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케일 크게 말해볼까요? 한국 대중음악 역사에 족적을 남기고 싶어요. 우리는 그럴 수 있습니다. 우리 같은 음악이 없잖아요. 어쿠스틱 기타를 잡으면 다들 아름답고 세련되게 하려 하죠. 우리는 뭔가 결핍되고, 갈구하고, 또 갈망하는 음악이에요. 부족한 것이 매력이고, 힘이죠.”
18일 서울 대학로 인근 해피씨어터에서 3집 ‘3.0’ 발매 기념 쇼케이스를 연 십센치가 자신들의 야망(?)을 전했다. 분명히 십센치는 이 시대 하나의 아이콘이다. 질펀한 가사와 달콤한 멜로디로 우리들을 사로잡은 이 엉큼한 2인조는 ‘통기타와 젬베’ 열풍을 설명하는 척도였고, 정규 1집 ‘1.0’은 소속사도, 별 홍보도 없이 하루 만에 초도 1만 장을 매진시키는 진기록을 세웠다. ‘무한도전 – 서해안고속도로가요제’에 출연한 뒤에는 전국구 스타가 됐다.십센치는 길거리에서 노래할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능청스럽고 해맑다. “음원차트는 주식이다. 음악을 하는 이유는 20~30대 직장여성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라는 말을 서슴없이 던진다. 하지만 새 앨범은 조금 불안했나보다. ‘3집에 대한 불안감’이란 곡에서는 ‘어떤 노래를 만들어야 하나, 아메리카노 같은 거면 되나’라고 노래한다. “저희가 그동안 드러내지 않은 음악에 대한 진심, 성공에 대한 욕망을 알 수 있는 노래에요. 개인적으로 이 가사는 한국 가요계의 혁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가사가 어디 있었나요?”(권정열)
새 앨범에서는 십센치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했다. “전작들은 우리가 가지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 대한 욕심이 들어갔어요. 1집에서는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대중적인 것과 인디의 느낌을 섞으려 했고, 2집에서는 우리가 듣고 자란 고전의 빈티지함, 절제된 음악성 등 우리에게 없는데 너무 가지고 싶은 것들을 해보려 했죠. 이번엔 그런 거 없어요. 정말 우리 자신에게 충실한 음악입니다.”(권정열)‘담배왕 스모킹’은 마치 통기타로 메탈을 연주하는 듯한 재밌는 곡이다. 이처럼 십센치는 자신들이 잘하는 것에 충실했다. “이번 앨범에는 사운드가 바뀌었어요. 드럼은 아예 없죠. 통기타와 젬베로 가는 것이 좀 부족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이번 방식이 좋을 것 같았어요. 통기타로 다양한 장르를 해보려 했습니다.”(윤철종)
본인들에게 충실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감 때문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니 십센치 같은 음악을 하는 팀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다들 세련된 걸 하려 하죠. 저희는 음악가로서 인정받는 것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고 우리가 제일 잘하는 것, 아무도 따라하지 못하는 것을 해보고 싶었어요. 치기어린 음악으로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십센치에게 딱 맞는 음악인 거죠.”(권정열)
미리 공개된 ‘쓰담쓰담’은 음원차트 정상에 오르는 좋은 성적을 거뒀다. “기분이 좋습니다. 우리는 음원차트를 주식처럼 봐요. 우리는 대기업 사이에 있는 개미인 거죠. 개미 중에 슈퍼 개미.”(권정열)
십센치의 음악 중 중요한 요소는 바로 ‘섹스 코드’다. 이들은 지난 앨범들에서 지속적으로 야한 가사를 노래해왔다. 19금 앨범을 내는 것은 십센치의 숙원이기도 하다. “철종 형은 모르겠지만 전 평소 95% 이상이 그(섹스) 생각이에요. 당연히 그런 가사가 많을 수밖에 없죠. 야한 가사도 재밌게 쓰면 좋잖아요. 어필하려고 하는 건 아니에요. 요새 그런 거 한다고 어필되는 세상도 아니고.”(권정열)
신보에는 섹스에 대한 이야기가 적어졌다. 본인들 말로는 ‘쓰담쓰담’도 야한 가사가 아니라고. “얘깃거리가 떨어져서 그런지 야한 노래가 잘 안 나오더라고요. ‘쓰담쓰담’은 전혀 야한 곡이 아니고요. 심연을 위로하는 노래에요. 야한 곡은 ‘드림스 컴 트루(Dreams Come True)’ 한 곡뿐입니다.”(권정열)타이틀곡 ‘그리워라’는 헤어진 연인을 그리워하는 차분한 곡이다. “이중적인 곡이에요. 옛 연인을 그리워하는 우울한 곡인데요. 그런 기억 자체가 있는 것은 설레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그리움과 라라라가 합쳐진 ‘그리워라라라라’라는 후렴구가 나왔어요. 그리운데 설레고 행복한 거죠.”(권정열)
유희열의 토이와 앨범 발매 시기가 겹친다. 십센치는 유희열이 진행했던 FM ‘라디오천국’에 1년 반 정도 출연한 적이 있다. 권정열은 “라디오를 오래 함께 하면서 아버지와 아들과 같은 관계가 됐다”며 “아버지가 아들에게 이래도 되는 겁니까?”라고 앨범 발매 시기가 겹치는 것에 대해 언짢음을 드러냈다. “올해 앨범 못 낼 것 같다고 해서 내심 좋아하고 있었어요. 아버지가 1위를 하고 아들이 2위를 한다면 아름답지 않을까요?”(권정열)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도 있잖아요. 둘 다 ‘윈윈’했으면 좋겠습니다.”(윤철종)
‘인디 신의 아이돌’ 십센치는 기존의 명성을 이어갈 수 있을까? “신(scene)을 나누는 것은 웃긴 거긴 한데, 제 주변 친구들이 있는 이 동네의 음악들의 인기가 확실히 예전 같지 않아요. 좋은 음악이 정말 많은데 사람들이 몰라서 못 듣는 것 같아요. 힙합 때문에 밀린 걸까요? 십센치가 홍대 음악의 견인차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우리가 잘 되면 가요계가 좀 더 재밌어지지 않을까요?”
글. 권석정 morib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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