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박미영 작가]
앨리(레이디 가가)는 그녀의 아빠 로렌조(앤드류 다이스 클레이)의 말처럼 천상의 목소리를 가졌다. 드랙바 ‘블루 블루’에서 공연도 한다. 여장을 한 드랙퀸 공연자들이 여자인 그녀를 끼워주는 이유도 아름다운 목소리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천상의 피조물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작곡하는 실력까지 갖추고 있다. 그러나 너무 큰 코, 즉 자신의 외모가 콤플렉스다. 자신이 작곡한 노래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직접 부르지도 않는다.잭슨(브래들리 쿠퍼)은 애리조나에서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가 63세라는 늦은 나이에 본 아들이다. 턴테이블에 머리를 밀어 넣고 음악을 듣던 소년은 13살에 목숨을 끊으려고도 했지만 실패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그 사실마저 몰랐다. 잭슨을 톱스타로 키운 사람은 나이 차가 제법 나는 형 바비(샘 엘리어트)다. 귀울음에 시달리는 잭슨은 의사에게 언젠가 청력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도 받지만, 약과 술에 절어 있다. 바비는 스스로를 아끼라고 질책하지만, 잭슨은 술을 마셔야만 오늘을 잘 보낸 것 같다.
드디어, 그들은 운명처럼 마주한다. 잭슨은 바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 ‘라 비 앙 로즈’를 부르는 앨리의 모습에 매료된다. 두 사람은 밤새 술을 파는 경찰들 술집으로 향한다. 잭슨은 그녀의 코를 쓰다듬으며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리고 각별한 말을 덧붙인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내 방식대로 들려줬는데 통한다는 건 특별한 재능이에요. 우리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고 노래하는 거에요.”
마트 주차장에서 앨리는 냉동식품으로 손을 찜질한다. 술집에서 잭슨에게 무례했던 취객 경찰에게 주먹을 날린 까닭이다. 자연스레 그들은 생각을 나누고, 노래를 나눈다. 특별한 첫 만남을 잊지 못한 잭슨은 자신의 공연에 앨리를 초대한다. 그리고 그녀가 들려줬던 노래의 첫 음을 열며 그녀를 무대로 이끈다. 그들은 함께 공연을 다니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앨리에게 커다란 가능성을 본 음악 프로듀서 레즈(라피 가브론)가 찾아온다.‘스타 이즈 본’은 1937년작 ‘스타 탄생(A Star Is Born)’ 이후 1954년, 1976년에도 리메이크 된 작품이다. 브래들리 쿠퍼도 각본에 참여했지만, 개봉에 앞서 기대치를 높여주는 작가의 이름이 보였다. ‘포레스트 검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시나리오를 책임진 에릭 로스다. 낯익은 스토리, 즉 낯익은 플롯에 어떤 변주가 있을지 사뭇 궁금했다. 그 답은 영화의 대사를 통해 명쾌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음악이란 옥타브 내에서 12개 음이 반복되는 것이고, 뮤지션은 그 12개 음을 자기 방식대로 들려주는 것뿐이라고.
브래들리 쿠퍼는 감독 입봉작인 이번 작품에서 연출력을 뿜어낸다. 도돌이표로 여겨질 수 있는 리메이크에 자신의 스타일을 얹었다. 우선 전작들과 가장 큰 차이점은 남자 주인공의 서사가 풍성하다는 것. 앨리의 대사에도 나오듯, 잭슨은 ‘좋은 사람’이다. 한때 음악을 꿈꿨던 형 바비가 속상한 마음에 내 꿈을 훔친 건 너라고 다그치자, 잭슨은 형에게는 노래할 이야기가 없다는 모진 말로 응수한다. 그러나 끝에는 아버지가 아니라 형을 닮고 싶었다는 속말을 털어놓는다. 그는 점점 더 귀가 안 들리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알코올과 마약으로 무너지는 그를 앨리도, 관객도 끝끝내 내려놓지 못한다. 잭슨이란 인물을 진정 사랑하게 된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Maybe It’s Time’ ‘Shallow’ ‘I’ll Never Love Again’ 등 총 11곡을 브래들리 쿠퍼와 레이디 가가는 라이브로 소화했다. 보통 영화의 콘서트 장면에서 청중의 시점으로 보여지는 전형적인 앵글이 없다. 뮤지션의 1인칭 시점으로 담기면서 관객을 무대에서 함께 호흡하게 만든다. ‘브래들리 쿠퍼의 연기력+레이디 가가의 가창력’처럼 예상했던 대목에 ‘브래들리 쿠퍼의 가창력+레이디 가가의 연기력’이 더해지면서 음악 영화로서의 매력이 물씬 묻어난다. 영화에서 잭슨은 앨리가 음을 다루는 방식이 좋다고 했는데, 나는 레이디 가가가 음을 다루는 방식이 참 좋았다.‘스타 이즈 본’은 음악의 끓는점 위에 감정의 끓는점을 얹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웃고 울면서 연소했다. 그래서 극장을 나서는 순간, 막 공연을 마친 뮤지션처럼 충일한 기쁨에 나른하게 젖어들었다. 그리고 앨리의 노래 ‘I’ll Never Love Again’이 심장까지 차올랐다. 잭슨은 진심을 노래하지 않으면 끝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노래는 진행형이다. 그저, 진심으로 아름다울 뿐이다.
10월 9일 개봉. 15세 관람가.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영화 ‘스타 이즈 본’ 스틸컷
여고시절 미술 선생님은 예쁜 아이들에게 유독 점수가 후했다. 어쩌면 점수가 좋은 아이들이 예쁘고 실력도 좋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 날 화선지에 사군자를 그리고, 이름도 한자로 써서 제출해야 했다. 장난기가 급 발동했다. 내 이름 앞에 호처럼 ‘美人(미인)’을 붙였다. 친구들은 만류했지만, 변변찮은 그림 실력이라 호기롭게 배팅할 만했다. 어쨌든 평소 받던 점수보다는 조금 후하게 받았다. 그날따라 나의 사군자가 아름다웠을지도 모른다. 혹은 강렬한 ‘美人’ 덕분일지도.앨리(레이디 가가)는 그녀의 아빠 로렌조(앤드류 다이스 클레이)의 말처럼 천상의 목소리를 가졌다. 드랙바 ‘블루 블루’에서 공연도 한다. 여장을 한 드랙퀸 공연자들이 여자인 그녀를 끼워주는 이유도 아름다운 목소리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는 천상의 피조물처럼 아름다운 노래를 작곡하는 실력까지 갖추고 있다. 그러나 너무 큰 코, 즉 자신의 외모가 콤플렉스다. 자신이 작곡한 노래는 불편하다는 이유로 직접 부르지도 않는다.잭슨(브래들리 쿠퍼)은 애리조나에서 알코올 중독인 아버지가 63세라는 늦은 나이에 본 아들이다. 턴테이블에 머리를 밀어 넣고 음악을 듣던 소년은 13살에 목숨을 끊으려고도 했지만 실패했다. 술에 취한 아버지는 그 사실마저 몰랐다. 잭슨을 톱스타로 키운 사람은 나이 차가 제법 나는 형 바비(샘 엘리어트)다. 귀울음에 시달리는 잭슨은 의사에게 언젠가 청력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다는 경고도 받지만, 약과 술에 절어 있다. 바비는 스스로를 아끼라고 질책하지만, 잭슨은 술을 마셔야만 오늘을 잘 보낸 것 같다.
드디어, 그들은 운명처럼 마주한다. 잭슨은 바에서 에디트 피아프의 샹송 ‘라 비 앙 로즈’를 부르는 앨리의 모습에 매료된다. 두 사람은 밤새 술을 파는 경찰들 술집으로 향한다. 잭슨은 그녀의 코를 쓰다듬으며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리고 각별한 말을 덧붙인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내 방식대로 들려줬는데 통한다는 건 특별한 재능이에요. 우리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하려고 노래하는 거에요.”
마트 주차장에서 앨리는 냉동식품으로 손을 찜질한다. 술집에서 잭슨에게 무례했던 취객 경찰에게 주먹을 날린 까닭이다. 자연스레 그들은 생각을 나누고, 노래를 나눈다. 특별한 첫 만남을 잊지 못한 잭슨은 자신의 공연에 앨리를 초대한다. 그리고 그녀가 들려줬던 노래의 첫 음을 열며 그녀를 무대로 이끈다. 그들은 함께 공연을 다니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앨리에게 커다란 가능성을 본 음악 프로듀서 레즈(라피 가브론)가 찾아온다.‘스타 이즈 본’은 1937년작 ‘스타 탄생(A Star Is Born)’ 이후 1954년, 1976년에도 리메이크 된 작품이다. 브래들리 쿠퍼도 각본에 참여했지만, 개봉에 앞서 기대치를 높여주는 작가의 이름이 보였다. ‘포레스트 검프’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의 시나리오를 책임진 에릭 로스다. 낯익은 스토리, 즉 낯익은 플롯에 어떤 변주가 있을지 사뭇 궁금했다. 그 답은 영화의 대사를 통해 명쾌하게 들을 수 있었다. 음악이란 옥타브 내에서 12개 음이 반복되는 것이고, 뮤지션은 그 12개 음을 자기 방식대로 들려주는 것뿐이라고.
브래들리 쿠퍼는 감독 입봉작인 이번 작품에서 연출력을 뿜어낸다. 도돌이표로 여겨질 수 있는 리메이크에 자신의 스타일을 얹었다. 우선 전작들과 가장 큰 차이점은 남자 주인공의 서사가 풍성하다는 것. 앨리의 대사에도 나오듯, 잭슨은 ‘좋은 사람’이다. 한때 음악을 꿈꿨던 형 바비가 속상한 마음에 내 꿈을 훔친 건 너라고 다그치자, 잭슨은 형에게는 노래할 이야기가 없다는 모진 말로 응수한다. 그러나 끝에는 아버지가 아니라 형을 닮고 싶었다는 속말을 털어놓는다. 그는 점점 더 귀가 안 들리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알코올과 마약으로 무너지는 그를 앨리도, 관객도 끝끝내 내려놓지 못한다. 잭슨이란 인물을 진정 사랑하게 된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Maybe It’s Time’ ‘Shallow’ ‘I’ll Never Love Again’ 등 총 11곡을 브래들리 쿠퍼와 레이디 가가는 라이브로 소화했다. 보통 영화의 콘서트 장면에서 청중의 시점으로 보여지는 전형적인 앵글이 없다. 뮤지션의 1인칭 시점으로 담기면서 관객을 무대에서 함께 호흡하게 만든다. ‘브래들리 쿠퍼의 연기력+레이디 가가의 가창력’처럼 예상했던 대목에 ‘브래들리 쿠퍼의 가창력+레이디 가가의 연기력’이 더해지면서 음악 영화로서의 매력이 물씬 묻어난다. 영화에서 잭슨은 앨리가 음을 다루는 방식이 좋다고 했는데, 나는 레이디 가가가 음을 다루는 방식이 참 좋았다.‘스타 이즈 본’은 음악의 끓는점 위에 감정의 끓는점을 얹었다. 나는 그들과 함께 웃고 울면서 연소했다. 그래서 극장을 나서는 순간, 막 공연을 마친 뮤지션처럼 충일한 기쁨에 나른하게 젖어들었다. 그리고 앨리의 노래 ‘I’ll Never Love Again’이 심장까지 차올랐다. 잭슨은 진심을 노래하지 않으면 끝이라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노래는 진행형이다. 그저, 진심으로 아름다울 뿐이다.
10월 9일 개봉. 15세 관람가.
박미영 작가 stratus@tenasia.co.kr
[박미영 영화 ‘하루’ ‘빙우’ ‘허브’, 국악뮤지컬 ‘변학도는 왜 향단에게 삐삐를 쳤는가?’, 동화 ‘꿈꾸는 초록빛 지구’ 등을 집필한 작가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스토리텔링 강사와 영진위의 시나리오 마켓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현재 텐아시아에서 영화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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