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이정화 기자] 비원에이포 신우의 발견이다. ‘체스’를 통해 처음으로 뮤지컬에 도전한 그에게서 될성부른 뮤지컬 배우로서의 자질을 목격했다.
‘체스’는 세계 체스 챔피언십에서 경쟁자로 만난 미국의 챔피언 프레디 트럼퍼와 러시아의 챔피언 아나톨리 세르기예프스키 간의 긴장감 넘치는 정치적, 개인적 대립과 프레디의 조수 플로렌스가 아나톨리와 사랑에 빠지며 벌어지는 운명의 소용돌이를 담은 작품. 신우는 ‘체스’에서 러시아의 챔피언 아나톨리 역을 맡아 다양한 감정선을 넘나든다. 그러면서 3,000석 규모의 대극장을 그의 에너지로 꽉 채우는, 밀도 높은 존재감을 드러낸다.신우는 비원에이포 멤버 중 가장 먼저 연기에 도전한 이였다. 2012년 KBS2 ‘선녀가 필요해’에서 아이돌 그룹 비원에이포의 이미지를 고스란히 차용한 듯한 역할로 연기에 발을 들였다. 하지만 그 이후엔 여타 다른 작품에 출연하지 않았고, 그룹 활동에 집중했다. 노래, 랩, 작곡까지 가능한 만능 재주꾼으로 팀 내에 존재하며 실력을 쌓아갔다.
신우는 강렬한 색채로 단번에 존재를 알리는 쪽이라기 보다, 꾸준하고도 은근하게, 사람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서서히 물들이는 쪽에 가까운 인물이었다. 프로듀서이자 리더인 진영이 비원에이포라는 그룹을 알리는 선두에 서 있었다면, 신우는 자신들의 앨범에 자작곡을 수록하거나 하면서 실력파 아이돌로서의 이미지를 든든하게 받쳐 주는 역할을 했다. 그런 그가 처음으로 도전한 뮤지컬에선 신우, 그 자신으로서의 가능성과 역량을 임팩트있게 선보였다.
그가 극에서 맡은 아나톨리는 원작에서 40대로 설정된 캐릭터다. 여기에 냉전 시대가 배경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아나톨리는 적국 미국의 여인 플로렌스와 사랑에 빠져 망명을 결정하고 그러다 다시 정치적인 공작으로 인해 플로렌스와 헤어지게 된다. 단순히 아이돌이기 때문이 아니라, 20대가 연기하기엔 녹록지 않은 역할이다. 아나톨리 역에 쿼드캐스팅 된 조권이 “초반에 이 작품을 접했을 때만 해도 연령대에 대해 전혀 들은 바가 없었다”며 “40대란 설정을 신경 쓸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보시는 분의 해석에 따라 20대 후반의 청년일 수도 있고, 30대 후반의 남자일 수도 있을 거다”라고 말한 것처럼, 아나톨리는 관객에게 많은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허나, 시대의 거친 흐름 속에서 사랑, 배신, 야망 등의 감정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가혹한 운명에 발버둥 치는 인물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신우는 이런 아나톨리를 자신이 지닌 외적인 조건을 잘 활용해 표현해 냈다. 상대역 프레디와 함께 있어도 밀리지 않는 건장한 체격은 냉전 시대에 러시아라는 국가가 지녔던 ‘커다랗고, 차가운’ 듯한 이미지와 맥을 같이 해 극의 몰입감을 높인다. 또한, 이것이 주인공 여배우와의 케미에서도 훌륭한 조건이 되어주는 건 말할 것도 없다. 플로렌스와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대폭 생략된 듯 보이는 스토리의 빈약함도 안정감 있고 자연스러운 대사 처리로 설득력을 더한다. “우리 같이 통제받는 사람들은 사랑할 사람도 국가가 정해주죠”라는 얘기를 플로렌스에게 건넸을 때, 그녀의 마음에 파동이 일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게 만들 정도다. 연기뿐만이 아니다. 넘버를 소화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아바(ABBA)의 비요른 울바에우스, 베니 앤더슨이 만든, 다소 어려운 넘버들을 꼭꼭 씹어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한 달이라는 짧은 연습 기간에도 불구하고, 신우 특유의 부드러우면서도 심지 있는 목소리로 노래를 선보였다. 물론, 처음 무대에 오른 만큼 너무 또박또박 말하듯 노래를 하는 부분은 앞으로 개선해 나가야 할 점이긴 하나, 뮤지컬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기엔 충분했다. 프레스콜 당시에 가졌던 기자회견에서 “나를 갈고 닦은 후에 시작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던 말처럼 그는 그동안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 닦았고, 담금질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체스’를 통해 드러났다.
8월 비원에이포 컴백을 앞두고 비원에이포 내에서의 역할과 신우 개인으로서의 역할 모두를 위해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고 있는 그의 성장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뮤지컬 ‘체스’는 오는 19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이정화 기자 lee@
사진제공. 쇼홀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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