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슴 속에 해철 형이 살아계시는 동안 넥스트 음악은 계속 울려 퍼지고 앞으로도 영원할 겁니다.”(이현섭)
27일 넥스트 유나이티드의 콘서트 ‘민물장어의 꿈’이 열린 고려대 화정체육관. 이날 원래 무대에 서기로 했던 신해철은 이제 여기 없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영광의 순간을 함께 했던 정기송, 김세황, 김영석, 이수용, 데빈, 쌩, 제이드, 쭈니, 김동혁 등의 넥스트 전 멤버들과 동료 가수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들이 있었다.한국 록계를 찬란히 빛냈던 이 넥스트의 황금멤버들이 다시 모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공연 1분는 넥스트의 전성기를 이끈 3기 멤버들 김세황(기타), 김영석(베이스), 이수용(드럼)이 함께 했다. ‘세계의 문’의 인트로가 시작되자 무대 뒤 스크린으로 신해철의 생전 모습들이 지나갔다. 신해철의 내레이션으로 듣는 “이제 타협과 길들여짐에 대한 약속을 통행세로 내고 나는 세계의 문을 지나왔다”는 가사는 여전히 우리에게 큰 울림을 남겼다.
김세황, 김영석, 이수용이 넥스트의 이름으로 다시 무대에 선 것은 2006년 이후 약 8년 만이었다. 죽은 자가 산 자들을 모이게 한 것이다. 이들이 신해철과 함께 만들고 연주했던 ‘라젠카 세이브 어스’ ‘머니’ ‘코메리칸 블루스’ 등은 신성우, 김진표, 홍경민 등이 대신 노래했다. 김진표는 신해철의 노래 제목으로 랩을 지어 들려주며 고인의 넋을 기렸다.넥스트 4기 멤버들인 데빈(기타), 쌩(베이스), 쭈니(드럼), 김동혁(기타)은 2부 무대를 책임졌다. ‘사탄의 신부’를 정말 오랜만에 들었다. 정말 신해철이기 만들 수 있는 웅장한 발라드였다. 이어 ‘고스트 스테이션’의 시그널이 흐르자 마치 예전으로 돌아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We are childen of darkness…” 맞다. 우리는 ‘고스트 스테이션’을 함께 들을 때 어둠의 자식들이었고, 두려울 게 없었다.
‘그로잉 업(Growing Up)’은 김원준이 노래했다. 신해철이 만든 가장 촌스런 노래 중 하나, 하지만 순수해서 좋았다. ‘먼훗날 언젠가’는 신해철이 프로듀스했던 밴드 에메랄드 캐슬의 지우가 노래했다. K2김성면은 ‘이중인격자’에서 예년의 고음을 들려줬고, 변재원은 ‘인형의 기사’를 차분히 노래했다. 보컬들이 무대 뒤로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연주자들의 어깨를 다독여주고 포옹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하지만 그만큼 신해철의 빈 자리에 대한 아쉬움도 커졌다.
‘네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에서 안흥찬의 시원한 그로울링은 가슴을 뻥 뚫리게 해줬다. 안흥찬은 마치 레슬러처럼 무대 위를 헤집고 다니며 무시무시한 보컬을 들려줬다.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 네 인생 전부를 걸어 보고 싶은 그런, 니가 정말 진짜로 원하던 네 전부를 걸어 보고 싶은 그런, 니가 진짜로 원하는게 뭐야! 그 나이를 처먹도록 그걸 하나 몰라”라는 가사는 안흥찬의 목소리를 빌어 우리의 폐부를 찔렀다. 안흥찬은 하늘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형 고마워”라고 외쳤다. 2부를 마치자 쭈니는 방방 뛰며 데빈의 품에 안겼다.
3부는 넥스트의 원년멤버인 정기송(기타)을 필두로 이현섭(보컬), 노종헌(기타,) 제이드(베이스) 신지(드럼), 김구호(건반)가 밴드를 이뤘다. 이들은 본래 고인과 함께 넥스트 유나이티드를 재건하기로 한 멤버들이기도 하다. ‘아이 원 잇 올(I Wnat It All)’이 신해철과 이현섭의 트윈 보컬로 흐르자 공연장이 더욱 열기로 휩싸였다. 이현섭이 ‘해에게서 소년에게’ ‘히어 아이 스탠드 포 유(Here I Stand For You)’ 등을 노래할 때 신해철의 생전 목소리가 함께 깔리며 감동을 더했다.
이현섭은 “지난 62일 동안 오만가지의 감정을 느꼈다. 여러분도 비슷한 심정이었을 것”이라며 “공연장에 오시면서 많은 생각들을 하셨을 것 같다. 우리가 마음껏 웃고, 떠들고, 뛰고, 또 울고 가는 것이 형이 원하는 바일 것”이라고 말하자 관객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이현섭은 신해철의 사촌동생인 신지우의 피아노에 맞춰 ‘일상으로의 초대’를 노래하며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켰다.
신해철의 생전 마지막 앨범인 ‘리부트 마이셀프 파트.1(REBOOT MYSELF Part.1)’의 타이틀곡 ‘단 하나의 약속’이 흐를 때에는 최근 기자회견 당시의 영상이 흘렀다. 예전의 꽃미남 시절 사진보다 최근의 다소 불은 모습을 보니 갑자기 눈물이 쏟아질 뻔했다. ‘단 하나의 약속’, 왜 우리는 이 멋진 곡을 예전의 노래들만큼 사랑해주지 못했을까?
하지만 이날 공연이 슬프기보다는 오히려 경쾌했다. 이현섭은 무게감을 잡기보다는 유쾌한 멘트를 날리며 관객들을 웃음짓게 해줬다. 앵콜에서는 공연에 참여한 멤버들이 다시 나와 ‘그대에게’를 합창했다.공연장의 열기는 뒤풀이 장소로도 이어졌다. 넥스트 멤버들뿐 아니라 예전 넥스트 앨범작업에 참여한 엔지니어, 사진작가, 매니저들이 모여 고인을 추억했다.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이들은 이렇게 다시 모이게 해준 것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며 소주를 넘겼다. 넥스트의 원년멤버인 정기송은 신해철보다 나이다 두 살 많아 공연 준비를 하면서 맏형 노릇을 했다. “해철이가 다시 넥스트를 해보자고 해서 난 너무나 즐거운 마음으로 수락을 했죠. 그런데… 이렇게 뒷정리를 하라고 날 불렀나 봐요.”(정기송)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사진제공. KCA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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