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혁

최근 장혁은 장나라와 12년 만에 재회작으로 화제가 된 MBC 드라마 ‘운명처럼 널 사랑해’(이하 운널사)를 끝마쳤다. 초반 샴푸신을 시작으로 또 하나의 만화적 캐릭터로 완성된 드라마 속 이건이라는 인물은 장혁 안에서 태동했다. 코믹한 설정을 위해 초반 다소 과하게 표현되던 캐릭터가 중후반부 멜로로 매끄럽게 미끄러지는, 요즘 유행하는 드라마 캐릭터 작법을 그대로 따른 이건을 장혁은 그만의 것으로 완성시키는데 성공했다. 정작 그는 그 공을 온전히 ‘집을 잘 짓고 기다려준’ 장나라에게 돌렸으나, 코믹과 멜로 사이 에너지의 조절을 한 것은 역시 그 자신의 몫이다.

장혁은 데뷔 시절 반항기 가득한 마스크로 한 때 ‘리틀 정우성’으로 통했다. 이후 영화 ‘화산고’로 주목받는 충무로의 신예로 성장하고, 청춘스타로 오랜 시간 사랑받았다. 나이를 좀 더 먹고나서는 드라마 ‘추노’나 ‘뿌리깊은 나무’ 등의 대표작을 몇 편 더 추가했다. 데뷔 17년의 행보 중 유독 도드라진 것은 역시 특유의 꽉찬 에너지가 분출한 작품들이다. 그래서 열정이나 열혈로 설명된 장혁에게 ‘운널사’ 역시도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이런 ‘운널사’를 끝마친 2014년 9월의 장혁은 생각이 많아 보였다. 어떤 질문에도 망설임의 흔적 없이 즉각적으로 속사포 대답이 터져나왔다. 평소 그만큼 생각을 많이 하고 있다는 증거다.

장혁

Q. 이건이라는 캐릭터는 최근 드라마에서 도드라지는 다소는 일본의 만화적 캐릭터의 연장에 있는 듯 하다. 그런가하면 드라마 속에 숨은 듯 도드라지지 않는 캐릭터도 있는데 배우로서는 어떤 연기가 더 편안한가.
장혁 : 연기를 하면서, 캐릭터를 나한테 맞춰야하는 것인지 혹은 만들어가야 하는 것인지 아직도 뭐가 맞는지 모르겠다. 결국 어쩌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이야기일 수 있다. 그런데 요즘 드는 생각은 표현을 많이 하는 것 역시 그만큼 알고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다시 생각해보면 내가 캐릭터로 가는 것이나 캐릭터를 내게 데려오는 것이나 두 가지 다 맞다.Q. 이건의 경우는 어느 쪽이었나.
장혁 : 이건은 이 캐릭터를 계속 드리블로 때려줘야 한다는 느낌을 받으면서 연기했다. 이 신에서 이 골을 넣어야돼라는 지침서를 가지고 있다면 감독님과 장나라가 패스를 주고 받을 때 나는 드리블로 가는 느낌이었다.

Q. 헤어스타일이나 의상에도 신경을 썼다고 들었다. 그런 한편 대부분은 자신의 스태프를 믿고 의지하는 편이라고도 들었는데.
장혁 : 나는 매니저가 운전을 할 때 뒷자리에 앉지 않는다. 늘 옆에 탄다. 만약 내가 뒤에 타면 내 매니저는 운전기사가 되지만 옆에 앉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면 동료가 된다. 또 뒤에 앉은 스타일리스트 스태프와 작품 이야기를 같이 한다. 함께 시나리오를 읽고 그 안에서 함께 찾는다. 같이 만들어가야하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Q. ‘운널사’의 원작을 혹시 봤나.
장혁 : 봤다. 보고나서 느낌은 똑같은 김밥이지만 다른 종류라는 느낌이었다. 김밥이 원래 그렇지 않나. 어떤 재료를 첨부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중국 원작에서는 남자 캐릭터가 이건처럼 코미디를 하지는 않더라. 우리의 경우, 일단 감독님이 코미디를 원했고 나는 ‘원하다면 막 던질 수 있으나 대신 돌아오게끔만 해달라’고 했다. 감독님이 신뢰를 분명히 줬기에 이건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장나라라는 배우가 집을 잘 짓더라. 집을 잘 짓고 잇었기에 내가 돌아와 붙었을 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Q. 중화권에서도 반응이 좋았는데, 역시 원작의 힘이었을까,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
장혁 : 체감하기로는 원작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재해석에 대한 설득력도 호감을 얻었다고 생각한다.

Q. 중화권 반응 덕분에, 확실히 시장이 넓어졌다는 것을 체감했을 듯 하다.
장혁 : ‘명랑소녀 성공기’를 하고 일본에 처음 가봤는데, 신기했다. 한국에서 찍은 것을 어떻게 여기서도 다 알고 있을까 싶더라. 이번에는 장나라의 힘도 컸다. 장나라는 중국에서 설득력이 있는 배우다.

장혁
Q. 이번 드라마에서는 과거 TJ라는 래퍼로 활동했던 이력을 패러디하기도 했다.
장혁 : 당시에 장르 개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참 많았고,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으로 돌아가면 배우가 장르를 개척할 수 있는 영역은 뮤직비디오 정도였다. 그런데 본인이 앨범을 내지 않으면 뮤비를 만들 수 없었던 것이 계기가 되어 활동하게 됐다. 노래를 못하기에 래퍼로 합의했다(웃음). 시간이 흐르고 난 다음, 돌이켜보면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있지만 어쨌든 내 순수한 의도는 그것이었다.

Q. 그렇다면 현재 개척하고 싶다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장혁 : 지금까지 내가 한 작품보다 안 한 작품들이 더 많다. 어떤 크고 작은 작품이든 하면서 여러가지 시도도 해볼 수 있다. ‘개척해야지’ 마음 먹기 보다, 작년과 올해가 다르고 경험하는 것들이 다 다르다보니, 자연스럽게 하면서 도전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올해 서른 번째 작품을 했더라. 그러면 현장을 서른 번 간 것인데, 그 현장이 다 다르다. 영화, 드라마 처럼 매체의 차이도 있으나 똑같은 감독과 함께 해도 캐릭터가 다르고 만나는 배우들도 다르다보니 늘 달랐다.

Q. 2014년 버전으로는 한류 개척도 생각해볼 수 있는 부분 아닌가. 이미 중국에서 영화를 찍은 적도 있고.
장혁 :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20대 핫한 배우가 아니고서는 어떤 작품, 어떤 상황이 주어지는 것에 따라 달라진다. 현재로선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포텐셜은 분명히 있지만, 상황들이 맞아 떨어져야 할 수 있는 것이다.Q. 작년에는 MBC ‘일밤’의 ‘진짜 사나이’도 경험했다. 이 프로그램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장혁 : 내가 20대 후반에 군대를 가서 서른 한 살 11월에 제대를 했다. 지금까지 살아온 발자취를 봤을 때 그 시절이 생각이 참 많았다.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는 시기이기도 했고, 막연하게 생각해보면 열 아홉과 스무살로 넘어가던 시기에 연기를 처음 시작하는 등, 아홉살 때 변화들이 있더라. 그런데 어느 순간 현장을 뛰면서 많은 것을 잊고 살았구나 싶었다. 그래서 지난 해 30대 후반, 또 다시 나이 앞자리가 바뀌기 전에 군대에 들어가면 그런 느낌을 다시 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능이라고 생각했다면 하지 않았을텐데 그런 마음으로 갔고, 실제로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달에 1주일 동안 군대에 들어가있었는데, 다른 3주보다 그 1주의 시간이 훨씬 더 긴 시간이었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장혁

Q. 나이 이야기를 하니 그런데 당신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열정과 열혈로 읽힌다. 현장에서 처지는 경우는 없나.
장혁 : 현장은 늘 즐겁고 재미있다. 물론 잘 풀리지 않아 다운 되는 날도 있지만, 현장의 생생함이 좋다. 내 입장에서는 마치 시장에서 무언가를 세일즈하는 기분도 든다. 오늘 내가 뭔가를 만들었는데 이만큼 파는 날도 있고 생각보다 많이 팔지 못하는 날도 있고.

Q. 소속사에서는 매니저들보다 일찍 ‘출근’하기로도 유명하다.
장혁 : 예전에 꿈이 회사원이 되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건설 쪽에 종사하시다보니 사우디 같이 먼 곳으로 가시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꼭 6시에 퇴근하는 직업을 갖고 싶었다. 그래서 회사 다니는 느낌이 좋다. 지금 회사에 벌써 20년 째 있는데, 출근하면 책도 읽고 연습공간으로 가서 연습도 하고 운동하는 곳도 가까워 좋다.

Q. 그렇게 출퇴근하는 직업이 갖고 싶었다면서 배우가 됐다.
장혁 : 웃기면서도 미스터리다. 나 스스로는 정작 배우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됐다. 그만큼 인생이란 웃기다. 19세 아버지와 이런 저런 진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시절, 아버지 친구 분 중 한 분이 체대 교수였다. 내가 당시에 운동을 하고 있었는데 사실 비전이 없었던 차에 그 분이 ‘어차피 예체능을 했으니 다른 쪽으로 시켜볼 것’을 권유했다. 그래서 미술도 했다. 그러다 경험하게 된 연극반이 참 재미있더라. 결국 연영과를 가게 됐다. 그렇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배우가 돼야지’라는 생각보다 그저 습관처럼 열심히 했다. 나는 운동할 때도 열심히 했으니까. 하지만 ‘모델’이라는 드라마를 찍고 나서 배우란 픽업을 당해야 하는 직업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경쟁을 해야하는데 색깔이 없고 매력이 없으면 아무도 찾아주지 않더라. 오디션도 참 많이 봤는데, 내가 던지려는 것만 던지면 안되더라. 공감대를 형성하고나서 던져야 하는 것이었다. 또 현장에서 만나게 되는 매력있는 배우들을 통해 ‘배우란 참 멋있는 것이구나. 나도 저렇게 만들어가야 하는 것이구나’를 차츰 느끼게 됐다. 시간이 흐르다보니까 재미있고 더 하고 싶어졌다.

Q. 당신은 캐릭터로부터 쉽게 빠져나오는 편인가.
장혁 : 내가 참 냉정한 것이 아무리 애착을 느껴도 딱딱 끊어내는 것이 트레이닝이 돼있다. 작품을 하다보면 두 개를 동시에 할 때도 있고, 이 캐릭터를 갖고 있으면 저 캐릭터를 못한다. 그런 생활 안에서 하다보니 금세 다시 나로 돌아온다. 평상시에는 프로모션 등 행사를 가면 접하게 되는 좋은 것들을 보면서도 ‘이건 내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계속 한다.

Q. 당신 스스로 생각하는 장점이 무엇인가.
장혁 : 열정이 있는 것, 그거 말고 장점이 없다. 그런데 이 열정은 해가 갈수록 거세지는 것 같다. 스물 한 살 때의 나보다 지금이 더 센 것 같다.

장혁

Q. 혼자 내려앉아 있는 자기만의 시간은 언제 갖나.
장혁 : 새벽 시간 집에 혼자 있으면서 그런 시간을 보낸다. 영화를 주로 보는데, 마치 여행을 간 것 같은 기분이다. 운동하면서도 그런 것을 느낀다. 사실 운동을 규칙적으로 한다는 것이 자신과의 약속인데 그것을 지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이다.

Q.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나.
장혁 : 어떤 현장이던 많이 나와서 부딪히라고 말해주고 싶다. 현장에서 나는 좋은 선배를 만났고, 가장 귀한 시간을 가졌다. 요즘에는 시사회 뒷풀이도 자주 간다. 그 현장에서 만난 배우들과도 친해져서 서로 성향을 알게 되면 나중에 연기할 때도 도움이 되더라.

Q. 어떤 사람이 되고 싶나.
장혁 : 어떤 배우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없지만, 요즘에는 아이들이 있으니 좋은 아빠를 넘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 예전에 내 삶에 배우 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진다. 사람이란 늘 좋은 측면과 그렇지 않은 측면이 있긴 하지만, 좋은 측면이 많은 사람이 되고 싶다.

글. 배선영 sypova@tenasia.co.kr
사진. 구혜정 photonine@tenas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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