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호정이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월석아트홀에서 열린 영화 ‘화장’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부산국제영화제)

“배우의 운명이란 게 이런건가 생각해봤다.”

임권택 감독의 102번째 영화 ‘화장’에 출연한 배우 김호정이 기자회견 중에 눈물을 보였다. 그 눈물은 많은 의미를 품고 있었다. 김호정이 극 중 맡은 역할은 오랜 투병 끝에 죽음으로 향하는 오상무(안성기)의 부인 역할이다. 그녀는 자신의 투병 이야기에 눈물을 쏟았다.김호정은 5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 월석아트홀에서 열린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 ‘화장’ 기자회견에서 “개인적으로 많이 아파봤던 경험이 있었고, 주변에도 있기 때문에 자신감 있게 하지 않았나 싶다”고 소감을 전했다.

그녀는 극 중 뇌종양 투병으로 삭발은 물론 화장실에서 음모 노출까지 하는 연기 투혼을 펼쳤다. 더욱이 투병 환자의 감정을 끌어내면서도 남편에게 자신의 추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감정까지 뒤섞여 있을만큼 표현하기 어려운 장면.

이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김호정은 “화장실에서 음모를 드러내는 장면은 시나리오에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며 “감독님께서 너무 조심스럽게 말씀하셨고, 수월하게 했던 것 같다”고 덤덤하게 소감을 이었다. 이어 “특별하게 어렵다기 보다 그 장면이 에너지를 많이 소비해야 하는 장면이어서 그에 충실했다”며 “배우가 자신있게 연기할 수 있는 건 자신이 잘 알수 있는 것을 할 때”라며 “개인적으로 많이 아파봤던 경험이 있고, 그래서 자신감 있게 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이날 모더레이터인 이용관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은 김호정의 말이 끝난 직후 “병의 명칭은 달랐지만, 오랜 투병 경험을 했기 때문에 본인에게 감정이입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고 거들었다.

이용관 위원장의 말이 전해지마 김호정은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함께 자리했던 김규리마저 눈물을 훔쳤다. 김호정은 “사람들이 모르는 줄 알았는데 위원장님께서 말씀하셔 깜짝 놀랐다”며 “눈물을 보인 건 여러 만감이 교차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 영화가 들어왔을 때 임권택 감독님 영화라고 해서 무조건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투병하다 죽는 역할이어서 못한다고 했다”며 “그런데 누군가는 해야할 거고, 배우의 운명이란 게 이런건가 싶더라. 그래서 담담하게 찍었다”고 설명했다.

이 장면에 대해 임권택 감독은 “위험부담도 있었지만, 정말 아름답게 표출될 것 같아 아주 무리한 부탁을 했다”며 “현장에서 모니터를 보면서 반신으로 찍은 것보다 월등히 좋은 장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또 임 감독은 “이 장면으로 현실감을 농도 짙게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며 “영화를 겉?기로 흘러가고 있다는 느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보셨다면, 그 컷이 굉장히 큰 역할을 했다고 설명 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이날 눈물을 훔친 김규리는 “14년전인가 우연히 ‘나비’란 영화에서 언니가 연기하는 걸보고 굉장히 반했다”며 “꾸준히 생각났는데, 아내 역할에 김호정 언니가 캐스팅됐다고 했을 때 너무 행복했다”고 기억을 들춰냈다. 이어 “언니가 연기하는 걸 보고, 정말 많이 깨닫고 배웠다”며 “그리고 수많은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도 (투병)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안 했다. 이 자리에서 처음 알게 돼 깜짝 놀랐다. 사랑해요 언니”라고 덧붙였다.

‘화장’은 오랜 투병 중인 아내가 죽음과 가까워질수록 다른 여자를 깊이 사랑하게 된 남자의 서글픈 갈망을 그린 이야기로, 2004년 제28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김훈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부산=글. 황성운 jabongdo@tenasia.co.kr
부산=사진. 변지은 인턴기자 qus1228@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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