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김수경 기자]
tvN 주말드라마 ‘화유기’에서 동장군과 하선녀를 동시에 연기한 배우 성혁.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동료 배우들이나 후배들이 저보다 활동도 많이 하고 앞서 나가는 것을 보고 스스로와 비교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비교 자체가 저를 더 힘들게 하더라고요. 누군가를 따라가고 싶다고 해서 따라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누구나 자신만의 길이 있는 거니까요. 저라는 사람은 배우의 길, 성공으로의 길을 느리게 가더라도 도중에 멈춰서 생각도 하고 쉬기도 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30대에 들어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네요.(웃음)”

배우 성혁은 자신을 “더뎌도 계속 나아가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쉽게 찾아온 깨달음은 아니었다. 성혁은 2005년 SBS 드라마 ‘해변으로 가요’로 데뷔했다. 그 후 꾸준히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으나 얼굴을 제데로 알리기 시작한 건 데뷔 9년째인 MBC 드라마 ‘왔다!장보리’였고, 눈도장을 확실히 찍은 것은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화유기’에서였다.‘화유기’에서 성혁은 겨울 신(神) 동장군과 여름 신(神) 하선녀의 1인 2역을 연기했다. 낮에는 인간계에서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인 동장군으로 일하고 밤에는 바텐더인 하선녀로서 요괴들의 조언자가 되어준다는 설정이다. 남자인 동장군과 여자인 하선녀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그의 연기는 시청자들 뿐만 아니라 동료 배우들도 호평할 정도였다. 성혁은 “가르마의 방향부터 눈썹의 모양, 얼굴의 음영, 볼터치 여부까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매니큐어의 색도 직접 골랐다.

‘화유기’에서 동장군(위)과 하선녀를 연기하고 있는 배우 성혁.

“사전 준비 단계에서 시도를 많이 해봤어요. 원피스도 많이 입어봤는데 랩 원피스가 제일 남자의 골격을 많이 감춰줘서 그걸 쭉 입었죠. 처음에 제안 받은 역도 동장군·하선녀 캐릭터였어요. 홍자매(홍정은·홍미란) 작가님들이 상남자에게 하선녀를 부탁드려서 미안하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화유기’에 워낙 많은 요괴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데다 조연이라서 처음에는 성혁이 동장군과 하선녀를 연기한다는 것을 모르는 이들도 있었다. 성혁은 “성지루 선배(수보리조사 역)는 ‘네가 하선녀를 하는 거야?’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실망을 많이 하셨던 것 같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오)연서는 하선녀 분장을 한 저를 보고 못 알아봤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연서랑 (이)세영이가 예쁘다고 칭찬도 해줬어요. 하선녀 분장을 마친 순간부터 여배우처럼 옷매무새와 화장, 머리를 신경썼거든요.”

초능력을 가진 신(神)이자 다른 성(性)을 가진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표현한 것은 그의 관찰력 덕분이기도 했다.“관찰하는 것을 좋아해 평소에 관찰을 많이 해요. 그래서 ‘잡학다식하다’는 말도 종종 듣고요. 주변에 말을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하고 행동도 느린 친구가 있어요. 상대방을 차분하게 경청하고 생각한 후에 말하는 스타일이죠. 그 친구를 참고해서 말할 때 호흡을 많이 넣어 신뢰가 갈 만한 톤을 만들었어요. 연예인은 아닙니다. 아마 그 친구는 자신이 영향을 줬다는 건 모를 거에요.(웃음) 이렇게 캐릭터를 만들었더니 동장군을 ‘아이스크림 아저씨’라면서 초등학생들도 좋아해줘서 뿌듯합니다.”

이 같은 관찰력은 그가 ‘왔다! 장보리’로 조명을 받을 때까지 오랜 무명 시절을 거치면서 만든 습관이기도 하다. 성혁은 “‘무엇이 문제일까, 어떻게 하면 연기의 폭을 넓힐 수 있을까’라고 스스로 생각하면서 급했던 성격을 보완하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만약 제가 일찍 성공했다면 그런 생각을 못했을 거에요. 배우는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중요한 직업이에요. 원래의 저처럼 말하고 나서 들으려고 하면 연기할 때 놓치는 것도 많았을 거고요.”
지난 6일 서울 중구 명동 FNC WOW 사옥에서 텐아시아와 ‘화유기’ 종영 인터뷰를 가진 배우 성혁은 올해 더 많은 활동을 할 것을 예고했다. / 사진=조준원 기자 wizard333@

성혁은 ‘화유기’를 통해 “‘믿고 연기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동장군은 모든 것을 얼릴 수 있는 캐릭터에요. 제가 그 능력을 스스로 못 믿으면 보는 사람도 어색하게 느끼더라고요. 용이와도 싸우고 손으로 물건을 얼리는 게 사실 굉장히 어색한 일이거든요.(웃음) 하지만 원래 저한테 있던 능력처럼 진지하게 믿고 연기했습니다. 엑소 멤버들이 초능력을 가진 설정을 선보였던 것처럼요.”‘화유기’에서 연기를 하며 그가 얻은 또 다른 결실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다. 성혁은 “그간 ‘이렇게 연기하는 것이 맞는 걸까’란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제 선택에 대해선 믿고 가봐도 되겠다는 확신이 생겼다”고 말했다. 성혁은 지금까지 못해 본 역할이 많기 때문에 올해 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중에서도 꼭 도전하고 싶은 장르는 사극이다.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사극을 한 번도 안 해봤어요. 감독님들은 저한테 사극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고 얘기는 많이 해주셨거든요. ‘화유기’가 현대물이긴 하지만 몇천 년 된 요괴로서 사극 연기 톤을 할 수 있어서 나름대로 만족은 한 것 같습니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즈음 성혁은 배우 송강호의 말을 인용하며 연기에 대한 자신의 소신을 드러냈다.

“송강호 선배가 언젠가 인터뷰에서 ‘단 한명의 관객을 만족시킬 수 없으면 천만 관객도 만족시킬 수 없다’고 말한 게 인상에 깊게 남았어요. 그 이후로 저도 단 한명의 관객이라도 만족시키자는 자세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제 진심이 전해질 수 있을테니까요.”

김수경 기자 ksk@tenasia.co.kr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