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의 도시, 그곳에 6개의 사랑이야기가 있다. 브루클린, 리우데자네이루, 도쿄, 베오그라드, 마르세유 그리고 룩셈부르크. 제 5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이하 JIMFF)에서 선보이는 영화 는 서로 멀고도 생경한 도시에서 벌어지는 ‘보편적인 사랑’의 순간을 응시한다. 오스트리아 출신 감독 토마스 보쉬츠의 장편 데뷔작인 는 소울메이트 같은 밴드 ‘네이키드 런치’(Naked Lunch)와의 공동작업으로 만들어진 2008년 산 음악영화다.

올해 제천을 찾은 보쉬츠 감독과 네이키드 런치의 보컬과 기타의 올리버 웰터, 건반의 스테판 다이젠베르거를 보고 있으니 마치 클라이브 오웬과 제레미 아이언스, 데이비드 쉼머를 한자리에 데려다 놓은 것 같다. 이처럼 확연히 다른 매력을 지닌 세 남자가 만들어내는 최고의 팀워크는, 색감도 질감도 형태도 결과도 다른 여섯 개의 러브스토리, 의 기묘한 하모니와 닮았다. 사랑과 영화와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우주적으로 눈을 반짝이는 이들과의 인터뷰는 겨우 1시간 남짓. 그러나 어쩐지 오래 알고 지낸 친구 같은 기분이 든다. 교감의 깊이가 시간의 물리성을 훌쩍 뛰어 남는 이 진귀한 경험은 16일 저녁 이들의 라이브 연주와 함께 를 감상하는 ‘시네마 콘서트’를 통해 제천을 찾는 모든 관객들에게도 허락될 예정이다. 그곳에서 우리는 ‘보편적인 사랑 노래’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비로소 전달된 혹은 미처 전하지 못한 그 노래를.

개막식부터 올해 JIMFF와 함께 하고 있다.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나?
스테판 : 한국도 제천도 처음이지만 모두 친절하고 특히 사람들이 유머감각이 뛰어난 것 같다. 사실 어제 밤 제천 시장님과 폭탄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아직까지 숙취에 시달리고 있다 (웃음) 음악밴드 네이키드 런치와 감독 토마스 보쉬츠의 인연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나?
올리버 :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난 나와 토마스는 13, 14살? 학교 다닐 때부터 친구였다. 졸업 후에 토마스는 감독이 되기 위해 로마의 영화학교로 떠났고, 나는 뮤지션이 되었다. 이후 내가 밴드, 네이키드 런치를 만들어 유럽에서 꽤나 이름을 알려 갈 때, 토마스 역시 영화 쪽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때 우리 밴드는 뮤직비디오가 필요했고, 토마스는 자기의 첫 번째 단편영화에 어울릴 음악을 찾고 있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네이키드 런치와 토마스의 공동작업이 시작되었다. 뻔하디 뻔한 뮤직비디오에 질려있었던 상태였을 때 토마스는 그에 대한 근사한 해답을 가진 친구였던 거다.

“는 뮤지컬 영화를 싫어하는 이들을 위한 뮤지컬 영화”

‘네이키드 런치’ (Naked Lunch)라는 밴드의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데이비드 크로넨버그의 영화 에서 나온 걸까? 물론 당신들의 음악은 기괴한 크로넨버그의 영화와는 달리 감미롭지만.
올리버 : 크로넨버그 영화의 원전이 된 윌리엄 S. 버로우즈의 1959작 소설 에서 따왔다. 한동안 5, 60년대 미국 문학에 깊이 심취해 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의 작품들에 큰 영향을 받았었다. 토마스가 연출한 네이키드 런치의 ‘Military of the Heart’나 ‘Stay’ 같은 뮤직 비디오를 보면 뮤지션과의 특별한 교감 혹은 이해가 보인다. 특히 ‘God’ 은 오직 서로에게만 의지해 설산을 오르는 산악대원들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기분이 들더라.
올리버 : 그건 연출 없는 100% 진짜 상황이다. (웃음) 나하고 헤르빅(네이키드 런치의 베이스기타리스트)이 산을 오르면서 일어난 상황을 토마스가 그대로 담아낸 거다. 그 이후로도 우리가 협업 할 기회들이 계속 다가왔다.
토마스 : 한번은 오스트리아의 한 음악페스티벌에서 네이키드 런치에게 그냥 연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특별한 공연을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했고, 그때 우리는 영화와 음악이 함께하는 필름콘서트를 생각해냈다. 그렇게 함께 만든 작품이 50분짜리 중편영화 이다. 매우 소박하고 단순한 영화였다. 어두운 도시를 가로지르며 트랙킹하는 카메라가 길을 걷는 사람들의 다양한 표정들을 담는 거다. 퇴근하고 집으로 가는 피곤한 얼굴의 직장인들, 길에서 싸우는 연인들 같은.
스테판 : 소제목이 ‘9개의 이야기가 있는 9개의 노래’ 였다. 9명의 사람들이 각자 5분 정도로 다른 음악 속에 등장한다, 그 사람들의 표정을 카메라가 바짝 따라가 클로즈업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의 아이디어가 시작된 건가?
토마스 : 을 만들고 난 후 관객들도 우리들도 이렇게 음악과 영화가 함께 하는 작업을 매우 즐긴다는 걸 알게 되었다. 지난 몇 년간 올리버와 아주 현대적인 뮤지컬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곤 했었다. 기존의 뮤지컬 영화와는 정말 다른 형태를 가진 작품을 만들어보자고.
스테판 : 내가 기억하는 이 영화에 대한 최고의 정의는 이런 거였다. ‘뮤지컬 영화를 싫어하는 이들을 위한 뮤지컬 영화’. (웃음)

그나저나 어떻게 감히(웃음) 그렇게 많은 국가에 그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게다가 대사도 별로 없이 영화로 만들겠다는 용감한 기획을 시작하게 되었나?
토마스 : 물론 처음엔 모두들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정도 적은 예산에 6개 국가 로케이션으로 영화를 찍겠다니! 하지만 우리는 이 영화를 너무나 만들고 싶었고 결국 촬영일수를 타이트하게 줄이고, 현장에서 대본을 고치기도 하고, 우리에게 있는 최대한의 에너지를 끌어내서 결국엔 완성해 냈다.“룩셈부르크부터 도쿄까지 지인들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완성된 영화”

촬영은 얼마나 걸렸나?
토마스 : 각 도시마다 4일을 준비하고 4일을 촬영했다, 8 곱하기 6이니까, 48일쯤 되겠네.

배우 캐스팅도 꽤나 큰 일이었을 것 같다. 거의 처음 연기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고.
토마스 : 직업배우와 일반인들이 반반쯤 섞여 있다. 조건은 우리가 그곳 사정에 어두운 대신 배우들은 진짜 그 지역출신을 쓴다는 거였다. 마르세유에서 주인공이 된 배우는 힙합가수인데 자기 뮤직비디오를 제외하면 연기가 처음이었다. 대신 그곳 빈민가 출신이라서 현지 상황을 잘 알았고 그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심지어 베오그라드 편에 배우로 등장하는 스테판 아르세니예빅은 같은 영화를 만든 세르비아의 유명감독이지 않나.
토마스 : 그렇다. 하하. 그가 베를린영화제에 자기 영화를 들고 왔을 때, 우리영화는 프리프로덕션 단계였는데 우연히 저녁자리에서 ”베오그라드 가서 촬영을 할 건데 배우를 찾고 있어요”라고 했더니 “내가 하면 안 되나요?”라고 하더라. 그렇게 출연하게 된 거다.
올리버 : 가끔은 이런 식의 게릴라 같은 작업은 기대치도 않은 상황을 만들어 준다. 그게 재미기도 하고. (웃음)
토마스 : 우연과 인연의 연속이었다. 룩셈부르크부터 도쿄까지 지인들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완성된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다른 나라에서 촬영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딪히기 마련이다. 특별한 사고 같은 건 없었나?
올리버 :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촬영 할 때 배경이 되었던 ‘파벨라’(FAVELA)라는 지역은 일종의 빈민들이 사는 게토인데 엄청 위험한 곳이었다. 우리 운전을 도와주던 여든 살 넘은 노인은 “혹시 작은 총소리라도 나면 일단 모든 촬영을 접고 카메라 챙겨서 도망가야 해!”라고 말할 정도였다.

고작 4일 촬영 하면서 잠시라도 촬영을 접는다는 건 엄청난 결정이었을 텐데. 정말 그렇게 했나? 그나저나 정말 그렇게 총알이 날아다니던가?
토마스 : 당연히! 그 땅의 룰을 아는 사람들이니까 살려면 그들 말을 들어야 한다. 우리야 유럽적인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이니까 그런 위협에 대해 구체적으로 잘 모르지만 그곳 스태프들은 정말 벌벌 떨 정도로 두려워하더라.
올리버 : 스태프 중 한명은 또 이렇게 말했다. ‘무조건 오른쪽으로 튀어가요, 왼쪽으로 가면 바로 죽어요”라고. 한편으로 웃기고 한편으로 슬픈 이야기다.“사랑에 대한 인상만이 남기를 바라면서 만들었다”

당신들 모두 왼편으로 뛰어가서 지금 여기서 인터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다행이고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그렇게 완성된 영화 는 이미 6개의 이야기 만으로도 꽤나 복잡한데 그것조차 순차적으로 나오지도 않고 개별 이야기의 시간순서까지 깨버린다. 그런데 이런 뒤흔들어버리는 편집이 오히려 ‘지역과 스토리’를 증발시키고, 사랑에 대한 공통의 정서만을 침전물처럼 남기더라. 상당히 기이한 경험이었다
토마스 : 그렇게 느꼈다니 고맙다. 그게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으니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각기 다른 환경 속에 살아가고, 한 사람의 인생에도 희로애락의 서로 다른 순간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사랑을 생각 할 때는 공통의 무엇이 있다고 생각했고, 결국 사랑에 대한 인상만이 남기를 바라면서 만들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사랑의 달콤함 보다는 외로움과 쓸쓸함을 더 오래 응시한다. 영화 제목을 ‘범 우주적 외로움’으로 불러도 될 정도로. (웃음)
올리버 : 사랑은 순간이다. 그리고 그 순간은 근사하다. 잡아 놓고 싶지만 그럴 순 없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그 사랑의 순간을 찾아다니는 사람들 일 수밖에 없는 거다.

앞으로도 토마스와 네이키드 런치는 계속적으로 이런 작업들을 이어 나가게 될까?
올리버 : 당연하다. 갑자기 라스 폰 트리에 같은 감독이 뮤직비디오 찍어 준다고 하면 거절할 생각은 없지만. (웃음)

토마스는 이들과의 작업이 아닌 극영화 계획이 있나?
토마스 : 스릴러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현재 시나리오를 쓰는 중이다. 물론 내 스타일 대로 그렇게 대사가 많은 스릴러는 아니겠지만.

도쿄 편의 주인공인 사토시가 한 눈에 반한 여자를 떠올리며 “인생이란 꽤나 아름다운 것 같아”라고 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 각자 인생에서 그런 아름다운 순간을 말해 줄 수 있을까?
스테판 : 여전히 찾아다니는 중 이다. (웃음)
올리버 : 내 딸이 태어났을 때. 정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토마스는 아마도 맛있는 피자를 먹는 순간? (웃음)
토마스 : 그것도 맞는 말이다. 아침에 맛있는 커피를 마실 때. 제천의 호텔 발코니에서 호수를 보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을 때. 그런 사소한 순간의 행복을 정말 사랑한다.

글. 제천=백은하 (one@10asia.co.kr)
사진. 제천=이진혁 (eleven@10asia.co.kr)
편집. 제천=이지혜 (seven@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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