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장진리 기자]

우리는 흔히 사람 나이가 마흔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 사람의 얼굴이, 곧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을 대변해준다는 말이다. 배우 유재명의 얼굴에서는 그가 살아온 열정과 낭만의 세월의 켜가 그대로 묻어난다. 연기 한 길만 보고 살았던 올곧은 열정, 남이 아닌 내 기준에 맞춰 천천히, 좋은 삶을 살자는 진짜 낭만은 지금의 배우 유재명의 얼굴을 만들었다.

10. 어제 종방연으로 ‘응답하라 1988’의 모든 것이 정말 막을 내린 기분입니다. 어떠셨나요.
유재명: 모두가 아쉬워하고 고마워하고 감사해하는 자리였습니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우시는 분들도 계셨고요. 다시 보자, 파이팅 하자, 너무 감사한 자리였습니다. 다들 정말 고생 많이 하셨어요. 뒤로 가면서 더 일정들이 빡빡해졌고, 모두 잠도 많이 못 잤던 현장이라 다들 뭉클해 하더군요.10. ‘응답하라 1988’에 출연하게 됐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워낙 인기 작품이라 기분이 남다르셨을 것 같습니다.
유재명: ‘응답하라’ 시리즈가 유명하다는 것만 알고 있었고, 구체적인 것은 알고 있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저보다 회사 사람들이 훨씬 더 좋아했으니까요. 특히 후배 태인호 씨가 정말 좋아해줬습니다. 주위에서 너무 좋아하니까 오히려 얼떨떨한 기분이더군요. 미팅도 너무 빨리 끝났고, 더 보여드리고 싶은 것들도 있었는데 바로 하자고 하시니 캐스팅이 된 건가, 싶었을 정도였어요. 대본 리딩하고 나서야 진짜 하는구나 싶었습니다. 첫 방송 하고 나서도 출연 분량이 많지 않아서 인기를 실감하지 못하다가, ‘고스톱신’ 끝나고는 정말 폭발적인 반응이 왔어요. 실제로는 고스톱을 잘 못 칩니다. 성동일 선배님, 라미란 씨가 정말 잘 맞춰주셔서 멋진 장면이 완성될 수 있었죠. 그 장면 찍고 나서 어깨가 이틀 정도 아팠습니다(웃음).

10. 영화 ‘바람’을 인상 깊게 본 신원호 감독의 러브콜을 받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응답하라’ 시리즈에 나온 많은 배우들이 ‘바람’을 통해 캐스팅 된 것을 보면, ‘바람’이 효자 작품인 것 같습니다.
유재명: 부산에서 연극 활동할 때 찍은 작품입니다. 감독님이 절 정말 좋아해주셨는데, 제가 어떤 연기를 해도 좋아해 주셨습니다. 애드리브가 30% 정도 들어갔죠. 교련선생님 문학종과 과외선생님 1인 2역을 했는데, 교련 선생님일 때 너무 아깝다고, 한 신 더 하자고 해주셔서 우연히 1인 2역을 찍게 됐습니다. 당시에 정우, (손)호준이, 마이콜, 다 만나게 됐죠. 당시에 부산에 있는 한전, 동양생명 이런 회사 신입사원들에게 연기를 가르쳤는데 ‘바람’ 선생님 아니시냐고 의외로 많이들 알아봐주셨던 기억이 나네요. 그래서 신 감독님이 눈여겨 봐주셨던 것 같습니다. 인생이 참 묘한 게, 연결이 돼요. 이렇게 만난 분들에게 다 돌려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10. 현재 학생들에게 연기도 가르치신다고 들었습니다. ‘응답하라 1988’ 속 류재명 선생님과 실제 유재명 선생님은 어떻게 다를까요.
유재명: 극 중 시대적 배경은 80년대 후반입니다. 제가 92학번, 학력고사 시대인데, 정말 무서운 선생님 많았습니다. 맞는 게 일이었죠. 지금은 추억이 됐지만, 그 때는 나름대로 애정의 표현방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품 속 학주 류재명은 호통은 치지만 애정이 담보 돼 있는 현실감 있는 역할인 거죠. 실제 저는 큰소리도 못 치고, 옆집 삼촌 같은 선생님이랄까. 하자는 대로 하고. 전 친구들에게 공동창작형식으로 공연도 다 쓰게 만듭니다. 얼마 전에 공연 한 편을 마쳤는데 공연이 너무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쑥스럽지만 편안한 친구 같은 선생님입니다(웃음). 학주처럼 다이나믹하지 않아요. 조용하고 차분합니다.

10. 사담이지만 얼마 전 열애설이 크게 보도됐었습니다. 본인의 열애설이 연예면을 장식할 거라고 상상해 본 적이 있으신지요.
유재명: 편하게 말씀드렸는데 제가 결혼 안했다는 거에 놀라셨나 봅니다(웃음). 사실 제가 연애하는 것에 관심을 가지실까 생각했어요. 인지도가 많은 배우도 아니고, 유명한 여배우도 아니고, 뭐지 했습니다. 이후에 제가 연애하는 게 궁금하세요, 물어보기까지 했으니까요. 소 뒷걸음질 치다가 실시간 검색어에까지 오르고, 주위에서도 많이 놀라셨던 것 같은데 저는 오히려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연애하는 게 사실이고,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 게 사실이니까, 추억거리가 됐죠. 제 마음은 여전히 같습니다. 그 친구가 마음껏 연기를 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요. 응원 댓글도 많아서 그것도 감사할 뿐이죠.

참 요즘은 뭘 해도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부자들’도 통편집 됐다가 살아나고, 어떤 연기를 해도 좋아해주시고, 정말 감사할 뿐입니다. 사실 저는 연애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지금처럼 살아온 만큼 살아가고 싶다, 어떤 외부 환경이 닥쳐도 자유롭게 살고 싶다, 재밌게 살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10. 사랑에서도 낭만적이실 것 같아요.
유재명: 제가 인터뷰 한 만큼 살자는 생각이 드네요(웃음).

10. 재밌게 살자고 하셨는데, 재밌게 살려면 어떤 게 선행되어야 할까요.
유재명: 나이가 차면 결혼해야 하고, 돈을 벌어서 아파트를 사야하고, 그런 생각들을 하지 않습니까. 하지만 요즘은 현대인들이 직장을 버리고 귀농하시는 분들도 많아요. 자기가 주체대로 산다는 것이 재밌게 산다는 것 아닐까요. 저희는 좋은 작업을 많이 하면서 천천히,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맞추지 않고 우리가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기준에 맞춰서 살고 싶다는 생각입니다. 아주 조용히, 공기 좋은 곳에서 살 수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요.

10. 드라마의 배경인 1988년에 열여섯살이셨습니다. 어쩌면 유재명이 그 시절의 정환이고, 택이고, 동룡이 아니었을까요. 유재명이 기억하는 1988년은 어떤 추억인가요.
유재명: 스무 살 때 연극을 하고 나서 나머지 것들이 퇴색되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응답하라’ 하면서 동창들이 정말 연락이 많이 왔는데, 반이 몇 반인지 기억이 잘 안 나요. 스무살 때 연극을 시작하면서 연극에만 미쳤습니다. 동창들도 잘 안 만나고, 동창회도 안 나가고, 집, 극장, 술자리 이렇게만 살았죠. 뭘 한 게 없었습니다. 어느새 현실감이 없는 세계가 됐어요. 어느새 작품이 끝나고 또 다른 작품을 하게 되면 전작들이 기억이 안 날 때도 있으니까요.지금 기억나는 건 어머니가 장사를 하셨던 기억, ‘응답하라 1988’처럼 단칸방에서 어머니, 저희 형, 그리고 외할머니랑 살았는데 형과 티격태격 싸웠던 기억도 납니다. 당시에 부산 현대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어머니 장사 마치는 시간에 맞춰서 같이 들어가고 했었죠. 누구나 다 영화키드 세대가 있겠지만, 그 때가 제가 연기를 하게 된 자양분 같은 시간이 아닐까 싶습니다. 30살 때 잠시 올라와 영화팀을 만들었던 기억도 나요. 우리는 완주라는 의미에서 마라톤 필름이라고 지었는데, 빚만 잔뜩 지고 내려와 10년 만에 지금 다시 올라온 겁니다.

10. 쌍문동 5인방 중 누구와 가장 비슷하셨나요.
유재명: 굳이 꼽자면 동룡이는 아닙니다(웃음). 동룡이 같이 고민상담 해주고 주위에 그런 친구들은 많았죠. 정환이처럼 멋있고 시크한 애도 아니었습니다. 저도 홀어머니가 계셨으니까 선우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선우는 과묵하면서 많이 효자고, 근데 저는 효자가 아니었고(웃음). 그렇다고 노을이, 정봉이도 아니고(웃음). 그나마 선우와 가장 비슷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공부는 그렇게 잘 하지 않았고, 감수성은 조금 예민한 보통의 학생이었습니다.

10. 1988년을 보고 ‘응답하라’라고 한다면 그 당시의 무엇이 응답해 줬으면 좋겠는지요.
유재명: 개인적인 얘기기도 하지만, ‘응답하라’라는 작품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힘은 가족입니다. 저는 청소년을 가르치고 있는데, 청소년들은 생각보다 가족에 대해 훨씬 더 큰 외로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품은 가족에 대한 힘이 있고, 저 또한 그런 연기를 했지만, 국립대학교를 나온 것 빼고는 한 번도 효도다운 효도를 못해봤어요. 따뜻한 말 한 번 못해봤고, 안아드리지도 못했고, 경제적으로 도움도 못 드렸고, 예술적인 열정에 빠져서 거기에만 미쳐 살았습니다. 형과 형수님, 조카가 있는데 잘 연락도 못하고 살았어요. 형님은 장남이니까 경제적으로 책임감이 있고, 형수님도 마찬가지셨겠죠. 어머니는 형제 둘을 대학까지 보내고 얼마나 힘드셨을까요. 당시 저희 집에는 세탁기도 없고, 짤순이밖에 없었어요. 어머니는 집에 와서 빨래하고, 일어나서 장사하고 그런 삶을 사셨죠.

전 대학가서 연기하고 집도 절도 없이 돌았는데, 이제 ‘응답하라’로 인기를 얻었고, 내 연기를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니까 내가 가족한테 뭘 했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드라마가 제 삶을 돌아보게 해 준 것 같아요. 곧 설인데 제가 서울에 와서도 가족들을 잘 못 챙겼습니다. 어머니가 지금도 장사를 하시는데 이웃 아주머니들이 너무 좋아하신다고, 그래서 시장에 가서 한 번 쫙 돌아드리려고 합니다(웃음). 이제야 인생이 뭔지 알 것 같습니다. 죄송하다는 말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감사하다는 말도 마찬가지고요. 이제는 해야겠습니다. 또 무조건 해야 할 때고요.

10. 분위기를 조금 전환해 볼까 합니다. 아들 동룡이, 이동휘 씨와의 호흡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요.
유재명: 처음 만났을 때 이 친구가 감각적인 연기를 했던 걸 영화에서 많이 봤습니다. 생각보다 나이가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고요. 첫 만남에서 동휘 씨 팬이라고 했습니다. 첫 촬영부터 애들을 신나게 때리는 신이었어요. 그걸로 오디션을 봤었죠. 의정부 세트장에 도착을 해서 동휘 씨한테 좀 세게 때리겠다고 했더니 세게 때리라고 해요. 진짜 세게 때리니까 난리가 났습니다(웃음). 연기를 같이 하는데 뭘 해도 받아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동룡이 덕을 좀 본 것 같습니다. 부자케미가 있었죠.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정말 리얼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상한 아버지도 많았겠지만 이런 아버지도 있으니까, 두 부자의 케미를 재밌어 해주신 것 같습니다. 다른 친구들이랑도 많이 만나고 싶었는데 그런 점은 아쉽습니다. 고경표 씨도 그렇고, 형님이랑 신이 많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해주더라고요.

10. ‘응답하라 1988’ 촬영은 어떠셨나요.
유재명: 과외하는 신은 지문에 교주처럼, 이라고 나와 있었습니다. 시원하게 읽어드렸더니 정말 좋아하셨죠(웃음). 찍을 때는 그렇게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댈지 몰라서 당황했는데, 찍은 결과물을 보니 정말 재밌더군요. 정말 감독님이 하자는 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입니다. 감각적으로 아시는 분이에요. 처음에 찍을 때는 왜 이렇게 가깝게 찍지, 했는데 과감하게, 더 시원하게 연기해달라고 해서 열심히 했던 기억이 나는데 결과물을 보니 다르더라고요.

극이 중반 정도로 흘러가면서 동룡이 엄마가 나오나, 제 역할은 어떻게 흘러갈까 궁금하기도 했는데 쌍문동의 일원으로서 꼼꼼히 챙겨주시는 걸 보면서 초반의 욕심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도 오히려 놓게 됐습니다. 감독님이 제 연기를 좋아해주신다는 걸 스태프들을 통해서 많이 들어서 주어진 대로 최선을 다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 기억나는 건 고스톱신에서 ‘못 먹어도 고’를 외치면서 오두방정을 떨면서 춤을 추는 거였는데 편집실에서 보니까 정말 미친 놈처럼 춤을 춰요(웃음). 다시 추래도 아마 못 출 겁니다. 추억거리가 생긴 거죠.

10. ‘응답하라 1988’의 인기 비결이 무엇이라 보시나요.
유재명: ‘응답하라 1988’이 참 대단한 게 누구나 다 어려움과 쓸쓸함과 삶의 서러움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지나갔던 것들이 생각이 나나 봅니다. 첫사랑, 친구들 이런 것들이요. 드라마가 하루하루 현실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과거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비상구가 되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제 친구가 19화 ‘당신은 최선을 다했다’를 보고 나서 왜 아버지한테 다정하게 못 했을까, 페이스북에 글 쓴 걸 보니 눈물도 나고, 남편 찾기의 재미도 물론 있었겠지만, 그런 점에서 잘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요.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타임머신을 타고 가서 빡빡한 삶에 위로가 되는 그런 드라마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포장마차신이 기억이 많이 납니다. 90년대 초반에 선배들 따라 포장마차에서 술 참 많이 먹었었는데, 드라마에서 포장마차를 보니 저기에 꼭 끼고 싶다는 생각이 막 들었어요. 아버지들끼리 술 마실 때 정말 끼고 싶었습니다. 인생 얘기 하고, 붕어빵 노란 봉지에 사서 가지고 가고, 일요일에 목욕탕 함께 가고, 저녁에 코미디 프로 보고, 이런 것들. 모두 그리움 투성이네요.



10. ‘응답하라 1988’ 출연으로 이루고 싶은 성과가 있으셨을 것 같습니다.
유재명: 연기를 마음껏 하고 싶었습니다. 그 전에도 정말 많은 작품을 했지만 메인 포스터에 얼굴이 올라가는 역들은 없었으니까요. 단역은 연기가 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겠죠. 단역이라도 물론 주어진대로 열심히 했지만 메인 가족들 중 하나로 나오게 됐으니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걸 더 마음껏 보여드리자는 생각이 있었고, 최선을 다해서 보여드린 것 같습니다.

10.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 있으시다면요.
유재명: 지금 이 순간(웃음). 저는 의외로 알싸한 외로움이 좋습니다. 기분 좋은 쌀쌀함이랄까. 공기는 차가운데 쌀쌀한 느낌, 가만히 있는데 참 좋습니다. 음식으로 치자면 진수성찬이 아니고, 정성들여 만들었지만 좋아하는 한 두 사람과 함께 맛있다, 하면서 먹는 느낌이랄까요. 지금은 얼떨떨한 느낌입니다. 좋긴 하지만 저는 적당히 내 작업을 계속하는 느낌, 많지도 적지도 않은 느낌, 그런 걸 행복이라 느끼는 것 같습니다.

제가 원하는 행복은 외적인 기준이 아니라 제 안에서 만들어지는 기분 좋은 쓸쓸함입니다. 그런 걸 하나씩 알아갈 때 행복을 느끼죠. 정신없이 살 때 놓치고 사는 것들을, 아직 실천하지 못했지만 깨닫게 되는 순간, 알게 되는 순간, 그 순간이 바로 행복합니다. 어쩌다 어른이 됐지만 나쁘지 않게 살고 있다는, 내 길을 추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죠. 인터뷰 하는 만큼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제가 후배들한테 내 연기가 재수 없으면 뒤통수를 때려줘, 라고 했는데 요즘 인터뷰가 너무 재밌습니다. 제가 한 말을 지키고 싶거든요. 인터뷰를 보고 너무 멋있는 척 했나,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간직했던 말들이야 하는 것들은 메모해두기도 합니다. 멋있는 척 해서 괜히 했나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지만 말입니다(웃음). 실천 못하고 있으니까 실천해, 인터뷰 했던 것들 다 실천해, 스스로에게 이런 생각, 다짐들도 들고요.

10.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참 낭만적인 배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유재명: 제 주위에 있는 형들이 ‘낭만병 좀 버려. 전쟁 같은 곳인데 살 좀 빼고 피부 관리도 하고, 치고 나가서 해야 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제 저도 40중반을 달려가는지라 살고 싶은 대로 살래요, 라고 합니다. 내 일 봐주시는 분들 얘기만 잘 들으면 되지(웃음). 연기자가 유명해진다는 건 참 좋은 겁니다만, 아직은 유명한 배우보다는 좋은 작품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큽니다. ‘응답하라 1988’ 나오는 친구들 너무 유명해졌고, 배우로서는 너무 좋을 겁니다. 이건 최민식 선배님이 하신 얘기인데, 닥치는 대로 해봐야 한다, 싸워도 보고, 살도 쪄봐야 한답니다. 다 알아서 잘하겠지만 요즘은 젊은 배우들이 너무 어릴 때부터 관리 되니까, 선배님의 말을 빌려서 하자면 인생을 마음껏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좋은 배우는 좋은 삶, 건전하고 도덕적인 삶이 아니라 예술적인 열정이 있는, 그런 열정을 놓지 않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10.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바쁜 새해를 보내셨을 것 같습니다. 새해 소원이 있다면요.
유재명: 연기하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게 별로 없어요. 하루하루 열심히는 살았는데 이제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 건강을 챙겨야 할 것 같고, 고집이 세지는 나이니까 주위 절 아껴주는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들어야겠습니다. 또 좋은 작업, 내가 만족하는 작업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들이 웃을 수 있는 작업들을 하나씩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건강, 가족들, 그리고 제가 잘 못했던 분들에게 표현하기, 그 외에는 제가 살아온 대로 살아가는 것이 소원입니다.

장진리 기자 mari@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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