 경험을 비롯해 이런저런 기억을 꺼내들다가 를 보고 나면 이 세상이 다 없어질 것 같아 무서웠던 기억에 표정이 굳어질 때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 이것저것 다양한 배역에 도전하고 싶다”는 말이 허언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다. 한 바퀴를 돌아 그 모습이 다시 시트콤 속 인나와 오버랩되는 건, 하고 싶다는 바람과 할 수 있다는 믿음 사이에 아무런 간극이 없는 눈빛을 그녀가 천진할 정도로 흔들림 없이 드러내기 때문이다.
대책 없는 긍정? 제대로 꿈꿀 줄 아는 것!
오디션에 붙은 걸 안 날, 모든 약속을 취소하고 집에서 울고 웃으며 인나 캐릭터의 취미와 교우 관계, 좋아하는 숫자까지 혼자 종이에 적어가며 상상할 정도로 “항상 너무 멀리까지 생각하는” 그녀는 벌써 같이 출연하는 이순재 선생님처럼 노년에도 꾸준히 연기하는 자신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십대 후반치고는 너무 대책 없이 긍정적이라고? 하지만 그녀는 그 긍정의 힘으로 동기 대부분이 포기하던 연습생 과정을 견디고 지금 당신 앞에 이름과 얼굴을 드러냈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는 인디언 같은 기다림과 함께. 제대로 꿈을 꾼다는 건 이런 거다.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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