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의 끝자락에 눈이 부신 소녀,
미소가 근사한 멋쟁이 중년,
한없는 수줍음과 심술이 차라리 매력적인 돌싱!
아무도 상상 못한 우리의 조합
멋지고, 재밌고, 아쉽고, 인생의 또 다른 맛이다
초콜릿 박스를 여는 것, 어떤 맛일까 기대하는…….
오늘은 제대로다
야! 소녀시대 윤아를 봤다
와! 이영하 선배랑 말을 놨다
으아! 김국진이 당황했다, 나 땜에

방송인 최화정은 SBS ‘절친하우스’에서 소녀시대의 윤아, 연기자 이영하, 개그맨 김국진과 하루를 보낸 후 이런 시를 남겼다. 출연자 사이에 이처럼 덕담을 주고받으며 프로그램을 마무리하는 콘셉트는 흔하디흔하지만 최화정이 이 시를 읊는 순간엔 마치 휴먼다큐의 한 장면이라도 펼쳐진 양 가슴이 찡해 왔다. 급기야 누군가가 나와 만나고 돌아가는 길, 이런 다정한 글 한 줄을 불현듯 보내준다면 ‘평생 그 사람의 편이 될 텐데’ 하는 생각까지 들었으니 알만하지 않은가.

절친노트를 살려낸 최화정다분히 장난스런 글이건만 뭘 그리 수선이냐며 의아해 할 수도 있겠으나 직접 방송을 통해 최화정의 따뜻한 배려를 느낀 시청자라면, 그리고 함께 했던 출연진과 스태프들이라면 충분히 공감을 하고 남으리라. 한때 말실수와 사건 사고로 빈축을 사기도 했던 그녀지만 그간의 많은 일들이 세상을 끌어 담는 넓은 그릇으로 담금질 한 게 분명하다. 혹자는 ‘절친하우스’를 두고 김국진의 사회적응을 위한 갱생 프로그램이냐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그러나 어지간한 배짱을 지니지 않고서야 세대가 다르고, 직업이 다른 이들과 한데 묶여 하루 온종일을 함께 보내라 한다면 누군들 반색을 하겠나. 나도 어릴 적에 손님이 오셨다 가신 날이면 어김없이 어머니께 한 소리를 듣곤 했다. 싹싹하지 못하고 데면데면하게 군다는 이유에서였지만 나로서는 이렇게 억울할 데가 있나 싶었다. 시건방져서가 아니라 단지 겸연쩍어서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것뿐이거늘 왜 딸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하고.

하지만 최화정과 하루를 보낸 뒤 표정부터 사뭇 밝아진 김국진을 보면 우리 어머니는 대책 없이 나무라기만 할 게 아니라 최화정 같은 롤모델을 소개해주었어야 옳다. 만약 내 가까이에 그 같은 친화력과 배려의 기술을 지닌 이가 있었다면 교과서 삼아 지금의 나보다는 훨씬 덜 뻣뻣한 인물로 성장할 수 있었을 테니까. 처음 최화정이 ‘절친하우스’에 도착했을 땐 분명 손님 입장이었다. 그러나 김국진이 쭈뼛대며 호스트역할을 제대로 못해 낸다는 걸 눈치 채자 부지불식간에 김국진을 대신 해 분위기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대선배들 앞이라 살짝 주눅이 든 소녀시대의 윤아에게는 다소 호들갑스럽게 열혈 팬을 자처하며 포옹을 청해 긴장을 풀어줬고, 연기자 이영하에게는 오래 전 함께 영화 찍던 얘길 꺼내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런가하면 ‘돌싱’이 아킬레스건인 김국진에게는 수시로 “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관심 있는데요”라는 식의 농담을 건네 어색함을 줄이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끌어 냈다.

여러분, 한 수 가르쳐 주십시오!특히 적절한 칭찬과 격려로 다른 사람을 돋보이게 하면서 동시에 본인도 함께 돋보이는 배려의 기술은 가히 금메달감이었다. 예를 들자면 개인 인터뷰 때, 최근 오나가나 소심하다 못해 사회성 결여라는 험한 소리까지 듣는 김국진을 두고 “남자다움도 엿보였고 의외로 섹시한 점도 있더라”라고 했는데 그 어조가 진지하고 신뢰가 가서 나도 어느새 ‘실제로는 김국진이 꽤 남자다운가 보네?’ 했으니 말이다. 오죽하면 폭로와, 남 깔아뭉개기의 달인인 MC 김구라조차 그녀에게 압도되어 방송 내내 필살기인 독설을 한 마디도 날리지 못했겠나.

김구라 얘기가 나오니 그가 MC인 또 다른 프로그램 MBC ‘명랑회고전 김장훈편’에 출연한 음악인 유희열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유희열은 무명시절 함께 음악을 하던 김장훈에게 괴롭힘을 당한 갖가지 일화를 털어놓아 좌중을 웃겼지만 뒤를 이어 김장훈의 순수한 열정과 당당한 남자다움도 피력하길 잊지 않는 균형감을 발휘했다. 하기는 언젠가 신인 가수 윤하가 ‘토이가 누군지 알지 못했다’라는 발언으로 토이 팬들의 분노를 샀을 때도 어린 윤하를 보호하면서 팬들과 자신의 자존심도 살리는 유희열의 글 한 편이 극으로 치닫던 상황을 말끔히 종료시키지 않았나. 부디 난세의 정화를 위해서라도 최근 복귀한 개그맨 최양락의 뒤를 이어 유희열과 최화정 같은 배려와 화해의 기술을 지닌 이들이 TV에 자주 나와 줬으면 한다. 팬들은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옛말을 내세워 만류할지도 모르겠지만 시청자에겐 한 수 배울 수 있는 교과서 같은 이들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글. 정석희 (칼럼니스트)
편집. 이지혜 (seven@10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