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은호 기자]
이미쉘의 인생은 그야말로 스펙터클했다. 가난한 가정환경과 혼혈아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 탓에 그의 어린 시절은 밝지 못했다. 청소년기, 이미쉘은 종교를 만나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교회에 나가 노래를 시작하며 가수의 꿈도 키웠다. 그리고 지난 2011년, 이미쉘은 SBS ‘K팝스타 시즌1’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쟁쟁한 출연자들 가운데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TOP4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YG엔터테인먼트의 러브콜을 받고 데뷔를 준비했다. 탄탄대로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그러나 지난 2013년 이미쉘은 YG엔터테인먼트와 결별을 선언했다. 이후 이미쉘은 모교에서 설립한 기획사에 들어가 첫 앨범 ‘위다웃 유(Without You)’를 발매했다. 방송과 함께 뮤지컬로도 활동 폭을 넓혔다. 2년 뒤, 이미쉘은 신생 기획사로 거취를 옮겼고 지난 4일에는 새 앨범 ‘아이 캔 싱(I Can Sing)’도 발매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그와 관련된 소식을 듣기는 쉽지 않았다. TV에서도 이미쉘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궁금했다. 이미쉘은 왜, 또 다시 쉽지 않은 길을 택했을까?Q. 두 번째 앨범이다. 소감이 어떤가?
이미쉘 : 싱글 앨범 ‘위다웃 유’를 냈을 때와는 느낌이 다르다. 그 땐 첫 앨범이라는 설렘이 있었다. 이번에는 앨범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하다. 내가 프로듀싱에도 직접 참여했거든. 작사, 작곡뿐만 아니라 세션 섭외나 연주 디렉팅도 내가 직접 했다. 주변에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도움을 받았다. 심지어 믹싱에도 참여했다. 타이틀곡의 경우, 엔지니어와 함께 몇날 며칠 밤을 새며 작업했다. 내 음악적 색깔을 더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Q. 1년 4개월의 공백기가 있었다. 어떻게 지냈나?
이미쉘 : 작년 ‘위다웃 유’ 앨범을 낸 직후부터 새 앨범 준비해서 정규로 내고 싶었다. 여러 상황이 충분히 따라주지 못했던 것도 있었고 그 이외의 다른 활동을 많이 했다. 마음 편하게 내 음악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 들려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연 요청이 오면 스스럼없이 다 찾아갔다. 최근에는 피처링 작업도 했다. 가을 쯤 그 앨범도 나올 것이다. 상대 아티스트는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Q. 그렇게 말하니 더 궁금하다. 누군가? 유명한 사람인가?
이미쉘 : 요즘 친구들은 잘 모를 수도 있다. 힙합 1세대로 활동하시던 분이다. 요즘 힙합이 굉장히 유행하고 있지 않나. 그런데 요즘 유행하는 힙합은 세미 힙합에 가깝다. 이번 앨범은 정통 힙합을 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자는 취지로 제작된 앨범이다. 곡이 참 좋다.Q. 타이틀곡 제목이 ‘아이 캔 싱’이다. 뭔가 심상치 않게 느껴지는데, 사연이 있나?
이미쉘 : 대학교 1, 2학년쯤에 써둔 곡이다. 당시에도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자라고, 어리다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꽤 많더라. ‘네가 뭘 알겠냐’ ‘너만큼 노래하는 애들 많다’는 식이었지. 그렇다고 해서 그 분들에게 똑같이 화를 낼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오히려 더 친절하게, 예의 바르게 굴었다. 이 사람이 나를 깔보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결국 음악뿐이라고 생각했다. 음악적으로 많이 성장해서, 그 사람이 나한테 같이 일을 하자고 부탁할 수 있게 만들자, 그만큼 위대한 아티스트가 되자는 생각으로 쓴 곡이다. ‘위다웃 유’와도 스토리 연결이 잘 되는 것 같다.
Q. 앨범이 나왔는데, TV에서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웠다. 어떻게 활동을 하고 있나?
이미쉘 : 방송 출연도 준비 중이다. 사실 작년에 활동을 마친 뒤에,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나는 사람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꼈고, 음악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러 다니자, 공연을 많이 하자는 다짐이 강해졌다. 9월부터 본격적으로 공연을 시작할 것이고 10월 말이나 11월 해외공연도 준비돼 있다. 미국 텍사스에서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팬미팅의 형식으로 진행될 텐데, 우선 한국 공연을 미국으로 생중계하며 소통을 시작할 것 같다. 공연, 팬미팅, 사인회 등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시도해볼 것 같다.
Q. 멋지겠다. 알앤비의 본토로 가는 것 아닌가?
이미쉘 : 모르겠다. 사실 나는 공연을 쭉 해와서 그런지, ‘미국’에 간다는 생각보다는 재밌는 공연을 하자는 생각이 더 크다. 현지의 문화적 사상에 대한 기대감도 있고, 현지 팬들과 소통하며 코드를 맞춰 가는 것도 재밌더라.
Q. SBS ‘K팝스타’와 관련한 이야기를 해보자. 당시 이미쉘은 폭발적인 성량이나 고음, 파워가 강조됐잖아. 그런데 데뷔 후에 부른 노래에서는 그런 특징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미쉘 : 파워풀하게 노래하는 것도 좋아한다. 반대로 작고 우는 목소리처럼 감정을 모두 담아서 부르는 것도 좋다. 음악에 있어서는 장르를 안 가리고 좋아하는 것 같다. 사실 ‘K팝스타’를 할 때에는, 대중이 원하는 것을 부응해줘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그래서 고음이 강조되는 선곡을 한 거고. 지금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음악,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장르를 해보려고 하다 보니, 시끌벅적하지 않은 음악을 하게 됐다.
Q. 그러면 이미쉘이 가장 잘 표현하는 장르는 무엇인가?
이미쉘 : 힘 있게 부르는 것보다는 가벼운 알엔비가 제일 잘 맞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리한나, 크랙 데이빗, 니요 같이 바이브레이션이나 기교가 잘 들어간 곡들. 동시에 한국적인 곡, 예를 들어 중저음과 고음이 편안하게 연결되고 감정에도 충실한 발라드 역시 잘 할 수 있는 것 같다. 좀 이상하지? 두 장르가 되게 다른 장르인데. 하하.Q. 그런데 가벼운 알앤비 톤을 내는 가수들은 최근 국내에 굉장히 많아지지 않았나. 반면 이미쉘처럼 파워풀한 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들은 얼마 안 된다. 그래서 파워나 고음이 이미쉘이 가진 최대의 장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미쉘 : 그게 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건 저음과 저음에서 오는 울림, 감동이다. 물론 고음으로 지르는 것도 좋다. 그런 건 훵키한 음악을 할 때, 무대 위에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할 때 쓰면 재미있다. 다음 앨범에는 누구나 다 미쳐서 흔들만한 음악을 써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럴 때 파워풀한 고음을 뽐내 보겠다.
Q. 이미쉘은 타고난 알앤비 보컬이다. 그런데 정통 흑인음악은 아직 국내에 익숙한 장르가 아니잖아. 대중의 반응은 얼마나 살피는가?
이미쉘 : 내 음악에 대해 의견이 반반으로 나뉜다. 정말 흑인의 느낌이 난다는 분들도 있는데, 한국적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다. 어차피 이 두 반응이 섞여있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물론, 앨범 리뷰를 보며 참고는 한다. 그렇지만 그걸 다 따르려고 하지는 않는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으니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음악에 대중이 원하는 분위기를 섞어서 내는 게 좋을 것 같다.
Q. ‘K팝스타’ 당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한명이었다. 이후 YG엔터테인먼트에 캐스팅되기도 했고. 만약 그 회사에 계속 있었다면 누구보다 화려하게 데뷔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회사를 나오게 됐나?
이미쉘 : 처음에 그려왔던 그림이 회사와 맞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어렸을 때부터 가고 싶었던 회사였다. 사실 회사와 사이가 어그러졌다거나 나쁘게 끝난 것은 아니다. 예상했던 거보다는 진행이 잘 되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내려져서 서로 길을 달리하게 된 거다.
Q. 이미쉘, 박지민 등 함께 출연했던 친구들은 대형 기획사를 통해 데뷔해 이미 꽤 자리를 잡았다. 속도에 대한 불안함은 없었나?
이미쉘 : 별로 없었다. 음악을 할 때, 가수로서 성공하자는 욕심은 크게 없었다. 다만, 내 노래에서 누군가 희망이나 위로, 용기를 얻는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앨범을 냈다. 그런데 얼마 전 어떤 해외 팬으로부터 정말 감동적인 메시지를 받았다. 그 분이 삶을 포기하려고 다리 위를 걷다가 문득 ‘위다웃 유’를 듣게 된단다. 그 노래를 듣고 나서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음악을 해 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굉장히 많은 감동을 받았다. 사실 나도 당시 앨범을 내고, 약간의 우울감에 빠져있었거든. 그런데 그 메시지를 받고 ‘이런 사람이 세상에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 참. 질문이 뭐였지?
Q. 속도에 대한 불안함이 없냐는 질문이었다. 그렇지만 방금 얘기도 굉장히 좋다.
이미쉘 : 그런가. 하하. 속도에 대해서라면, ‘빨리 가자’ 혹은 ‘높게 가자’는 생각은 별로 없다. 자라난 환경도 어려웠기 때문에, 바닥에서부터 한 발자국씩 천천히 쌓아 올라가는 게 가장 익숙하다. 갑자기 껑충 뛰어버리면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줄어들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Q. ‘K팝스타’ 패자부활전에서 살아난 뒤에, 눈이 파르르 떨리는데도 안 울더라. 감정을 억누른다는 지적도 받았고.
이미쉘 : 어렸을 때에는 감정 표현을 안 했다. 그 때는 행복했던 기억보다는 상처 받았던 기억이 조금 더 많거든. 그런데 감정 표현을 시작하게 되면 그 대상이 결국 가족이 될 텐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힘든 일이 있어도 웃어야 한다고 배우기도 했고. 나중에는 스마일 증후군이 생기게 되더라. 뭐든 참고 참는 게 익숙해졌던 거지. 그러다가 감정을 와장창 깨뜨렸던 게 박진영 피디님 덕분이었다.
Q. 그래. 그런데 박진영PD가 ‘감정을 깨뜨려라’고 했을 때에는, 이미쉘의 개인사에 대한 고백을 기대한 것 같았다. 그런데 당시 인터뷰에서는 짝사랑 얘기를 하더라.
이미쉘 : 어렸을 때 얘기를 매 인터뷰마다 하다 보니 그 얘기를 또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 그 때가 남자친구랑 헤어진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그런데 재밌는 건, 막상 감정을 깨뜨려라 라고 했을 때 떠오른 건 전 남자친구가 아니라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오빠였다. 하하. 내가 진심으로 되게 오래 좋아했던 사람이거든.
Q. 그래서 개인사를 드러내는 걸 싫어하는 줄 알았다. 그걸 껄끄러워 하는 가수들도 많잖아. 아무래도 음악보다 개인사가 더 부각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어쩌면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가 그 사람의 음악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줄 수도 있지 않을까? 가령 이미쉘을 모르고 듣는 ‘위다웃 유’와 이미쉘을 알고 듣는 ‘위다웃 유’는…
이미쉘 : 다르다. (이미쉘에 대해) 몰랐는데, 알고 나서 노래를 들으니까 다르더라고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더라. 개인사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내 음악에 대해 또 다른 풀이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게, 딱히 껄끄럽지는 않다. 숨길 것도 없고 잘못한 것도 없다. 결국 개인사를 얘기한다는 건, 지금 내가 어떻게 음악을 하게 됐고 왜 이런 음악을 하게 됐는지를 설명하는 거니까.
Q. 가수의 꿈은 언제부터 가지게 된 건가?
이미쉘 : 어렸을 때에는 꿈이 정말 많았다. 그 중 하나가 가수였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연예계 진출을 꿈꿨을 때에는 가수가 아니라 백업댄서를 희망했다. 어렸을 때, 보아 언니를 보면서 되게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보아 언니의 옆을 보니 춤을 더 잘 추는 사람이 있더라. 그 땐 그게 정말 신기했다. (Q. 가수가 뭐든 제일 잘 하는 줄 알았던 건가?) 그렇다. 사실 댄서니까, 가수보다 춤을 더 잘 추는 게 당연한 건데도 당시엔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다.
Q. 혹시 보아 옆에 있던 사람, 가희 아닌가?
이미쉘 : 맞다. 당시 가희 언니가 크레이지라는 팀에 있었는데, 잘나가는 팀의 백업 댄스는 모두 다 했다. 너무 좋아해서 팬카페에도 가입하고 단원 오디션에도 지원하려 했다. 칼을 갈고 준비했는데, 키 제한에 걸려서 오디션을 포기했다. 사실 무조건 가서 부딪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가 TV에서 알리샤 키스의 ‘유 돈 노 마이 네임(You don`t know my name)’의 뮤직비디오를 봤다. 너무 좋았다. 그 후로 점점 가수의 꿈을 키웠다. 본격적으로 노래를 하게 된 건 열여섯 살 때였고 이듬해에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Q. 지금의 이미쉘이 처음 가수를 꿈꿨던 과거의 이미쉘을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이미쉘 : ‘그대로만 자라라.’ 나는 지금의 내 삶에 후회가 없다. 물론, 어떤 상황이 주어지고 그에 대한 선택을 하고 난 뒤에 후회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택하는 것도, 후회하는 것도 결국에는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봤을 때, 꼭 그렇게 살아왔어야만 지금의 내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네가 자라고 있는 그래도 자라라’라고 말해주고 싶다.
Q. 반대로, 어린 시절의 이미쉘이 지금의 이미쉘을 본다면 뭐라고 얘기할까?
이미쉘 : 늘 그 자리에 있으라고 말할 것 같다. 한 번에 팍 튀어 오르거나 꺼지는 게 아니라,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의 음악을 꾸준히 하는 가수. 하루에 한 번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이미쉘 노래 들어야지’라고 떠오를 수 있는 가수. 늘 그 자리에서 앨범을 내고 새로운 도전을 추구하는 가수가 되라고 말해줄 것 같다. 사실 내가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가수들이 이문세 선생님이나 조용필 선생님, 이선희 선생님이다. 그 분들처럼 누가 들어도 감동 받을 수 있고 언제 들어도 힘이 나는 음악, 어떤 세대의 사람들이 들어도 좋은 음악을 하고 싶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이미쉘의 인생은 그야말로 스펙터클했다. 가난한 가정환경과 혼혈아를 향한 곱지 않은 시선 탓에 그의 어린 시절은 밝지 못했다. 청소년기, 이미쉘은 종교를 만나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교회에 나가 노래를 시작하며 가수의 꿈도 키웠다. 그리고 지난 2011년, 이미쉘은 SBS ‘K팝스타 시즌1’에 도전장을 내밀었고 쟁쟁한 출연자들 가운데서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TOP4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YG엔터테인먼트의 러브콜을 받고 데뷔를 준비했다. 탄탄대로가 눈앞에 펼쳐지는 듯 했다.
그러나 지난 2013년 이미쉘은 YG엔터테인먼트와 결별을 선언했다. 이후 이미쉘은 모교에서 설립한 기획사에 들어가 첫 앨범 ‘위다웃 유(Without You)’를 발매했다. 방송과 함께 뮤지컬로도 활동 폭을 넓혔다. 2년 뒤, 이미쉘은 신생 기획사로 거취를 옮겼고 지난 4일에는 새 앨범 ‘아이 캔 싱(I Can Sing)’도 발매했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그와 관련된 소식을 듣기는 쉽지 않았다. TV에서도 이미쉘의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궁금했다. 이미쉘은 왜, 또 다시 쉽지 않은 길을 택했을까?Q. 두 번째 앨범이다. 소감이 어떤가?
이미쉘 : 싱글 앨범 ‘위다웃 유’를 냈을 때와는 느낌이 다르다. 그 땐 첫 앨범이라는 설렘이 있었다. 이번에는 앨범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하다. 내가 프로듀싱에도 직접 참여했거든. 작사, 작곡뿐만 아니라 세션 섭외나 연주 디렉팅도 내가 직접 했다. 주변에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도움을 받았다. 심지어 믹싱에도 참여했다. 타이틀곡의 경우, 엔지니어와 함께 몇날 며칠 밤을 새며 작업했다. 내 음악적 색깔을 더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Q. 1년 4개월의 공백기가 있었다. 어떻게 지냈나?
이미쉘 : 작년 ‘위다웃 유’ 앨범을 낸 직후부터 새 앨범 준비해서 정규로 내고 싶었다. 여러 상황이 충분히 따라주지 못했던 것도 있었고 그 이외의 다른 활동을 많이 했다. 마음 편하게 내 음악을 듣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 들려주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공연 요청이 오면 스스럼없이 다 찾아갔다. 최근에는 피처링 작업도 했다. 가을 쯤 그 앨범도 나올 것이다. 상대 아티스트는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
Q. 그렇게 말하니 더 궁금하다. 누군가? 유명한 사람인가?
이미쉘 : 요즘 친구들은 잘 모를 수도 있다. 힙합 1세대로 활동하시던 분이다. 요즘 힙합이 굉장히 유행하고 있지 않나. 그런데 요즘 유행하는 힙합은 세미 힙합에 가깝다. 이번 앨범은 정통 힙합을 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보여주자는 취지로 제작된 앨범이다. 곡이 참 좋다.Q. 타이틀곡 제목이 ‘아이 캔 싱’이다. 뭔가 심상치 않게 느껴지는데, 사연이 있나?
이미쉘 : 대학교 1, 2학년쯤에 써둔 곡이다. 당시에도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자라고, 어리다고, 피부색이 다르다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꽤 많더라. ‘네가 뭘 알겠냐’ ‘너만큼 노래하는 애들 많다’는 식이었지. 그렇다고 해서 그 분들에게 똑같이 화를 낼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오히려 더 친절하게, 예의 바르게 굴었다. 이 사람이 나를 깔보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결국 음악뿐이라고 생각했다. 음악적으로 많이 성장해서, 그 사람이 나한테 같이 일을 하자고 부탁할 수 있게 만들자, 그만큼 위대한 아티스트가 되자는 생각으로 쓴 곡이다. ‘위다웃 유’와도 스토리 연결이 잘 되는 것 같다.
Q. 앨범이 나왔는데, TV에서는 모습을 보기가 어려웠다. 어떻게 활동을 하고 있나?
이미쉘 : 방송 출연도 준비 중이다. 사실 작년에 활동을 마친 뒤에, 내가 음악을 하는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나는 사람들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소통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꼈고, 음악도 그렇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러 다니자, 공연을 많이 하자는 다짐이 강해졌다. 9월부터 본격적으로 공연을 시작할 것이고 10월 말이나 11월 해외공연도 준비돼 있다. 미국 텍사스에서부터 시작할 예정이다. 팬미팅의 형식으로 진행될 텐데, 우선 한국 공연을 미국으로 생중계하며 소통을 시작할 것 같다. 공연, 팬미팅, 사인회 등 할 수 있는 것들을 다 시도해볼 것 같다.
Q. 멋지겠다. 알앤비의 본토로 가는 것 아닌가?
이미쉘 : 모르겠다. 사실 나는 공연을 쭉 해와서 그런지, ‘미국’에 간다는 생각보다는 재밌는 공연을 하자는 생각이 더 크다. 현지의 문화적 사상에 대한 기대감도 있고, 현지 팬들과 소통하며 코드를 맞춰 가는 것도 재밌더라.
Q. SBS ‘K팝스타’와 관련한 이야기를 해보자. 당시 이미쉘은 폭발적인 성량이나 고음, 파워가 강조됐잖아. 그런데 데뷔 후에 부른 노래에서는 그런 특징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미쉘 : 파워풀하게 노래하는 것도 좋아한다. 반대로 작고 우는 목소리처럼 감정을 모두 담아서 부르는 것도 좋다. 음악에 있어서는 장르를 안 가리고 좋아하는 것 같다. 사실 ‘K팝스타’를 할 때에는, 대중이 원하는 것을 부응해줘야 한다는 요구가 있었다. 그래서 고음이 강조되는 선곡을 한 거고. 지금은 내가 하고자 하는 음악,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장르를 해보려고 하다 보니, 시끌벅적하지 않은 음악을 하게 됐다.
Q. 그러면 이미쉘이 가장 잘 표현하는 장르는 무엇인가?
이미쉘 : 힘 있게 부르는 것보다는 가벼운 알엔비가 제일 잘 맞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리한나, 크랙 데이빗, 니요 같이 바이브레이션이나 기교가 잘 들어간 곡들. 동시에 한국적인 곡, 예를 들어 중저음과 고음이 편안하게 연결되고 감정에도 충실한 발라드 역시 잘 할 수 있는 것 같다. 좀 이상하지? 두 장르가 되게 다른 장르인데. 하하.Q. 그런데 가벼운 알앤비 톤을 내는 가수들은 최근 국내에 굉장히 많아지지 않았나. 반면 이미쉘처럼 파워풀한 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들은 얼마 안 된다. 그래서 파워나 고음이 이미쉘이 가진 최대의 장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미쉘 : 그게 나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사실 내가 가장 자신 있는 건 저음과 저음에서 오는 울림, 감동이다. 물론 고음으로 지르는 것도 좋다. 그런 건 훵키한 음악을 할 때, 무대 위에서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할 때 쓰면 재미있다. 다음 앨범에는 누구나 다 미쳐서 흔들만한 음악을 써봐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럴 때 파워풀한 고음을 뽐내 보겠다.
Q. 이미쉘은 타고난 알앤비 보컬이다. 그런데 정통 흑인음악은 아직 국내에 익숙한 장르가 아니잖아. 대중의 반응은 얼마나 살피는가?
이미쉘 : 내 음악에 대해 의견이 반반으로 나뉜다. 정말 흑인의 느낌이 난다는 분들도 있는데, 한국적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다. 어차피 이 두 반응이 섞여있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 한다. 물론, 앨범 리뷰를 보며 참고는 한다. 그렇지만 그걸 다 따르려고 하지는 않는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으니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음악에 대중이 원하는 분위기를 섞어서 내는 게 좋을 것 같다.
Q. ‘K팝스타’ 당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한명이었다. 이후 YG엔터테인먼트에 캐스팅되기도 했고. 만약 그 회사에 계속 있었다면 누구보다 화려하게 데뷔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로 회사를 나오게 됐나?
이미쉘 : 처음에 그려왔던 그림이 회사와 맞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어렸을 때부터 가고 싶었던 회사였다. 사실 회사와 사이가 어그러졌다거나 나쁘게 끝난 것은 아니다. 예상했던 거보다는 진행이 잘 되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내려져서 서로 길을 달리하게 된 거다.
Q. 이미쉘, 박지민 등 함께 출연했던 친구들은 대형 기획사를 통해 데뷔해 이미 꽤 자리를 잡았다. 속도에 대한 불안함은 없었나?
이미쉘 : 별로 없었다. 음악을 할 때, 가수로서 성공하자는 욕심은 크게 없었다. 다만, 내 노래에서 누군가 희망이나 위로, 용기를 얻는다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앨범을 냈다. 그런데 얼마 전 어떤 해외 팬으로부터 정말 감동적인 메시지를 받았다. 그 분이 삶을 포기하려고 다리 위를 걷다가 문득 ‘위다웃 유’를 듣게 된단다. 그 노래를 듣고 나서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었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앞으로도 계속 좋은 음악을 해 달라고 메시지를 보냈는데, 굉장히 많은 감동을 받았다. 사실 나도 당시 앨범을 내고, 약간의 우울감에 빠져있었거든. 그런데 그 메시지를 받고 ‘이런 사람이 세상에 단 한명이라도 있다면, 나는 죽을 때까지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 참. 질문이 뭐였지?
Q. 속도에 대한 불안함이 없냐는 질문이었다. 그렇지만 방금 얘기도 굉장히 좋다.
이미쉘 : 그런가. 하하. 속도에 대해서라면, ‘빨리 가자’ 혹은 ‘높게 가자’는 생각은 별로 없다. 자라난 환경도 어려웠기 때문에, 바닥에서부터 한 발자국씩 천천히 쌓아 올라가는 게 가장 익숙하다. 갑자기 껑충 뛰어버리면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줄어들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Q. ‘K팝스타’ 패자부활전에서 살아난 뒤에, 눈이 파르르 떨리는데도 안 울더라. 감정을 억누른다는 지적도 받았고.
이미쉘 : 어렸을 때에는 감정 표현을 안 했다. 그 때는 행복했던 기억보다는 상처 받았던 기억이 조금 더 많거든. 그런데 감정 표현을 시작하게 되면 그 대상이 결국 가족이 될 텐데, 그러고 싶지 않았다. 힘든 일이 있어도 웃어야 한다고 배우기도 했고. 나중에는 스마일 증후군이 생기게 되더라. 뭐든 참고 참는 게 익숙해졌던 거지. 그러다가 감정을 와장창 깨뜨렸던 게 박진영 피디님 덕분이었다.
Q. 그래. 그런데 박진영PD가 ‘감정을 깨뜨려라’고 했을 때에는, 이미쉘의 개인사에 대한 고백을 기대한 것 같았다. 그런데 당시 인터뷰에서는 짝사랑 얘기를 하더라.
이미쉘 : 어렸을 때 얘기를 매 인터뷰마다 하다 보니 그 얘기를 또 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 그 때가 남자친구랑 헤어진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그런데 재밌는 건, 막상 감정을 깨뜨려라 라고 했을 때 떠오른 건 전 남자친구가 아니라 오랫동안 짝사랑했던 오빠였다. 하하. 내가 진심으로 되게 오래 좋아했던 사람이거든.
Q. 그래서 개인사를 드러내는 걸 싫어하는 줄 알았다. 그걸 껄끄러워 하는 가수들도 많잖아. 아무래도 음악보다 개인사가 더 부각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어쩌면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가 그 사람의 음악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도와줄 수도 있지 않을까? 가령 이미쉘을 모르고 듣는 ‘위다웃 유’와 이미쉘을 알고 듣는 ‘위다웃 유’는…
이미쉘 : 다르다. (이미쉘에 대해) 몰랐는데, 알고 나서 노래를 들으니까 다르더라고 많은 분들이 말씀하시더라. 개인사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내 음악에 대해 또 다른 풀이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게, 딱히 껄끄럽지는 않다. 숨길 것도 없고 잘못한 것도 없다. 결국 개인사를 얘기한다는 건, 지금 내가 어떻게 음악을 하게 됐고 왜 이런 음악을 하게 됐는지를 설명하는 거니까.
Q. 가수의 꿈은 언제부터 가지게 된 건가?
이미쉘 : 어렸을 때에는 꿈이 정말 많았다. 그 중 하나가 가수였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연예계 진출을 꿈꿨을 때에는 가수가 아니라 백업댄서를 희망했다. 어렸을 때, 보아 언니를 보면서 되게 멋지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보아 언니의 옆을 보니 춤을 더 잘 추는 사람이 있더라. 그 땐 그게 정말 신기했다. (Q. 가수가 뭐든 제일 잘 하는 줄 알았던 건가?) 그렇다. 사실 댄서니까, 가수보다 춤을 더 잘 추는 게 당연한 건데도 당시엔 정말 신기하게 느껴졌다.
Q. 혹시 보아 옆에 있던 사람, 가희 아닌가?
이미쉘 : 맞다. 당시 가희 언니가 크레이지라는 팀에 있었는데, 잘나가는 팀의 백업 댄스는 모두 다 했다. 너무 좋아해서 팬카페에도 가입하고 단원 오디션에도 지원하려 했다. 칼을 갈고 준비했는데, 키 제한에 걸려서 오디션을 포기했다. 사실 무조건 가서 부딪쳤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다가 TV에서 알리샤 키스의 ‘유 돈 노 마이 네임(You don`t know my name)’의 뮤직비디오를 봤다. 너무 좋았다. 그 후로 점점 가수의 꿈을 키웠다. 본격적으로 노래를 하게 된 건 열여섯 살 때였고 이듬해에 음악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Q. 지금의 이미쉘이 처음 가수를 꿈꿨던 과거의 이미쉘을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은가?
이미쉘 : ‘그대로만 자라라.’ 나는 지금의 내 삶에 후회가 없다. 물론, 어떤 상황이 주어지고 그에 대한 선택을 하고 난 뒤에 후회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택하는 것도, 후회하는 것도 결국에는 내 몫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의 인생을 돌아봤을 때, 꼭 그렇게 살아왔어야만 지금의 내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네가 자라고 있는 그래도 자라라’라고 말해주고 싶다.
Q. 반대로, 어린 시절의 이미쉘이 지금의 이미쉘을 본다면 뭐라고 얘기할까?
이미쉘 : 늘 그 자리에 있으라고 말할 것 같다. 한 번에 팍 튀어 오르거나 꺼지는 게 아니라,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의 음악을 꾸준히 하는 가수. 하루에 한 번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이미쉘 노래 들어야지’라고 떠오를 수 있는 가수. 늘 그 자리에서 앨범을 내고 새로운 도전을 추구하는 가수가 되라고 말해줄 것 같다. 사실 내가 이상향으로 생각하는 가수들이 이문세 선생님이나 조용필 선생님, 이선희 선생님이다. 그 분들처럼 누가 들어도 감동 받을 수 있고 언제 들어도 힘이 나는 음악, 어떤 세대의 사람들이 들어도 좋은 음악을 하고 싶다.
이은호 기자 wild37@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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