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돈된 책상마다 컴퓨터가 놓여 있고, 모니터 주변에는 인주시청 일정이 메모된 포스트잇이 붙어 있다. 방금 누군가 일어난 듯 노트가 펼쳐진 자리마다 인주시의 조례와 규칙에 관한 서류들이 쌓여있다. 게다가 책장에 꽂힌 서류철이며, 게시판에 붙어 있는 행사 알림표까지 무엇 하나 인주시에 관련한 것이 아닌 게 없다. SBS 드라마 의 배경인 ‘인주’가 가상의 도시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보다. 그곳은 일산 탄현 스튜디오 안에 버젓이 존재하고 있는 생생한 도시였던 것이다.그러나 인주시의 마스코트 신미래는 오늘 근무 복장이 아니다. 무슨 사연인지 퇴직금을 정산하러 총무과에 들른 그녀는 “천사백이십칠만…” 얼마라는 금액을 듣고 입이 쩍 벌어진다. 카메라 위치를 바꾸는 동안 촬영 스태프가 “누가 앞 머리좀 만져줘요”하며 총무과의 이주철씨를 가리키자 오지랖 넓은 신미래, 아니 친절한 김선아가 직접 손을 뻗어 그의 헤어스타일을 다듬어 준다. 당연히 촬영장은 순식간에 “열애설!”이라는 다급한 외침부터 “이주철, 부셔버릴 거야”라는 질투 섞인 야유까지 한순간 시끌벅적해 진다. 잠시 후, 조명 스태프가 감독에게 “노출은 적당하죠?”하고 확인하는 질문을 던지자 이번에는 보다 낮은 야유가 스튜디오에 가득해진다. 시선의 가운데에는 때를 놓치지 않고 셔츠 자락을 젖힌 김선아가 “더 노출 할까요?”하고 천연덕스러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잠시도 쉬지 않고 동료들과 웃음을 나누기 위해 궁리하는 여배우라니, 진정한 ‘밴댕이 아가씨’의 자격을 갖춘 그녀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조직 친화적인 그녀가 대체 왜 퇴사를 결심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면, 그녀의 블로그를 살짝 참조 하자. 미래의 일기가 업데이트 중이다.오늘 현장의 한마디 : “이정도면 됩니까? 이정도요.”웃음을 자아내는 작명 센스는 의 숨은 재미. ‘버킹검’ 햄버거와 ‘맥시코와나’ 치킨이 어색하지 않은 상호명으로 녹아드는 것도 조국, 민주화, 고부실, 지방세, 문설주 등등의 재치 넘치는 인물들의 네이밍과 조화를 이루었기에 가능한 것이리라. 그 중에서도 이형철이 연기하는 인주시청 문화 관광국 국장 이정도는 정도(正道)를 걸으면서 정도(程度)를 지키는 그의 성격과 빈틈없이 맞아 떨어지는 이름이다. 앵글을 살펴보던 신우철 감독이 “정도, 조금만 옆으로 몸을 돌려봐요”하고 주문하자 이형철이 냉큼 몸을 움직이더니 되묻는다. “감독님, 이정도면 됩니까?” 그러자 메아리처럼 스튜디오 안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이정도요.” “이정도, 딱 이정도!” “그정도나 저정도는 안되지. 암.” 딱 이정도로, 이형철은 이정도가 되어 있다. 유상무상무나 장동민동민이 와도 당해 낼 수 없을 정도다.글. 윤희성 (nine@10asia.co.kr)
사진. 채기원 (ten@10asia.co.kr)
편집. 장경진 (three@10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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