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전문 미디어 텐아시아가 ‘영평(영화평론가협회)이 추천하는 이 작품’이라는 코너를 통해 영화를 소개합니다. 현재 상영 중인 영화나 곧 개봉할 영화를 영화평론가의 날카로운 시선을 담아 선보입니다. [편집자주]
세바스찬 렐리오 감독의 신작 ‘판타스틱 우먼’은 여자라고 사람들이 믿는 이미지가 실은 허상이라는 걸 알려 주는 영화다. ‘판타스틱’이라는 형용사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사람들이 여자라고 생각하는 관념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일차적 의미와, 영화의 주인공 마리나가 신비하고 놀라운 환상적인 여자라는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57세의 오를란도는 젊은 연인 마리나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이과수 폭포 여행권 2장도 마련한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그날 밤, 오를란도는 심한 통증 때문에 잠에서 깬다. 마리나는 서둘러 오를란도를 응급실로 데려갔지만 안타깝게도 오를란도는 그날 새벽 사망한다. 이 영화는 남겨진 마리나가 당면하게 되는 차갑고 잔인한 현실을 자세히 보여준다. 우선 응급실 의사가 마리나를 대하는 태도부터 이상하다. 의사는 오를란도와의 관계를 묻고 ‘파트너’인지 확인한다. 마리나는 트랜스젠더였고 신분증에는 아직 남성으로 기재되어 있는 상태다. 마리나의 성 정체성은 여성이지만 사회는 마리나를 여전히 남성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마리나의 본격적인 시련은 성범죄팀 형사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마리나는 범죄인 취급을 받게 되고 오를란도와의 관계에 불순한 의도가 있었는지 추궁 당한다. 평범하게 살아왔던 오를란도는 트랜스젠더인 마리나를 만난 후 지금까지의 삶을 버렸다. 거기에는 가정, 아내, 아이가 포함되어 있다. 오를란도는 남은 인생을 진정한 자신으로 살고 싶었던 것이다. 오를란도의 전 부인, 아들, 형사, 의사 등 오를란도 주변인들은 마리나에게 적대적이다. 그들은 정상적인 가정을 파괴하고 비정상적인 관계를 맺었다고 믿는다.
세바스찬 렐리오 감독은 이들의 이런 믿음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인지 차분히 증명한다. 전작 ‘글로리아’(2013)처럼 이 영화도 어른스럽다. 나이를 먹었다고 어른스러운 게 아니라 믿음을 검증하고 확신을 경계하는 태도가 있어야 성숙하다 할 수 있다.
마리나를 연기한 다니엘라 베가는 칠레 출신의 실제 트랜스젠더다. 세바스찬 렐리오 감독은 이 신인 배우를 발견하고 마리나의 모습을 구체화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다니엘라 베가는 극 중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장면에서 직접 노래를 했다. 마리나가 무대에서 헨델의 오페라 ‘세르게’ 중 ‘ombra mai fu’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은 우아하고 아름답다. “이토록 아름다운 그늘은 없었네”라는 가사는 마리나가 겪은 혹독한 경험을 넉넉히 덮어주고, 그 아래서 쉴 수 있는 큰 나무가 생겼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 나무는 마리나의 가슴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이현경(영화평론가)
영화 ‘판타스틱 우먼’ 포스터
여성과 남성이라는 단어는 이항대립관계 속에 존재한다. 정신분석학자들은 ‘여자는 없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알고 있는 여자, 남자는 분명히 있다. 대부분 큰 혼란 없이 둘을 구분하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가 없다는 분석 역시 타당할 수 있다. 여자는 남자를, 남자는 여자를 대조군으로 놓을 때 존재할 뿐이기 때문이다. 항상 타자를 염두에 두어야만 존재할 수 있는 개념이므로 그 자체의 본질적인 의미는 비어 있다.세바스찬 렐리오 감독의 신작 ‘판타스틱 우먼’은 여자라고 사람들이 믿는 이미지가 실은 허상이라는 걸 알려 주는 영화다. ‘판타스틱’이라는 형용사는 이중의 의미를 갖는다. 사람들이 여자라고 생각하는 관념이 환상에 불과하다는 일차적 의미와, 영화의 주인공 마리나가 신비하고 놀라운 환상적인 여자라는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57세의 오를란도는 젊은 연인 마리나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레스토랑을 예약하고 이과수 폭포 여행권 2장도 마련한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던 그날 밤, 오를란도는 심한 통증 때문에 잠에서 깬다. 마리나는 서둘러 오를란도를 응급실로 데려갔지만 안타깝게도 오를란도는 그날 새벽 사망한다. 이 영화는 남겨진 마리나가 당면하게 되는 차갑고 잔인한 현실을 자세히 보여준다. 우선 응급실 의사가 마리나를 대하는 태도부터 이상하다. 의사는 오를란도와의 관계를 묻고 ‘파트너’인지 확인한다. 마리나는 트랜스젠더였고 신분증에는 아직 남성으로 기재되어 있는 상태다. 마리나의 성 정체성은 여성이지만 사회는 마리나를 여전히 남성으로 분류하고 있는 것이다.
마리나의 본격적인 시련은 성범죄팀 형사가 찾아오면서 시작된다. 마리나는 범죄인 취급을 받게 되고 오를란도와의 관계에 불순한 의도가 있었는지 추궁 당한다. 평범하게 살아왔던 오를란도는 트랜스젠더인 마리나를 만난 후 지금까지의 삶을 버렸다. 거기에는 가정, 아내, 아이가 포함되어 있다. 오를란도는 남은 인생을 진정한 자신으로 살고 싶었던 것이다. 오를란도의 전 부인, 아들, 형사, 의사 등 오를란도 주변인들은 마리나에게 적대적이다. 그들은 정상적인 가정을 파괴하고 비정상적인 관계를 맺었다고 믿는다.
세바스찬 렐리오 감독은 이들의 이런 믿음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비이성적인지 차분히 증명한다. 전작 ‘글로리아’(2013)처럼 이 영화도 어른스럽다. 나이를 먹었다고 어른스러운 게 아니라 믿음을 검증하고 확신을 경계하는 태도가 있어야 성숙하다 할 수 있다.
마리나를 연기한 다니엘라 베가는 칠레 출신의 실제 트랜스젠더다. 세바스찬 렐리오 감독은 이 신인 배우를 발견하고 마리나의 모습을 구체화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다니엘라 베가는 극 중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장면에서 직접 노래를 했다. 마리나가 무대에서 헨델의 오페라 ‘세르게’ 중 ‘ombra mai fu’를 부르는 마지막 장면은 우아하고 아름답다. “이토록 아름다운 그늘은 없었네”라는 가사는 마리나가 겪은 혹독한 경험을 넉넉히 덮어주고, 그 아래서 쉴 수 있는 큰 나무가 생겼음을 느끼게 해준다. 그 나무는 마리나의 가슴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이현경(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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