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작가]
‘보물섬’이라는 어린이 만화잡지가 있었다. 만화광인 나에게는 이름 그대로 보물섬이었다. 그 중에서도 으뜸으로 찬란하던 보물 만화가 있었으니 이희재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였다. J.M. 데 바스콘셀로스의 원작을 진즉에 읽었음에도 제제에게 홀리듯 빠져들었다.동네에서 부모님이 만화방을 하던 시절이었다. ‘보물섬’ 신간이 들어오는 날에는 살그머니 가져가서 읽다가, 어린이 손님이 오면 쌩하니 가져다 놓기를 반복했다. 옷장의 철 지난 옷처럼 손이 덜 가는 과월호를 정리할 때면 집으로 날름 가져왔다. 그리고 수술을 집도하듯 ‘보물섬’에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한 장씩 조심조심 끄집어냈다. 그렇게 모은 한 묶음의 만화는 뒷날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기 전까지 끔찍이도 아꼈다.
너무 일찍 철이 든 아이를 떠올리면, 늘 제제였다. 이름만 불러도 어느새 눈물이 차오르게 하는. 그런데 스크린에서 일찍 철이 든 소년을 또 마주하게 되었다. 나의 제제처럼 초롱하고 설운 눈망울을 가진 소년 ‘자인’을.
레바논 베이루트의 빈민촌. 자인(자인 알 라피아)의 집은 뒤로 줄줄이 동생들이 있는 대가족이다. 자인은 거짓말을 둘러대며 마약성 진통제인 트라마돌을 사오고, 거리에서는 동생 사하르(하이타 아이잠)와 함께 주스를 팔고, 동네 슈퍼마켓에서 허드렛일부터 가스 배달까지 한다. 학교 통학 차량을 흘끔거리지만 요원한 대상이다. 슈퍼마켓 주인 아사드는 이쁜이 사하르에게 주라며 라면과 감초사탕을 준다. 자인은 그의 음험한 속내도, 어린 사하르를 성장(盛粧)하는 부모의 소행도 지긋하다. 자인이 막으려고 했지만 결국 사하르는 아빠의 오토바이에 실려 아사드에게 반강제로 보내진다.자인은 집을 떠나서 홀로 버스에 오른다. 옆자리에 앉은 ‘바퀴맨’ 할아버지를 따라서 유원지에서 내리지만 일거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를 딱하게 여긴 직원 라힐(요르다노스 시프로우)의 도움으로 자인은 허기를 채운다. 에티오피아에서 온 불법체류자 라힐은 매 순간이 살얼음이다. 위조한 체류증의 사진을 보며 얼굴에 없는 점을 그려야 하고, 화장실에 숨겨놓은 요나스(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에게 수유를 하고, 퇴근길에는 손수레 장바구니에 요나스를 태운다. 의지처가 없는 그녀의 삶에 불쑥 자인이 끼어들고, 셋은 한 가족처럼 지내게 된다.
라힐은 기한이 임박한 체류증을 대신할 새 체류증이 필요해서 알 하다드 시장의 아스프로를 찾아간다. 아스프로는 돈이 턱없이 모자란 그녀에게 대신 요나스를 넘기라고 한다. 라힐은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내 애는 내가 키워요. 내가 먹이고 돌볼 거에요. 아스프로는 케첩병에도 제조사와 유통기한이 있다며, 네 아이는 유령 같은 존재라고 힐난한다. 그런데 체류증을 살 돈을 구하러 다니던 라힐이 경찰에 붙잡히고 만다. 이 사실을 모르는 자인과 요나스의 기다림이 시작된다. 자인은 끝끝내 요나스를 책임지려고 하지만 현실은 혹독하다. 자인은 아스프로의 감언을 믿어 보며 요나스를 내어준다.
부모의 집으로 돌아온 자인은 동생 사하르가 임신을 했다가 죽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칼을 빼들고 아사드를 향해 달려간다. 검거된 자인은 출생을 증명할 기록이 없기에 유치가 다 빠진 것을 기준으로 열둘 혹은 열셋, 즉 어림짐작의 나이만 가능하다. 아사드를 찌른 죄로 5년형을 선고받고 소년 교도소에 수감 중인 자인은 부모를 고소하겠다며 원고의 입장으로 법정에 선다. 판사가 부모를 고소하는 이유를 묻자 대답한다. 저를 낳아줘서요. 그리고 간절하게 청한다. 아이를 그만 낳게 해주세요.지난 24일 개봉한 ‘가버나움’의 나딘 라바키 감독은 거리에서 직접 캐스팅을 했다. 자인 역의 자인 알 라피아는 시장에서 배달 일을 하던 난민 소년이었고, 라힐 역의 요르다노스 시프로우와 요나스 역의 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 또한 불법 체류 중이었다. 일부러 연기하지 않아도 그들의 눈빛에서는 삶이 눅진하게 배어나온다.
자인에게 사하르는 유일한 벗이었다. 그래서 더 각별한 동생이었다. 자인은 어린 동생을 향한 남자들의 음험한 시선이나 말을 대차게 물리치는 오빠였다. 엄마가 집세를 빌미로 동생을 아사드에게 보낼까봐 첫 생리를 한 동생의 속옷을 빨고, 자신의 옷을 말아서 생리대로 내밀며 뒤처리를 하는 등 속 깊은 오빠였다. 비닐봉지에 동생의 옷가지며 슈퍼마켓에서 슬쩍한 생필품을 담고, 동생을 무릎에 앉히는 조건으로 버스의 1인 요금까지 계획에 넣을 만큼 총명한 오빠였다.
자인에게 요나스는 라힐의 집에서 지내는, 즉 밥값을 대신할 존재였다. 시간 맞춰서 젖병을 물려주고, 놀아 주고, 어르고, 재우는 일과가 반복되었다. 그런데 점점 요나스가 각별해진다. 거울을 이용해서 옆집에서 틀어놓은 TV 만화를 함께 본다. 소리까지 훔칠 수 없으니 더빙은 자인의 몫이다. 자인은 요나스의 웃음이 좋다. 라힐의 부재로 먹을 것이 떨어지자, 자인은 요나스에게 설탕을 뿌린 얼음을 먹이기도 하고, 빼앗은 보드에 올린 큰 냄비에 요나스를 태우고는 길을 나선다.‘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제제에게는 집에는 글로리아 누나가, 학교에는 담임 선생님이, 그리고 그 누구보다 든든한 뽀르뚜가가 있었다. 적어도 손을 내미는 어른이 있었다. 자인에게도 라힐이 손을 내밀었지만, 라힐 역시 허락 받지 못한 타국에서는 아이처럼 누군가의 손길이, 도움이 필요했다. 너무 일찍 철이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인은 삶이 개똥 같고, 지옥 같다고 했다. 엄마의 말은 칼처럼 심장을 찌른다고도. 세상의 온기를 누리며 커야 할 나이에 서늘한 냉기가 먼저 달라붙는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들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자인은 끝까지 사하르와 요나스를 책임지려고 했다. 같이하려고 했다. 그래서 손을 놓아야 하는 순간에는 깊은 슬픔으로 눈두덩이 먼저 붉어졌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가버나움’은 혼돈과 기적을 뜻하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다. 나딘 라바키는 “모든 혼돈의 안개 속에서 작은 기적들이 일어난다”고 했다. 엔딩 크레딧에 담겨진, 영화에 출연했던 이들에게 일어난 작은 기적들에 감사했다. 영화를 본 모든 사람들도 아마 한마음일 것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마주할 수 있던 자인의 맑은 웃음에서 한 줌 온기를 느꼈다. 어쩌면 너무 일찍 철이 든 소년에게는 더더욱 간절했을 온기를.
나의 자인. 제제처럼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그렁해진다.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영화 ‘가버나움’ 스틸컷
*이 글에는 ‘가버나움’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보물섬’이라는 어린이 만화잡지가 있었다. 만화광인 나에게는 이름 그대로 보물섬이었다. 그 중에서도 으뜸으로 찬란하던 보물 만화가 있었으니 이희재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였다. J.M. 데 바스콘셀로스의 원작을 진즉에 읽었음에도 제제에게 홀리듯 빠져들었다.동네에서 부모님이 만화방을 하던 시절이었다. ‘보물섬’ 신간이 들어오는 날에는 살그머니 가져가서 읽다가, 어린이 손님이 오면 쌩하니 가져다 놓기를 반복했다. 옷장의 철 지난 옷처럼 손이 덜 가는 과월호를 정리할 때면 집으로 날름 가져왔다. 그리고 수술을 집도하듯 ‘보물섬’에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한 장씩 조심조심 끄집어냈다. 그렇게 모은 한 묶음의 만화는 뒷날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기 전까지 끔찍이도 아꼈다.
너무 일찍 철이 든 아이를 떠올리면, 늘 제제였다. 이름만 불러도 어느새 눈물이 차오르게 하는. 그런데 스크린에서 일찍 철이 든 소년을 또 마주하게 되었다. 나의 제제처럼 초롱하고 설운 눈망울을 가진 소년 ‘자인’을.
레바논 베이루트의 빈민촌. 자인(자인 알 라피아)의 집은 뒤로 줄줄이 동생들이 있는 대가족이다. 자인은 거짓말을 둘러대며 마약성 진통제인 트라마돌을 사오고, 거리에서는 동생 사하르(하이타 아이잠)와 함께 주스를 팔고, 동네 슈퍼마켓에서 허드렛일부터 가스 배달까지 한다. 학교 통학 차량을 흘끔거리지만 요원한 대상이다. 슈퍼마켓 주인 아사드는 이쁜이 사하르에게 주라며 라면과 감초사탕을 준다. 자인은 그의 음험한 속내도, 어린 사하르를 성장(盛粧)하는 부모의 소행도 지긋하다. 자인이 막으려고 했지만 결국 사하르는 아빠의 오토바이에 실려 아사드에게 반강제로 보내진다.자인은 집을 떠나서 홀로 버스에 오른다. 옆자리에 앉은 ‘바퀴맨’ 할아버지를 따라서 유원지에서 내리지만 일거리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를 딱하게 여긴 직원 라힐(요르다노스 시프로우)의 도움으로 자인은 허기를 채운다. 에티오피아에서 온 불법체류자 라힐은 매 순간이 살얼음이다. 위조한 체류증의 사진을 보며 얼굴에 없는 점을 그려야 하고, 화장실에 숨겨놓은 요나스(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에게 수유를 하고, 퇴근길에는 손수레 장바구니에 요나스를 태운다. 의지처가 없는 그녀의 삶에 불쑥 자인이 끼어들고, 셋은 한 가족처럼 지내게 된다.
라힐은 기한이 임박한 체류증을 대신할 새 체류증이 필요해서 알 하다드 시장의 아스프로를 찾아간다. 아스프로는 돈이 턱없이 모자란 그녀에게 대신 요나스를 넘기라고 한다. 라힐은 단호하게 선을 긋는다. 내 애는 내가 키워요. 내가 먹이고 돌볼 거에요. 아스프로는 케첩병에도 제조사와 유통기한이 있다며, 네 아이는 유령 같은 존재라고 힐난한다. 그런데 체류증을 살 돈을 구하러 다니던 라힐이 경찰에 붙잡히고 만다. 이 사실을 모르는 자인과 요나스의 기다림이 시작된다. 자인은 끝끝내 요나스를 책임지려고 하지만 현실은 혹독하다. 자인은 아스프로의 감언을 믿어 보며 요나스를 내어준다.
부모의 집으로 돌아온 자인은 동생 사하르가 임신을 했다가 죽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칼을 빼들고 아사드를 향해 달려간다. 검거된 자인은 출생을 증명할 기록이 없기에 유치가 다 빠진 것을 기준으로 열둘 혹은 열셋, 즉 어림짐작의 나이만 가능하다. 아사드를 찌른 죄로 5년형을 선고받고 소년 교도소에 수감 중인 자인은 부모를 고소하겠다며 원고의 입장으로 법정에 선다. 판사가 부모를 고소하는 이유를 묻자 대답한다. 저를 낳아줘서요. 그리고 간절하게 청한다. 아이를 그만 낳게 해주세요.지난 24일 개봉한 ‘가버나움’의 나딘 라바키 감독은 거리에서 직접 캐스팅을 했다. 자인 역의 자인 알 라피아는 시장에서 배달 일을 하던 난민 소년이었고, 라힐 역의 요르다노스 시프로우와 요나스 역의 보루와티프 트레저 반콜 또한 불법 체류 중이었다. 일부러 연기하지 않아도 그들의 눈빛에서는 삶이 눅진하게 배어나온다.
자인에게 사하르는 유일한 벗이었다. 그래서 더 각별한 동생이었다. 자인은 어린 동생을 향한 남자들의 음험한 시선이나 말을 대차게 물리치는 오빠였다. 엄마가 집세를 빌미로 동생을 아사드에게 보낼까봐 첫 생리를 한 동생의 속옷을 빨고, 자신의 옷을 말아서 생리대로 내밀며 뒤처리를 하는 등 속 깊은 오빠였다. 비닐봉지에 동생의 옷가지며 슈퍼마켓에서 슬쩍한 생필품을 담고, 동생을 무릎에 앉히는 조건으로 버스의 1인 요금까지 계획에 넣을 만큼 총명한 오빠였다.
자인에게 요나스는 라힐의 집에서 지내는, 즉 밥값을 대신할 존재였다. 시간 맞춰서 젖병을 물려주고, 놀아 주고, 어르고, 재우는 일과가 반복되었다. 그런데 점점 요나스가 각별해진다. 거울을 이용해서 옆집에서 틀어놓은 TV 만화를 함께 본다. 소리까지 훔칠 수 없으니 더빙은 자인의 몫이다. 자인은 요나스의 웃음이 좋다. 라힐의 부재로 먹을 것이 떨어지자, 자인은 요나스에게 설탕을 뿌린 얼음을 먹이기도 하고, 빼앗은 보드에 올린 큰 냄비에 요나스를 태우고는 길을 나선다.‘나의 라임오렌지나무’의 제제에게는 집에는 글로리아 누나가, 학교에는 담임 선생님이, 그리고 그 누구보다 든든한 뽀르뚜가가 있었다. 적어도 손을 내미는 어른이 있었다. 자인에게도 라힐이 손을 내밀었지만, 라힐 역시 허락 받지 못한 타국에서는 아이처럼 누군가의 손길이, 도움이 필요했다. 너무 일찍 철이 든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인은 삶이 개똥 같고, 지옥 같다고 했다. 엄마의 말은 칼처럼 심장을 찌른다고도. 세상의 온기를 누리며 커야 할 나이에 서늘한 냉기가 먼저 달라붙는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들 수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자인은 끝까지 사하르와 요나스를 책임지려고 했다. 같이하려고 했다. 그래서 손을 놓아야 하는 순간에는 깊은 슬픔으로 눈두덩이 먼저 붉어졌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가버나움’은 혼돈과 기적을 뜻하는 의미로 쓰이는 단어다. 나딘 라바키는 “모든 혼돈의 안개 속에서 작은 기적들이 일어난다”고 했다. 엔딩 크레딧에 담겨진, 영화에 출연했던 이들에게 일어난 작은 기적들에 감사했다. 영화를 본 모든 사람들도 아마 한마음일 것이다.
영화가 끝날 무렵 마주할 수 있던 자인의 맑은 웃음에서 한 줌 온기를 느꼈다. 어쩌면 너무 일찍 철이 든 소년에게는 더더욱 간절했을 온기를.
나의 자인. 제제처럼 이름만 불러도 눈물이 그렁해진다.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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