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텐아시아=황성운 기자] 통통 튀고 밝은 그리고 천방지축. 부잣집 아이 아니면 도시적인 여성. 고준희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이런 모습을 주로 보여줬다고. 또 모델 포스를 풍기는 늘씬한 몸매는 패셔니스타를 떠올리게 한다. 그런 그녀와 임상수 감독의 만남은 어울리지 않았다. 왠지 자유로운 영혼일 것 같은 류승범과도 완벽한 ‘케미’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나의 절친 악당들’ 속 고준희 모습이 궁금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고준희는 맨발로 레커차를 운전하는, 거침없이 와일드한 매력을 지닌 나미를 통해 또 다른 매력을 전했다. 기존 고준희의 매력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새로운 매력을 덧붙였다.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자유분방함과 경쾌함이 살아났다. 나미 캐릭터를 맡아 현장에서 잘 뛰어놀았다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남자가 봐도, 여자가 봐도 나미는 참 멋진 여자였다. “여태까지 고준희가 못 보여줬던 걸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은 감독님이 있으셨던 것 같다. 저는 그 장을 잘 만들어주셔서 놀 수 있었다”고 밝혔다.

Q. 뭔가 통쾌한 기분이 들었겠다. 영화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고준희 : 촬영할 때는 몰랐다. 완성된 영화를 봤을 때 통쾌한 게 큰 것 같다. 대리 만족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Q. 어떤 대리 만족.
고준희 : 예를 들어 절친 악당들이 지누의 상사이면서 잘못된 생각을 하는 나쁜 사람들을 죽이지 않나. 실질적으로 스트레스받거나 죽이고 싶다고 해서 죽일 순 없으니까. 그런 것도 대리만족인 것 같다. 또 여자 측면에서 보면, 나미가 남자한테 사랑 표현하는 것도 대리만족을 느낄 것 같다.

Q.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도 그런 게 느껴졌나.
고준희 : 감독님께서 영화 보기 전 ‘시나리오만큼 나왔다’고 하시더라. 일단 그 얘기에 안도했다. 각본 쓰셨던 분이 마음에 든다고 한 거니까 기대가 있었다. 그리고 감독님 자체가 유쾌하고 유머가 많은 분이다. 고준희에 대해 몰랐을 때는 그런 유머를 넣을 생각을 안 했다. 시나리오에 나미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멋있는 여자였다. 남자들이 봤을 때도, 여자들이 봤을 때도. 그런데 원래의 고준희는 웃기는 거 좋아하고, 웃기고 싶어 한다. 그런 모습을 감독님이 보시고 나미한테 넣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선 현장에서 주문했던 것 같다.

Q. 애초 시나리오에서는 영화처럼 유쾌한 캐릭터가 아니었다는 말인가.
고준희 : 악당들이 죽이고, 캐릭터 자체에 판타지다운 면이 있으므로 굳이 유머를 넣으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다.
Q. 고준희가 ‘나의 절친 악당들’에 끌렸던 건 무엇인가.

고준희 : 통통 튀고, 밝고, 천방지축 그리고 부잣집 아이나 도시적인 여성. 생각해보면 이전에 보여줬던 모습은 이랬던 것 같다. 이번 작품에서도 자유분방하지만, 천방지축의 느낌은 아니다. 또 자기 자신한테 확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Q. 보는 사람도 그렇게 느꼈다. 이전 고준희에게서 볼 수 없었던 경쾌함이 있었다. 영화 전체적인 분위기도 그랬지만, 고준희 역시도 그런 느낌이 잘 묻어났다.
고준희 : 여태까지 고준희가 못 보여줬던 걸 보여주고자 하는 마음은 감독님이 있으셨다. 그 장을 잘 만들어주셔서 놀 수 있었다. 기대하는 마음보다는 내가 즐겼던 것만큼 사람들도 같이 느낄 수 있을까, 그런 마음이다.

Q. 감독이 캐스팅을 참 잘했다는 생각이다. 왠지 자유로운 영혼을 지녔을 것만 같은 류승범은 지누 역에 잘 어울렸고, 고준희도 그 기운이 묻어난 느낌이다. 그만큼 호흡이 잘 맞아떨어졌다.
고준희 : 오빠의 그런 기운과 놀게 해주려는 감독님의 의도가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나미로 즐길 수 있게 도와준 것 같다.Q. 더욱이 임상수 감독의 오랜 팬이라고.
고준희 : 감독님 영화를 보면 ‘때깔’이라고 해야 하나. 뭔가 하나를 입힌 느낌이다. 핸드폰으로 치면 커버를 씌운 느낌이랄까. 그런 게 좋다. 그래서 외국영화 같은 느낌이 든다. 또 대사도 뭔가 비아냥거리면서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데 그런 것도 좋아했던 것 같다. 감독님이 군더더기 싫어한다. 연출할 때도 담백한 것을 좋아한다. 시나리오에도 대사가 많이 없었다. 예를 들면, 나미의 가정환경 등도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영화를 보다 보면 저절로 이해된다.

Q. 실제로 작업해 본 임상수 감독은 어땠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지 않나.
고준희 : 실망한 적은 없고, 감동한 적은 있다. 우선 화를 낸 적이 없다. 밤새거나 체력이 힘들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짜증 날 수 있는데 그런 법이 없다. 그런 게 나한테는 감동이었다. 그래서 현장 분위기가 좋을 수밖에 없었다.

Q. 걱정은 없었나. 임상수 감독의 전작들을 봤을 때 노출도 많고, 센 영화들이었으니까. 그에 대한 부담이 없을 순 없을 것 같은데.
고준희 : 감독님의 팬이어서 그런 부담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노출에 대한 부분은 이미 사전에 약속한다. 감독님 또한 그 신에서 원하는 것만 보여주고자 했다. 첫날밤 베드신할 때 헬멧을 잡는 것도, 그런 유머를 넣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것만 보여주면 됐지, 굳이 노출’이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물론 5~60명 스태프 앞에서 그런 행위를 하고, 신음소리를 내는 게 민망할 수 있다. 그럴 때도 나미로 집중할 수 있게 해주셨다. 감독님도, 승범 오빠도.

Q. 극 중 나미와 지누, 그 관계는 쉽게 이해됐나. 처음에 같이 차를 타고 가면서 류승범이 야릇한 상상을 하지 않나. 그래서 베드신도 상상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고준희 : 처음에는 상상 신이 없었는데 한 번 찍어보자고 하더라. 완성된 영화를 보는데 판타지와 현실이 왔다 갔다 하는 느낌이었다. 그 느낌이 좋았다. 누군가는 칼 휘두르는 것도 상상으로 봤다고 하더라. 이처럼 잔인하거나 야할 수 있는 것도 유머러스하게 넘어가고, 눈을 찌푸리지 않게 되는 것 같다.

Q. 그보다 나미의 감정 흐름은.
고준희 : 나미는 부모님도 없고, 사랑 못 받고 자란 아이다. 지누한테도 ‘남자랑 한 번 이상 자는 거 처음’이라고 계속 이야기하는데, 그건 사랑에 대해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자랐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다. 겪어보지 않았으니까, 사랑받지 못했으니까 주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거다. 그런 아이인데 자기도 모르게 마음에 들어온 거다. 그 감정을 이해하는 데 어렵진 않았다. 그래서 나미는 더 고민을 했던 것 같다. 당연히 돈을 선택해야 하는데, 사랑이란 감정 때문에 지누를 구하러 가는 자기 자신이 짜증 났던 거다. 더욱이 이런 감정을 처음 느껴보기 때문에 그 짜증이 더해지고.Q. 액션이 많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격렬하고 통쾌한 액션 연기도 소화했다.
고준희 : 촬영할 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했다. 처음에는 혹시라도 다치지 않을까 겁먹었다. 그래서 지금까지 안 했던 것도 있다. 이번 같은 경우는 영화는 하고 싶고, 그런데 액션은 있고. 그래서 해야만 했다. 그런데 해보니까 재밌었다.

Q. 이런 액션이 처음이라서 쉽진 않았을 텐데.
고준희 : 창준 역의 김형규와 같이 액션 스쿨을 다니면서 합 맞추는 연습을 했다. 정통 액션 영화는 아니라서 진짜로 잘 때려야 하고, 자세가 좋아야 하는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계집아이처럼 어설프게 때려서도 안 됐고. 그래서 합 맞추는 연습을 많이 했다. 물론 중요한 신에서는 대역 분이 대신한 것도 있는데 풀샷을 잡거나 컷을 끊지 않고 가는 것은 다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거다. 극 중 창준을 나미가 업어치기 하는 장면은 한번 해보자고 한 건데 잘 되더라. 그래서 그냥 하게 됐다. (웃음) 아무래도 긴 팔다리의 여자가 하면 멋있을 것 같다고 해서.

Q. 최근 인터뷰한 모 여배우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와이어나 액션은 긴 사람이 해야 그림이 예쁘다고. 그런 점에서 고준희는 참 유리하다.
고준희 : 그래도 나름의 고충은 있다. 자칫 어설퍼 보일 수 있다. 상대적으로 단단하고, 야무진 느낌은 없으니까.

Q. 스스로 판단했을 때 액션에 재능이 있는 것 같은가.
고준희 : 재능보다는 재밌었다. 그리고 찍은 걸 보니까 폼은 나오는 것 같다. (웃음) 시원시원해 보이는 것도 있고. 물론 멍이나 타박상 정도는 계속 있었던 것 같다. 평소에도 잘 부딪히는 편이다. 차에 야쿠부(샘 오취리)가 떨어질 때도 동작 크게 하다가 핸들에 정강이 부딪히고.

Q. ‘나의 절친 악당들’은 어떤 영화인가. 마지막으로 주연 배우의 생각을 듣고 싶다.
고준희 : 사실 모두 악당들이다. 악당들과 똑같이 사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대변해주는 것 같다. 단순히 화려하고 큰 영화여서가 아니라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으므로 시원한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영화인 것 같다.

황성운 기자 jabongdo@
사진. 구혜정 기자 photonine@



© 텐아시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