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최보란 기자]엉터리 중국어 개그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tvN ‘SNL코리아’에서 정상훈은 ‘양꼬치엔 칭따오’라는 독특한 이름으로 호기심을 자극한 뒤 희한하게 한국어 같은 중국어로 시청자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선사했다. 정상훈의 중국어 개그는 완벽하지 않다는 점에서 시청자들에게 어필했다. 한참을 알듯 모를듯한 중국어를 읊어대다가 밑천이 떨어지면 경상도 사투리를 중국어라 우기기 시작한다. 그 뻔뻔함이 시청자들을 두 손 들게 했다.
이때문에 개그맨이 아니냐는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사실 그는 데뷔 18년차 배우다. ‘SNL코리아’에서 정상훈을 본 뒤 ‘어디선가 봤는데’라는 기시감을 느낀 시청자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SBS ‘나 어때’라는 시트콤으로 화려하게 연예계 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어느새 두 아이의 아빠가 됐고, 뮤지컬 배우로서 안정적인 입지를 구축했다. 뜨거운 인기를 누리던 하이틴 스타에서 ‘양꼬치엔 칭따오’로 다시 우리 앞에 서기까지,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Q. 요즘 대세다. 인기를 실감하나.
정상훈 : 광고 촬영도 하고. 방송에서도 여기저기 많이 불러 주셔서 정말 감사하게 지내고 있다. 일
이 잘 되서 그런지 얼굴이 많이 승천했다. 주위에서도 너무 고생했는데 잘 돼서 좋다고들 해주시더
라. 정말 감사한 일이다.
Q. 양꼬치엔 칭따오. 이름 자체가 ‘신의 한 수’ 였다.
정상훈 : ‘SNL코리아’ 작가님이 지어주셨다. 원래 나는 고량주를 좋아해서 ‘양꼬치엔 연태고량주’로 하려고 했다. 그랬으면 큰 일 날 뻔 했다. 하하. 작가님께 감사하고, 나중에 뭐라도 보답해 드려야 할 것 같다. ‘양꼬치엔 칭따오’가 이렇게 잘 될 줄 저도 몰랐고 작가님도 몰랐다. 덕분에 ‘SNL’도 잘 된 것 같아서 좋다.
Q. 칭따오 모델까지 발탁됐다.
정상훈 : 칭따오 한국지사가 있더라. 한국에서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나도 칭따오 맥주를 즐겨 마시진 않았는데 이제 칭따오만 마신다. 칭따오에서 ‘양꼬치엔 칭따오’로 등장하면서 첫 주에 ‘SNL’로 맥주를 보내주기도 했다.Q. 작가님이 한 턱 내라고 할 법 한데.
정상훈 : 작가님이 따로 요구하신 것은 없는데, 제가 양꼬치엔 칭따오 상표 등록을 해뒀다. 혹시 나중에 양꼬치집이라도 할지 모르지 않나. 하하. 그렇게 되면 2호점을 작가님께 드릴까도 생각중이다. 하하.
Q. 시트콤 ‘나 어때’ 이후 이렇게 뜨거운 인기는 오랜만이다.
정상훈 : ‘나 어때’는 ‘남자셋 여자셋’ 대항마로 만들어진 시트콤이었다. 야심작이었다. 당시 송혜교씨와 러브라인이 있었으니, 전성기였다고 할 만하다. 내가 당시 최고 인기였던 최창민씨랑 쌍둥이 형제로 나왔다. 혜교씨를 가운데 두고 최창민씨와 삼각관계였다.
인기가 대단했다. 손글씨로 편지가 하루 백통씩 들어왔다. 처음으로 협찬이란 걸 받았던 것도 그때다. 영화 ‘소림축구’에 보면 축구단이 처음 협찬을 받고 좋아서 가게 물건을 싹쓸이 하는 장면이 나온다. 나도 그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한 브랜드 매장에서 아무거나 가져가라고 하는 거다. 그때 돈으로 80만원 어치를 받았으니 지금으로 따지면 엄청나다. 한동안 그 브랜드 운동화로 신발장이 꽉 차 있었다.
Q. 지금은 어떤가. ‘나 어때’ 이후 제2의 전성기라고 할 수 있을까.
정상훈 : 아니다. 지금이야말로 최전성기가 아닐까 싶다. 방송에서도 많이 불러주시고 바쁘게 보내고 있다. 기분좋은 나날들이다. 근데 또 거품이 빠지겠지. 올라가면 내려가는 게 있기 마련이다.
Q. ‘SNL코리아’의 힘이 컸다.
정상훈 : ‘SNL코리아’라는 브랜드파워를 실감했다. 작가만 20명이다. 그들이 밤을 새면서 작업하는데 배우가 밤을 새면서 열심히 안 할 수 있겠나. 그렇게 밤새워 찍은 것을 또 밤새워 편집하는 PD들이 있다. 그러니 재미없을 수 없는 것 같다.그러니 굳이 내가 아니더라도, 다른 사람이 ‘SNL’에 나왔더라도 잘 됐을 것 같다. 근데 이번에는 저를 밀어주려고 다들 애를 써 준 것 같다. ‘양꼬치와 칭따오’가 원래 3주면 끝나야 했는데, 국장님이 더 해보라고 밀어주셨다. 덕분에 제 브랜드처럼 됐다. 중국분들까지 ‘양꼬치엔 칭따오’를 알아보시더라.
Q. 중국인들한테 통하는 중국어 개그면 말 다했다.
정상훈 : 그게 신기하다. 중국도 워낙 땅이 넓으니까 지역마다 사투리가 달라서, 서로 지방이 다르면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하더라. 그래서 사성만 흉내내서 오르락 내리락 하니까 나름 중국어처럼 느껴지나 보다. 중국어라도 알아듣지 못하다보니, 엉터리 중국어 개그도 현지인들한테 통한 것 같다.
Q. ‘SNL’은 신동엽의 제안으로 나가게 됐다고.
정상훈 : 캐스팅도 점점 줄어들고 생활고도 고민되고 할 당시 신동엽 형이 전화를 주셨다. 주변에서 ‘성훈이 한 번 시켜보라. 잘 한다’고 추천도 해 주셨다고 한다. 신동엽 형이 ‘SNL’에 직접 후배를 소개시켜 준 것은 처음이었다고 한다. 내색은 안 하셨지만 잘 할까 나름 걱정 하셨을거다. ‘양꼬치엔 칭따오’로 반응이 오면서 ‘잘 됐다’고 정말 기뻐해 주셨다.Q. 생방송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처음엔 부담도 있었을 것 같은데.
정상훈 : 초반에는 찍었는데 편집 돼서 방송에 안 나간 것도 많았다. 내 연기가 재미 없는 것 같아 고민이 많았다. 지금이야 ‘양꼬치엔 칭따오’로 시청자들에게 많이 친숙해졌지만, 처음엔 스스로도 어색했고, 뭘해도 시청자들에게 낯설게 느끼셨을 거다.
Q. 언제 몸이 좀 풀렸다는 느낌이 왔나.
정상훈 : ‘전쟁 시리즈’하면서 감을 잡은 것 같다. ‘면접전쟁’, ‘인턴전쟁’ 하면서 이렇게 하면 재미있구나 느낌이 왔다. 그 시즌이 마무리되고 나서 본격적으로 ‘성룡쇼’나 ‘양꼬치엔 칭따오’로 쭉 밀고 나갔다.
Q. 가장 애착이 가는 코너는?
정상훈 : 최근에 했던건데 ‘마이리틀텔레비전’ 백종원씨 패러디한 적이 있다. 정성호씨가 진짜 흉내내는 것을 잘 하는데, 저는 또 다른 도전을 했다. 저는 “백종원이고요, 백종원입니다”라고 반복하며 ‘우기기’로 밀고 나갔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기분이 되게 좋았다. 이런 것도 되는구나. 새로운 시도가 성공할 때마다 배우로서 희열이 느껴진다.
Q. 가장 기억에 남는 호스트는?
정상훈 : 김희원씨랑 ‘아저씨’ 콩트를 너무 재미있게 찍었다. 전효성씨도 귀엽고 연기를 잘 해줘서 기억에 남고, 김건모씨는 마지막 방송 호스트였던데다가, 제 뮤지컬을 직접 보러 와 주신 적도 있어서 기억에 남는다. 그때 술도 사주시고 덕담도 해주고 그랬는데, 이번에 ‘SNL’로 만났을 때또 ‘내가 너 잘 된다고 했지’라며서 칭찬해 주셨다. 그리고 중국어 개그를 제대로 보여주신 이수근씨와 만남 도 정말 레전드였던 것 같다.
Q. 하다보면 더 웃기고 싶은 욕심도 생길 것 같다.
정상훈 : 그럴 때마다 신동엽이형 유세윤, 크루들이 더 가면 안 된다고 말려준다. 1차 공연에서 다 쏟아낸 뒤 본 방송에 앞서 덜어내는 작업들을 한다. ‘SNL’이라는 팀은 참 팀워크가 좋다. 작가는 ‘ 밤새서 썼는데 왜 바꾸냐’ 그런 말 안한다. 연출도 디렉션 준거랑 다르다고 뭐라고 하지 않는다. 어쩔 땐 생방송 직전에 배역을 바뀌기도 한다. 배우도, 연출도, 작가도 바뀐 상황을 금새 캐치해 그걸 또 기막히게 해낸다.
Q. 다음 시즌도 출연할 계획인가?
정상훈 : ‘제발 그만 나와주세요’라고 할 때까지 하고 싶다. 매주 매주 작품을 만드는 기분이다. 24 시간씩 아이디어 짜고, 방송 당일에도 10~12시간씩 회의를 하고.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처음 생방송 할 때는 바들바들 떨었다. ‘실수하면 어쩌지’ 하고 심장이 떨리더라. NG라도 날까봐 계속 연습을 거듭했다. 그나마 뮤지컬하면서 쌓인 무대 경험이 있어서 버텼지. 아니면 그 ‘깡’이 어디에서 나왔나 싶다.
Q. 보통 무대에서 TV로 가는데, TV에서 무대로 돌아갔다.
정상훈 : ‘나 어때’를 할 때 연예인병에 걸렸다. 마스크를 쓰고 다녔다. 어느 순간 스타가 돼야 한다는 조바심이 생기더라. 조인성씨 송혜교씨와 어깨를 견줘야하고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런 것들이 꺾어지게 된 계기가 내가 연기를 못하고 있구나 하고 느끼면서다. 나보다 잘 하는 사람이 엄청 많구나. 연기를 잘 해야 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다가 무대를 만나게 됐다. 정성화 형이 나온 ‘아이러브유’라는 뮤지컬이었다. 이렇게 재미있는 게 있나, 이렇게 즐겁고 멋진 곳이 있나 싶었다. 그래서 오디션 보게 해달라고 졸랐다. 그렇게 뮤지컬 무대에 발을 디디게 됐다.
Q. 연기에 대해 돌아본 계기가 있나.
정상훈 : 일이 끊겼을 때다. 정성화 형이랑 오피스텔에서 담배를 피면서 시나리오를 써보면 어떨까 얘기를 했다. 그래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나온대로 보기만 했던 대본을 직접 쓰려고 하니까, 이럴 때는 이렇게 표현해야 겠구나 생각도 하게 되고, 책도 보게 되더라. 연극이랑 영화도 생각하면서 보게되고. 결국 내 연기를 다시 생각하게 됐다.
그러면서 지금처럼, 이렇게는 안 되겠다 싶었다. 이후에 드라마 제안이 들어왔지만. 그보다 무대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장 TV출연보다는 무대에서 배우는 것들이 훨씬 값지다고 봤다. 그러면서 조바심이 없어졌다. 연기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나를 비우지 않으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채울 수가 없다. 연기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것 같다. 무대에서 방송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있다.
Q. 원래 꿈이 개그맨이었다고 들었다. 개그클럽 출신이라고.
정상훈 : 개그맨을 꿈꿔서 개그클럽에 들었다기 보다는, 당시 서울예전 개그클럽이 연예인 지망생 사이에서 워낙 유명했다. 주위에서 연예인이 되고 싶으면 개그클럽을 가야 한다고 다들 입을 모았다. 신동엽, 안재욱, 이휘재 등 모두 거기 출신이다. 그래서 꼭 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거기서 이영자 선배님을 만나 선배 덕으로 데뷔를 하게 됐다. 그러다 ‘나어때’ PD님한테 캐스팅까지 됐다.
Q. 왜 그렇게 연예인이 되고 싶었나?
정상훈 : 원래 미대에 다녔었다. 부모님이 산업디자인으로 가라고 하셔서 갔는데, 저보다 소질이 많은 분들이 넘쳤다. 저는 사람 앞에 나서는 것을 좋아하고, 끼가 다분했다. 오락부장을 하고 친구들을 웃게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그때 케이블 TV가 처음 생기고 그럴 때여서 나도 방송에 출연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품게 됐다.
Q. 학창시절엔 어떤 학생이었나.
정상훈 : 뭐든 튀려고 애를 썼다. 서울예전은 개성 강한 친구들이 다 모여있는 곳이다. 그 안에서 ‘너희들 다 이길거야’ 이런 오기 같은 게 있었다. 캠퍼스라고 해봐야 300평 정도 밖에 안되는데, 거기 가면 무용, 연기, 실용음악과 다 거기 앉아있다. 누구는 발성 연습하고, 춤추고, 노래 연습하고. 거기를 내가 심태윤씨랑 랩을 하면서 지나 다녔다. 윌스미스 노래 가사를 한국어로 바꿔서 부르곤 했다.
Q. 뮤지컬? 코미디? 연기? 뭐가 가장 잘 맞는 것 같나.
정상훈 : 연기가 체질에 맞는 것 같다. 특히 코미디 연기. 코미디 잘하는 친구들은 진짜 연기를 잘 한다. 코미디를 살리려면 베이스가 좋아야한다. 반대로 연기력이 좋아야 코미디도 고급스럽게 산다. 송강호씨나 황정민씨가 그런 배우들이다. 진정한 메소드 연기를 해야한다. 김희원씨가 호스트로 나왔을 때 찍었던 ‘아저씨’ 패러디도 그래서 사랑받았던 것 같다. ‘한류TV’도 진지하게 연기하면서 했기에 더 재미있게 나올 수 있었다.
Q. 이번에 유세윤이랑 앨범도 냈다.
정상훈 : 유세윤씨가 ‘월세 유세윤’이라고 주기적으로 앨범을 내고 있지 않나. 이번에 5번째곡 작업에 함께 하자고 제안을 하더라. 재미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도 즐거운 작업이었다. 녹음도 한 시간 만에 끝냈다. 뮤직비디오 찍는다. ‘양꼬치엔 칭따오’의 내레이션이 나오는데 내가 가사도 썼다. 노래를 한 번 들으면 알듯 말듯 궁금해서 다시 듣게 만드는 재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Q. 포털사이트에 육아 일기도 연재하고 있다.
정상훈 : 그렇게 많은 분들이 보실 줄 몰랐다. 저를 다시 생각했다는 분들 많고, ‘이미지 세탁하려고 한 거 아니냐’, ‘직접 쓴 거 맞냐’는 분도 있다. 첫 아이가 역아였는데 아내가 자연출산을 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때 다행히 내가 놀고 있어서(?) 애도 봐주고, 이유식도 만들고 했었다. 그런 경험이 쌓여서 육아일기 됐다. 좋은 기회가 돼서 포털에 연재하게 됐는데, 최근 출판 제의도 받아서 논의 중이다.
Q. 가수 데뷔에 작가 변신까지. 변신이 끝이 없다. 만능 엔터테이너라고 해야할까.
정상훈 : 하하. 따지고 보니 그렇네. 근데 굳이 만능 엔터테이너가 되려고 한 것은 아니다. 사실 내 롤모델이 성동일 선배님이다. 연기 스펙트럼이 아주 넓은 배우다. 재미있고도 묵직하잖나. 드라마 ‘그린로즈’에서 만났는데 형님이 하시는 것을 많이 보고 배웠다. 어떤 배역이든 열심히 하시고, 또 완벽하게 소화하는 분이다. ‘작은 사람이 있을 뿐이지 작은 배역은 없다’는 말이 있다. 어떤 것이든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Q. 앞으로 또 도전하고 싶은 것이 있나.
정상훈 : 우선은 좋은 드라마나 영화를 만나고 싶다. 진중한데 재미있는 악역같은, ‘추노’에 등장하는 악역 천지호 같은, 그런 역할을 만나보고 싶다. 재미있으면서 묵직하고 치졸한 그런 캐릭터를 기다리고 있다. 아, 그리고 ‘양꼬치엔 칭따오’로서 내가 중국어학원 CF는 하나 찍어야하지 않겠나. 하하. 그런 목표도 가지고 있다.
최보란 기자 ran@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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