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정시우 기자]

“연기로는 도저히 깔 게 없다” 좀 과격한 표현이긴 하지만, 인터넷 상에 돌아다니는 이 말은 아마도 배우 이병헌의 지금을 가장 정확하게 짚은 표현이지 않을까 싶다. 영화 외적으로 부침이 있었던 이병헌은 ‘배우는 결국 연기로 말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영화 ‘내부자들’을 통해 증명해 보인다. ‘내부자들’ 러닝타임 130분. 130분 내내 이 배우가 지닌 연기적 재능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기란 힘들다. 이는 단순히 ‘연기를 잘 했다’는 1차원적인 의미에 머물지 않는다. 이전에 본 적 없는 ‘뉴타입’의 악역을 능구렁이처럼 펼쳐 보였다는 점에서 그의 연기는 분명 특기할 만한 지점이 있다.

Q. 영화에 대한 평이 상당하다.
이병헌: 나도 그렇고 (조)승우도 그렇고, 걱정을 굉장히 많이 했다. 완성되지 않은 버전을 기자시사회 전에 봤었다. 음향, 음악, 화면이 다 만들어지지 않은 상태여서 그랬을까. 캐릭터도 안 살고, 힘도 안 느껴지고, 유머도 별로처럼 보였다. 승우도 전화로 “형, 이거 어떡하냐” 그러고.(웃음) 기운이 쪽 빠졌다. 그런데 기자시사회 때 보고 ‘어? 이거 되게 힘 있게 끝나는데?’ 생각했다. 승우도 “형, 재미있는데?” 하더라.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때도 그랬다. 류승룡이 영화 끝나고 “야, 담배 한 대 피우러 가자” 해서 나갔더니 얼굴이 벌겋게 상기돼서 “좋~다!”고 했다. “재미있었냐?”고 하니까, “너무 좋은데?” 그랬다. 그때도 그 말을 듣고 안도했는데, 승우가 좋다고 얘기해줘서 한 시름 놓았었다.Q. 기자시사회 때 느낀 감과 흥행 결과와 맞아떨어지는 편인가.
이병헌: 그런 편인데, 이번 ‘내부자들’ 기자간담회 때는 조금 달랐다. 뭔가 분위기가 느껴져야 하는데, 안 느껴졌다. 더 긴장 될 수밖에. 그런데 간담회 끝나고 배급사 관계자분이 기자 분들 트위터 평을 보여줬다. 거짓말처럼 좋았다. 그때부터 편해졌던 것 같다.

Q. ‘이병헌이 이번에 작정하고 나왔다’는 시선이 많더라.
이병헌: 그런 질문을 종종 받는다. 이 악물고 한 것 같다고. 그런데 그렇게 하면 못한다, 연기를. 어깨에 힘만 잔뜩 들어가게 되거든. 게다가 극중 안상구(이병헌)는 나사 하나가 빠진 듯한 인물인데, 힘을 주면 어떻게 한바탕 놀겠나. 자유로운 마음상태가 되려고 노력했다. 감독님에게 ‘안상구 캐릭터를 관객들이 쉬어갈 수 있는 인물로 만들자’고 제안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극 중 인물들이 다들 너무 똑똑하고, 빡빡하게 말을 잘 하니까 쉬어갈 곳이 없더라. 우리끼리는 촬영 때 “이건 액션영화가 아니라 구강액션”이라고 농담을 할 정도였다니까.(웃음)

Q. 안상구는 믿었던 이에게 배신을 당한 후 복수를 꿈꾸는 인물이다. 조직의 배신은 ‘달콤한 인생’(2005)에서도 당한 적이 있다. ‘달콤한 인생’의 선우(이병헌)와 안상구 중 누구에게 더 연민이 가나.
이병헌: 선우.(웃음) 선우는 본인이 왜 파국으로 가는지 모르면서 끝까지 가는 인물이었다. 어쩌면 그 이유를 찾으려고 끝까지 달린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 연민이 간다. 그리고 뭐랄까. 선우는 남자들의 판타지 같은 인물이지 않나. 그래서인지 나쁜 놈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깡패지만 나쁜 짓은 안할 것 같은 깡패 말이다. 반면 안상구는 덜 떨어지기는 했지만 나쁜 짓은 무지하게 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인물이다.(일동웃음) 현실에 발 붙어있는 깡패니까. 그래서 연민은 선우에게 더 간다. 인간미는 상구가 더 있지만.
Q. 안상구는 당신의 필모그래피에 두고 보면 악인의 위치에 놓일 수 있는 인물이다. 본격적으로 악역 연기를 한 것은 나쁜놈을 연기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때였다. 이후 연기한 ‘협녀, 칼의 기억’(2014)의 악역 유백은 과거의 사랑에 대한 죄책감으로 혼란에 빠져 살아가는 인물이었다. 이번 안상구도 그렇고, 모두 악역이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마음이 가는 악역들이었다.
이병헌: 악역인데 악역 같지 않은 모호함을 느끼셨다면, 내가 그 캐릭터에 설득 당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다. 내가 설득 당하지 않은 상황에서 악역을 연기하면 수박 겉핥기 밖에 안 된다. ‘놈놈놈’ 나쁜놈의 경우 절대 악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절대악을 연기하더라도, 마음속으로는 이 인물이 왜 저러는지에 대한 나름이 타당성을 느끼고 출발했다. 자존심 세고 상식적이지 않은 인물이라도, 나만의 타당성을 만들어주면 연기할 때 편하니까.

Q. 우장훈 검사를 연기한 조승우 씨와의 호흡이 상당하다. 어제 조승우와 밤늦게 까지 술을 마셨다고 들었다. 극 안에서도 밖에서 죽이 잘 맞는 것 같다.
이병헌: 이 영화를 통해 절실하게 느낀 건 ‘조승우는 정말 좋은 배우구나, 정말 잘 하는 배우구나’다. 사실 나는 뮤지컬에 별로 관심이 없다. 그래도 함께 작업하기로 한 파트너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서, 촬영 전에 승우 공연을 보러 갔었다.

Q 뭘 봤나?
이병헌: ‘헤드윅’. 보고나서 깜짝 놀랐다. ‘뭐, 저 딴 놈이 다 있나’ 싶었다. 왜 ‘조승우 조승우’ 하는지 알겠더라. 촬영장에서도 ‘역시나’였다. 순발력이 굉장하다. 내가 애드리브를 하면 질새라 탁 받아치고, 서로 주고받는 맛이 있었다. 얼마 전에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를 보고 왔는데, 다음 작품 때도 가 볼 생각이다.Q. ‘내부자들’은 사람이 남은 영화이기도 하네.
이병헌: 맞다. 안 그래도 그런 생각을 했었다. 이 영화가 나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까에 대해. 영화 자체의 의미도 있겠지만, 좋은 친구 하나가 생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큰 영화다.

Q. 안상구는 개성이 굉장히 뚜렷한 인물이다. 안상구에 이병헌은 얼마나 녹아 있을까.
이병헌: 비슷한 점이라면, 빨리 먹는 거?(웃음)


Q. (웃음) 한 손으로 라면을 먹는 신이 상당히 리얼했다. 애잔하기도 했고.
이병헌: 굉장히 처량한 신이라고 생각했다. 라면을 먹다가 뜨거워서 뱉는 것은 애드리브인데, 왠지 처량하지 않나. 그래도 라면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는 그 길이 안상구에게는 유일하게 행복한 시간일 거라 생각했다. 사실 뱉은 라면을 다시 마시는 걸 연기하면서 ‘아, 이 장면은 터지겠다’ 싶었다. 너무 웃겨서 5번인가 NG도 냈다. 그런데 ‘뻘쭘’하게도 현장에서 스태프들이 안 웃더라, 기자시사회 때도 반응이 별로 없어서 아쉬웠다.(웃음)Q 빵 터지는 건 모텔 화장실 통유리 신이다. ‘광해’에서는 이동식 변기 장면으로 웃음을 주더니…(웃음)
이병헌: 하하하. 내가 가장 원초적인 걸 좋아하나보다.(일동웃음) 그 신은 내가 제안한 건데, 화장실 벽이 통유리로 돼 있으면 재미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촬영장에 갔더니, 반만 유리로 가려져 있더라. “내가 생각한 건 통유리인데…” 했더니, 스태프들이 통유리 작업을 다시 하기 시작했다. 통유리가 완성되기까지 네 시간이 걸렸는데, 그 시간 동안 부담이 점점 쌓여갔다. 나 때문에 다들 고생하는데, 재미없으면 어떡하나 싶었거든.

Q. ‘광해’에서도 그렇고 코믹 본능이 있는 것 같다.
이병헌: ‘광해’의 경우 대본 자체에 코믹한 면이 많이 나와 있었다. 거기에 유머를 조금 가미한 경우다. 반면 처음 본 ‘내부자들’ 시나리오에서의 안상구는 유머코드가 거의 없는 인물이었다. 복수에 혈안이 되어 있는 전형적인 정치 깡패라서 재미가 없었다. 안상구 캐릭터를 조금 다르게 표현하느라, 현장에서 고민을 꽤 했다.

Q. 고백하자면, 개인적으로 우민호 감독의 전작(‘파괴된 사나이’ ‘간첩’)들을 재미있게 보지 못했다.(웃음) 그래서 영화를 보기 전까지 ‘내부자들’에 대한 의심을 조금 가지고 있었다.
이병헌: 우민호 감독의 전작을 보지 못했는데, 한 가지 믿음이 있었다. 시나리오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걸 쓴 사람이 연출할 사람이라는 거. 그러니 누구보다도 이 감성을 잘 표현할 사람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있었다. 그래서 전작이 어떻게 됐든, 그 믿음으로 가 보자 했다.Q. 개봉을 앞두고 엔딩을 재촬영해 궁금증을 낳은바 있다. 촬영이 끝난 지 1년여 만에 다시 촬영하는 게 굉장히 드문 일이지 않나. 진짜 이유가 궁금하다.
이병헌: 기존에 찍은 엔딩은 내가 교도소에서 나오는 신이었다. 안상구가 나오면 우장훈 검사가 “어이, 깡패야!” 하면서 맞이하고, 둘이서 낄낄거리며 이야기 하다가 “밥이나 먹으러가자” 하고 웃으며 끝난다. 거기에는 ‘모히또, 몰디브’ 이런 것도 없다.(웃음) 엔딩 장면 중 하나에 CG합성이 있었는데, 그게 후졌나 보더라.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신인데 CG가 후져버리니까, 다시 찍자는 이야기가 나온 거지. 재촬영 시점이 내가 할리우드 영화 ‘황야의 7인’을 막 끝냈을 때여서, 얼굴이 굉장히 시커멓게 타 있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더라. 이빨 밖에 안 보인다고.(웃음) 그래서 왜 극중에서 우장훈 검사가 안상구에게 그러지 않나. “콩밥이 몸에 좋긴 한가봐? 얼굴이 아주…. X같네”라고. 그게 승우 애드리브다. 내 얼굴을 보고 그런 애드리브가 자연스럽게 나온 거지.(일동 웃음)


Q. 3시간 40분짜리 편집본이 굉장히 잘 나왔다고 들었다.
이병헌: 3시간 40분 감독판은 지금보다 더 잔인하다. 잔인하거나 무서운 걸 잘 보는 나도 그건 좀 힘들더라.(웃음) 정말 토 나온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잘 돼서 감독판이 나왔으면 좋겠다. 캐릭터가 훨씬 더 입체적이라, 캐릭터 보는 맛이 분명 있을 거다.

Q. 필모그래피를 보면, 새삼 당신의 작품 선택에 놀라게 된다. 장르도 출연 영화의 규모도 다채롭다. 한 쪽 방향으로 치우치지 않은 선택들을 해 온 셈이다.
이병헌: 장르적인 선호나 거부감 같은 건 특별히 없다. 선택의 기준은 무조건 시나리오의 재미다. 그걸 첫 번째로 둬서 그런지 내가 봐도 작품선택이,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생각 없어 보이기도 한다. 어떨 때는 하얀 닌자로 나왔다가, 무협물에서 하늘을 날았다가.(웃음)

Q. 계획적이라기보다는 감으로 움직인다는 의미인가.
이병헌: 맞다. 즉흥적이다.

Q. 새로운 도전에 대한 열망 같은 게 있을 것 같은데.
이병헌: 새로우면서 내 마음을 울리는 작품이면 너무나 이상적이겠지. 그러면 최고겠지만 늘 새로운 것만 찾지는 않는다.

Q. 그렇다면 ‘내부자들’은 어떤 것이었나.
이병헌: 사실 선택하고 촬영할 때에는 그다지 새롭다는 느낌이 없었다. 그런데 반응들이 새롭다는 쪽이 많았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찍을 생각을 했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도 있었고. 생각해보니, 내게 사회 비리를 고발하는 영화는 처음이더라. 사투리 연기도 처음이고. 망가지는 모습을 의아해 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그런 몇몇 측면들이 더해져서 새롭게 다가간 게 아닐까 싶다.

Q 망가지는 모습을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있다고 했는데, 사실 오래 전의 당신은 편하게 망가져 주는 남자였다. 무슨 작품이지? ‘캠퍼스 오빠’ 같은 편한 느낌도 있었는데….
이병헌: 아, 드라마 ‘내일의 사랑?’(1992)

Q. 맞다! ‘내일은 사랑’(웃음)
이병헌: 그렇지. ‘해피투게더’(1999)에서는 거침없이 망가졌었고.



Q. 그때는 오히려 ‘진지한 이병헌’이 대중들에겐 더 낯설지 않았을까 싶다.
이병헌: 그럴 수 있겠다. 그 말이 진짜 맞는 게, ‘내일은 사랑-해피투게더’의 캐릭터가 나와 가장 비슷한 모습인데, 그런 내 성격을 모르시는 분들은 ‘광해-내부자들’을 보고서 “망가지는 역할이 많이 부담스럽지 않으세요?” 한다. 심지어 기자 분들도 물어본다. 그러면 “그게, 원래 저예요” 하고 싶은데, “거짓말하고 있네” 하실까봐 그냥 “저에게 그런 면도 있어요” 하고 만다.(웃음) 그럴 땐 내가 그동안 진지하고 심각한 영화만 했었나, 싶어진다.

Q. 한동안 친근한 캐릭터가 뜸하긴 했다. 현실에 착지한 인물보다 묵직한 캐릭터를 많이 했었는데, 그때는 남성적인 인물들에 끌렸던 건가.
이병헌: 이런 것도 있다. 영화에도 어떤 유행이 있는 것 같다. 지금은 ‘내부자들’ 같은 사회비리고발을 다룬 시나리오들이 많다. 그럼 나에게 들어오는 시나리오도 그런 게 많을 수밖에 없다. 다른 장르를 하고 싶어도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 생기는 거다. 멜로 한편 들어오고, 코미디 한편 들어오고, 액션이 한편 들어오면 선택의 폭이 넓어지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 시대를 점령하는 영화들이 있는 셈인데, 아쉽다면 아쉬운 부분이다.

Q. 2009년 ‘지.아이.조’를 통해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이후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활동 중이다.
이병헌: 우선순위를 고르라면 당연히 한국이다. 할리우드는 나에게 주어진 부수적인 느낌의 선물이랄까. 여전히 많은 벽이 있기도 하고. 연기를 외국 배우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하는 게 아니라, 어떤 핸디캡을 가지고 하는 거니까. 가령 ‘내가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서 관객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를 깊이 있게 연구하는 게 아니라, ‘지금 내 발음이 어땠을까’하는 아주 1차원적이 것들에 대한 질문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상대 배우가 속으로 ‘야 인마! 너는 가서 언어나 더 배우고 와’라고 생각하면 어쩌나 싶기도 하다. 그런 부끄러움이 있기에 당연히 한계도 느낀다.

Q. 한계라고 하기엔, 출연 작품 등이 상당하다. 할리우드 내에서의 위상 변화도 느낄만한데.
이병헌: 희망적인 건, 내년 개봉한 ‘미스 컨덕트’와 ‘황야의 7인’에서는 굳이 동양인이 아니어도 되는 캐릭터들을 연기했다는 점이다. 알 파치노와 함께 연기했다는 것도 크고. 그는 나에게 아이돌이거든. 지금 들어오는 시나리오들도 동양인이 아니어도 되는 캐릭터들인 걸 보면, 이젠 그들이 ‘동양사람 이병헌’을 보는 게 아니라 ‘배우 이병헌’을 보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 부분은 정말 고무적이라고 생각한다.

Q. 공감한다. 사실, 우리나라 배우들이 미국에 진출하는 방식에 살짝 아쉬움이 있었다. 연기파 배우들도 미국에만 가면 액션 배우가 돼 있는 경우가 많았으니까. 예외도 있지만.
이병헌: 그런데 액션을 한다고 해서 나쁘게만 볼 필요는 없다. 미국에서는 액션배우를 최고로 쳐 준다. 탐 크루즈도 액션 배우다. 007의 다니엘 크레이그도 액션 배우이고.

‘달콤한 인생’ ‘악마의 보았다’ ‘광해’에서의 이병헌

Q. 그 부분에 있어 상당히 열려 있네.(웃음) 앞으로의 할리우드 계획은 어떻게 되나.
이병헌: 아직 확정은 안 났지만 내년엔 한국영화 1-2 편, 할리우드 영화 1-2 편을 하지 않을까 싶다. 지금 보고 있는 게 있긴 한데, 시간 적인 게 아쉬울 때가 많다. 아직까지 할리우드에서는 “저, 촬영이 있으니까 촬영 한 달만 미뤄줄 수 있어요?”라고 못하거든.(웃음) 한국이야 융통성이 있고, 인간관계의 정도 있고, 또 내 짬밥도 없지는 않기 때문에 들어주기도 하는데, 할리우드에서는 아직 ‘짤’ 없다.(일동 웃음)

Q. 당신 영화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세 편을 추천 한다면?
이병헌: 음. ‘달콤한 인생’ ‘악마의 보았다’ ‘광해’

Q. 오, 김지운 감독 영화가 두 편이나 되네.(웃음)
이병헌: 왜, 배우들은 자기 옛날 모습을 보는 걸 민망해 하지 않나. 영화적으로만 따진다면 ‘공동경비구역 JSA’(2000)를 가장 보여주고 싶을 수도 있다. 너무 훌륭한 영화니까. 그런데도 내 연기는 별로 보여주고 싶지 않은 거지. 낯 뜨거워지는 것보다는 내가 잘 한 걸 보여주고 싶은, 그런 마음인 거다.

Q. ‘악마를 보았다’의 경우 관객 호불호가 굉장히 갈린 영화였다. 추천하고 싶은 이유가 뭔가.
이병헌: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하는 영화다. 사담인데, 미국 사람들이 ‘악마를 보았다’를 어마어마하게 좋아한다. 그들이 얘기하길, 이야기의 다음이 예상 안 된다고 하더라. 예측을 불허한다고. 상대를 반쯤 죽인 다음에 풀어주고, 다시 반쯤 죽인 다음에 풀어주고… 플롯을 굉장히 놀라워한다.

Q. ‘내부자들’ 개봉에서 가장 걸렸던 것 중 하나가 언론 인터뷰이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이 인터뷰가 마지막인데, 지난 3일간의 인터뷰는 어땠나. 생각보다 힘들었을 수도, 나름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이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이병헌: 첫걸음이 되게 힘든 것 같다. 이유가 어찌됐든, 이 영화를 찍고 참여한 배우로서 내 의무를 다 하자라는 생각으로 어렵게 나왔다. 이렇게 입을 열고 마주보고 얘기하니, 마음이 뭐랄까. 조금 편해진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제공.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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