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정시우 기자]
조수향이라는, 심상치 않은 연기력을 지닌 20대 여배우가 있다는 소식은 일찍이 들었다. 2014년, 영화 ‘들꽃’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신설된 ‘올해의 배우상’을 거머쥔 주인공.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김희애로부터 “이 배우를 보며 큰 자극을 받았다”는 특급칭찬을 받은 배우. 그리고 1년. ‘들꽃’의 정식개봉에 맞춰 만난 영화 속 조수향은 소문대로였다. 스크린 속에서 그녀는 고독을 껴안은 채, 고독 밖으로 열심히 달려 나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조수향은 ‘들꽃’ 같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다. 유약해 보이는 외양과 달리, 말투 하나 눈빛 하나 걸음걸이 하나하나에서 강인한 에너지가 배어나온다. 수향이라는 자신만의 향을 품은 조수향을 잠시 멈춰 세웠다.
Q. 첫 주연작 ‘들꽃’과 첫 상업영화 출연작 ‘검은 사제들’이 같은 날 개봉(11월 5일)했네요.
조수향: 그러니까요. 조금 신기해요.
Q. ‘검은 사제들’에서는 김윤석 씨와 호흡을 맞췄는데, 어땠나요.
조수향: 대선배님이라서 처음에는 살짝 걱정됐어요. 무서우면 어쩌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편안하게 잘 챙겨주셨어요. 선배님 덕분에 익숙하지 않은 상업영화 현장이 낯설지 않았던 것 같아요.Q. ‘들꽃’으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어요. 올해에도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죠? 개폐막식에 모두 참석하고, ‘부일영화상’ 사회도 본 걸로 알아요. 전년도 수상자에 대한 환대가 상당한 느낌이었어요.(웃음)
조수향: 네. 너무 반갑게 맞아줘서 마음이 편한 게 있었어요. 다만 올해에는 작품으로 간 게 아니어서, 뭐랄까… 조금 이질감도 들더라고요. 작년에는 ‘들꽃’ 팀들과 함께 가서 그런지, 영화제가 축제 같은 느낌이 있었거든요. ‘다음에는 꼭 작품을 들고 와야지’ 생각했어요.
Q. ‘들꽃’에서 실제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어요. 연기도 그렇고, 뭔가 상당히 리얼한 느낌이 컸어요.
조수향: 영화 촬영 들어가기 반년 전부터, 감독님-배우들과 거의 매일 만나서 술을 마셨어요. 작품과 캐릭터 얘기도 하고, 사는 얘기도 하면서 굉장히 친해졌죠. 그렇게 오랜 시간 캐릭터에 몸을 담고 있다 보니, 현장이 굉장히 자유로웠어요. 캐릭터를 머리로 이해한 게 아니라, 그냥 몸이 기억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Q. 작품 자체가 좀 어두워요. 몸이 캐릭터를 기억할 정도면 굉장히 푹 빠져 있었다는 의미인데, 우울하지는 않았나요?
조수향: 저는 정말 재미있었는데, 보는 분들은 안 그랬나 봐요. 촬영 중에도 스태프들이 걱정을 하더라고요. “괜찮으세요?” “네. 괜찮은데요?” “조증, 있으신 건 아니죠?(웃음)” “진짜 괜찮아요.” 그런 대화들을 꽤 했어요. 하하하.Q. 뭐랄까. 강단이 있는 것 같아요.
조수향: 음… ‘들꽃’ 찍을 때는 강단 있게 했던 것 같아요. 다시 찍으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영화를 보면, ‘내가 어떻게 저렇게 연기했지’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Q. 그땐 어떤 마음으로 찍었길래요?
조수향: 그땐, 다른 건 생각 안했어요. 가령 이 작품으로 데뷔를 하고, 이 작품으로 앞으로 뭘 해야지 하는 게 없었어요. 그냥 감독님이 좋고, 작품이 좋고, 배우들도 다 좋으니까 ‘나만 잘 하면 되겠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시 삶이 굉장히 척박했어요.(웃음) 영화에 등장하는 허름한 여관이 촬영 중 실제 숙소였는데, 바퀴벌레가 나오고 그랬어요. 그런데 사람 적응력이 무섭다고, 그렇게 살다보니까 다른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는.
Q. ‘들꽃’은 자연스럽게 온 기회였나요?
조수향: 오디션을 봤어요. 그때가 대학 졸업(동국대학교 연극학과)하고 대학로에서 연극을 할 때였죠. ‘옐로우 슈즈’ ‘햄릿 레퀴엠’을 연달아 했었는데, 그때 너무 힘들었어요. 내가 세상의 주인공 인줄 알고 졸업을 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여러 가지 이유로 자존감도 낮아져 있었죠. 뭔가 풀 곳이 필요한데, 풀려면 또 돈이 들잖아요? 술이라고 마시려면 술값이 필요하고.
Q. 술은 또 술을 부르고요.(웃음)
조수향: 네. 친구들에게 매일 얻어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고립되더라고요. 그 와중에 ‘들꽃’ 오디션 공고를 봤어요. 캐릭터 설명을 보면서 ‘이건 내가 한 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에 찍었던 단편과 함께 메일을 드렸는데 감독님이 굉장히 빠르게 오디션을 보자고 응답해 주셨어요. 그렇게 ‘들꽃’을 운명처럼 만났죠. 여름에 캐스팅 돼서 그 다음 년도에 영화를 찍었어요. 그 사이 감독님-배우들과 술 마시고 맛 집 가고. 준비 기간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어둠 속에서 빛을 본 느낌이랄까. 더 끈끈해 질 수밖에 없었죠.
Q. 다소 어두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수향 씨에게 ‘들꽃’이 밝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었군요.
조수향: 네. 그래서 저는 너무 행복했던 거예요. 저를 배우라고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있고, 같이 달릴 동료가 있고, 내 가능성을 봐 주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술도 마음껏 마시고.(웃음)
Q. 술, 잘 마시나 봐요?
조수향: 하하. 요새는 잘 못 마시는데, 그때는 두 병 정도? 촬영이 끝나면 새벽이에요. 문 연 곳이 별로 없다보니 감자탕집이나 뼈다귀해장국집에 가서 한잔 하고, 해 뜨면 자고, 어두워지면 어슬렁어슬렁 나와서 촬영하고 그랬어요.(웃음) 덕분에 길바닥 냄새가 영화에 더 잘 나온 것 같아요.Q. 졸업하고 힘들었다고 했는데, 그 전에는 어땠어요?
조수향: 대학 때도 힘든 건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그때는 제가 설 수 있는 무대가 있었어요. 매년 기본으로 두 편의 공연은 할 수 있었고요. 그런데 그땐 그 고마움을 몰랐어요. 관객의 소중함도, 내가 설 수 있는 무대가 있다는 것의 소중함도.
Q. 한해의 굉장히 많은 연극/영화과에서 연기지망생들이 쏟아져 나오죠. 하지만 오랜 시간 배우의 길을 걷는 친구들은 그리 많지 않아요. 수향 씨 동기들은 어때요?
조수향: 아직은 연기하는 친구들이 꽤 있어요. 여자 친구들 같은 경우, 일찍 방향을 튼 경우도 많고요. 사실, 저도 요즘 고민을 많이 해요. ‘내가 이걸 왜 했을까’라는 생각.
Q. 뭐가 그렇게 힘들게 해요?
조수향: 여배우에게 요구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몸매 관리도 해야 하고 피부 관리도 해야 하는데 저는 그런 거 잘 못하거든요.(웃음) 집에서 멍 때리고 있다가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떠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지금은 운동하고 관리하고 팩하고. 가끔씩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싶기도 해요. 그리고 제가 어떻게 보면 사회초년생이잖아요. 어떤 방향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인생이 달라지는 시기죠. 그러다보니 괜히 생각이 많아요. 가을이고 낙엽이 떨어지고 찬바람이 부니까 마음도 괜히 시리고요.Q. 조금은 의외의 말이네요.(웃음) 연기 하는 걸 보면, ‘이 길 밖에 모르는’ 욕심 많은 배우로 보이거든요.
조수향: 사실, 연기 밖에 몰라요. 진짜 욕심도 많고요. 그래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배우가 연기만 잘 하면 될 줄 알았거든요. 연기만 사랑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Q. 아…연기 외의 것들을 요구하긴 하죠.
조수향: 네. 사람들도 많이 만나야 하고,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길 수 있는데 거기에서 먼저 참아야 하고 그렇더라고요. 뭔가 다툼이 생겨서 “조수향이 그랬대!”라고 되면 안 되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원래의 저는 감정에 굉장히 솔직한 편인데 말이에요.(웃음)
Q. 힘들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일을 하게 하는 힘은 뭘까요.
조수향: 그런 생각도 해 봤어요. 연기를 그만두고 다른 일로 성공하는 상상을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먼 훗날 뒤를 돌아 봤을 때 후회가 될 것 같은 거예요. 이왕 시작을 했으니 끝을 보고 싶어요. 똥을 싸다 만 것 같은 게 있으면 언젠가 후회를 하지 않을까 싶거든요. 그래서 일단은 더 해 보자. 열심히 하자, 하는 마음이에요.
Q. 스타를 꿈꾸는 것 같지는 않아요.
조수향: 그것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교육을 받을 때는 진짜 배우가 되면, 돈과 명예가 저절로 따라온다고 해요. 연기라는 본질을 따라야 한다고요. 그런데 정작 현장에 나와서 현실에 부딪혀보면, 인지도가 있어야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많더라고요. 스타성을 쫓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많은 거죠. 거기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거기에 속으면 자존심이 많이 상할 것 같아요.
Q. 극중 수향은 굉장히 강심장처럼 보여요. 꺾였지만 꺾이지 않은 꽃 같죠. 납치된 상황에서도 굉장히 침착하고요. 실제의 조수향은 어때요?
조수향: 제가 사소한 것엔 잘 흔들리는데, 큰 일 앞에서는 굉장히 대범해요. 이미 결정된 중대한 일 앞에서는 의외로 침착한 편이에요.
Q. 자신을 믿어요?
조수향: 저요? 믿는 편인 것 같아요. 투정부릴 때도 있지만(웃음), 결국 ‘나는 잘 할거야’ 라고 생각하죠.
Q. 최근 여러 20대 여배우들과 함께 주목받고 있어요. 그래서 하는 질문인데, 자신만의 강력한 무기를 어필한다면?
조수향: 음… 나를 어필하는 게 그렇긴 하지만…제가 말 하는 거, 인터뷰에 쓰실 거죠?(웃음) 괜히 조심스러운데…연기를 좀 잘 하는 것 같긴 해요.(일동웃음) 뭔가에 몰입하면 거기에 빠져서 재미를 찾는 편이에요. 더 잘하고 싶어요, 연기를.
정시우 기자 siwoorain@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조수향이라는, 심상치 않은 연기력을 지닌 20대 여배우가 있다는 소식은 일찍이 들었다. 2014년, 영화 ‘들꽃’으로 부산국제영화제에 신설된 ‘올해의 배우상’을 거머쥔 주인공.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김희애로부터 “이 배우를 보며 큰 자극을 받았다”는 특급칭찬을 받은 배우. 그리고 1년. ‘들꽃’의 정식개봉에 맞춰 만난 영화 속 조수향은 소문대로였다. 스크린 속에서 그녀는 고독을 껴안은 채, 고독 밖으로 열심히 달려 나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조수향은 ‘들꽃’ 같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다. 유약해 보이는 외양과 달리, 말투 하나 눈빛 하나 걸음걸이 하나하나에서 강인한 에너지가 배어나온다. 수향이라는 자신만의 향을 품은 조수향을 잠시 멈춰 세웠다.
Q. 첫 주연작 ‘들꽃’과 첫 상업영화 출연작 ‘검은 사제들’이 같은 날 개봉(11월 5일)했네요.
조수향: 그러니까요. 조금 신기해요.
Q. ‘검은 사제들’에서는 김윤석 씨와 호흡을 맞췄는데, 어땠나요.
조수향: 대선배님이라서 처음에는 살짝 걱정됐어요. 무서우면 어쩌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편안하게 잘 챙겨주셨어요. 선배님 덕분에 익숙하지 않은 상업영화 현장이 낯설지 않았던 것 같아요.Q. ‘들꽃’으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수상했어요. 올해에도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왔죠? 개폐막식에 모두 참석하고, ‘부일영화상’ 사회도 본 걸로 알아요. 전년도 수상자에 대한 환대가 상당한 느낌이었어요.(웃음)
조수향: 네. 너무 반갑게 맞아줘서 마음이 편한 게 있었어요. 다만 올해에는 작품으로 간 게 아니어서, 뭐랄까… 조금 이질감도 들더라고요. 작년에는 ‘들꽃’ 팀들과 함께 가서 그런지, 영화제가 축제 같은 느낌이 있었거든요. ‘다음에는 꼭 작품을 들고 와야지’ 생각했어요.
Q. ‘들꽃’에서 실제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어요. 연기도 그렇고, 뭔가 상당히 리얼한 느낌이 컸어요.
조수향: 영화 촬영 들어가기 반년 전부터, 감독님-배우들과 거의 매일 만나서 술을 마셨어요. 작품과 캐릭터 얘기도 하고, 사는 얘기도 하면서 굉장히 친해졌죠. 그렇게 오랜 시간 캐릭터에 몸을 담고 있다 보니, 현장이 굉장히 자유로웠어요. 캐릭터를 머리로 이해한 게 아니라, 그냥 몸이 기억하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Q. 작품 자체가 좀 어두워요. 몸이 캐릭터를 기억할 정도면 굉장히 푹 빠져 있었다는 의미인데, 우울하지는 않았나요?
조수향: 저는 정말 재미있었는데, 보는 분들은 안 그랬나 봐요. 촬영 중에도 스태프들이 걱정을 하더라고요. “괜찮으세요?” “네. 괜찮은데요?” “조증, 있으신 건 아니죠?(웃음)” “진짜 괜찮아요.” 그런 대화들을 꽤 했어요. 하하하.Q. 뭐랄까. 강단이 있는 것 같아요.
조수향: 음… ‘들꽃’ 찍을 때는 강단 있게 했던 것 같아요. 다시 찍으면 어떨지 모르겠어요. 영화를 보면, ‘내가 어떻게 저렇게 연기했지’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Q. 그땐 어떤 마음으로 찍었길래요?
조수향: 그땐, 다른 건 생각 안했어요. 가령 이 작품으로 데뷔를 하고, 이 작품으로 앞으로 뭘 해야지 하는 게 없었어요. 그냥 감독님이 좋고, 작품이 좋고, 배우들도 다 좋으니까 ‘나만 잘 하면 되겠다’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당시 삶이 굉장히 척박했어요.(웃음) 영화에 등장하는 허름한 여관이 촬영 중 실제 숙소였는데, 바퀴벌레가 나오고 그랬어요. 그런데 사람 적응력이 무섭다고, 그렇게 살다보니까 다른 생각은 안 들더라고요. 살아야겠다는 생각밖에는.
Q. ‘들꽃’은 자연스럽게 온 기회였나요?
조수향: 오디션을 봤어요. 그때가 대학 졸업(동국대학교 연극학과)하고 대학로에서 연극을 할 때였죠. ‘옐로우 슈즈’ ‘햄릿 레퀴엠’을 연달아 했었는데, 그때 너무 힘들었어요. 내가 세상의 주인공 인줄 알고 졸업을 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여러 가지 이유로 자존감도 낮아져 있었죠. 뭔가 풀 곳이 필요한데, 풀려면 또 돈이 들잖아요? 술이라고 마시려면 술값이 필요하고.
Q. 술은 또 술을 부르고요.(웃음)
조수향: 네. 친구들에게 매일 얻어먹을 수는 없는 노릇이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고립되더라고요. 그 와중에 ‘들꽃’ 오디션 공고를 봤어요. 캐릭터 설명을 보면서 ‘이건 내가 한 번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에 찍었던 단편과 함께 메일을 드렸는데 감독님이 굉장히 빠르게 오디션을 보자고 응답해 주셨어요. 그렇게 ‘들꽃’을 운명처럼 만났죠. 여름에 캐스팅 돼서 그 다음 년도에 영화를 찍었어요. 그 사이 감독님-배우들과 술 마시고 맛 집 가고. 준비 기간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어둠 속에서 빛을 본 느낌이랄까. 더 끈끈해 질 수밖에 없었죠.
Q. 다소 어두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수향 씨에게 ‘들꽃’이 밝게 느껴지는 이유가 있었군요.
조수향: 네. 그래서 저는 너무 행복했던 거예요. 저를 배우라고 생각해 주는 사람들이 있고, 같이 달릴 동료가 있고, 내 가능성을 봐 주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요. 술도 마음껏 마시고.(웃음)
Q. 술, 잘 마시나 봐요?
조수향: 하하. 요새는 잘 못 마시는데, 그때는 두 병 정도? 촬영이 끝나면 새벽이에요. 문 연 곳이 별로 없다보니 감자탕집이나 뼈다귀해장국집에 가서 한잔 하고, 해 뜨면 자고, 어두워지면 어슬렁어슬렁 나와서 촬영하고 그랬어요.(웃음) 덕분에 길바닥 냄새가 영화에 더 잘 나온 것 같아요.Q. 졸업하고 힘들었다고 했는데, 그 전에는 어땠어요?
조수향: 대학 때도 힘든 건 매한가지였지만 그래도 그때는 제가 설 수 있는 무대가 있었어요. 매년 기본으로 두 편의 공연은 할 수 있었고요. 그런데 그땐 그 고마움을 몰랐어요. 관객의 소중함도, 내가 설 수 있는 무대가 있다는 것의 소중함도.
Q. 한해의 굉장히 많은 연극/영화과에서 연기지망생들이 쏟아져 나오죠. 하지만 오랜 시간 배우의 길을 걷는 친구들은 그리 많지 않아요. 수향 씨 동기들은 어때요?
조수향: 아직은 연기하는 친구들이 꽤 있어요. 여자 친구들 같은 경우, 일찍 방향을 튼 경우도 많고요. 사실, 저도 요즘 고민을 많이 해요. ‘내가 이걸 왜 했을까’라는 생각.
Q. 뭐가 그렇게 힘들게 해요?
조수향: 여배우에게 요구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몸매 관리도 해야 하고 피부 관리도 해야 하는데 저는 그런 거 잘 못하거든요.(웃음) 집에서 멍 때리고 있다가 친구들 만나서 수다 떠는 걸 좋아해요. 그런데 지금은 운동하고 관리하고 팩하고. 가끔씩 “내가 왜 이러고 있지?” 싶기도 해요. 그리고 제가 어떻게 보면 사회초년생이잖아요. 어떤 방향으로 생각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인생이 달라지는 시기죠. 그러다보니 괜히 생각이 많아요. 가을이고 낙엽이 떨어지고 찬바람이 부니까 마음도 괜히 시리고요.Q. 조금은 의외의 말이네요.(웃음) 연기 하는 걸 보면, ‘이 길 밖에 모르는’ 욕심 많은 배우로 보이거든요.
조수향: 사실, 연기 밖에 몰라요. 진짜 욕심도 많고요. 그래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저는 배우가 연기만 잘 하면 될 줄 알았거든요. 연기만 사랑하면 되는 줄 알았어요.
Q. 아…연기 외의 것들을 요구하긴 하죠.
조수향: 네. 사람들도 많이 만나야 하고, 여러 가지 일들이 생길 수 있는데 거기에서 먼저 참아야 하고 그렇더라고요. 뭔가 다툼이 생겨서 “조수향이 그랬대!”라고 되면 안 되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원래의 저는 감정에 굉장히 솔직한 편인데 말이에요.(웃음)
Q. 힘들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 일을 하게 하는 힘은 뭘까요.
조수향: 그런 생각도 해 봤어요. 연기를 그만두고 다른 일로 성공하는 상상을요.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먼 훗날 뒤를 돌아 봤을 때 후회가 될 것 같은 거예요. 이왕 시작을 했으니 끝을 보고 싶어요. 똥을 싸다 만 것 같은 게 있으면 언젠가 후회를 하지 않을까 싶거든요. 그래서 일단은 더 해 보자. 열심히 하자, 하는 마음이에요.
Q. 스타를 꿈꾸는 것 같지는 않아요.
조수향: 그것도 사실 잘 모르겠어요. 교육을 받을 때는 진짜 배우가 되면, 돈과 명예가 저절로 따라온다고 해요. 연기라는 본질을 따라야 한다고요. 그런데 정작 현장에 나와서 현실에 부딪혀보면, 인지도가 있어야 뭔가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많더라고요. 스타성을 쫓을 수밖에 없는 상황들이 많은 거죠. 거기에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에요. 거기에 속으면 자존심이 많이 상할 것 같아요.
Q. 극중 수향은 굉장히 강심장처럼 보여요. 꺾였지만 꺾이지 않은 꽃 같죠. 납치된 상황에서도 굉장히 침착하고요. 실제의 조수향은 어때요?
조수향: 제가 사소한 것엔 잘 흔들리는데, 큰 일 앞에서는 굉장히 대범해요. 이미 결정된 중대한 일 앞에서는 의외로 침착한 편이에요.
Q. 자신을 믿어요?
조수향: 저요? 믿는 편인 것 같아요. 투정부릴 때도 있지만(웃음), 결국 ‘나는 잘 할거야’ 라고 생각하죠.
Q. 최근 여러 20대 여배우들과 함께 주목받고 있어요. 그래서 하는 질문인데, 자신만의 강력한 무기를 어필한다면?
조수향: 음… 나를 어필하는 게 그렇긴 하지만…제가 말 하는 거, 인터뷰에 쓰실 거죠?(웃음) 괜히 조심스러운데…연기를 좀 잘 하는 것 같긴 해요.(일동웃음) 뭔가에 몰입하면 거기에 빠져서 재미를 찾는 편이에요. 더 잘하고 싶어요, 연기를.
정시우 기자 siwoora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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