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한혜리 기자]
KBS2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송중기)이 안정준(지승현)을 위해 한 말처럼 우리 기억 속에 안정준, 아니 지승현이 남았다.
지승현은 지난 14일 종영한 ‘태양의 후예’에서 북한군 안정준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실감 나는 액션과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내뿜는 지승현의 모습은 시청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등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기 시작했다. 지승현이 주목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승현은 탄탄한 마니아층을 보유한 영화 ‘바람’에서 짱구(정우)의 선배로 출연한 바 있다. 당시 지승현과 그의 친구들이 내뱉은 대사는 유행어가 되어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했다. “캐릭터를 기억해주시는 건 배우로서 큰 영광이에요.” 지승현의 말처럼 안정준과 짱구 선배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지승현은 이번 안정준을 통해 캐릭터를 각인시키는 데만 그치지 않고 지승현이란 배우로서의 그의 이름을 각인시켰다.10. 요즘 반응이 뜨거울 것 같은데, 방송이 나간 후 어떻게 지냈나.
지승현 : 아무래도 사전제작이다 보니 방송 때는 여유롭게 지냈던 것 같다.(웃음)
10. 드라마가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다. 배우로서 기분이 어떤가.
지승현 : 짧게 나왔는데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할 뿐이다. 덕분에 힘이 나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어떻게든 다음 작품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려 노력하고 있다.
10. 주변 반응이 많이 달라졌겠지. 특히 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지승현 : 아버지가 많이 무뚝뚝하신 편이다. 연기자의 길을 걷는 것도 많이 반대하셨고. 티를 안 내시다가 얼마 전 장문의 문자를 보내주셨다. 잘 하고 있다고, 아버지가 기분이 좋다고 하시더라. 어머니도 “아들, 존경한다”고 말해주시고. 그럴 땐 정말 뭉클하다.10. 이 작품이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 예상했나.
지승현 : 사실 출연진들이나 제작진들이 워낙 탄탄하신 분들이라 ‘중박’ 이상은 예상했었는데, 이렇게까지 인기가 폭발적일 줄은 몰랐다. 제작진도 깜짝 놀랐다고 하더라.(웃음)
10. 처음 북한군인 역할이 주어졌을 땐 어땠나. 캐릭터를 연구하기에 막막하지는 않던가.
지승현 : 북한 체제나 말투 같은 경우는 미디어를 통해 많이 알려졌잖아. 그렇지만 꼭 현실의 모습을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현실과는 다른 이야기를 그릴 수 있으니까. 일단 안정준 역할은 유시진과는 정반대의 색깔로 대비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부드럽고 멋진 유시진을 보면서 정반대의 거친 군인의 모습을 그려나갔다.10. 캐릭터 분석하는데 시간은 얼마나 걸렸나.
지승현 : 처음엔 1회 분량의 대본만 받았었다. 나중에 유시진을 구할 때 잠깐 모습을 드러낸다고만 들었었다. 1부를 8, 9월에 찍고 한 달간 액션 연습 뒤에 후반부를 찍기 시작했다. 액션 연습을 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어나갔다. 그때 했던 준비들이 다행히 13-14회 때 등장했던 안정준의 모습에 잘 맞아 떨어졌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이후 상처가 왜 생겨났는지, 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은지와 같은 디테일에 대해서는 대본을 보며 만들어 나갔지.
10. 실제로 만나보니 목소리가 굉장히 부드럽다. ‘태양의 후예’에서 듣던 거친 목소리와는 다른 느낌이다.
지승현 : 원래 내 목소리는 이렇게 울리는 편이다. 극 중에서는 거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일부러 탁성을 섞어서 소리를 냈다. 거친 톤이 안정준에게 잘 어울렸던 것 같다.
10. 북한 사투리는 어떻게 연습했나.
지승현 : 사투리를 연습을 많이 했다. 내 목소리를 녹음하고 들으면서 수정해나갔다. 친구들한테도 어색하지 않냐고 들려주기도 했고. 그렇게 오랜 기간 연습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어색하지 않고 괜찮아지더라.10. 실제 GOP 장교 출신이라고 들었다.
지승현 : GOP 쪽에 잠시 있었다. ROTC를 졸업하고 GOP 쪽으로 갔었지.
10. 많은 남자들이 ‘태양의 후예’ 속 군 생활이 판타지라고 한다. 본인도 군대를 겪은 남자로서 실제 군 생활과 비해 ‘태양의 후예’는 정말 판타지인가.
지승현 : 사실 특전사 쪽은 잘 모른다. 훈련하는 부분이나 생활이 조금씩 다른 걸로 알고 있다. 물론 장교 이상들은 지휘해야 하기 때문에 잘 알아야겠지만 난 초급자 정도라 깊게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드라마니까 어느 정도 현실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때문에 더 극적인 효과를 줄 수도 있고 시청자들이 대리만족할 수도 있는 거겠지.
10.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나.
지승현 : 나는 사실 그리 오래 함께하진 못했다. 촬영 기간 총 6개월 중에 총 합쳐서 한 달 미만 정도? 그런데도 알파 팀, 경호원 팀 다들 많이 친해져서 재밌게 촬영했다. 항상 남자들과 촬영하다가 후반부에 병원 신을 촬영할 땐 여자 배우들도 많이 있어서 낯설기도 했다.(웃음) 그래도 송중기와 진구가 잘 챙겨줘서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10. 액션 장면이 많았는데, 액션 연습은 얼마나 했는가.
지승현 : 일단 1회 촬영분만 한 달을 연습했다. 이후 나머지 액션들은 다 현장에서 익혔지. 사실 오래전부터 액션 연습을 해왔었다. 액션 영화들을 많이 찍었기 때문에 이미 기초 동작들은 익숙해져 있던 상태였다. 그래도 무술 감독님이 옆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완성도 있는 액션이 나온 것 같다.
10. 액션 장면 중 위험해 보이는 신들도 많았다.
지승현 : 액션 신들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위험한 동작들이 많다. 유리 깨는 장면 같은 경우는 NG가 나면 파편을 청소해야 하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지. 14회 병원 유리 깨지는 장면도 한 10번은 촬영했던 것 같다. 또 위험한 상황도 많아서 다치는 경우도 있고. 나 역시 촬영하다 어깨에 부상을 입어서 주사를 맞으면서 촬영을 이어나갔던 적이 있었다. 액션신은 위험하고 어렵기도 하지만 결과가 좋을 때 얻는 만족감이 크다.
10. 안정준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바로 초코파이 신이다. PPL이 아니냐고 의심받을 정도로 결정적인 신이었다.
지승현 : 대본에 이미 안정준의 감정선이 잘 나타나 있었다. 덕분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고 연기를 하는 나도 뭉클했었다. 웃겼던 건 진지한 상황에서 초코파이를 먹는데 마시멜로가 자꾸 입가에 대롱대롱 달렸다. 그 전까진 감정을 잘 유지하고 있었는데 파이를 베어 먹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 하하.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신이었는데 웃음이 터져서 ‘혹시나 방송에서 티가 나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했었다. 막상 방송을 보니 결과가 잘 나온 것 같아서 뿌듯했다.
10. 초코파이 신 이외의 본인이 꼽는 명장면은 어느 것인가.
지승현 : 14회에서 병원 유리창을 깨고 들어와서 유시진과 다시 대적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사실 대본에는 대사밖에 없었다. 유시진이 내 가슴에 총구를 겨눈다든지, 이런 지문들은 전혀 없었다. 송중기가 먼저 제안해서 현장에서 만들어진 신이었다. 손에 피를 흘린다든지 디테일까지도 함께 합의해서 신을 완성했다. 다 같이 함께 만든 장면이라서 그런지 감정도 잘 묻어났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다.
10. 눈이 참 서늘한 편이다. 역할도 주로 냉철한 캐릭터들이 많았다.
지승현 : 센 이미지의 역할을 많이 맡았었다. 우직한 부하라든지, 거친 액션을 소화하는 캐릭터라든지. 주로 남자다운 이미지의 역할들이었다. 그 중 ‘칠전팔기 구해라’ 편팀장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캐릭터였다. 비열하기도 하고 얄밉기도 한 성격이었다. 색다른 도전이었지.(웃음)
10. 가벼운 역할이 진중한 역할보다 연기하기는 좀 더 수월하지 않나.
지승현 : 전혀 아니다. 연기는 어떤 역할이든 어렵다. 무거움과 가벼움을 떠나서 어떤 한 인물을 연기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인물은 이렇게 대사를 해야 하고, 어떤 인물은 대사할 때 호흡을 다르게 조절해야 한다. 늘 다른 인물들이니까 늘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캐릭터 분석에 시간을 좀 더 투자하면서 철저히 준비하는 편이다.
10. 실제 지승현의 성격은 어떠한가.
지승현 :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하하. 적당히 남자다운 것 같고 적당히 자상한 것 같다. 음, 그래도 정의를 내리자면 내 가정에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자상한 남편? 하하. 딸이 둘인데 가족들은 다 부산에 살고 있다. 기러기 아빠다.(웃음)
10. 자상한 남편이라는 실제 모습과는 달리 냉철한 역할이 많았다. 성격이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 같은데.
지승현 : 배우라는 직업이 그런 걸 표현하는 거잖아. 일종의 역할 놀이인 거지. 내 성격하고 달라도 이렇게, 저렇게 흉내 내면서 표현하면 된다. 그게 익숙해지면 프로가 되는 거고.
10. 누구는 연기에 자기 자신을 투영시켜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자기 자신을 지워야 한다고 한다. 지승현은 어느 쪽인가.
지승현 : 작품마다 다른 것 같다. 내 모습이 담길 때도 있고 아예 지워질 때도 있다. 기본적으로 나는 상상해서 인물을 만드는 편이다. 작품에 나오지 않아도 인물의 스토리를 만드는 거지. ‘태양의 후예’ 안정준한테는 북한에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두고 왔다는 가상 설정을 부여했었다. 이렇게 캐릭터는 상상해서 만들지만, 그 안의 디테일은 관찰을 통해 얻는 편이다. 전라도 사투리를 쓸 땐 전라도에 사는 친구를 만나서 친구에게 받은 느낌을 연기로 전달한다.
10. 영문학을 전공했다고 알고 있다. 영문학도에서 어떻게 연기자로 전환하게 됐나.
지승현 : 영어는 어렸을 때 할리우드를 가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전공했었다. 하하. MBC ‘히트’라는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벌써 10년 차가 됐지.(웃음) 어릴 때부터 연기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고 대학교 때도 연기 학원을 다녔다. 그러다 ROTC에 가게 됐고 전역 후 스물여섯 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처음 시작할 땐 연기 전공이 아니라는 부담감이 있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10. 맨땅에 헤딩하는 고비를 잘 극복했기 때문에 10년이나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어떻게 보면 배우라는 직업이 굉장히 미래가 안 보이는 직업인데, 그런데도 지금까지 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지승현 : 꿈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10살 때부터 연기자의 꿈을 꿨는데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었다. 고등학교 때도 연기하겠다고 자퇴를 해서 죽도록 맞았지. 하하. 내 ‘꿈’이야 말로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나도 가끔은 현실의 한계를 느낄 때가 있다. 실제로 작년은 정말 힘든 해였다. 작품도 무마되고 자꾸 일이 풀리지 않아서 떡볶이집을 차릴까도 생각했다. 그래도 버텼지. 하루하루 버티고 아주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면서 고비를 넘겼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잖아. 그것만으로도 행복한데, 가족들의 응원까지 받으면 더 힘이 난다. 힘을 얻고 스스로 다짐하는 거지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 파이팅!”
10. 영화 ‘바람’이 첫 작품이었나.
지승현 : 사실은 두 번째 영화라고 해야 하나? 첫 번째 영화로는 ‘거위의 꿈’이라고 이완 씨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였는데 사정상 개봉은 못 하고 KBS에서 방송만 했었다. 이후에 ‘바람’을 찍었다. ‘바람’을 찍고도 단역 생활을 해왔다. 웬만한 드라마에는 한 번씩 지나갔을걸? 하하. 그땐 회사를 만나기도 전이었고, ‘바람’의 마니아 팬분들이 많이 계시긴 했지만 큰 이슈는 못 됐으니까.
10. ‘바람’을 기억하고 있다. 지승현이란 배우가 당연히 오랜 기간 연기를 해온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바람’ 인물들이 다 그랬잖아.
지승현 : ‘바람’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거의 첫 영화인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3년 차인 내가 경험자였지. 부산 배경 영화다 보니까 실제 부산에 계신 분들을 캐스팅했었다. 거의 95%가 부산 분들이었다. 그래서 더 사투리가 실감 났던 거였다. 나도 고향이 경상도이긴 하지만 내 고향 안동과 부산은 사투리가 사뭇 다르다. 그래서 나도 현장에서 사투리를 다시 배웠었다. 같이 했었던 배우들이 잘 되고 있는 것 같아서 기쁘다.
10. ‘바람’이라는 첫 작품과 ‘태양의 후예’를 비교해보자. 어떤 점이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는가.
지승현 : 음, 그땐 총각이고 지금은 아이가 둘 있는 아빠가 됐다는 거? 하하. 재밌는 점은 부산에서 ‘바람’을 찍을 땐 실제 거주지가 서울이었고, 서울에서 ‘태양의 후예’를 촬영할 땐 거주지가 부산이 됐다.(웃음) 연기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태양의 후예’를 기점으로 다양한 기회가 주어질 거라는 게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그 전에는 보여드리고 싶어도 기회가 없어서 못 보여드릴 때가 많았다. 영화도 엎어지고, 캐스팅도 안 되고. 달라지지 않은 점이 있다면 현장에 대한 내 간절함일 것이다.
10. 극 중 송중기의 대사처럼 ‘태양의 후예’로 지승현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다.
지승현 :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예전부터 이름을 알리고 싶었다. 인지도가 있어야 더 다양한 배역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제일 좋은 건 지승현보다는 배우의 캐릭터로 알려지는 것이다. 새로운 배역을 맡을 때마다 새로운 이미지로 기억해주시는 게 배우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번 ‘태양의 후예’에서 캐릭터로 많이 기억해주셔서 참 감사하다. 앞으로 더 좋은 연기로 보답해드려야겠지.
10. ‘태양의 후예’는 본인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지승현 : ‘태양의 후예’를 통해 신기한 경험들을 많이 했다. 실시간 검색어 1위도 해보고, 이렇게 주목도 받아보고, 감사한 일들이 많이 생겼다. 이 외에도 여러모로 뜻깊은 날들이었다. 잊지 못할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한혜리 기자 hyeri@tenasia.co.kr
장소제공 = 루이비스(Louisvis)
배우 지승현 / 사진=구혜정 기자 photonine@
“누군가는 기억해줬으면 해서요.”KBS2 ‘태양의 후예’에서 유시진(송중기)이 안정준(지승현)을 위해 한 말처럼 우리 기억 속에 안정준, 아니 지승현이 남았다.
지승현은 지난 14일 종영한 ‘태양의 후예’에서 북한군 안정준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실감 나는 액션과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내뿜는 지승현의 모습은 시청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는 등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기 시작했다. 지승현이 주목을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승현은 탄탄한 마니아층을 보유한 영화 ‘바람’에서 짱구(정우)의 선배로 출연한 바 있다. 당시 지승현과 그의 친구들이 내뱉은 대사는 유행어가 되어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했다. “캐릭터를 기억해주시는 건 배우로서 큰 영광이에요.” 지승현의 말처럼 안정준과 짱구 선배를 기억하는 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지승현은 이번 안정준을 통해 캐릭터를 각인시키는 데만 그치지 않고 지승현이란 배우로서의 그의 이름을 각인시켰다.10. 요즘 반응이 뜨거울 것 같은데, 방송이 나간 후 어떻게 지냈나.
지승현 : 아무래도 사전제작이다 보니 방송 때는 여유롭게 지냈던 것 같다.(웃음)
10. 드라마가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얻었다. 배우로서 기분이 어떤가.
지승현 : 짧게 나왔는데 많은 관심을 가져주셔서 감사할 뿐이다. 덕분에 힘이 나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어떻게든 다음 작품으로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려 노력하고 있다.
10. 주변 반응이 많이 달라졌겠지. 특히 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하다.
지승현 : 아버지가 많이 무뚝뚝하신 편이다. 연기자의 길을 걷는 것도 많이 반대하셨고. 티를 안 내시다가 얼마 전 장문의 문자를 보내주셨다. 잘 하고 있다고, 아버지가 기분이 좋다고 하시더라. 어머니도 “아들, 존경한다”고 말해주시고. 그럴 땐 정말 뭉클하다.10. 이 작품이 이렇게 인기가 많을 줄 예상했나.
지승현 : 사실 출연진들이나 제작진들이 워낙 탄탄하신 분들이라 ‘중박’ 이상은 예상했었는데, 이렇게까지 인기가 폭발적일 줄은 몰랐다. 제작진도 깜짝 놀랐다고 하더라.(웃음)
10. 처음 북한군인 역할이 주어졌을 땐 어땠나. 캐릭터를 연구하기에 막막하지는 않던가.
지승현 : 북한 체제나 말투 같은 경우는 미디어를 통해 많이 알려졌잖아. 그렇지만 꼭 현실의 모습을 따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드라마이기 때문에 현실과는 다른 이야기를 그릴 수 있으니까. 일단 안정준 역할은 유시진과는 정반대의 색깔로 대비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부드럽고 멋진 유시진을 보면서 정반대의 거친 군인의 모습을 그려나갔다.10. 캐릭터 분석하는데 시간은 얼마나 걸렸나.
지승현 : 처음엔 1회 분량의 대본만 받았었다. 나중에 유시진을 구할 때 잠깐 모습을 드러낸다고만 들었었다. 1부를 8, 9월에 찍고 한 달간 액션 연습 뒤에 후반부를 찍기 시작했다. 액션 연습을 하면서 캐릭터를 만들어나갔다. 그때 했던 준비들이 다행히 13-14회 때 등장했던 안정준의 모습에 잘 맞아 떨어졌던 것 같다.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었다. 이후 상처가 왜 생겨났는지, 왜 북한으로 돌아가고 싶은지와 같은 디테일에 대해서는 대본을 보며 만들어 나갔지.
10. 실제로 만나보니 목소리가 굉장히 부드럽다. ‘태양의 후예’에서 듣던 거친 목소리와는 다른 느낌이다.
지승현 : 원래 내 목소리는 이렇게 울리는 편이다. 극 중에서는 거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서 일부러 탁성을 섞어서 소리를 냈다. 거친 톤이 안정준에게 잘 어울렸던 것 같다.
10. 북한 사투리는 어떻게 연습했나.
지승현 : 사투리를 연습을 많이 했다. 내 목소리를 녹음하고 들으면서 수정해나갔다. 친구들한테도 어색하지 않냐고 들려주기도 했고. 그렇게 오랜 기간 연습하다 보니까 나중에는 어색하지 않고 괜찮아지더라.10. 실제 GOP 장교 출신이라고 들었다.
지승현 : GOP 쪽에 잠시 있었다. ROTC를 졸업하고 GOP 쪽으로 갔었지.
10. 많은 남자들이 ‘태양의 후예’ 속 군 생활이 판타지라고 한다. 본인도 군대를 겪은 남자로서 실제 군 생활과 비해 ‘태양의 후예’는 정말 판타지인가.
지승현 : 사실 특전사 쪽은 잘 모른다. 훈련하는 부분이나 생활이 조금씩 다른 걸로 알고 있다. 물론 장교 이상들은 지휘해야 하기 때문에 잘 알아야겠지만 난 초급자 정도라 깊게 알지는 못한다. 하지만 드라마니까 어느 정도 현실과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때문에 더 극적인 효과를 줄 수도 있고 시청자들이 대리만족할 수도 있는 거겠지.
10. 촬영장 분위기는 어땠나.
지승현 : 나는 사실 그리 오래 함께하진 못했다. 촬영 기간 총 6개월 중에 총 합쳐서 한 달 미만 정도? 그런데도 알파 팀, 경호원 팀 다들 많이 친해져서 재밌게 촬영했다. 항상 남자들과 촬영하다가 후반부에 병원 신을 촬영할 땐 여자 배우들도 많이 있어서 낯설기도 했다.(웃음) 그래도 송중기와 진구가 잘 챙겨줘서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10. 액션 장면이 많았는데, 액션 연습은 얼마나 했는가.
지승현 : 일단 1회 촬영분만 한 달을 연습했다. 이후 나머지 액션들은 다 현장에서 익혔지. 사실 오래전부터 액션 연습을 해왔었다. 액션 영화들을 많이 찍었기 때문에 이미 기초 동작들은 익숙해져 있던 상태였다. 그래도 무술 감독님이 옆에서 많이 도와주셔서 완성도 있는 액션이 나온 것 같다.
10. 액션 장면 중 위험해 보이는 신들도 많았다.
지승현 : 액션 신들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위험한 동작들이 많다. 유리 깨는 장면 같은 경우는 NG가 나면 파편을 청소해야 하니까 시간이 오래 걸리지. 14회 병원 유리 깨지는 장면도 한 10번은 촬영했던 것 같다. 또 위험한 상황도 많아서 다치는 경우도 있고. 나 역시 촬영하다 어깨에 부상을 입어서 주사를 맞으면서 촬영을 이어나갔던 적이 있었다. 액션신은 위험하고 어렵기도 하지만 결과가 좋을 때 얻는 만족감이 크다.
10. 안정준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바로 초코파이 신이다. PPL이 아니냐고 의심받을 정도로 결정적인 신이었다.
지승현 : 대본에 이미 안정준의 감정선이 잘 나타나 있었다. 덕분에 쉽게 몰입할 수 있었고 연기를 하는 나도 뭉클했었다. 웃겼던 건 진지한 상황에서 초코파이를 먹는데 마시멜로가 자꾸 입가에 대롱대롱 달렸다. 그 전까진 감정을 잘 유지하고 있었는데 파이를 베어 먹는 순간 웃음이 터졌다. 하하.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신이었는데 웃음이 터져서 ‘혹시나 방송에서 티가 나면 어떡하지’라고 걱정했었다. 막상 방송을 보니 결과가 잘 나온 것 같아서 뿌듯했다.
10. 초코파이 신 이외의 본인이 꼽는 명장면은 어느 것인가.
지승현 : 14회에서 병원 유리창을 깨고 들어와서 유시진과 다시 대적하는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사실 대본에는 대사밖에 없었다. 유시진이 내 가슴에 총구를 겨눈다든지, 이런 지문들은 전혀 없었다. 송중기가 먼저 제안해서 현장에서 만들어진 신이었다. 손에 피를 흘린다든지 디테일까지도 함께 합의해서 신을 완성했다. 다 같이 함께 만든 장면이라서 그런지 감정도 잘 묻어났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다.
10. 눈이 참 서늘한 편이다. 역할도 주로 냉철한 캐릭터들이 많았다.
지승현 : 센 이미지의 역할을 많이 맡았었다. 우직한 부하라든지, 거친 액션을 소화하는 캐릭터라든지. 주로 남자다운 이미지의 역할들이었다. 그 중 ‘칠전팔기 구해라’ 편팀장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캐릭터였다. 비열하기도 하고 얄밉기도 한 성격이었다. 색다른 도전이었지.(웃음)
10. 가벼운 역할이 진중한 역할보다 연기하기는 좀 더 수월하지 않나.
지승현 : 전혀 아니다. 연기는 어떤 역할이든 어렵다. 무거움과 가벼움을 떠나서 어떤 한 인물을 연기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예를 들어 어떤 인물은 이렇게 대사를 해야 하고, 어떤 인물은 대사할 때 호흡을 다르게 조절해야 한다. 늘 다른 인물들이니까 늘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캐릭터 분석에 시간을 좀 더 투자하면서 철저히 준비하는 편이다.
10. 실제 지승현의 성격은 어떠한가.
지승현 : 평범하다고 생각한다. 하하. 적당히 남자다운 것 같고 적당히 자상한 것 같다. 음, 그래도 정의를 내리자면 내 가정에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자상한 남편? 하하. 딸이 둘인데 가족들은 다 부산에 살고 있다. 기러기 아빠다.(웃음)
10. 자상한 남편이라는 실제 모습과는 달리 냉철한 역할이 많았다. 성격이 다른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 같은데.
지승현 : 배우라는 직업이 그런 걸 표현하는 거잖아. 일종의 역할 놀이인 거지. 내 성격하고 달라도 이렇게, 저렇게 흉내 내면서 표현하면 된다. 그게 익숙해지면 프로가 되는 거고.
10. 누구는 연기에 자기 자신을 투영시켜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자기 자신을 지워야 한다고 한다. 지승현은 어느 쪽인가.
지승현 : 작품마다 다른 것 같다. 내 모습이 담길 때도 있고 아예 지워질 때도 있다. 기본적으로 나는 상상해서 인물을 만드는 편이다. 작품에 나오지 않아도 인물의 스토리를 만드는 거지. ‘태양의 후예’ 안정준한테는 북한에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두고 왔다는 가상 설정을 부여했었다. 이렇게 캐릭터는 상상해서 만들지만, 그 안의 디테일은 관찰을 통해 얻는 편이다. 전라도 사투리를 쓸 땐 전라도에 사는 친구를 만나서 친구에게 받은 느낌을 연기로 전달한다.
10. 영문학을 전공했다고 알고 있다. 영문학도에서 어떻게 연기자로 전환하게 됐나.
지승현 : 영어는 어렸을 때 할리우드를 가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으로 전공했었다. 하하. MBC ‘히트’라는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벌써 10년 차가 됐지.(웃음) 어릴 때부터 연기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고 대학교 때도 연기 학원을 다녔다. 그러다 ROTC에 가게 됐고 전역 후 스물여섯 살 때부터 연기를 시작했다. 처음 시작할 땐 연기 전공이 아니라는 부담감이 있었다.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다.
10. 맨땅에 헤딩하는 고비를 잘 극복했기 때문에 10년이나 연기를 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어떻게 보면 배우라는 직업이 굉장히 미래가 안 보이는 직업인데, 그런데도 지금까지 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지승현 : 꿈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10살 때부터 연기자의 꿈을 꿨는데 아버지의 반대가 심했었다. 고등학교 때도 연기하겠다고 자퇴를 해서 죽도록 맞았지. 하하. 내 ‘꿈’이야 말로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나도 가끔은 현실의 한계를 느낄 때가 있다. 실제로 작년은 정말 힘든 해였다. 작품도 무마되고 자꾸 일이 풀리지 않아서 떡볶이집을 차릴까도 생각했다. 그래도 버텼지. 하루하루 버티고 아주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면서 고비를 넘겼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잖아. 그것만으로도 행복한데, 가족들의 응원까지 받으면 더 힘이 난다. 힘을 얻고 스스로 다짐하는 거지 “앞으로 나아가고 있어! 파이팅!”
10. 영화 ‘바람’이 첫 작품이었나.
지승현 : 사실은 두 번째 영화라고 해야 하나? 첫 번째 영화로는 ‘거위의 꿈’이라고 이완 씨가 주연을 맡았던 영화였는데 사정상 개봉은 못 하고 KBS에서 방송만 했었다. 이후에 ‘바람’을 찍었다. ‘바람’을 찍고도 단역 생활을 해왔다. 웬만한 드라마에는 한 번씩 지나갔을걸? 하하. 그땐 회사를 만나기도 전이었고, ‘바람’의 마니아 팬분들이 많이 계시긴 했지만 큰 이슈는 못 됐으니까.
10. ‘바람’을 기억하고 있다. 지승현이란 배우가 당연히 오랜 기간 연기를 해온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바람’ 인물들이 다 그랬잖아.
지승현 : ‘바람’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거의 첫 영화인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3년 차인 내가 경험자였지. 부산 배경 영화다 보니까 실제 부산에 계신 분들을 캐스팅했었다. 거의 95%가 부산 분들이었다. 그래서 더 사투리가 실감 났던 거였다. 나도 고향이 경상도이긴 하지만 내 고향 안동과 부산은 사투리가 사뭇 다르다. 그래서 나도 현장에서 사투리를 다시 배웠었다. 같이 했었던 배우들이 잘 되고 있는 것 같아서 기쁘다.
10. ‘바람’이라는 첫 작품과 ‘태양의 후예’를 비교해보자. 어떤 점이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는가.
지승현 : 음, 그땐 총각이고 지금은 아이가 둘 있는 아빠가 됐다는 거? 하하. 재밌는 점은 부산에서 ‘바람’을 찍을 땐 실제 거주지가 서울이었고, 서울에서 ‘태양의 후예’를 촬영할 땐 거주지가 부산이 됐다.(웃음) 연기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태양의 후예’를 기점으로 다양한 기회가 주어질 거라는 게 가장 큰 차이가 아닐까. 그 전에는 보여드리고 싶어도 기회가 없어서 못 보여드릴 때가 많았다. 영화도 엎어지고, 캐스팅도 안 되고. 달라지지 않은 점이 있다면 현장에 대한 내 간절함일 것이다.
10. 극 중 송중기의 대사처럼 ‘태양의 후예’로 지승현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다.
지승현 : 정말 감사하게 생각한다. 예전부터 이름을 알리고 싶었다. 인지도가 있어야 더 다양한 배역의 기회가 찾아온다고 생각한다. 제일 좋은 건 지승현보다는 배우의 캐릭터로 알려지는 것이다. 새로운 배역을 맡을 때마다 새로운 이미지로 기억해주시는 게 배우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번 ‘태양의 후예’에서 캐릭터로 많이 기억해주셔서 참 감사하다. 앞으로 더 좋은 연기로 보답해드려야겠지.
10. ‘태양의 후예’는 본인에게 어떤 작품으로 남을까.
지승현 : ‘태양의 후예’를 통해 신기한 경험들을 많이 했다. 실시간 검색어 1위도 해보고, 이렇게 주목도 받아보고, 감사한 일들이 많이 생겼다. 이 외에도 여러모로 뜻깊은 날들이었다. 잊지 못할 작품으로 남을 것 같다.
한혜리 기자 hyeri@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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