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와르 찍기 좋은 날씨, 아니 그냥 느와르 같은 날씨였다. 빗줄기는 내린다기보다 거리 곳곳의 빈 공간을 촘촘히 메웠고, 젖은 콘크리트와 낮게 깔린 먹구름 사이에선 공기조차 회색빛이었다. KBS 의 야외 촬영이 진행되던 일요일의 광화문은 적어도 긴박한 총격 신을 찍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적당한 날씨였다. 그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버림받은 영웅 김현준은 또 다시 홀로 외로운 싸움을 펼쳤을 것이다. 그렇다, 이것은 가정법이다. 차도부터 인도까지 광화문 일대를 통제한 현장에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도에 줄줄이 늘어서 핀, 아이리스 아닌 형형색색의 우산들뿐이었다.

그래서 “예식장 오신 분들 아니면 계단 밑으로 내려가세요!”라는 외침과 함께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경비요원에게 통제 받은 사람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닌 구경 나온 시민들이었다. 광화문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촬영을 진행한다는 사실은 며칠 전부터 포털 연예 뉴스를 통해 알려졌고, 평소에도 붐비던 종로 거리는 더욱 빽빽했다. 아니, 거리의 가운데 즈음은 한가했다. 사람들은 더 가까이 보기 위해 인도와 차도의 경계지점에 늘어섰고, 더 높이 보기 위해 건물 근처의 계단에 올라섰다. 워낙에 통제 라인부터 촬영 장소까지의 거리가 멀기도 멀어 누가 누군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지만 겹겹이 짜인 우산의 스크럼을 뚫기란 더욱 어려웠다. 게다가 한 쪽 차선을 막아 평소보다 더욱 느려진 버스들이 시야를 가릴 때마다 곳곳에서 “아!” 하는 탄성이 흘러나왔다. “짜증나!”라고 외치는 교복 입은 학생들도 있었지만 사실 차 안에 있는 사람들이야 말로 평소보다 막히는 도로를 보며 짜증을 낼만 했다. 그래서 이 날의 광화문은 전혀 다른 두 세계로 나뉘었다. 드라마틱한 의 서울과 지난하기 그지없는 체증의 서울로. 그저 지하보도 셔터에 붙은 ‘드라마 촬영 관계로 시민들께 불편을 드려 죄송하다’는 안내문이 한 세계의 희생으로 한 세계가 가능해진다는 것을 일깨워줬지만, 사과 따윈 믿지 않아.



글. 위근우 eight@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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